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현 칼럼니스트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무한도전이 끝났다. 13년 동안 방영되던 프로그램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다. 3주째 토요일 마다 이어지는 이 예능프로그램의 종영기념 방송을 보면 한 세대의 고별식처럼 보인다. 무한도전의 출연자들, 특히 걸출한 MC인 유재석을 보면 더욱 그렇다.

유재석은 X세대다. 한국에서 X세대는 대체로 1970년대 즈음을 전후 해 태어난, 지금의 40대가 속한 세대다. 초기 무한도전 멤버들인 박명수, 정준하, 정형돈, 노홍철, 하하 등이 모조리 X세대다.

X세대는 이전 세대와 확연히 다른 문화적 속성을 드러내며 등장했다. 8~90년대 경제성장의 양분을 흡수하며 자라난 그들은 옷차림과 말투 그리고 생각까지 이전 세대와 달랐다. 기성세대는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없었고 그들이 장차 만들어갈 미래도 예측할 수 없었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을 때 기존의 성인가요계가 충격 받았던 것과는 달리 젊은 세대들이 열광했던 점을 생각 해 보면 이해가 쉽다.

1990년대의 폭발적인 소비산업은 새로운 문화코드를 충족시켜줄 X세대 연예인들을 대중문화 전면에 대거 등장시켰다. 이 시기에 데뷔하고 성장하여 오늘날 한국 연예계의 중추를 담당하고 있는 대형 스타들이 유독 많다. 물론 어느 세대에나 스타는 있다. 그러나 한 세대가 집단적으로 두드러진 약진을 한 뒤 명성과 성공을 끝까지 유지하는 경우는 이들뿐이다. 가령 예능분야의 독보적 진행자는 20년 가까이 X세대인 유재석, 강호동, 신동엽 등으로 이 외에도 손에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다. 이들 앞에 곽규석, 허참, 이상용, 이덕화, 주병진, 서세원 등이 개별적으로 있었지만 시대의 변화와 함께 자연스러운 하강 곡선을 그렸다. 그러나 X세대 진행자들은 진입 이후 다음 세대에게 추월 당하지 않았다. 

이는 그들을 소비하며 성장하던 세대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사회경제의 핵심으로 자리잡아가면서 대중문화와 소비시장을 함께 이끈 덕분이기도 하다. X세대는 97년의 IMF 구제금융 체제가 가져다 준 경제 환란기에 고통을 겪기도 했지만, 운 좋게도 그 이전에 성인이 되었다. 넘쳐나는 부의 향연을 봤으며 그에 기반한 문화적 풍요가 산업화 되어가는 과정을 익혔다. 간발의 차이로 일찍 커리어를 쌓아간 덕분에 이후의 직업적 성취에도 다음 세대보단 좋은 기반을 다졌다. 이들이 우리나라 경제중추로 성장하며 자신들의 아이콘을 계속해서 불러내면서 X세대 연예인들은 지속적인 쓰임새를 가질 수 있었다. 알게 모르게 X세대는 대중문화의 장에서 꾸준한 목표시장이다. 시야를 드라마로 넓혀보면 이는 더욱 두드러진다. ‘응답하라 시리즈’, ‘신사의 품격’, ‘밀회’ 그리고 최근의 ‘나의 아저씨’에 이르기까지, 이미 중년이 된 X세대는 끊임없이 TV 앞으로 소환되고 드라마 사이사이 배치된 광고영상을 본다. 

X세대의 앞에 등장했던 386세대는 한 걸음 앞서 산업화 시대의 결실을 가져갔지만 문화적으로는 보수적이었다. 개인보단 집단을, 자유보단 위계가 중요한 환경에서 자랐고 이는 변화하는 시대상과 맞지 않았다. X세대 이후의 80년대 세대들은 IMF 구제금융 시절 청소년기를 겪으면서 경제적 궁핍이 현실을 지옥으로 만드는 걸 온몸으로 겪으며 성장했다. X세대 특징 중 하나였던 개인주의는 이들의 시대에선 개인간의 무한한 경쟁이라는 생존방식이 됐다. 민주화나 자유라는 사회의제를 위한 저항 보다 개인의 생존이 당장 급했다. 때로 한 세대의 경제/문화 환경이 그 세대 전반의 소비 분위기를 휘어 잡기도 한다. X세대 연예인들의 장기집권은 이 때문에 가능했다. 한 마디로 경쟁자가 없었던 것이다.

어떤 면에서 X세대는 구세대의 플랫폼을 바꿨고 다시 그 플랫폼 자체가 됐다. 무한도전은 이전의 스튜디오 예능을 야외 예능으로 바꾼 혁신의 신호탄이었지만, 이후엔 통과하기 어려운 하나의 성취목표가 됐다. 88년생 황광희는 72년생 유재석이 만들어낸 ‘바르고 흠 없는 연예인’ 이미지가 프로그램 전체에 녹아 든 무한도전 출연자가 되는 것에 걱정을 토로했다. 무한도전의 차기 멤버에 뽑히기 위해 촉각을 세운 연예인들과, 합류하게 되면 몸가짐을 바로 해야 한다는 세간의 시선이 압력으로 작용했다는 것은 일종의 은유다. 이는 무한도전이 이미 견고하게 구축된 계급상승의 플랫폼이자 모두가 염원하는 성공의 예시가 됐다는 걸 말해준다. 어느 순간 그들은 그들이 밀어냈던 기존 플랫폼 주역들의 아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80년대생 멤버인 조세호, 양세형을 영입하고도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한 채 문을 닫았다. 바로 이 점, 즉 X세대가 주도권을 쥔 플랫폼에서 80년대 이후 세대가 도무지 피어나지 못했다는 걸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한 때 주말 예능 프로그램 ‘스타킹’을 비롯해 많은 예능 프로그램에서 포스트 X세대 진행자가 양성되는 듯 했으나 크게 빛을 보진 못했다. 이승기, 이특, 은혁 등 출중한 능력을 가진 몇몇 연예인들의 산발적인 도전이 간혹 두드러졌을 뿐이다. 그들은 자신만의 플랫폼도 가지지 못했고 기존 플랫폼의 지휘자가 돼지도 못했다. 가수 오디션 프로그램에 쏟아지는 건 젊은 세대지만, 그들의 생사여탈권은 40~50대에게 쥐여져 있다. 케이블 TV의 힙합 프로그램이 젊은 세대들에게 인기 있지만, 10대와 20대에게 힙합음악이 가진 위상에 비하자면 전체 대중문화에서의 위세는 상대적으로 작다. 거칠게 말해 큰 판에서는 X세대의 20대 시절에 비해 지금의 20대가 돈이 안되기 때문이다. 예능진행의 강자 유재석이 메인 진행자로 있는 곳은 과거의 가수들을 다시 불러내는 ‘슈가맨’이다.

다음 세대에게 바통은 넘겨지지 않았다. 우리사회의 지나온 발자취를 보면 이런 현상은 하나의 거대한 예능 같다. X세대는 삶의 전성기에 해당하는 20년 동안 민주정권과 보수정권을 번갈아 가며 보낸 드라마틱한 세대다. 민주주의에 대한 관심을 등한시 했을 때 벌어지는 환란이 무엇인지를 절실히 체득했고, 왜 이를 계속 상기해야 하는지 생애를 통해 비교할 수 있었다. 때문에 민주주의에 대한 시민의식과 열망이 높다. 이는 근래의 이념 통계에서 40대가 가장 진보적이라는 데서도 알 수 있다. 그리고 이들이 담론 시장을 주도한다.

지금 벌어지는 정치/사회 가치관 경쟁의 중심에서 담론 플랫폼은 40대 이상이 이끈다. 당장 인기 정치 팟캐스트 순위와 그 출연자들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최근 국민TV의 한 팟캐스트에 출연한 젊은 출연자들은 40대 이상의 세대를 강하게 비판한 게 이유가 되어 프로그램을 폐지당했다. 그 내용이 얼마나 합리적인지 혹은 품격을 갖추었는지와는 별개로, 그들이 X세대가 주도하는 담론 플랫폼에 끼어들 수 없었다는 점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X세대는 이해 할 수 없는 세대로 규정되며 등장했음에도 수용 됐으나, 오늘날 그들이 플랫폼을 장악한 시대에선 그들 이후 세대의 ‘이해할 수 없는 양태’는 손쉽게 거부당한다. 그 기준은 담론 패권세대인 40대가 이끄는 시선이다. 여러 조건과 이유가 달랐겠지만, 이는 예능 프로그램 X세대 진행자가 세대교체 되고 있지 않은 현실과 너무나도 유사하다.

X세대는 대한민국에 역사에 있어서 일종의 도전 임무를 띤 세대였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정의하지 못한 채, 자신들이 뭘 하는지 알 수 없던 채로 전진해야만 했다. 그들이 묵묵히 나아가는 동안 거대한 장벽과 여러 번 직면해야 했고 촛불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다음 세대가 무엇으로 성장해야 하는지, 그 세대가 어떻게 하면 주도권을 쥘 수 있는지에 대해선 제대로 된 길라잡이였다고 할 수는 없다. 이는 X세대가 그들의 앞 세대들의 고루함으로부터 느낀 불만과 일치한다. 

이 장면은 무한도전이 다소 처지는 평균 이하능력 출연자들의 도전과 성장의 역사를 가졌음에도 포스트 무한도전 세대를 배출하지 못한 것과 흡사하다. 어찌 보면 X세대들로 이루어진 무한도전은 우리사회 X세대의 약진과 성장 그리고 한계의 축소판이다. 무한도전의 종영은 X세대의 마무리 같은 장면이다.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 그리고 무엇이 될 수 있을지 모르고 덤볐던 무한도전, X세대의 사람들. 할 수 있는 만큼 잘 해 왔다. 우리시대의 X세대 멤버들 한 명 한 명에게 그동안 자신들의 시대를 잘 치뤄냈다고 격려하고 싶다. 불꽃처럼 지나온 시간만큼 회한이 있겠다. 그리고 지금을 시대의 전환을 위한 하나의 매듭으로 읽는 무한도전의 종영을 바라보며 마음이 여러 갈래가 된다. 다음 세대를 위한 X세대의 무한도전은 과연 무엇이어야 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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