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윤리적 소비가 어려운 시대
[칼럼] 윤리적 소비가 어려운 시대
  • 이종우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8.08 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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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종우 칼럼니스트▸철학박사▸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강의전담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약 3년 전, 필자가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갑자기 자동차의 시동이 꺼지는 일이 발생했다. 위험한 상황이었는데, 다행히 주변에 지나가는 자동차가 없어서 타력주행으로 안전지대에 겨우 차를 세울 수 있었다. 다른 곳에 일을 하러 가는 중이어서 집 근처 정비소까지의 견인비가 수리비보다 훨씬 더 많이 드는 웃지 못할 일도 벌어졌다.

당시 사건을 계기로 필자는 자동차를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자동차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많은 고민을 했다. 1년 운행거리, 평균 승객 수, 짐의 적재량, 험로 주행 빈도, 겨울철 눈이 많이 오는 강원도의 기후 특성, 시내도로와 고속도로의 주행 빈도, 서비스 센터의 위치 등. 무엇보다도 경제력이 매우 중요했다.

그리고 필자가 또 한 가지 고민한 것은 소위 “윤리적 소비”였다. 기왕이면 더 윤리적인 기업이 생산하는 자동차를 구매하고 싶었다. 그런데 경제력과의 충돌은 둘째치고, 모든 자동차 회사들은 모두 한 가지 이상의 비윤리적 행태를 보여줬다. 나에게 필요한 차를 만드는 기업들을 살펴보니 소비자를 소위 ‘호구’로 취급하는 무책임한 기업, 노동자들을 죽음으로 몰아넣는 기업, 전범기업, 제국주의 침략의 상징이었던 기업들이었다. “나에게 맞는 자동차”, “윤리적 소비”, “적절한 가격”의 교집합을 찾으니, 차가 없었다. 그래서 기준을 조금 낮추었고, 그 결과 한 브랜드가 보여서 그 브랜드의 자동차를 구매할 수 있었다.

한국의 경제사에서 “윤리적 소비”는 의외로 중요한 변곡점을 만들어냈다. 조선 후기 생활필수품을 독점하던 육의전 체제가 무너지고 거상(巨商)이 등장하는 과정은 백성들의 호응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다. 일제강점기에 민초들은 일제의 경제적 지배에서 벗어나고, 나아가 민족 경제의 기반을 마련하는 것에 동참하기 위해 상대적으로 질이 떨어지는 국산품을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이것이 경제분야의 독립운동인 “물산장려운동”의 내용 중 하나였다. 해방 이후 현대 경제사를 살펴보면, ‘국산품을 애용합시다.’라는 캠페인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였던 한국의 경제를 발전시키기 위한 이 캠페인에 우리 국민들은 상당한 호응을 보였던 것으로 보인다. 거기에다가 일본에 대한 적대감과 민주화 운동 속에서 나타나는 반미감정으로 인해서 당시 가장 인기 있는 외제품이었던 일제와 미제를 사용하면 공공연히 핀잔을 주거나 핀잔을 받는 경우도 있었다.

시대가 많이 흘러서, (체감 지수는 상당히 다를 수 있지만)한국은 G20의 구성원 중 하나, 세계 20위권에 들어가는 경제 대국이 되었다. 또한 기존에 개발도상국이라는 이유 때문에 가능했던 여러 가지 우리나라의 보호무역 체제도 경제 성장과 글로벌 자유무역체제 편입, 세계 경제 질서의 변화 등으로 유지할 수 없게 되었다. 그 결과 어느 순간 ‘국산품을 애용합시다.’라는 캠페인은 자취를 감추었다. 또한 더 이상 국산품 애용 캠페인이 필요 없을 정도로 우리나라에서 생산하는 몇몇 제품은 세계적 수준을 자랑한다. 오히려 저가의 중국산 물건이나 소위 “짝퉁”을 사용하는 것이 더 눈치 보이는 경우도 생겼다. 물론 일부 사치품이나 고가의 제품은 여전히 외제를 더 선호하지만, 예전처럼 사용을 위해 눈치를 보지는 않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이 본인의 경제력과 사회적 지위를 보여준다고 인식하고, 인식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새로운 윤리적 소비의 형태가 나타났다. 무조건적인 국산품 애용이 아닌, 국적에 상관 없이 최대한 도덕적으로 운영되고 품질 좋은 제품을 만드는 기업을 선호하는 모습이다. 특정 기업이 만드는 휴대전화, 대형마트를 이용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국산 자동차의 품질이 높아졌음에도 불구하고 기업의 행태를 이유로 ‘아무리 싸도 모 자동차의 제품은 사지 않겠다.’는 이야기도 공공연히 등장한다. 라면의 경우 광우병 의혹 쇠고기 수입 반대 시위 때 특정 회사의 제품이 많이 소비되면서 촛불 받침대로 애용됐다. 또한 상속세를 성실히 납부한 업체의 라면 판매가 급성장했다. 이러한 움직임은 미국의 휴대전화 회사, 창고형 외국 대형 마트, 외국 자동차의 점유율 확대로 이어졌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윤리적 소비는 정말 쉽지 않다. 최근 모 독일 브랜드의 자동차에서 특정 모델이 잇따라 화재가 발생하는 사건이 일어났고, 몇 년 전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사랑받는 모 독일 브랜드의 자동차가 배기가스 조작을 했다는 이유로 전면 판매가 금지됐다. 이러한 상황에서 사람들은 자동차 구매에서 윤리적 소비를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내몰렸다. 휴대전화 통신사는 비윤리적 재벌로 비난을 받는 이동통신 3사 외에는 소위 “알뜰폰”을 유통하는 회사인데, 이 곳 역시 이동통신 3사의 통신망을 사용하고 있다. 전통시장을 이용하고 싶지만 무더위와 짧은 운영시간을 극복해야 된다. 대기업이 골목상권 곳곳을 점유한 덕분에 커피전문점, 빵집, 닭집의 경우 대기업 프렌차이즈가 아닌 곳을 찾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윤리적 소비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선택의 기준”일 것이다. ‘우리 물건을 사용합시다.’라는 기준 하나만 있었던 시대에는 감내할 것이 명확했기 때문에 윤리적 소비가 어렵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은 윤리적 소비를 실천하기에는 고려할 사항도 많고 감내할 불편도 많아졌다. 사람들이 윤리적 소비로 고민하지 않고, 우리 경제도 살 수 있는 길은 경제계의 적폐 청산과 경제 민주화가 빨리 이루어지는 것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