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일본제국의 마지막 군인은 1974년에야 항복했다. 오노다 히로. 일본의 패망 후 무려 29년 동안 필리핀의 한 섬에서 자신만의 전쟁을 했다.

정보장교였던 오노다 소위는 필리핀 루방섬이 1945년 미군에 의해 점령 될 때 그 곳에 있었다. 미군의 공격을 지연시키라는 명령을 받은 상태였다. 사단장은 명령과 함께 항복과 자살을 금지했다. 끝까지 살아남아 버티고 버텨서 임무를 수행하라는 뜻이었다.

오노다의 부대는 미군의 화력 앞에 거의 궤멸되다시피 했다. 일부 패잔병들은 산 속으로 뿔뿔이 흩어졌다가 미군이 살포하는 전단지를 보고 일본의 항복을 알게 되면서 투항했다. 그러나 오노다와 그를 따르는 소수의 군인들은 일본의 항복을 믿지 않았다. 미군의 심리전으로 보았던 것이다. 그는 자신에게 하달 된 명령만을 신봉하고 다른 정보들은 모두 거짓으로 보았다.

그가 종전 후 해를 넘겨가며 저항하자 그의 옛 전우들이 그를 설득하기 위해 루방섬을 찾았다. 전우들은 섬 여기저기를 돌며 항복하라고 소리쳤고 오노다도 그들의 외침을 들었다. 그러나 여전히 그는 이를 미군의 계략으로 보았고, 급기야 그의 가족이 찾아와 설득했음에도 도통 고집을 꺾지 않았다.

가족들 조차 설득하지 못하는 동안 그는 섬의 원주민들을 습격하는 등의 범죄행각을 벌였다. 물론 그 자신에게는 그것이 전쟁의 일부이자 임무의 수행이었으며 유격전이었다. 오노다 일행의 패악에 필리핀 정부가 토벌대를 파견하기도 했다. 그러는 사이 어느새 20년이 흘렀고 동료들이 하나씩 죽자 그는 혼자 남았다. 그럼에도 그의 전쟁은 계속 됐다.

결국 29년이 지났다. 1974년, 스즈키 노리오 교수가 그를 찾아 루방섬을 찾는다. 쉽지 않은 설득 끝에 제국의 마지막 군인 오노다는 일본의 항복을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자신의 상관이 직접 항복명령서를 가져와 명령한다면 항복하겠다는 뜻을 전한다. 정말로 종전 29년 만에 상관이 찾아왔고 비로소 오노다의 전쟁은 끝났다.

세계를 부정하는 세계 속의 인간 오노다 히로. 그는 전쟁이 끝난 세계의 어느 한 섬에서 여전히 과거의 일본으로 철저하게 남아있었다. 천황에 충성하는 제국의 군인이라면 명령 앞에 어떻게 해야 하는가가 그가 가진 신념의 전부였다고 볼 수 있다. 그에게 신념을 심어준 것은 동양의 가부장적 왕권 사회와 서구식 제국주의의 혼종으로 빚은 20세기초 일본 문화였겠지만, 홀로 수십년간 전쟁을 치르는 동안 그를 지탱시킨 것은 자기 나름대로 체화한 모종의 이념이었을 것이다. 때로 사람은 물질로 존재하지 않는 무언가를 위해 세상을 배격한다. 오노다는 그 자체로 걸어다니는 하나의 이데올로기였으며 섬 안의 또 다른 섬이었다.

정치권이 시끄럽다. 이명박 정부에서 만들어진 방송가 블랙리스트의 존재가 확인되자, 자유한국당 일부 의원들이 정치보복이라며 참여정부의 문화예술계 정책도 따져 보자면서 벌어진 논란이다. 그러나 실체가 확인된 법 위반 혐의를 별도사안의 단순추정과 비교하는 것이 법리적으로 무슨 의미인가 싶다. 각각은 별건이며 주장을 확실히 하고 싶다면 관련증거를 찾아 고소하면 된다. 분명한 정치보복이 의심되는 사건의 칼날을 무디게 하려는 의도가 아니라면, 당시의 집권당과 같은 뿌리를 가진 공당의 정치인들이 할 만한 행동은 아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 국가의 정치인이라면 민주주의를 훼손한 사례를 용인해선 안된다.

지난 박근혜 정권을 물린 촛불시위에서 국민들이 보여준 대로라면, 우리나라 사람들의 인식 속에 민주주의란 정의를 좇는 하나의 방법이다. 이명박정부의 블랙리스트를 다른 사안과 결부시켜 덮고 지나가자는 주장을 한다면, 그것은 대한민국이라는 하나의 세계가 추구하는 흐름으로부터 스스로를 섬으로 격리시키는 행위다. 종전 후 세계의 변화 속에서도 스스로 섬이 되어버린 오노다 히로와 같다.

물론 전쟁과 정치는 다르고, 정치적 변동을 항복과 점령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는 옳지 않다. 생각 해 보고 싶은 점은 거기에 있지 않다. 불행했던 시대를 대표하는 특정한 이념이나 가치관이 청산되지 않아서 남게 되는 잔여물에도 불구하고, 문명은 더 발전하고 인류는 조금씩 더 진보한다. 그렇다면 이미 사라졌어야 할 낡은 유물이 우리 곁에 남아 어떤 기능을 하는지가 오랫동안 궁금했다.

나는 그 답을 전두환씨가 역사 속에 완벽하게 단죄 되지 않고 번번이 광주와 민주주의를 욕보이는 것으로부터 얻었다. 구시대의 신념을 가진 그는 어두운 과거의 징표다. 저 선까지가 과거의 세계, 그리고 그 곳으로부터 여기까지가 새로운 세상이다. 오노다 히로는 제국주의 시대의 경쟁이 낳은 참화를 세계관이라는 거대한 시각으로부터 인간이라는 체감하기 쉬운 현실로 조정한다. 그리하여 오노다는 제국주의 일본이 한 인간에게 끼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증명함으로써 역사의 교훈으로 기능한다. 전두환씨 또한 반민주독재국가가 끼치는 해악의 이정표로 기능한다. 전씨가 오래 살아남아서 역사의 증거로 남아있는 게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시민이 스스로 나서서 국가의 기조를 바꿔 나가겠다는 지금, 과거의 적폐적 사고와 가치관이 정조준 될 수 밖에 없다. 역사는 필연적으로 과거의 부조리를 솎아내려 한다. 앞으로 오노다나 전두환씨처럼 그 기준이 어디부터인지 스스로 알려주는 이들이 하나 둘씩 수면 위로 떠오를 것이다. 부디 오래 버텨서 훗날 우리가 벌인 오류를 끊임없이 상기시켜주는 역할을 담당해주는 일이 없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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