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소연 칼럼니스트▷성우, 방송 MC, 수필가▷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 안소연 칼럼니스트
▷성우, 방송 MC, 수필가
▷저서 <안소연의 MC되는 법> <안소연의 성우 되는 법>

친구 A와 O는 어느 날 삶은 계란 흰자와 노른자에 관한 아주 놀라운 진실을 알게 된다. 고등학교 시절 만나 함께 재수학원을 다니고 같은 대학에 다녔던 둘은 직장까지 같은 동네로 가게 되면서 절친 관계를 십 수 년 째 이어오던 중이었다.

둘은 냉면, 쫄면 따위를 먹을 때마다 함께 나온 삶은 계란 반쪽을 사이좋게 나눠 먹곤 했는데 A는 늘 당연하다는 듯이 흰자를 O에게 주었고 O는 노른자를 A에게 주었다.

“ 삶은 계란 흰자를 좋아하세요, 노른자를 좋아하세요?”

그러던 어느 날 미팅에서 만난 한 남자가 둘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A는 당연하다는 듯 “흰자요.” 하고 말했고

O도 당연하다는 듯 “노른자요.”라고 대답했다.

0.5초쯤 뒤 A와 O의 눈동자가 서로 만난다.

“ 저엉말? 넌 흰자가 더 좋았던 거야?”-O

“ 넌 노른자를 더 좋아했던 거라구? 어머 특이하다. 여자애들은 다 흰자를 좋아하던데? 그래서 내가 늘 너한테 흰자를 준 거야 ”-A

둘은 서로 자기가 좋아하는 걸 상대도 좋아할 줄 알고 알아서 양보하고 본인은 좋아하지도 않는 걸 괴롭도록 먹어왔던 거다.

그로부터 얼마 후, A는 혼자서 소개팅을 나갔다.

이태리에서 가구 디자인을 공부하고 왔다는 30대 초반의 남자는 베르사체 양복에 파리도 미끄러질 최고급 승용차를 타고 나왔다. 예술하는 사람에 대한 진한 동경을 늘 품고 살아왔던  A는 돈까지 많은 상대 남자를 보고 이게 웬 떡인가 싶었다.

그 날 함께 식사를 하는데 남자가 자꾸 버섯을 골라 A에게 주었다. 초면에, 첫 식사에서 음식을 골라 나눠주다니! A는 배려심 많은 자기의 친구 O가 떠올랐다.

“ 버섯을 좋아하시는군요?”

미소와 함께 던진 A의 질문에 남자의 얼굴이 순간 일그러졌다.

세상에! 남자는 버섯이 싫어서 초면인 A의 그릇에 버섯을 덜고 있었던 거다. 무의식적으로. 그러다 A의 질문을 듣고 그것이 자신의 행동을 비꼰 것이라고 곡해하고는 불쾌해진 거였다.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자기가 좋아하는 걸 상대도 좋아할 줄 알고 알아서 양보했던 A와 O.

따뜻한 우정이다, 싶다. 그러나 둘은 넘겨짚은 것이 틀렸기 때문에 좋아하지도 않는 노른자와 흰자를 먹느라 작은 고생을 했다.

자기가 싫어하는 걸 상대의 취향이야 어찌됐건 상대의 그릇에 마구 퍼주었던 소개팅남.

세상에 다시없을 노싸가지 인간이지만 적어도 자기가 싫어하는 버섯을 먹지 않을 권리만큼은 잘 지키며 살아왔다.

그 소개팅 식사 자리에서 일어선 이후 A의 인생에 그 가구 디자이너는 없다. 당연한 일이겠다. 그런데! O도 함께 사라졌다.

소개팅 남은 곁다리. 오늘의 진짜 질문은 ‘그토록 서로를 배려해주던 O와 A는 왜 서로의 인생에서 사라졌을까?’ 하는 것이다.

내 생각은 이렇다.

진정한 절친이라면 상대가 좋아하는 것이 흰자인지 노른자인지 정도는 정확히 알고 있었어야 했다. A와 O는 삶은 계란 반쪽을 나누어 먹는 행위 외에도 수많은 삶의 선택 상황에서 그렇게 어정쩡한 배려를 해왔을 거다. 그렇게 서로 알아서 과한 배려를 하다가 지쳐 나가떨어졌다고나 할까?

A와 O는 진정한 배려의 의미를 몰랐다.

진정한 배려란 상대가 원하는 걸 주는 것.

상대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알고 (그것이 법적, 도덕적으로 결함이 없는 것이라면) 그것을 주려고 노력하는 것, 그것이 사랑이고 배려이며 관계의 기본룰이다.

당신과 그 사람은 흰자와 노른자 중 어느 것을 더 좋아하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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