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등 제일주의’ 벗어나 ‘공정·정의’ 시대로
메달 색깔보다 ‘땀’ 강조하는 2030
노선영 파문으로 대변되는 공정·정의
촛불혁명 통해 발현되는 시대적 정신
시대정신 읽지 못하면 정치권은 도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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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16년 12월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 일대에서 열린 제6차 민중총궐기 ⓒ뉴시스

평창동계올림픽이 이제 종반으로 흐르고 있다. 이번 평창올림픽에는 그간 있었던 여타 올림픽과 다른 점이 있다. 우리 선수들의 메달 여부에 관계없이 국민들이 올림픽을 즐기고 있다는 점이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1등 제일주의에 빠져있었만 이제는 1등을 강요하지 않는다. 대신 강조되고 있는 것이 ‘공정’과 ‘정의’다. 이 같은 변화는 결국 촛불혁명이 우리 사회에 퍼지면서 올림픽 관람 문화를 바꾼 것 아니냐는 분석으로 이어지고 있다.

【투데이신문 홍상현 기자】지난 19일 강릉 스피드스케이트장에서 열린 여자 팀추월 준준결승 이후 여론은 들끓었다. 김보름, 노선영, 박지우 선수로 이뤄진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대표팀은 이날 3분03초76을 기록, 8팀 가운데 7위에 그치며 탈락했다. 이후 노선영 선수 왕따 의혹이 불거지면서 20일 빙상연맹은 긴급 기자회견까지 열었다. 그럼에도 파문은 가라앉지 않았다.

국민들이 분노하는 것은 준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노선영 선수를 왕따시켰다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국민들이 원하는 것은 메달 색깔이 아니라 김보름, 박지우 선수가 뒤처진 노선영 선수를 밀어주고 끌면서 함께 결승전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팀추월이라는 종목 특성상 마지막 위치에서 레이스를 마친 선수의 기록이 최종기록이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날 김보름, 박지우 선수는 뒤처진 노선영 선수를 뒤로 한 채 달려나가 결승전에 먼저 골인했다. 그 이후 낙담하는 노선영 선수는 뒤로 한 채 이어졌던 인터뷰 등에서 논란을 일으키면서 국민적 공분을 자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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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 박지우, 노선영, 김보름, 박승희 선수가 지난 21일 오후 강원도 강릉 스피드스케이팅 경기장에서 평창동계올림픽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팀추월 순위결정전을 앞두고 훈련하고 있다. ⓒ뉴시스

‘괜찮다’ 외치는 관중

확실한 것은 올림픽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선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졌다는 점이다. 과거 올림픽의 경우 은메달이나 동메달을 따도 선수들은 죄인처럼 행동해야 했다. 국민들 역시 이들을 죄인 취급했다. 금메달이 기대됐던 일부 선수들은 은메달을 따서 죄송하다는 사과 인터뷰까지 해야 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1등 제일주의를 추구해왔다. 1등을 한 선수에게는 수많은 혜택이 돌아갔지만 2~3등을 한 선수는 이름조차 알아주지 않았던 것이 과거 우리의 올림픽 모습이었다. 언론 역시 금메달을 따면 ‘값진 금메달’이라고 보도하면서도 은메달·동메달의 경우에는 ‘아쉽다’ 혹은 ‘금메달 획득 실패’ 등의 자극적 제목을 뽑아내기 바빴다.

하지만 이번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확실히 다른 모습이 나타났다. 지난 17일 쇼트트랙 남자 1000m 경기에서 서이라 선수가 동메달을 따는 순간 국민들은 그에게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문재인 대통령 역시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지난 18일 여자스피드스케이팅 500m 경기에서 이상화 선수가 은메달을 획득하자 국민들은 그녀를 응원했다. 과거에는 은메달 땄다는 소식을 들었다면 아쉽다는 반응을 보였을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이제 국민이 올림픽을 바라보는 시선이 완전히 달라졌다. 올림픽을 즐기고 있다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이다.

메달 순위에 들어가지 않은 선수들에 대한 응원도 이어지고 있다. 피겨스케이팅 아이스댄스의 민유라, 알렉산더 겜린 선수의 연기에 칭송했으며, 남자 피겨스케이팅 차준환 선수의 경기에 아낌없는 박수를 보냈다. 이와 함께 비인기 종목 선수들에게도 끊임없는 응원과 박수를 보내주고 있다는 점이 여느 올림픽과는 다른 모습이다.

뿌리 내린 ‘공정·정의’

이 같은 변화는 지난 촛불혁명을 지나면서 과거의 1등 제일주의보다는 ‘공정’과 ‘정의’를 강조하는 사회로 바뀌게 됐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정농단 사태로 인해 시민들은 광화문 광장 등 전국 곳곳에서 촛불집회를 매주 펼쳤다. 그리고 공정과 정의를 강조하기 시작했다.

특히 2030세대는 공정과 정의에 민감한 반응을 보였다. 실제로 남북 여자 아이스하키 단일팀 구성 논란이 일어났을 때 2030세대는 공정과 정의에 어긋난다면서 반대여론이 높았다. 이에 청와대 측에서는 ‘겸허히 수용한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2030세대가 점차 공정과 정의에 민감한 세대가 되면서 정치권은 물론 사회 전반에 걸쳐 공정과 정의를 강조해야 하는 사회가 됐다.

최근 불거진 ‘미투’ 운동 역시 이를 반영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자신도 성추행 혹은 성폭행을 당한 사실을 폭로하는 미투 운동이 사회 전반으로 번져 나가고 있다. 이는 정의와 공정에 민감한 2030세대가 이제는 더 이상 참지 않고 세상을 향해 적극적으로 표출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2030세대의 변화는 정치권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그동안 정치권은 유권자들과 별개로 움직인 것이 사실이다. 그간 유권자들은 ‘투표’만 하는 존재였다. 투표 이후에는 정치권이라는 기득권의 피지배자가 됐다. 하지만 이제 유권자, 특히 2030세대는 공정과 정의를 외치면서 정치권에 개입하기 시작했다. 바른미래당 유승민 공동 대표가 지난해 대선 후보로 출마했을 때, 2030세대가 지지를 보낸 것에 대해 당시 바른정당 소속 정치인들은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느꼈다. 2030세대의 적극적 모습을 경험한 것이다. 더불어민주당은 그런 모습을 일찌감치 경험했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관심을 그 어느 정당보다 더 강하게 보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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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정신 못 읽는 보수야당

반면 보수야당은 아직도 2030세대에 대한 이해가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정의와 공정에 민감한 이들을 상대로 보수야당은 아직도 ‘꼰대(?)’ 문화를 갖고 있다는 지적이 있다. 때문에 보수야당이 변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만약 정치권에서 조금만 공정하지 않거나 정의롭지 못한 일이 나온다면 2030세대의 비판은 가차 없다.

이는 민주당 박영선 의원의 윤성빈 선수 특혜 응원 논란에서 고스란히 나타났다. 윤 선수가 스켈레톤 금메달을 따는 순간, 경기장 피니시 라인에서는 박 의원이 포착됐다. 피니시 라인은 선수 가족들도 들어가기 힘든 만큼 관계자 이외에 입장할 수가 없는 지역이다. 빙상연맹 측은 이보 페리아니 IBSF(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연맹) 회장의 안내를 받아 입장했다고 해명했지만 페리아니 회장은 박 의원이 누구인지도 모른다며 반박했다. 이로 인해 박 의원은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박 의원은 비인기종목인 스켈레톤을 응원하는 사람이 적을 것이라고 생각해서 응원해야겠다는 생각에 경기장을 찾았다고 해명했지만 공정과 정의에 위배된다고 느낀 국민들, 특히 2030세대는 가차 없이 박 의원을 비판했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공정과 정의에 목말라 있었고, 현재 2030세대는 과거 세대와는 다르게 보다 적극적인 의사표시를 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이런 2030세대의 표심은 앞으로 있을 6월 지방선거에서 고스란히 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 이들은 과거 세대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정치권을 심판하고 있다. 이들의 표심을 제대로 읽지 못하면 정치권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2030세대가 다른 세대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출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지방선거에서 대패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만큼 이들의 조직력은 평창올림픽을 통해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반칙을 하더라도 1등만 하면 된다는 과거 인식과는 완전히 다른 인식이다. 1등을 하지 않아도 좋으니 보다 공정하고 보다 정의로워야 한다는 것이 이들의 인식이다. 이는 이번 올림픽이 남긴 최대 사회적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평창올림픽을 통해 나타난 이 현상을 정치권이 제대로 읽지 못한다면 정치권은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 사회적 현상은 이제 정치권을 향해 칼을 겨누고 있다. 그 칼에 희생될 첫 번째 희생자가 누가 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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