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병원 중환자실 간호사 투신
간호업계 악습 ‘태움’ 의혹 제기
근본적 원인, 열악한 근무환경
재발방지책 반드시 마련돼야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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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설 연휴 첫날 국내 유명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던 20대 신입 간호사가 자살하는 사건이 발생해 큰 파장이 일었다.

일각에서는 열악한 근무환경과 간호업계에서 관행돼온 ‘태움 문화’(직장 내 괴롭힘) 때문에 벌어진 비극이라는 주장이 제기돼 논란은 더욱 커지고 있다.

22일 전국보건의료산업노동조합, 공공운수노조 의료연대본부 등에 따르면 지난 15일 서울아산병원 내과계 중환자실 소속 간호사 박모(27·여)씨가 송파구 소재의 한 아파트에서 몸을 던져 유명을 달리했다.

지난해 9월 입사한 박씨는 오후 1시에 출근해 다음날 새벽 5시에 퇴근하는 등 16시간에 달하는 장시간중노동에 시달렸다. 또한 끼니조차 제대로 챙기지 못해 입사 후 6개월의 적응교육기간 동안 몸무게가 5kg나 빠졌다. 뿐만 아니라 업무상 실수로 인한 소송에 대한 심리적 압박도 상당했다.

이와 더불어 박씨가 간호업계서 관행돼오고 있는 태움 문화로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주장도 더해졌다.

태움이란 ‘영혼이 재가 될 때까지 태운다’는 의미로 선배 간호사가 신입 간호사에게 업무를 가르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과도한 폭언과 폭행을 뜻하는 은어다.

박씨의 남자친구는 모 커뮤니티 게시판을 통해 “여자친구는 선배 간호사에게 칭찬받고 싶고 부족한 부분을 채우겠다는 마음으로 하루에 세 시간씩 밖에 못 자며 공부했다”며 “살이 5kg이 빠졌으며, 자신감 넘치던 표정이 나날이 우울해지고 불안해하는 모습을 보는데 해줄 수 있는 게 없어 더욱 슬펐다”고 전했다.

이어 “간호부 윗선에서 당연하다고 여겨지는 ‘태움’이 여자친구를 벼랑 끝으로 몰아간 요소 중 하나가 아닐까 싶다”면서 “여자친구만 힘든 일을 겪었으리라 생각하지 않는다. 다른 간호사분들도 힘든 것을 매우 잘 알기에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힘을 합쳐야 한다”고 호소했다.

우리나라의 상당수 간호사들이 ▲회의·교육·행사·평가 등을 위한 장시간노동 ▲의사 및 약사 업무 대행 ▲사고 및 불법 의료행위 소송에 대한 책임 ▲임신순번제 ▲사직순번제 ▲폭언·폭행·성희롱 노출 ▲직무스트레스 및 감정노동 등의 현실에 놓여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의료연대본부에서 간호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응답자 가운데 70%가 조기출근을, 79.6%가 연장근무를 한다고 답했다. 그래서인지 우리나라 간호사의 평균 근속년수는 5.4년에 불과하며 신입 간호사의 이직률이 33.9%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연간 현장에 투입되는 2만여명의 간호인력 다수가 박씨와 비슷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으로 해석된다.

위 사진은 기사와 직접 관련 없음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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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업계 근로환경 개선 우선돼야”

보건의료노조 등은 박씨가 신입 간호사 적응교육기간동안 받은 스트레스, 과도한 업무량, 긴 노동시간, 책임 부담 등으로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고 보고 있다.

우리나라의 간호현장은 폭발 직전이며 박씨의 죽음은 이를 보여주는 상징적인 징표라고 지적했다. 이어 태움 등 악습을 근절하기 위해서는 인력부족 등 간호사들의 열악한 근무환경이 개선돼야 한다고 그들의 목소리다.

보건의료노조 나영명 정책국장은 본지와의 통화에서 “태움에 대해서는 교육하는 사람과 교육받는 사람 입장에 차이가 있다. 전자는 간호사의 업무가 환자의 건강과 직결되기 때문에 실수를 허용해선 안 되기 때문에 엄하게 가르친다는, 후자는 인격적으로 모독하고 폭언과 푝력까지 수반되는 교육은 과하다는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태움의 가장 큰 원인은 근무환경 가운데 특히 인력부족으로 인해 정비되지 않은 신입 간호사 교육시스템에 있다”면서 “이번 사고도 이런 문제들이 오랫동안 개선되지 못해 터져나온 극단적인 사례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또 “박씨와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서는 신입 간호사들을 대상으로 3~6개월 동안 충분한 교육이 이뤄져야 하며 이 기간에는 정규인력으로 투입해서는 안 된다”며 “또한 간호업무를 병행하지 않도록 교육전담간호사를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 같은 개선 과정에서 병원 측에 인력증원 등으로 인한 비용이 수반될 수 있기 때문에 정부차원의 지원정책도 요구된다”고 덧붙였다.

한편 경찰은 정확한 사망 동기 등을 밝히기 위해 조사에 착수했다.

박씨의 가족과 남자친구를 소환해 참고인 조사를 벌였으며, 병원 관계자들도 참고인 신분으로 불러 조사하기 위해 소환 일정 조율 중에 있다.

또한 병원 측도 자체 진상조사를 통해 태움 논란이 사실로 드러날 경우 이에 따른 적절한 조치를 내리고, 교육과정 전반에 대한 문제점을 파악해 개선안을 마련할 계획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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