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투데이신문 최병춘 기자】 “현실성 없는 이야기다” “가능성이 전혀 없다”

지난 10월 30일 미국 블룸버그통신은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을 삼성전자의 총수 대행 역할을 맡다 사퇴한 권오현 부회장의 후임 후보로 거론되자 호텔신라 측 관계자가 기자에게 털어놓은 말이다.

이 관계자는 이 사장은 호텔신라의 경영인이라는 점을 강조하면서 삼성전자와의 관련성이 전무하고 국내에서는 이 사장의 등판설이 ‘가능성 없음’으로 더 이상 거론조차 안되는 이슈로 규정했다. 또 이 같은 사정을 잘 모르는 외신이 삼성전자 임원 인사가 임박하면서 내놓은 추측일 뿐이라고 일축했다. 그리고 삼성그룹 경영 승계구도가 다 정해진 마당에 자칫 분쟁의 소지가 될 수 있는 이 사장의 등판론이 다시 거론된다는게 마뜩지 않은 분위기가 역력했다.

결과적으로 외신발(發) 이부진 사장에 대한 하마평은 결국 하마평에 그쳤다. 바로 다음날인 31일 삼성전자는 새로운 사장단을 발표했고 그 명단에 이부진 사장의 이름은 없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이미 삼성그룹은 삼성물산을 중심으로 사업구조가 개편되면서 이재용 부회장으로 경영승계 구도가 사실상 확정된 상황이다. 게다가 이 사장 주로 호텔신라만 맡아왔고 그룹차원에서도 역할이 제한적이었다는 점에서 이른바 등판설은 ‘불가능한 시나리오’라는 관측이 업계에 지배적이었던 것도 사실이다.

이 사장 등판설은 결과적으로 해프닝에 그친셈이다. 하지만 잠깐이나마 시장의 시선을 끌기 충분했다. 최근 호텔신라의 주가 상승세도 이 사장의 등판설과 무관치 않을 것이라는 진단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상황을 잘 모르는 외신의 추측으로 치부했지만 이 사장의 등판설은 꾸준히 대내외적으로 제기돼 왔던 이슈다. 특히 삼성전자 임원 인사 시즌이 되면 종종 나돌았다.

직접적인 등판까지는 아니더라도 이 사장의 역할론을 주목하는 시선은 줄곧 있었다.

양 측 모두 ‘현실성 없는 이야기’라고 하는데도 굳이 같은 이야기가 반복되는 이유는 왜일까.

총수 또는 그룹을 이끌어갈 리더의 부재가 직접적인 이유일 테다. 이 부회장은 박근혜 정권과의 부적절한 유착 의혹으로 현재 구속된 상태인데다 이 부회장을 대신해 사실상 그룹을 이끌던 권 부회장 마저 ‘세대교체’를 이유로 자리에서 물러나면서 사실상 리더가 ‘공석’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제적으로 삼성의 불안한 리더십과 이에 대한 우려가 작용된 성격도 짙다. 이번 삼성전자의 임원인사 방향이 ‘안정’에 방점을 찍은 이유와도 일견 상통하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 부회장의 구속과 재판이 이어지는 사이 과거 이건희 회장의 4조원이 넘는 차명계좌 자금이 세간의 이슈로 떠오르는 등 삼성그룹 리더를 향한 사회적 지탄이 높아지고 있다.

총수의 부재를 넘어 가장 상층 책임자의 불확실성은 나아가 경영 자질에 대한 의심으로 확산될 수 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자의든 타의든 그동안 경쟁자 관계에 놓였던 이 사장이 대안으로 거론되는 것 또한 자연스럽다. 삼성에서는 줄곧 부정해왔지만 세간에서는 오랫동안 경영승계 문제를 두고 이 사장과 이 부회장 남매를 둘러싼 각종 설 끊이지 않았다.

승계 구도는 진작에 이 부회장 쪽으로 기울었음에도 시장에서는 이 사장을 ‘리틀 이건희’라고 평가하며 유력한 경쟁자로 꼽아왔다. 이 사장이 호텔신라를 맡으면서 나쁘지 않은 경영 능력을 보여줬다는 게 크게 작용됐다. 호텔신라를 통해 호텔과 면세점 사업에 집중하면서 신라스테이와 HDC신라면세점 등 신규사업에서 성과를 내고 있다.

반면 이 부회장은 사실상 그룹 총수 역할을 맡으면서 각종 악재에 둘러싸여있다. 법적 처벌 여부를 다투고 있는데다 이에 따른 여론의 뭇매도 이어지고 있다. 창업이후 삼성, 더 정확하게는 오너일가의 최대 위기인 셈이다.

더군다나 재판이 진행 중인 이 부회장의 복귀도 가늠하기 힘든 상황이다. 당사자의 손사레에도 이 사장 이름이 자꾸 거론되는 것은 삼성의 불안한 리더십의 반증이기도 하다.

게다가 일각에서는 이번에 진행된 삼성전자 인사를 두고 부재 중인 이 부회장 체제를 더욱 공고히 하기 위한 인사라고 평가하고 있다. 불확실한 오너의 복귀를 전제로한 인사인 만큼 불확실성의 연장선이라는 우려가 제기 될 수 있는 대목이다.

권 부회장의 후임은 이부진 사장이 아닌 이상훈 사장으로 낙점됐다. 이 사장은 공정거래위원회의 재계 간담회자리에 참석하는 등 본격적인 대회활동을 펼치고 있지만 아직까지 권 부회장에 이어 ‘총수 대행’ 역할까지 맡을지는 아직 분명치 않아 보인다. 때문에 아직까지 이 사장 등판설의 불씨가 완전히 꺼졌다고 보기 힘들다. 언제든 다시 불붙을 여지는 많이 남아있다.

다만 외신에서 이 사장을 거론하면서 그 이유 중 하나로 ‘오너일가’임을 꼽았다는 점도 많은 생각을 하게끔 한다. 외부시선에서 국내기업, 좁게는 삼성의 오너일가에서 이뤄지는 경영승계 관행이 얼마나 깊은지 알 수 있는 일면이기도 하다. 블룸버그는 이 사장을 권 부회장 후임 후보군으로 꼽으면서도 ‘오너일가 승계’에 대한 비판 여론을 부정적인 이유로 들기도 했다.

우리가 굳이 삼성이라는 기업, 그리고 그 집단을 이끄는 리더에 관심을 쏟는 이유는 분명하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기업이고 그만큼 국민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총수 자리를 두고 불거지는 각종 이야기에 대해 번번히 ‘아니다’라고 외쳐도 다시 들여다 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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