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석재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이석재 칼럼니스트】 20여 년 전 대학 학부생이었던 시절, 모 교수님의 강의 때 있었던 일이다. 중간고사였는지 아니면 기말고사였는지 정확치는 않지만 시험 전 마지막 수업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수업시간은 어느덧 후반으로 접어들었고, 절대평가와 상대평가에 대한 내용으로 강의는 마무리되어가고 있었다. 당시 수업을 그리 열심히 듣는 학생이 아니었던 내 귓가에 강단에서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려오기 시작했던 것은 교수님께서 평소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셨기 때문인 것 같다.

절대평가와 상대평가 중 무엇이 더 나은 평가방식인지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고 생각한다. 다만 오랜 시간 동안 줄 세우기에 지쳐 있던 나에게 전자가 후자보다 좀 더 인간적인 방식으로 다가왔던 것은 사실이다. 평소 사회나 학내 문제에 무관심한 것처럼 보였던 교수님 역시도 대학에서마저 상대평가 방식을 강요하는 현실에 비판적 견해를 내비치며 수업을 이어가셨다. 교수님의 그러한 태도는 당연히 교과서에 나오는 내용을 그대로 읊어주시리라 생각했던 내게 신선한 모습으로 다가왔다.

그렇게 수업은 끝이 났고 교수님은 시험범위를 알려주신 뒤 교단에서 내려와 강의실 입구로 걸어가셨다. 그때 왜 그랬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앎과 실천이 일치하는 사소하지만 의미 있는 사례를 확인하고픈 기대감이 있었던 것 같다.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 교수님을 향해 큰 목소리로 질문을 던졌다. 교수님. 그럼 이번 시험은 절대평가 방식으로 채점하시는 건가요.

교수님은 왜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건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나를 빤히 쳐다보셨다. 그리고 한심하다는 듯 조소 섞인 표정으로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당연히 상대평가지, 너는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던지는 거니. 그러시고는 다시 질문할 겨를도 없이 그대로 강의실 밖으로 나가셨다. 그 이후로 한동안 지식인의 이중성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나는 종종 이날의 사건을 사례로 들었다.

그랬다. ‘한동안’ 자주 언급했지만, 그 빈도는 시간이 지날수록 점차 줄어들었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그때의 상황은 조금씩 다른 각도로 기억되었다. 당시 대학의 학사운영은 이미 전산 시스템으로 자동화되어 있었고, 교수가 정해진 상대평가 비율을 지키지 않고 학점을 입력하면 아예 등록이 되지 않았다. 교수 한 명이 어찌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작은 사례를 두고 한 사람을 너무 오랫동안 비난한 것은 아닌가 하는 미안함이 커져갔다.

그럼에도 그날의 사건이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변색된 것은 아니었다. 어딘지 모를 불편함으로 늘 기억 한 편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최근 들어 이 불편함의 정체를 조금은 알게 된 것 같다. 시간이 흐르고 나 역시도 기성세대가 된 지금도 여전히 당시의 기억이 씁쓸하게 남아 있었던 것은 단순히 강단과 현실의 불일치 때문만은 아니었다.

사람은 누구나 현실과 이상, 지식과 실천의 모순 속에서 살아간다. 이상이나 이론이 반드시 정답인 것은 아니다. 어느 지점에서는 맞아떨어지는 주장이 다른 곳에서는 취지와 다른 결론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그렇기에 구체적 현실을 따라가다 보면 어제 한 말과 오늘 한 말이 입장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는 경우가 많다.

우리는 그러한 모습에, 특히나 정치권력과 결부된 경우에는 실망할 수밖에 없지만, 내가 최근 들어 불편하게 느끼는 것은 앎과 행위의 괴리 때문만은 아니다. 그 괴리 사이에 당연히 놓여있어야 하는 긴장감의 부재, 나는 요즘 그 지점에 자주 실망하곤 한다.

무엇이 정답인지 쉽게 말할 수 없는 시절이다. 그러면서도 예전보다 좀 더 빠르게 선택을 해야 하는 시절이기도 하다. 다만 상황과 입장에 따라 평소의 입장을 번복할 수는 있지만, 뒤집어도 너무 단호하게 뒤집는 사람들 역시 그만큼 많아진 것 같다.

내가 20여 년 전 강의실에서 있었던 일을 아직까지 마음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은 그 때문이었던 것 같다. 당장에 바뀌지 않는 현실이라도 교수와 제자는 무엇이 옳고 그른가를 놓고 몇 마디를 더 나누었어야 하지 않을까. 당신과 나, 그리고 현실과 이상 사이 그 어딘가에 지적인 긴장감과 존중의 여지를 남겨뒀어야 하지 않을까. 최근 들어 만나게 되는 글과 말의 단호한 변동들 앞에서 그날의 기억을 또 다르게 변주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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