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철학박사▸ 서울대학교 연구원

5월 1일은 ‘근로자의 날’이었다. 5월 1일에 휴무를 실시하는 것은 사회 통념에 의한 것일 뿐만 아니라, ‘근로자의날제정에관한법률’에 근거한 것이다. 이 법률에 따르면, ‘5월 1일을 근로자의 날로 하고 이 날을 "근로기준법"에 의한 유급휴일로 한다.’고 규정되어 있다. 5월 1일에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하루의 소중한 휴일을 가졌다. 그리고 똑같이 ‘일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날 출근해서 일을 했다. 이와 비슷하게 ‘5월 1일’에 대한 명칭도 제각각이다. 우리나라에서 쓰는 공식 명칭은 ‘근로자의 날’이다. 그리고 일부의 사람들은 ‘노동절’, 혹은 ‘메이데이(May Day)’이라는 명칭을 쓴다. 결국 이것은 ‘일하는 사람’ 스스로가 스스로를 ‘근로자’라고 인식하는 사람도 있고, ‘노동자’라고 인식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일하는 사람’을 보는 관점에도 이러한 현상은 비슷하며, ‘일하는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5월 1일에 쉴 수 있는 사람과 쉴 수 없는 사람으로 나누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결국 ‘근로’와 ‘노동’이라는 말의 차이를 알아야 한다는 것으로 귀결된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는 ‘근로’와 ‘노동’이라는 말이 혼재되어 사용하고 있고, 그 안에는 모종의 의도가 담겨있다. 현재까지 우리나라에서는 5월 1일을 ‘노동절’이라고 하지 않고, ‘근로자의 날’이라고 명명하고 있다. 그리고 법률상으로도 ‘노동법’이라는 말도 있고, ‘근로기준법’이라는 말도 있다. 또한 일하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권리를 보호하기 위해 만든 단체는 ‘노동조합’이다. 그리고 백과사전 상으로는 ‘근로’라는 단어가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데, ‘노동’이라는 단어는 한 항목으로 독립되어 있다. 이것은 근로와 노동이라는 말의 의미가 생각보다 그렇게 단순한 문제가 아니며, 은근 ‘노동’이라는 말이 더 공식적인 말이라는 뜻일 것이다. 근로와 노동의 사전적 의미는 다음과 같다.

근로(勤勞) : 힘을 들여 부지런히 일함.
①일정한 시간 동안 일정한 노무(勞務)에 종사하는 일 
②심신을 수고롭게 하여 일에 힘씀

노동(勞動) : 몸을 움직여 일을 함, 육체와 정신을 써서 일을 하다.

사전적 의미만을 고려한다면, ‘일을 한다.’라는 측면에서 두 단어는 같은 의미를 공유한다. 거기에 영어로 번역했을 때 두 단어 모두 영어로는 work, 혹은 labor로 대체될 수 있다. 또한 한자의 측면에서 고려했을 때도 ‘노(勞)’라는 글자는 두 글자에 모두 쓰이고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근로라는 단어에서 ‘근(勤)’이라는 글자와 노동이라는 단어에서 ‘동(動)’이라는 글자일 것이다. ‘근(勤)’이라는 단어의 뜻은 ‘부지런하다.’라는 뜻이다. 결국 어떠한 일을 열심히, 그리고 성실히 수행하는 성질을 뜻하는 글자이다. 

그런데 어떠한 것이 ‘부지런하다’, 혹은 ‘성실하다’라고 말하는 것은 결국 다른 사람들에게 그렇게 보여야 그 성질이 공인된다고 할 수 있다. 즉 어떤 사람이 스스로가 아무리 ‘나는 부지런하다.’라고 얘기해도 다른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면, 그 사람은 오히려 과대망상증 환자로 보일 수 있다는 의미이다. 결국 ‘근로’라는 말 안에는 다른 사람에게 ‘부지런하다’라고 인정을 받을 수 있도록 일해야 한다는 의미가 있다. 수동적이고 사용자중심적인 의미이다.

반면 ‘노동’이라는 말에서 쓰이는 ‘동(動)’이라는 글자는 ‘움직이다.’라는 뜻이다. 즉 ‘근로’와 같이 일하는 것에 어떠한 성격이 담겨 있는 것이 아니라, 일하고 움직인다는 의미인 것이다. ‘부지런한’과 같은 형용사가 주체와 그것을 보는 사람에게 모두 인정을 받아야 하는 것과 달리, 동사는 상대적으로 주체적인 결정이 더 많이 작용하는 품사이다.

이와 같이 ‘근로’와 ‘노동’이라는 말에 쓰인 한자만 놓고 고려했을 때 이 단어가 가지는 의미는 사뭇 달라진다. ‘근로’는 결국 일하는 사람을 고용한 ‘사용자가 볼 때’ 열심히 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이다. 반면 노동은 근로에 비하여 ‘일하는 행위’에 좀 더 중점을 둔 단어가 아닌가 생각된다. 결국 사용자와 일하는 사람의 관계의 측면에서 두 단어의 의미를 고려했을 때, ‘근로’라는 말 보다는 ‘노동’이라는 말이 좀 더 가치중립적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별 차이도 없고, 오히려 더 가치중립적인 ‘노동’이라는 단어가 실제로는 약간의 선입견을 바탕으로 부정적으로 취급되곤 한다. ‘노동’이라는 말의 선입견은 ‘근로자의 날’의 유래를 통해서도 알 수 있다. 본래 ‘노동절’은 1886년 5월 1일 미국 시카고의 노동자가 ‘8시간 노동 보장’ 요구하며 벌인 총파업에 대해 미국 정부가 강경 진압을 자행한 것에서 유래되었다. 이후 ‘노동자가 멈추면 세상이 멈춘다.’라는 것을 알게 된 노동자들이 5월 1일을 노동절로 기념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원래는 일제강점기부터 5월 1일에 일제의 탄압을 이겨내며 ‘노동절’이라는 이름으로 행사를 진행해 왔다. 그런데 해방과 한국전행을 거친 후인 1957년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 대한노총의 창립일인 3월 10일을 노동절로 지정했다. ‘메이데이가 공산 괴뢰도당이 선전의 도구로 이용하고 있으므로, 반공하는 우리 노동자들이 경축할 수 있는 참된 명절이 제정하라.’는 이승만 전 대통령의 지시에 의한 것이다. 결국 반공 이데올로기가 국제적인 행사에 적용된 것이다. 그리고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기에 ‘노동절’이라는 이름마저도 ‘근로자의 날’이라는 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 결국 ‘노동’이라는 말에 ‘반공’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덧씌워진 것이다. 이것은 단순히 5월 1일에 대한 명칭뿐만 아니라, 우리의 인식 속에서도 ‘노동’이라는 단어에 부정적인 인식이 심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람은 먹고 살기 위해서는 일을 해야 한다. ‘일을 한다.’는 것은 그 명칭이 근로자이건, 노동자이건, 혹은 사용자이건 일 하는 사람이건 간에 생계를 위해서 모두가 하는 행위이다. 사용자가 신입사원을 채용하기 위해 서류심사를 하는 것도 일이고, 그렇게 뽑힌 신입사원이 회사에서 업무를 보는 것도 일이다. 또한 ‘일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국민의 4대 권리이자, 4대 의무 중 하나이다. 이런 보편타당한 행위에 이념이 덧붙여져서 가치중립적인 단어마저도 사용할 수 없게 되고, 법이 보장하는 날도 쉴 수 없게 되는 것이 현재 대한민국의 상황이다. 신록의 계절이 시작되는 날, 일하는 사람들은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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