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병권 “자본론, 우리 시대 합법에 대한 비판”
고병권 “자본론, 우리 시대 합법에 대한 비판”
  • 남정호 기자
  • 승인 2018.08.29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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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다시 자본을 읽자’ 고병권 작가
두렵지만 매력적이었던 마르크스와 자본론
냄새 달랐던 마르크스, 새로운 관점 보여줘
자본주의의 척도·잣대·원리에 대한 비판
시스템 바깥에 존재하는 문제 고민해봐야
고병권 작가 ⓒ투데이신문
고병권 작가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200년 전 태어난 카를 마르크스의 사상이 오늘날 다시금 주목받고 있다.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갈수록 극심해지는 소득 불평등과 부의 양극화에 대한 불만은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에 대한 관심으로 바뀌고 있다.

마르크스가 목격했던 19세기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은 200년 넘게 지난 현재와도 맞닿는다. 아울러 그가 말한 착취 역시 더욱 공고해지고 있다.

‘북클럽 자본 시리즈-다시 자본을 읽자’ 1권을 펴낸 고병권 작가는 마르크스라는 사상가가 제공한 ‘새로운 관점’에 주목했다. 철학자인 고 작가는 마르크스가 ‘억압받고 고통받는 사람들의 관점’을 통해 보여준 통찰로 인해, 그동안 우리가 보편타당하다고 생각했던 지식과 법칙들 역시 특정한 관점이 바탕에 있었다는 것을 짚었다.

때문에 이 같은 관점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관점이 비추고 있는 사물이 아니라 그 관점 자체를 문제 삼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지는 고 작가를 만나 마르크스와 자본론에 대해 그의 해석과 오늘날 마르크스의 눈이 바라봐야 할 곳들에 대해 들었다.

‘북클럽 자본’의 시작

지난 21일 출판을 시작한 ‘북클럽 자본’ 시리즈는 앞으로 2년간 격월로 총 12권에 걸쳐 자본론을 풀어내는 작업이다. 주변에서는 충분한 시간을 갖고 원고의 완성도를 높이는 게 더 낫지 않겠느냐는 조언도 있었다. 2년에 걸쳐 2달마다 책을 한권씩 쓰고, 이를 바탕으로 강연까지 나서기로 한 고 작가에 대한 우려였다. 그러나 그는 독자와 함께 자본론을 공부해나간다는 것에 마음이 흔들렸다.

“지금까지 책은 제가 생각하는 것을 익명의 독자에게 던지는 것이었다. 하지만 익명의 독자가 아니라 자본론을 읽겠다는 사람이 나와 함께 이 책으로 공부해가겠다고 한다면 ‘정기성’이라는 의미가 저한테는 다르게 와닿았다. 이건 책과 독자의 문제가 아니라 공부의 문제라고 생각했다. 같이 읽어나가는 것이니까 책이 정기적으로 나오는 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이와 더불어 2년간의 대장정에 고 작가가 마음을 굳힌 또 다른 이유는 결국 마르크스였다. 마르크스가 자본론을 써내려가면서 가졌던 심정에 마음이 동했다.

“마르크스는 실제로 자본론을 그런 정신으로 썼다. 그는 누가 이 책을 읽어야 하는지를 정확하게 겨냥했다. 노동자들이 이 책을 읽고 이해하길 바라면서 초고를 여러번 고쳤다. 또 노동자들이 읽을 것이기 때문에 오히려 더 엄밀하게 쓰려고 했다. 이 책이 노동자들의 무기가 되길 바랐기 때문에 대충 담금질한 무기를 줄 순 없었던 것이다.”

지난 5월 3일 독일 트리어의 카를 마르크스 하우스 벽에 그려진 마르크스의 그림 ⓒ신화통신
지난 5월 3일 독일 트리어의 카를 마르크스 하우스 벽에 그려진 마르크스의 그림 ⓒ신화사

두렵지만 매력적인 마르크스

고병권 작가가 자본론을 처음 접한 건 1991년 대학생 시절이었다. 당시 운동권 선배의 하숙방에서 시작된 자본론과의 인연에 대해 고 작가는 “불온하면서도 매력적이었던 묘한 독서였다”고 회상했다.

“그 책이 한편에서는 마음을 떨리게 했다. 두렵기도 하고. 그때는 가방에서 그 책이 나오면 유치장에 끌려가니까. 또 운동권이 되는 거니까. 그 두려움이 싫으면 버리면 되는데 묘한 매력이 있었다. 자꾸 끌려가게 됐다. ‘물들 것 같은데’ 하면서도 두려우면서도 못 도망가고, 내가 들어가는 건지 끌려가는 건지를 알 수 없는 묘하게 되는 독서가 있다.”

고 작가는 마르크스에게서 ‘다른 냄새가 났다’고 표현했다. 그는 다른 학자들과는 달랐던 ‘마르크스의 냄새’를 그전까지와는 다른 관점(perspective)을 제공해준 것이라고 설명했다. 항상 보편타당한 것들로만 구성돼있던 지식과 법칙, 과학들과는 다르게 누군가의 입장, 새로운 관점이 있다는 걸 보여줬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항상 보편타당하다고만 생각했던 많은 과학들 역시 그 이전에 관점이 있었다는 걸 깨닫게 됐다고 말했다.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W. Nietzsche, 19세기 독일의 철학자)의 관점주의(perspectivism)에 따르면 우리는 조명 없이 세상을 볼 순 없다. 그러나 보편 조명이라는 게 따로 있지는 않다. 우리는 항상 어떤 특정한 조명 아래서 사물을 보고 있다. 따라서 그 조명을 문제 삼아야 한다. 마르크스는 생전 보지 못했던 조명을 쏘여준 거다. 이를 통해 우리가 이전에도 어떤 특정한 조명 아래 있었다는 걸 알게 해줬다.”

고 작가는 마르크스가 비춘 조명이 마음에 들었다고 한다. 마르크스의 조명이 ‘억압받는 사람들, 고통받는 사람들의 관점’이었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억압받으면서 사유하는 자’와 ‘사유하면서 고통받는 자’가 있다고 말했다. 마르크스는 사유하는 자와 고통받는 자를 하나라 생각했다. 그걸 ‘철학자는 프롤레타리아의 머리, 프롤레타리아는 철학자의 심장’이라는 자신과 프롤레타리아의 관계라고 생각했을 거다. 이는 곧 고통과 지성의 문제다. 사유는 자신의 심장을 고통에 두고 있고, 고통은 자신의 냉정을 두뇌에 두고 있는 거다. 이처럼 사유와 고통이 맞물려있다는 것에서 비판의 동력을 얻었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에게는 다른 냄새가 난다고 느꼈다.”

자본론, 자본의 ‘합법적 약탈’에 대한 고발

고병권 작가는 자본론을 “자본가의 불법적인 약탈이 아닌 합법적 약탈을 다룬 책”이라며 “법과 법칙의 폭력에 대해 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우리 시대 합법에 대한 비판이라는 것이다.

“자본론은 르포가 아니다. ‘누가 나쁜 짓을 했다’가 아니라 어디에나 있고, 옳아 보이고, 상식적이고, 통념적이고, 어느 신문에나 실리고, 이데올로기전(戰)에서 항상 승리하는 것에 대한 비판, 즉 우리 시대 합법에 대한 비판이다. 이걸 비판하려면 결국 체제의 이행을 위한 혁명이나 투쟁과 긴밀히 연관될 수밖에 없다. ‘법으로 바로잡는 문제’가 아니라 ‘법을 바로 잡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는 마르크스의 비판은 교정을 위한 것이 아니라 이행을 위한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몽테스키외(18세기 프랑스의 정치사상가·법률가·역사가)가 말한 사람들의 두 가지 타락이 있다, 하나는 다수의 사람들이 법을 지키지 않는 것, 나머지 하나는 법 자체의 타락이다. 마르크스는 악법으로 인해 사람들이 범법자가 되는 법의 타락문제를 얘기했다. 교정의 문제라면 법에 따라 삐뚤어진 것을 잣대에 맞춰 바로 잡아야 한다. 그런데 그 잣대인 법이 삐뚤어지면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다. 법이 타락해버리면 혁명이나 역사가 이행해 잣대가 바뀌어야 한다.”

이와 함께 고 작가는 마르크스의 비판은 분배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작동 원리를 바꾸기 위한 문제제기라고 설명했다.

“노동자와 자본가의 극심한 양극화가 어떤 결과의 문제라면 그 결과를 보완하면 된다. 재분배를 잘하면 된다. 그런데 양극화가 어떤 원리의 문제라면 다르다. 애당초 마르크스는 양극화가 착취라는 원리에 기반해 돌아가는 것이라고 봤다. 자본가의 이윤인 잉여가치를 마르크스는 ‘착취도’라고도 부른다. 이 착취에 기반해 시스템이 돌아간다고 한다면 이걸 바꿔야 하는 문제다. 때문에 마르크스의 비판은 합법적 약탈에 대한 고발과 문제제기, 나아가 우리 시대 척도나 잣대, 원리에 대한 비판이다.”

고병권 작가 ⓒ투데이신문
고병권 작가 ⓒ투데이신문

가치 자체가 착취일 수 있다

고병권 작가는 마르크스가 말한 착취와 관련해 자본가가 노동자로부터 잉여가치를 가져간 것을 착취라고 할 수 있지만, 가치 자체가 착취일 수도 있다고 강조했다. 어떤 활동이 상품화되느냐 마느냐의 척도에 놓이는 자체, 우리의 활동이 사회적으로 상품으로서 승인받는 자체가 권력이고 착취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최근에 쓴 칼럼에서 ‘돈 되는 일자리’와 ‘의미 있는 일자리’가 점점 나눠지는 것 같다고 말했다. 물론 똑같을 이유는 없다, 근대 경제학의 출발이 가치와 효용을 구분하면서 시작된 거다. 그런데 둘의 차이가 너무 무관해지면 경제로서는 가치 있는 일이 우리한테 의미 없는 일이 될 수도 있고, 우리 삶을 파괴할 수도 있다.”

그는 경제적 가치(economic value)가 도덕적 가치(moral value), 생태계적 가치(ecological value)와 다르기 때문이라고 부연했다. 그리고 이 가치들이 서로 겹쳐져야 어느 정도 건전한 자본주의라고 말했다.

잉여인간과 자본주의

마르크스는 빈곤은 빈민들이 아이들을 너무 많이 낳았기 때문으로 사회적 책임이 아니라 빈민들의 생물학적 책임이라는 토마스 맬서스(Thomas Malthus, 18~19세기 영국 경제학자)의 해석을 강하게 비판했다. 이 같은 맬서스의 인구론에 대해 마르크스는 인구에 대한 초역사적 법칙이 있는 게 아니라 모든 시대는 자기 시대의 인구법칙을 갖고 있고, 지금은 자본주의적 인구법칙이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마르크스는 당시 대기근으로 인구가 1/3이나 줄어든 아일랜드에도 실업자가 여전히 생기는 과잉인구문제가 발생한다는 점을 짚었다. 인간이 생물학적으로 낳는 인구가 문제가 아니라 기계화된 공장이 토해놓은 잉여인력이 나오고 있고, 이것이 자본주의에서 더 중요한 인구법칙이라는 것이다.”

마르크스는 그렇게 자본주의 사회가 계속해서 잉여인구를 낳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들이 저수지처럼 산업예비군으로 존재하고 있어 현재 일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언제든 대체할 수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노동자들은 임금 등 노동조건이 안 좋아지더라도 버틴다고 설명했다. 즉, 잉여인구가 자본주의의 원리라는 것이다.

“부가 세습되며 양극화되거나 계속 잉여인간을 낳아 살기 팍팍해지는 것은 자본주의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아서가 아니라 제대로 작동해서 생기는 문제라는 것이다. 국가나 사회가 적절히 개입하지 않으면 자본주의 원리상 이렇게 되게 돼 있는 것이다. 자본주의를 유지하려고 하는 한에서도 이 문제를 생각해야 한다.”

마르크스는 자본주의에서 양극화나 부는 세습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자본은 ‘관계’이기 때문이고, 이는 자본주의의 일탈 때문이 아니고 원리라는 설명이다.

“마르크스가 항상 말하지만 자본은 ‘관계’다. 이 관계가 계속 재생산된다. 노동자는 갑질하는 한명의 자본가는 피할 순 있지만, 자본가 자체를 피할 수는 없다. 생산수단 자체가 없는 상황에서 살기 위해서다. 그렇게 먹고 살기 위해선 노동을 팔아야 하고, 이 관계는 계속 재생산된다. 이것이 자본주의의 일탈로 인한 문제가 아니라 자본주의의 원리라는 것이다.”

지난 5월 3일 카를 마르크스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새로 단장된 런던의 마르크스 묘역 ⓒ신화통신
지난 5월 3일 카를 마르크스의 탄생 200주년을 맞아 새로 단장된 런던의 마르크스 묘역 ⓒ신화사

21세기 마르크스의 눈이 향해야 할 곳

자본론에서 마르크스는 노동자의 처지를 다양한 비유로 표현했다. 노동자가 자본가에게 노동력을 판다는 것은 자신의 몸에 대한 사용권을 파는 것이라며 매춘 여성에 비유했다. 또 ‘이제 가죽을 팔아버려 무두질(생가죽이나 실 등을 매만져서 부드럽게 만드는 일)만 기다리는 사람처럼’이라며 가축에 빗대기도 했다.

고병권 작가는 이 비유와 실체 간의 간극을 꼬집었다. 그 비유의 대상들이 지금까지는 시스템 바깥에서 비유로써만 활용됐다는 것이다. 그리고 지금 시대에는 그 비유의 대상들에 대한 문제도 고민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매춘이 직업이 된 이유는 그 여성들이 노동시장에서 배제됐기 때문이다. 배제된 형태의 노동이 중세에는 하녀(가사노동)와 매춘(성노동)이었다. 이것이 오늘날 자본주의로 넘어오면서 성노동에 대한 도덕적 철학, 가사노동에 대한 경제적 철학이 분명히 생겨났을 테다. 이것을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본다. 나아가 오늘날 마르크스라면 생산성이 떨어진다는 이유로 시스템 밖으로 밀려난 장애인들의 노동문제를 생각해야 할 것이고, 더 나아간다면 동물 문제를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는 이런 식으로 발상을 계속 확장하면 자연에 대한 착취, 황폐화 문제에 대해서도 언급할 수 있다고 부연했다. 그러면서 가치론이나 경제적 가치평가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이건 가치론 바깥의 문제다. 경제학 안으로 들어온 얘기가 아니다. 자본론 텍스트 바깥의 얘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마르크스가 비유적으로 얘기했던 여성, 식민지인, 아이, 동물 얘기가 책에 그림자, 유령처럼 등장한다. 앞으로 누군가가 경제학을 비판하겠다고 마음먹었으면, 경제적인 가치의 착취량을 계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가치론 또는 경제적 가치평가 그 자체에 대해 깊이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오늘날 마르크스를 다시 읽는다고 말한다는 건 이런 문제들까지도 해석을 열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이제는 그 모든 걸 다 열어볼 때도 됐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