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학왕의 사회학’ 최종렬 “청년담론 사각지대 놓인 지방대생, 고유한 목소리 키워줘야”
‘복학왕의 사회학’ 최종렬 “청년담론 사각지대 놓인 지방대생, 고유한 목소리 키워줘야”
  • 김나윤 인턴기자
  • 승인 2018.08.09 18: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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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계명대 사회학과 최종렬 교수
청년 문제 뜨겁지만 지방대생은 소외된 상황
경쟁논리 밖에서 가족주의·적당주의 갖게 돼
자기 언어 없어 사회적 약자 벗어날 수 없어
대학, 문화적 역량 키우는 ‘미학적 폴리스’돼야
계명대학교 최종렬 교수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계명대학교 최종렬 교수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투데이신문 김나윤 인턴기자】 2018년 한국 사회의 문제를 얘기할 때 빠지지 않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청년’이다. 해결의 기미가 보이지 않는 청년실업부터 세계 최저로 치닫는 출산율에 이르기까지 대부분 문제의 중심에는 청년이 자리한다. 이에 청년 세대의 험난한 세상살이는 연일 집중 보도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집중적인 관심을 받는 청년 문제에도 사각지대가 존재한다. 서울 밖 지방대생들의 고충이다. 현재의 청년 담론은 서울을 중심으로 전개되기 때문에 다양한 지역적 특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이다. 이 때문에 경쟁의 논리에서 빗겨난 지방대생들은 주류가 아닌 청년으로서 이중고를 겪고 있다.

이러한 가운데 지방대 사회학 교수가 직접 제자들을 인터뷰하고 심층 분석한 책이 출간됐다. <복학왕의 사회학: 지방 청년들의 우짖는 소리>의 저자 계명대 사회학과 최종렬(52) 교수는 그간 알려지지 않은 지방대생들 목소리를 전하면서 이를 사회학의 시각으로 분석했다.

<투데이신문>은 지난 6일 최 교수를 만나 그가 직접 목격한 지방대생의 현실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계명대학교 최종렬 교수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계명대학교 최종렬 교수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Q. 지금까지 논의된 청년 세대 담론과 지방 청년의 모습을 비교해 본다면.

80년대 청년들은 민주주의에 이상을 가지고 악한 세상에 대립해 싸워 민주 사회를 만든 세대다. 서울대학교 사회학과 김홍중 교수는 80년대 세대를 ‘진정성세대’라고 일컬었다. 왜 ‘진정성’이라는 단어가 붙었는지 살펴보면, 1997년 IMF사태 이후 청년들은 진정성을 상실하고 자아가 없는 동물, 성공을 위해 자아를 도구적으로 이용하는 속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청년 담론으로써 자기계발은 외환위기 이후 등장했다. 자기계발 담론의 핵심은 자신의 자아를 기업가로 보는 것이다. 기업가는 이익을 창출해야 하고, 그렇지 못한 기업은 부실기업으로 낙인찍힌다. 이 이론이 청년들에게 적용되는 것이다. 더욱더 철저하게 개혁을 해서 기업가로 태어나라는 것이 자기계발 담론이다. 모든 청년들이 자기계발 담론에 맞게 뛰어드는 것 같지만, 지역 청년들은 그렇지 않다. 그러니 이 이론도 들어맞지 않다. 대신 김홍중 교수는 ‘청년들이 생존주의자가 됐다’고 설명한다. 성공을 위해 경쟁에 뛰어드는 것이 아닌 생존을 위해서라는 거다. 이는 지역 청년들과 엇비슷하다고 느껴졌다. 지방 청년들이 성공을 위해 경쟁하는 게 아닌 건 확실하기 때문이다.

Q. 그렇다면 실제로 만나본 지방대생들은 어땠나.

이 책을 준비하면서 지방대생, 그 중에서도 주로 고학년 복학생 위주로 얘기를 들어 봤다. ‘무엇이 좋은 삶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자아라는 개념과 좋은 삶과의 연관 속에서 어떤 서사를 풀어내는지 살펴봤다. 그들은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고 싶다’, ‘행복하고 싶다’, ‘가족과 행복하고 싶다’ 등과 같은 ‘선호의 언어‘로 답했다. 학생들이 겉으로는 막사는 것처럼 보이지만 이야기를 나눠보면 자신들이 추구하는 좋은 삶을 하나씩 그리고 있었다.

또한 가족의 행복을 최우선의 가치로 두고 있다. 행복 추구는 ‘성찰적 겸연쩍음’의 방식을 택하는 것을 발견했다. 지방대 학생들은 어중간한 태도로 살아왔기 때문에 자기 자신을 모든 상황에 적당히 설렁설렁 대하는 사람으로 만들었다고 본다. 이것은 한두 명의 개인적 습성이 아닌 집단적으로 공유되고 있는 하나의 에토스(관습)로 자리 잡았다. 끼리끼리 모였을 때 서로에게 기대되는 태도인 것이다.

고등학생 때 열심히 공부했음에도 기대한 만큼 결과가 나오지 않아 상처 받게 되면 자기 자신을 설렁설렁하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릴 수 있다. 부모도, 주변도, 나도 기대를 낮추고 뭐든지 적당하게 설렁설렁하면 성과도 적당하게 나오고 상처도 안 받고 실패도 적당하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식으로 삶의 모든 것을 무던하게 해나간다. 생각해보면 이 모든 행동이 겸연쩍다. 성찰적으로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면서 '그 때 내가 열심히 했으면, 정말 한 번 열심히 해봤으면‘ 이런 생각들을 하는 모습들이 겸연쩍게 느껴진다.

그래서 ’성찰적 겸연쩍음‘이라는 말로 에토스를 설명했고, 적당주의 스타일의 습속이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렇듯 지방 전체가 적당주의, 그리고 성찰적 겸연쩍음의 에토스에 꽉 잡혀 있다. 청년들은 이런 분위기 속에서 무언가 자기 주도적이고 창의적인 일을 할 수 없다. 이런 구조가 자리 잡고 있으니 지자체에서 권한을 나눠주고, 지원을 해준다 하더라도 일시적 방편으로만 쓰일 뿐이다. 모든 흐름이 서울 중심으로 흘러가고, 지방은 흐름을 받아들일 문화적 역량이 부족하다. 역량을 키워 줄 구조적 장치가 마련돼야 해결될 문제다.

Q. 결국 10대 때 처음 맛본 패배주의가 인생 전부를 삼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 번의 패배가 그 사람에게 씻을 수 없는 패배감을 심어줘 아이들을 적당주의 방식으로 살아가게 한다는 것은 심리학적인 설명이다. 학습된 무기력이라든지, 한 번 각인된 패배주의, 이런 식으로 개인의 탓으로 돌릴 수도 있지만 우리는 구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사회 전체적인 차원에서 문화적, 문화구조, 쓰는 이야기와 같이 아이들이 쓰는 언어 자체가 가족 밖을 나가지 못하고 가족 안에서 모든 삶을 기획한다. 그 안에서 적당하게 살아가도록 만드는 가족주의 언어가 문제가 된다.

지방대 재학생 뿐 만 아니라 졸업생, 그들의 부모까지도 그들이 쓰는 언어가 가족의 행복으로 귀결된다. 그래서 모든 삶이 내가 태어난 가족에서 내가 구성할 가족으로 이동하면 삶의 행로가 완성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가족 넘어서까지 좋은 삶을 기획해야 하는데 그런 경우가 매우 드문 구조 자체가 문제다.

계명대학교 최종렬 교수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계명대학교 최종렬 교수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Q. 흔히 말하는 명문대, 인서울 대학생과 지방대생들의 차이점은.

서울은 가족주의가 대부분 붕괴된 상태다. 가족주의 형태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근대 가족이라는 제도 측면에서는 가부장적 핵가족이다. 아버지가 경제적 능력이 있어 돈을 벌어오고 어머니는 집에서 살림하면서 하우스키퍼의 역할로 살아가는 모습이다. 이는 1997년 IMF사태 전까지는 사회구조적으로 잘 맞아떨어지는 모습이었다. 아버지에게 개인 임금이 아닌 가족 임금을 줬기 때문에 못 살아도 아버지 혼자 벌어도 다 먹고 살고 대학을 보내는 게 가능했던 사회였다. 하지만 지금 서울은 그런 모델이 다 깨졌다.

반면 가부장주의가 남아있는 지방은 여전히 남자가 집안을 먹여 살리고 여자는 집안 모든 일을 돌보는 역할을 하려고 한다. 실제로는 그것이 불가능한데도 말이다. 결혼을 하고 나면 남성 혼자 일해서는 수입이 부족해 여성도 사회 생활을 해야 한다. 때문에 아이들은 돌봐줄 사람이 없어 홀로 지내는 경우가 많다. 이런 상황에서 수도권에 사는 아이들은 학교라는 경쟁사회 속에서 스스로 자립하고 헤쳐나가야 하는 반면, 지방의 학교는 분위기가 달라 경쟁하지 않고 즐겁게 지내는 것을 추구한다. 이러한 지방의 습속은 단순히 지역 문제를 넘어 계급 문제와도 결합된다. 이같은 환경에서 지방 사람들에게는 적당주의, 가족주의 언어로 살아가는 모습에 익숙해진다.

Q. 지방대생에 대한 가장 큰 편견은 뭐라고 생각하는가.

경제 언어로 풀어가는 사회와 함께 사람들의 습속도 편견에 힘을 실어준다. 우리나라는 서울 중심적 사고로 얘기해나가기 때문에 서울에 속하지 못하면 패배자, 덜 떨어진 집단으로 인지하곤 한다. 또한, 지방에서도 상반된 모습들이 보인다. 서울을 동경하거나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에토스인 적당주의, 정이 많은 집단이라는 실체를 형성해 강하게 작용하도록 한다. 이런 모습들은 편견으로 고착된다.

Q. 지방대생과 그 부모의 인생연대기를 살펴보자면.

이를 설명하기 위해 세대 전쟁론부터 설명하겠다. 세대 전쟁론이란 기성세대가 청년들의 몫을 다 뺏어가고. 착취하는 것을 말한다. 가장 대표적으로 부동산을 예로 들 수 있다. 기성 세대는 부동산 땅 투기를 통해 차액으로 이익을 취한다. 청년들은 그 부동산을 매매할 수 없다. 국민연금도 마찬가지고 결국 청년 세대를 착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지방 사회는 청년들에게 좋지 않은 환경이지만, 그 곳엔 아직도 엄청난 세대 간의 연대가 존재한다. 사실 지방 사회도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 태반이며, 청년 유출이 심하다. 그러나 지방대생은 낮은 데서 시작한다는 태도 때문인지 잘 버텨낸다.

또한 청년 세대에는 적당주의가 있듯이 부모 세대에는 성실주의 집단 스타일이 있다. 지방대생의 부모는 엄청난 가부장제보다 더 가부장적인 분위기에서 자랐다.그 당시 첫째 아들은 무조건 대를 이어야 하고, 딸은 어느 정도의 교육을 받은 후 취직했다. 결국 딸은 엄청난 부권을 가진 아버지에게 반감을 갖고 살게 된다. 이른 취직을 하게 된 여자는 빠른 결혼을 하게 되는데, 그 당시 결혼은 좋은 사회적 방패가 됐기 때문에 사랑하는 남자가 대시하면 바로 결혼해 임신, 출산까지 빠르게 이어졌다. 그 후에 남편이 능력이 많지 않으면 다시 노동시장에 나가고 그렇게 살다가 원망스러운 아버지의 늙어버린 모습에 연민의 감정이 생긴다. ‘연민의 공동체’인 셈이다. 부모님은 자신의 부모들을 보며 ‘나는 그렇게 살지 말아야겠다’, ‘나는 중산층으로 살아야 겠다’라고 생각하며 성실하게 살다 보니 먹고 살 만 했고, 어느 정도 재산도 모으고, 아이들도 다 키우는 이 모든 과정이 성실주의로 자리 잡게 된 것이다.

우리나라는 공적 시스템이 자리 잡지 않고 있었기에 어려움이 닥칠 때 국가가 도와주지 않았고, 책임이 가족한테 돌아갔기에 부모 세대는 성실하게 살았다. 이같은 성실한 부모 아래서 자란 지금의 아이들은 적당주의가 가능했고, 때문에 이것저것 하다가 안 되면 다시 가족 품으로 돌아간다. 그러다 보니 부모와 자녀 세대의 연대가 끈끈해지고, 이는 연민을 바탕에 둔 연민의 공동체로 작용하게 된다. 부모 세대가 이룩한 성실함의 결실은 저물어가고, 부모 세대는 부양의 대상이 된다. 부양의 대상이 된 후 책임져줄 가족이 없는 자녀 세대에게 ‘연대’라는 것은 일시적인 모습이다. 언제까지 갈 수 있느냐가 문제다.

Q. ‘적당주의’가 꿈과 성공을 강요한다고 느껴지기도 한다.

모든 사람이 모든 상황에 다 몰입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적당하게 관여하면서 살아가도 좋지만 자기가 진정으로 가치 있다고 판단하는 것에는 몰입이 필요하다. 하지만 현재 지방대생들에게는 그런 모습을 찾기 어렵다. 몰입하려면 뭔가 성취를 이뤄야 하는데 지역 청년들에게 몰입해서 성취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주는 것은 가족밖에 없다. 청년들이 가족 안에 있는 것이 좋아서 머무르기도 하지만, 나가면 고통스럽기 때문에 나가지 않는 것도 있다. 청년들이 정말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가족 밖으로 나갈 수 있는 공적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현재 지자체에서 지역 청년들을 위해 재정적 투자를 하는데, 이는 일시적인 방편일 뿐이다. 삶 속에서 청년들이 집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하다. 이 책의 핵심적 주장이기도 한데 청년들이 ‘어떤 것이 좋은 삶인가’라는 가치론적인 질문을 던지도록 교육해야 하고 자신의 삶에 대한 가치론적 질문에 대해서는 적당하게 대응하면 안 된다. 가치 있는 것에 대해 헌신하고 몰입할 줄 알아야 한다. 살아온 삶이 짧기 때문에 가족 밖으로 나와 이것저것 시도해 보며 찾아야 한다.

계명대학교 최종렬 교수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계명대학교 최종렬 교수 ⓒ투데이신문 김도양 기자

Q. 넓게 보면 약자의 얘기로 보인다. 흙수저, 지방출신, 지방대생, 여성 등이 어떻게 하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을까.

대학원 강의에는 젊은 친구들이 아닌 40-50대 어른들이 다수다. 가부장제에서만 살아오다가 이 삶이 전부가 아님을 깨달은 뒤 세상 밖에 대한 궁금증이 생긴 사람들이다. 이분들은 소규모 공부모임을 만들곤 하는데, 관심을 갖고 보니 대학뿐만 아니라 곳곳에 작은 공부 모임들이 있었다. 이들이 결국 묻고자 하는 건 무엇이 좋은 삶인가다. 이런 질문은 사실 청년 때 해야 하는데, 우리 사회가 그런 것을 묻지 못하고 안정적인 삶을 추구할 수밖에 없게끔 내몰아 공무원시장에 청년들이 몰리는 모습들을 볼 수 있다. 그런 몰림에서도 떨어진 사람들이 사회적 약자이다.

이들은 정치적인 힘이 없으면 약자가 되고, 경제적 능력이 없으면 소수자라고 설명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얘기를 하려 해도 들어줄 사람이 없고, 쓸 수 있는 언어가 없는 것이 약자라고 할 수 있다. 예를 들면 요즘 여성들이 사용하고 있는 미러링 같은 것들이 그렇다. 자신이 살아온 삶을 얘기할 수 있는 긍정적인 언어가 없어 남자들이 사용하는 나쁜 언어를 미러링 할 수 밖에 없는 여성이 바로 소수자다. 자신의 삶에 대한 고통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지 얘기할 수 있는 언어를 배워본 적이 없고 새로운 방식으로 얘기하는 훈련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이다.

현재 얘기를 하고자 하는 열망이 온 사회에 가득 찼다고 본다. 인문학 열풍이 그 증거다. 이제는 지방 청년들을 가족 안에만 국한시키는 것이 아니라 초월적 존재, 다차원적으로 자아를 서사할 수 있는 역량을 키워줄 교육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국가는 다양한 공부모임을 지원해야 하고, 그 첫 출발이 대학이 돼 대학을 미학적 폴리스로 만들어야 한다.

Q. 가족, 지역이라는 울타리에서 벗어나기 힘든 지방대생의 현 상황을 타개할 이상적인 방안은 무엇이 있을까.

자신의 삶에 가치론적 질문을 던지고 이를 통해 자신의 삶을 구성해나갈 수 있는 문화적 역량을 갖게 해줘야 한다. ‘문화 화용론’이라고 일컫는데 문화를 활용할 수 있는 능력, 얘기를 할 수 있는 능력을 뜻한다. 지금까지 지방 청년들은 자신의 얘기를 가족주의 언어로 서사했다. 반면 서울, 수도권은 주로 경제 언어(단기적 성과만을 바라는 것), 심리 언어(모든 책임은 자신에게 있다)가 자리 잡고 있고, 윗세대는 국가주의 언어, 민족주의 언어 등 거대 담론을 갖고 살아왔다.

청년 세대에게 민족주의, 국가주의 언어로 삶을 살아가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고, 지방 청년들에게 경제 언어로 살아가라고 하는 것은 자기계발을 강요하는 건데 그것 또한 말도 안 된다. 그래서 기댈 수 있는 가족주의 언어, 종교, 유사 종교에 빠진 사례들도 있는데 이런 담론들은 일시적인 해결책일 뿐이다. 이런 언어들 위에 사회학적인 언어가 필요하다. 자신의 삶을 가족이라는 테두리에서만 비춰보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를 넘어서 다양하게 자기 자아를 볼 수 있고 이야기 할 수 있는 능력이 필요하다.

과거 조선이 오백년 동안 지속될 수 있던 이유는 성리학을 깨부술 얘기가 오백년 간 나오지 않아서다. 후에 기독교 담론, 사회주의 담론 등 새로운 얘기가 등장해 나라가 바뀐 것이다. 때문에 국가에서 계속해서 쓰고 있는 성장언어(지속가능한 성장)를 지양해야 한다. 성장언어를 사용하기 때문에 지표에 속하지 못하는 대학을 없애는 사태도 벌어지고, 대학이 먼저 얘기를 할 수 있는 장이 되게끔 만들어 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