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뉴시스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인정한 4조 4천억원에 달하는 차명 자금을 실명전환되지 않고 고스란히 찾아간 것으로 드러났다. 차명자산 보유에 따른 과징금이나 세금도 내지 않았다.

16일 금융감독원이 국회 정무위원회 소속 박용진 의원실(더불어민주당, 서울 강북을)에 제출한 ‘2008년 조준웅 특검 시 확인된 은행별 차명계좌 및 실명전환 현황’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8년 삼성 특검에서 확인된 이건희 차명계좌는 대부분 실명으로 전환되지 않은 채 전부 해지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르면 이건희 회장이 차명으로 보유하고 있던 64건의 은행계좌의 실명 전환율은 1.9%에 불과하다. 64개 가운데 단 1개만이 실명으로 전환됐고, 나머지 63개 계좌는 실명전환도 하지 않고 모두 계약해지 혹은 만기해지 된 것이다.

심지어 957개 증권계좌는 단 한 건도 실명 전환되지 않은 채 모두 전액 출금(이체)됐다. 이 가운데 646개는 계좌가 폐쇄됐고 현재 311개 계좌가 유지되고는 있지만 잔고가 없거나 고객 예탁금 이용료 등이 입금되어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앞서 지난 2008년 4월 17일 당시 조준웅 삼성 특검은 삼성 전·현직 임원 486명의 명의로 1199개의 차명계좌에 이건희 차명재산이 예치돼 있다고 발표했다.

당시 밝혀진 차명재산은 주식(4조1009억원)과 예금(2930억원) 등 총 4조5천억원 규모에 달했다. 특검은 이를 이 회장이 선대 회장으로부터 상속받은 것으로 인정해줬다.

▲ <2008년 삼성특검, 486명 명의 1,199개 차명계좌 현황>ⓒ박용진 의원실 제공

차명계좌 존재가 밝혀진 직후인 지난 2008년 4월 22일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측은 모두 실명전환하고 누락한 세금을 모두 납부하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당시 삼성 측은 삼성 특검사태에 대한 대국민 사과문에서 “조세포탈 문제가 된 차명계좌는 경영권 보호를 위해 명의 신탁한 것으로 모두 이건희 회장 실명으로 전환하겠다”며 “누락된 세금을 모두 납부한 후 남는 돈을 회장이나 가족을 위해 쓰지는 않겠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건희 회장은 이 같은 대국민약속과는 달리 실명전환을 하지 않고 과징금도 내지 않은 채 차명계좌의 돈을 회수해갔다. 이번 금감원 자료에는 드러난 차명재산 4조5천억원 중 주식과 예금 약 4조4천억원을 이 회장이 찾아간 것으로 나와 있다.

금융실명제법에 따라 실명전환을 할 경우에는 관련법 긴급명령(‘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명령’) 시행(1993년 8월 12일)일로부터 실명전환 의무기간(같은해 10월12일까지) 이후 차명재산 보유 기간동안 발생한 이자·배당수익의 최고 99%를 소득세·주민세로 원천징수하고, 긴급명령일 당일 기준 자산 가액의 50%(의무기간 5년 이상 경과)를 과징금으로 부과하도록 돼 있다.

이 경우 이 회장은 많게는 조 단위로 추정되는 과징금과 세금을 정부에 납부해야 한다. 하지만 실명전환이 아닌 차명계좌를 해지한 뒤 이 회장 명의 계좌에 입금시킨 명의변경으로 방식으로 차명 재산 전액을 찾아가면서 막대한 과징금과 세금을 내지 않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금융실명법 제3조에 따르면 금융회사 등은 거래자의 실명으로 금융거래를 해야 하고, 금융실명제 실시 이전에 개설된 비실명계좌는 모두 실명 전환해야 한다. 금융기관은 실명이 아닌 것으로 확인된 이건희 차명 계좌에 있던 금융자산에 대해서는 지급·상환·환급·환매 등을 해서는 안 됨에도 불구하고 이건희 차명계좌에 있던 비실명재산을 모두 지급한 것이다.

이는 당시 금융위원회가 “차명계좌는 비실명자산이 아니기 때문에, 금융실명제에 따른 실명전환 대상이 아니다”라는 유권해석을 내렸기 때문이다.

금융위는 차명계좌가 금융실명제법에 따른 실명전환 적용 대상인지에 대한 박용진 의원실의 질의에 “차명거래에 의한 기존 금융자산이라도, 그 명의가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등에 따른 실명(주민등록표상 명의)이라면 이는 기존 비실명자산에 속하지 아니해 실명전환의 대상이 아니다”라고 답했다.

박 의원은 “금융위가 근거 인용한 대목인 1997년 4월17일 선고된 ‘노태우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의 경우 대법관 2명(김형선·송진훈)의 보충의견에 불과하다”면서 “이듬해인 1998년 8월 ‘차명계좌는 당연히 실명전환 대상’이라는 대법원 판결도 나온 바 있고 이 판결문은 금융위가 2008년에 발간한 금융실명제 종합편람에 실려 있다”며 금융위의 유권해석이 부당하다고 지적했따. 이어 “금융위가 이를 모를 리 없음에도 불구하고 1997년 대법원의 판결을 바탕으로 한 유권해석을 고수하고 있는 것”이라며 꼬집었다.

박 의원은 “결국 삼성은 대국민약속을 하나도 지키지 않았고 금융위원회는 이건희 회장에게 면죄부를 준 것”이라면서 “지금이라도 징수하지 못한 과징금과 이자 및 배당소득세를 추징해 경제정의와 공평과세를 실현해야 한다”고 밝혔다.

또 박 의원은 “수십 년간 차명계좌를 유지해 이자 및 배당소득이 엄청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경우에 따라 과징금과 소득세를 수조 원까지 추징할 수 있다”면서 “아직 10년 시효가 살아있는 만큼 금융위원회도 금융적폐를 청산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국회 정무위 국정감사 증인으로 출석한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박 의원이 지적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의 차명계좌 문제와 관련해 “명의인이 실명으로 (계좌개설을) 했다면 실명거래로 본다는게 대법원의 입장”이라며 “(삼성전자에) 특혜조치를 취한 적 없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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