▲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2008년에 존 파브로(Jon Favreau)라는 청년이 백악관에 들어갔다. 그는 대선기간 동안 버락 오바마의 연설문 초안들을 썼다. 오바마는 대통령에 당선 되자 27살의 파브로를 연설문 총 책임자로 불렀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대선으로부터 4년 전. 그 때 오바마는 “연설문 작성에 대한 당신의 이론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파브로의 답변을 요약하자면 “정치에 실망하고 상처 입은 평범한 사람들에게, 연설은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공감대를 확산시켜준다”였다. 그는 바로 채용됐다.

존 파브로는 오바마의 연설스타일이나 운율 등을 연구하며 초안을 작성했다. 그가 쓴 신선한 감각의 뜻 깊은 문장들은 오바마의 최종수정을 거쳐 ‘담대한 희망’을 전했다. 선거직전 터진 금융위기 때에는 하루 세시간만 잤다고 한다. 오바마의 당선에 파브로의 공로를 부정할 사람은 없었다.

문제가 된 것은 당선 직후였다. 과거 추수감사절 파티에서 힐러리의 전신사진 판넬과 찍은 사진 때문이었다. 그의 오른손이 오바마의 경선 상대였던 힐러리의 가슴께에 있었다. 비난이 일었고 파브로는 힐러리에게 사과를 했다. 힐러리는 너그럽게 넘어가 주었으나 책임을 지겠다며 사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이 어린 일개 연설문 작성가에 대한 여론으론 심해 보이지만, 오바마가 대선 동안 정치적 올바름을 주장했기에 비판은 정당했다.

오바마의 등장은 시대적 요구와 맞물려 있다. 직전의 부시 행정부는 폭력적인 일방주의 외교정책을 폈다. 국외에 대한 폭력을 정당화하면서 국내의 다양한 문제들도 구조적 폭력 속에 가두었다. 미국 내 무슬림들의 평등한 권리를 주장하면 이라크와 전쟁 중인 조국을 걱정하지 않는 것으로 간주하는 식이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거꾸로 가는 듯 보였다. 임기 말 터진 금융 위기는 부시 행정부 기조의 총체적 결말로 이해됐고, 새로운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었다.

희망을 갖자며 정치적 올바름을 앞세우는 오바마에게 시선이 쏠리는 것은 당연했다. 후보 자신이 소수자인 흑인이었기 때문에 민주주의 이념, 인권, 반(反)차별, 성 평등 등 여러 겹의 기대가 자리 잡을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파브로의 사진은 오바마를 뽑아준 표심에 대한 배반이면서, 동시에 파브로 자신의 연설문에 대한 배반이기도 했다.

정권에게 정치적 올바름을 기대하지 않으면 나랏일에 때가 타는 것도 개의치 않게 된다. 옳은 말을 하는 정권일수록 사회적 검증의 체는 좁아지고 가혹하다. 정부에 거는 기대만큼 비판의 수위는 높아진다. 원칙과 상식을 표방한 문재인 정부의 여러 인사들에 대한 비판은 그래서 깐깐할 수밖에 없다.

탁현민 청와대 의전행정관이 과거 출판했던 책에서 보여준 여성관이 논란이 되는 것도 마찬가지다. 책이 나오고 얼마 안됐을 때, 이미 탁 행정관은 ‘나꼼수’ 행사 기획자로 나름 세간에 알려져 있었다. 그런데 그 때는 논란이 일지 않았다. 달라진 것은 그가 문재인 정부에서 일한다는 사실 뿐이다. 그의 책 내용이 문재인에게 표를 준 이들이 기대하는 ‘상식’과 잘 들어맞지 않기 때문에 논란은 증폭된다.

지금 탁 행정관을 향한 성 인식 기준이 10년 전에 사회의 기본 상식으로 널리 통용 됐다면, 책이 출간되자 마자 비판이 일어났을 것이다. 당시 우리 사회가 정치적 올바름을 당대의 문제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이다. 실제로 책이 출간되던 그 해 대선에서 당선된 사람은 관기발언과 ‘마사지 받을 땐 얼굴 덜 예쁜 여자의 서비스가 더 좋다’고 말하던 이명박 후보였다. 현재의 논란은 과거에 우리사회가 유예했던 미래와 만나는 장면이다. 유예된 미래를 뒤늦게 검증하는 중이다.

때문에 ‘남자들은 어릴 때 그렇다, 남들 앞에 꺼내기 힘든 솔직한 고백이다, 사람은 변한다, 야당의 몽니에 발목 잡힌다, 정부와 여당을 지지한다면 그를 지켜야 한다’ 등의 말들은, 여전히 시대가 원하는 상식의 본질과는 동떨어진 변명이다. 현재를 다시 미래로 유예 시키는 행위다.

사실 존 파브로는 사진문제로 곤욕을 치렀을 때 사퇴하지 않았다. 2013년까지 백악관에 있었다. 그가 한창 일하던 2011년에 ‘월가를 점령하라’ 운동이 일어났다. 주제가 99% 대 1%의 싸움이었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평등, 인권, 민주주의 등이 핵심일 수밖에 없었다. 같은 취지의 감동적인 연설문을 작성하던 존 파브로 한 명의 거취와 상관없이 미국 시민사회는 움직였던 것이다.

탁 행정관 논란에서도 사임이나 직무유지는 가장 중요한 사안이 아니다. 그는 파브로의 연설문처럼 두 달도 안 된 문재인 정부의 각종 의전에서 사람들에게 감동을 줬다. 아마 앞으로도 문재인 정부에 작지 않은 기여를 할 것이다. 하지만 그의 거취와 상관없이 시대가 요구하는 올바름에 대한 논의를 유예해선 안 된다. 탁현민이 상징하는 유예된 미래에 대한 검증은 늘 현재 진행형이어야 한다. 시대의 요구를 얼렁뚱땅 넘기지 않는 게 중요하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당대에 접은 올바름에 대한 기대는 훗날의 고난으로 돌아온다. 모두는 모두의 이명박 박근혜 트럼프가 될 수 있다. 세상이 더 나아지도록 하는 건 언제나 시민의 몫이다. 공정하고 정의로운 나라를 만들겠다는 문재인 정부가 등장한 지금이야 말로 시대정신을 다듬을 절호의 기회다. 우리가 올바른 방향으로 갈 수 있다는 공감대를 확산시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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