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수록 늘어나는 전문자격사 ‘명의대여’
국민 생명·재산권 침해 및 국고 손실 우려
처벌 규정 존재하나 사문화 수준에 불과
명의대여 특별 금지법 및 자정 노력 필요
전문자격사제 근본 문제부터 해결해야

<사진 출처 = 청와대 청원게시판 캡처>

【투데이신문 전소영 기자】 지난달 4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는 전문자격사 명의대여 금지 법안 입법을 촉구하는 청원글이 게재됐다. 의사·변호사·법무사 등 22개 전문자격사 업무 대부분에서 국민의 생명·안전·건강·재산을 해치는 명의대여 행위가 만연하고 있어 이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명의대여 금지 특별법이 필요하다는 게 골자다 .

실제 지난 6월에도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이 지난 2000년 한진그룹 계열사가 보유한 인천 중구 인하대병원 인근 건물에 약사 A씨와 계약을 맺고 싸게 약국을 개업해주고 일정 지분을 받아 챙긴 정황이 포착돼 논란이 된 바 있다.

현재 각 전문자격사 법에서 명의대여 관련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하지만 전담 수사부처가 없을 뿐 아니라 수사도 쉽지 않아 실제로 처벌받는 대상은 드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전문자격사 명의대여가 계속해서 만연할 경우 자칫 국민의 생명 및 재산권 침해와 국고 손실이 우려됨에 따라 강력한 규제를 촉구하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편에서는 전문자격자 제도의 근본적 문제를 우선 돌아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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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명의대여 공화국?

‘명의대여’란 사전적으로 상호를 빌려주는 상법상 행위를 뜻한다. 기업 경영에 직접 참여하지 않고 필요한 명의만 제공해 실제 운영자는 다른 경우가 명의대여에 해당된다. 현행법상 명의대여는 불법이지만 근로능력이 저하된 70~80대 고령자를 중심으로 여러 분야에서 반복해 일어나고 있다.

조세범처벌법 제11조(명의대여행위 등)에 의하면 조세의 회피 또는 강제집행의 면탈을 목적으로 타인의 성명을 사용하여 사업자등록을 한 사람은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이를 허락한 사람은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등 명의대여는 결코 가벼운 죄가 아니다.

그런데 최근 이 같은 범죄가 일반 사업자뿐 아니라 병원이나 약국, 법무사, 변호사 등 국가에서 부여한 특정 자격을 요구하는 전문직에서도 만연하고 있어 문제가 더욱 커지고 있다.

전문자격사 명의대여는 돈을 가진 사람이 전문자격사의 명의만 빌려 실질적인 업무를 담당하고, 전문자격사를 취득한 당사자는 본인은 명의를 대여해준 대가로 최소한의 월급을 받아 챙기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물론 각 자격사법에서 명의대여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다.

현행 의료법 규정하는 의료기관 개설 자격이 없는 자가 의료기관을 개설 및 운영하면 징역 5년 이하 또는 징역 2000만원 이하의 벌금, 개설일부터 폐업일까지 요양급여비용에 대한 전액 환수조치, 해당 의료기관에 대한 허가 취소 및 폐쇄 명령 등이 조치가 이뤄진다.

건축사는 건축사법 제11조(자격의 취소 등) 제1항 제3호에 따라 자격증을 명의대여할 시 건축사자격이 취소되며, 제39조의2(벌칙)에 따라 자격증을 빌려준 사람 및 그 상대방은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된다.

이 같은 처벌규정에도 현재 전문자격사 명의대여 행위는 의사, 한의사, 치과의사, 수의사, 변호사, 변리사, 법무사, 손해사정사, 보육교사, 건축사 등 22개 자격사 업무 다수에서 자행되고 있다. 대한법무사광장 최헌수 대표는 한국에서만 이례적으로 명의대여 행위가 전국적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최 대표는 <투데이신문>과의 통화에서 “50여년전만 하더라도 이렇게 다양한 분야에서 명의대여 행위가 일어나지 않았다. 돈 좀 있다는 사람이 약사를 고용해 약국을 운영하는 정도의 수준이었다. 최근에는 한의사, 양의사, 변호사, 법무사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명의대여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면서 “우리나라에서만 일어나고 있는 일이지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볼 수 없는 현상이다”라고 지적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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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고 도는 명의대여 악순환

명의대여 행위는 우리 주위에서 암암리에 다수로 행해지고 있다.

예컨대, 보험연구원 김동겸 선임연구원의 ‘사무장병원의 운영 실태’ 자료에 따르면 개인이 의료기관을 개설한 후 의사를 고용해 운영하는 사무장병원 적발 기관수가 2016년 247개소이며 환수결정금액은 5159억원에 달한다. 이는 5년 전인 2012년보다 7.3배 증가한 수치다.

최 대표는 명의대여 난립 원인을 세 가지로 분석했다.

첫 번째로 수사당국의 적극적인 단속 부족이다. 명의대여 변호사·법무사·세무사·공인중개사 사무실 등이 검찰청, 법원 등 사정기관 앞에서 버젓이 영업하고 있지만, 수사인력 부족 등을 이유로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거나 고소·고발된 경우가 아니고서는 수사조차도 이뤄지지 않는다.

두 번째는 좁은 범위의 법 해석이다. 법무사법·공인중개사법·관세사법·공인회계사법·건축사법 위반 사건에서 대법원은 명의대여를 ‘다른 사람이 전문자격사증을 이용해 자격사 행세를 하며 자격사의 업무를 행하는 것을 알면서도 그에게 자격증을 빌려주는 것’이라고 해석한 대법원 판례가 있다. 즉, 비자격사가 자격사를 고용해 월급을 주는 운영방식은 명의대여가 아니고, 비자격사가 자격사의 명의만 빌려 자격사 행세를 했을 때만 명의대여가 성립한다고 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관대한 처벌이다. 명의대여를 인정할지라도 그 처벌은 매우 약한 수준이다. 변호사, 법무사, 약사 등 명의대여 자격사는 대게 벌금이나 집행유예 수준의 가벼운 처벌을 받는다. 이렇다 보니 경영난을 겪는 자격사들이 쉽게 명의대여에 접근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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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의대여 금지 특별법 제정 및 자정 노력 필요”

자격사제도는 국가가 국민의 생명·건강·안전·재산을 보호하고 국가경제에 이바지하도록 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하지만 이처럼 돈벌이를 목적으로 한 전문성, 윤리성, 공정성, 신뢰성이 부족한 무자격자가 명의대여 행위로 국민의 생명과 건강, 안전을 위협하고 국고 손실을 위협하자 이를 근절시켜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지고 있다.

이미 우리 사회도 명의대여 문제에 대해 인식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민주평화당 천정배 의원은 지난 22일 사무장병원 개설자와 명의를 빌려준 의료인에 대해 10년 이하의 징역, 1억원 이하의 벌금 등 명확한 처벌 근거를 명시한 의료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현행법은 무자격자가 의료기관을 개설 운영하는 행위와 의료인의 면허증을 타인에게 대여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 규정을 두고 있으나 해당 규정만으로는 의료인 등의 명의를 빌린 사무장병원 개설행위나 그 명의를 빌려주는 의료인 등의 행위가 그 처벌범위에 포함되는지 명확하지 않다는 게 천 의원의 지적이다. 이와 관련해 최근 정부도 환자 안전사고에 취약하고 의료서비스 질을 저해하는 사무장병원 근절 종합 대책을 시행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이원욱 의원은 지난달 13일 다른 사람에게 자기의 성명을 사용해 건축사업무를 수행하게 하거나 건축사 자격증 또는 등록증을 빌려준 사람 및 그 상대방을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벌칙 수준을 상향하는 내용이 포함된 건축사법 일부 개정안 대표발의 했다.

이처럼 명의대여 근절을 위한 움직임을 계속해서 보이고 있지만 일각에서는 명의대여 문제점에 대한 논의는 과거에서부터 이어져 왔고 그동안 개선 과정을 거쳐 왔음에도 관련 해결책이나 법안이 사문화되다시피 하다 보니 좀 더 확실한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최 대표는 “명의대여 행위를 계속해서 묵인할 경우 우리 국민들은 명의대여 병원에서 출생해 명의대여 어린이집에 다니고, 명의대여 병원·한의원·약국을 이용하고 명의대여 건축사가 설계한 아파트를 명의대여 공인중개사의 중개로 구입하게 될 것”이라며 우려를 드러냈다.

그러면서 해결책으로 ▲처벌 대상 확대 ▲처벌 형량 강화 ▲몰수 및 추징 제도 도입 ▲명의대여 당사자 세무조사 ▲명의대여 금지 전담 수사부처 설치 ▲대폭적인 신고포상금 지급 ▲특별사법경찰 제도 도입 등을 포함한 ‘명의대여 금지 특별법’을 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명의대여 금지는 법보다 각 자격사의 준법 의지가 더욱 중요하다”며 “자격사가 중심에서 공정하게 업무를 수행함으로써 국민들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을 수 있도록 각 자격사 및 자격사협회의 뼈를 깎는 자정 노력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근본적 해결 선행돼야”

명의대여 원인을 얘기하기에 앞서 전문자격사 제도가 지닌 근본적 문제를 우선 살펴봐야 한다고 지적도 있다.

명지대학교 경제학과 김두얼 교수는 변호사는 아니지만 개인파산 업무 의뢰인을 도와주고 마지막에 변호사 도장만 받는 역할을 하는 개인파산 브로커를 예를 들어 설명했다. 변호사들은 단가가 안 맞다는 이유로 개인파산 문제는 맡으려 하지 않고, 개인파산 의뢰자들은 변호사가 원하는 만큼의 금액을 지불하기 어려운 상황이 많다. 그런데 법적인 전문가의 도움을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에 따라 추후에 인정받을 수 있는 재산의 차이가 크다 보니 개인파산 브로커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개인파산 브로커는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도움을 주는 건데, 이 일이 변호사법에 위반된다는 이유로 감옥에 보낸다. 그렇다면 과연 현행 자격사 제도가 제대로 운영되고 있는가 의문이 생긴다”고 말했다.

이어 질문에 대한 답으로 “첫 번째 한국에서는 변호사의 배타적 업무 영역이 굉장히 넓다. 즉 변호사 자격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이 매우 많다. 영국 같은 경우는 택시운전을 하다가도 능력이 있으면 법률 자문으로 돈을 벌 수 있다. 별다른 자격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은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법률 자문과 관련된 일로 돈을 버는 일은 볍호사법상 위반에 해당된다”며 “소비자들의 후생 목표로 한 자격사제도와 실제 소비자들이 요구하는 바가 충돌하는 지점이다”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수의 자격사법에서 비자격사와 자격사가 아닌자는 동업을 해서도 안 되고, 비자격사가 자격사를 고용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즉, 변호사는 변호사가 아닌 자와는 동업을 해서도 안 되고 변호사가 아닌 사람은 변호사를 고용해 법률과 관련된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만약 다른 사람의 명의로 변호사 사무실을 개업했을 때 이를 명의대여로 봐야하는지, 자격사법 규정 위반으로 봐야하는지는 법적으로 더 따져봐야할 문제이긴 하다”며 “이 같은 법이 합리적인 측면이 있을 순 있지만 사무장로펌, 사무장병원처럼 명의대여와 직결되는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 게 현 상황”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전문자격사 제도의 근본적 문제부터 바로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우리나라 전문자격사 제도에는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명의대여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이유도 자격사들의 배타적 업무 영역을 넓게 잡고 공급을 통제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이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은 자격사 수를 늘리는 것”이라며 “정말로 비자격사가 아닌 자격사가 해야 하는 일이라면 그 인원을 늘리는 것이 바람직한 접근이다”라고 해법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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