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종현 칼럼니스트
▲ 김종현 칼럼니스트

【투데이신문 김종현 칼럼니스트】  어느 날 낙지젓을 먹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도대체 맵다는 건 무언가. 

매운맛에 대한 두 가지 상식이 있다. 첫째는 고추에도 들어가 있는 캡사이신이 매운 맛의 정체라는 것. 순수한 캡사이신은 청양고추의 2만배가 넘게 맵다. 상상이 잘 안되는데 이보다 더 매운 물질도 있다. 모로코 지역의 선인장 비슷한 식물에는 캡사이신 보다 1000배나 매운 레시니페라톡신이라는 성분이 있다. 10g만 먹어도 인체에 치명적일 수 있다. 

두번째로 널리 알려진 게 매운 건 맛이 아니라 고통, 즉 통각이란 것. 다시 말해 매운 ‘맛’이라는 건 없고, 단지 매운 감각이 있을 뿐이다.

이 자극은 실은 작열감이다. 사람은 다양한 온도에 따라 각기 반응하는 몇가지 채널의 온도센서를 가지고 있다. 이 온도센서의 의해 특정한 온도 이상 혹은 이하를 느낄 때 고통이 온다. 

이 중 캡사이신이 건드리는 게 TRPV1이라는 온도센서다. TRPV1은 섭씨 42도 이상일 때 채널이 열린다. 즉 우리가 매운맛을 느꼈다는 건, 캡사이신 성분이 닿은 부분이 42도가 넘었다고 느껴서 아프다는 뜻이다. 

그럼에도 매운 게 맛있다고 느끼는 건 우리 몸이 화상을 입었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뇌는 화상의 고통을 덜어줄 셈으로 엔도르핀을 분비하라고 명령한다. 장난전화에 속아 출동하고 보니 현장은 위험하지 않았고, 후끈거림이 지나간 자리에 남는 건 엔도르핀의 쾌감이다. 이 천연 진통제에 대한 강렬한 욕구가 매운 음식에 자꾸 젓가락을 들이밀게 하는 이유다.

우리나라의 대중 음식은 80년대에 인스턴트 라면국물이 매워진 이후, 2000년대를 거쳐 점차 더 매워져 왔다. 그리고 이제 길거리와 식당의 모든 음식은 마치 기본값이 매운맛인 양 됐다. 공교롭게도 매운 맛은 섭씨 60도에서 제대로 느껴지기 때문에 음식들은 더 뜨거워야 했고, 뜨거우면 맛을 제대로 못 느끼기 때문에 더 짜고 더 달아졌다. 오늘날 우리나라 사람들이 사 먹는 음식은 그야말로 뜨겁고 맵고 짜고 단 자극의 향연이다. 이런 걸 진짜 맛있는 거라고 말하기엔 좀 겸연쩍다.

매운맛이 선풍적이던 80년대 이후의 우리나라 상황을 보면 여러가지 생각이 든다. 소득은 올라가고 사회는 발전하는데, 일만 하며 살아오던 구세대와 처음부터 풍요를 누리게 된 신세대 모두 즐길 무언가가 없었다. 음식에서도 이는 마찬가지라, 더 맛난 걸 먹고 싶어도 별 다른 게 없었다. 그 때 손쉽게 접근 할 수 있는 것이 고추가루였지 싶다. 전국민 가족 스포츠인 김장 담그기 덕분에 소금과 고추가루는 주변에 흔하게 널린 재료였다. 그리고 서로 더 자극적으로 손님을 끌어 당기기 위해 음식은 더욱 맵고 다양하게 발전했다. 

우리에게 만일 고춧가루 외에 더 좋은 양념이 다양하게 있었다면 요즘의 식당 음식이 조금은 덜 매워졌을까. 다시 말하지만 매운 것은 고통이지 맛이 아니다. 그럼에도 진짜 맛을 놓치고 진짜 같은 가짜 맛을 경배하게 된 결과가 얼굴을 붉히게 만드는 것일 지도 모른다.

매운맛의 발흥은 마치 우리나라의 수도권 과밀화와 같다. 우리 현실에서 물질과 자본을 향유하면서 더욱 상위의 행복감을 느끼도록 삶의 수준을 끌어 올려 주는 것으로 수도권 인프라만한 게 없다. 잘 닦인 인프라 때문에 사람들이 몰리고, 몰린 사람들이 서로에게 기회를 만들어주고, 그 기반 위에서 각자 미래를 약속 받는다. 일제 시대 이후 산업화 시기를 거치며 이는 공고한 공식이 됐다. 그리고 오늘날 가장 안전한 약속이 된 부동산으로 욕망의 에스컬레이터는 귀결됐다. 우리는 행복해지기 위해 부동산을 취득한다. 

그런데 어떻게 사람의 행복이 겨우 콘크리트로 정의 될 수 있을까. 이게 오늘날 사람들 스스로 자신이 추구하는 행복의 맛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고민하게 만드는 이유다. 그럼에도 다른 에스컬레이터를 보거나 상상 해 본 적 없던 사람들은 부동산이라는 메뉴를 외면 할 수 없다. 오늘날 아파트를 중심으로 한 부동산 가격 등락곡선을 이끄는 것은 수도권과 서울 그 중에서도 특히 서울 강남이라는 아주 매운 음식이 어떤 밥상 위에 차려져 잘 팔려 나가는지 학습한 심리다. 작금의 부동산 문제는 단순히 서울 어디 빈 땅, 수도권 녹지에 집 더 짓는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다.

우리사회는 우리의 부동산 문제에 관해 근본적인 해결방안을 대략 알고 있다. 궁극적으로 국토균형발전을 이루어 수도권 과밀화를 해소해야 한다. 지방의 농업 상업 제조업이 경쟁력을 갖춰야 하며, 이를 위해 IT기술과 첨단 기술을 융합해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덜 받게 해야 한다. 그렇게 새로운 시장을 개발해 지방의 자영업자들이 고장의 거리를 지키며 살아 남아, 폐업 대신 번듯한 사업체로 발전하도록 독려하는 게 최선일 것이다. 번성하는 사업들로 고용이 활발해지면 사람들이 몰려들어 자본이 쌓이고 지역 인프라가 점점 발달해, 부모가 서울 외의 지역에서도 자녀의 교육과 미래에 관해 불안을 떨칠 수 있게 되어 굳이 수도권에 갈 이유가 줄어든다. 이 모든 건 공정한 규칙과 법에 따르는 정정당당한 경쟁 환경이 마련돼야 가능하다. 우리는 이런 뜬구름같은 핑크 빛 꿈을 오랫동안 갖고 있어왔다. 

문제는 이게 하루아침에 이뤄질 수 없는 일이라는 것에 있다. 먼 훗날 실제로 이 목표가 성공하더라도, 그때까지 사람들은 현실을 견뎌야 한다. 부동산의 미래는 그 점에서 지금 당장 여기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회의 급격한 발전은 더 다양하고 맛있는 양념을 필요로 했지만, 그것들이 도래해 정착하기 전까지 이전보다 강한 욕구를 충족 시켜 줄 무언가가 필요했다. 다른 양념을 꿈 꿀 새 없이 고춧가루 폭격을 받은 게 죄가 아니듯, 더 행복해지는 방법이 아파트 밖에 없었다는 건 죄가 아니다. 그러나 지금 내 입에 들어갈 음식이 나의 건강을 해치면 가만 있을 순 없다. 지금 당장 여기의 문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그런 점에서 당장 매운 음식 끊으라는 의사의 권고다. 근본적으로는 우리 시민사회가 투표로 선택한 정권의 힘을 빌어 우리 스스로에게 내린 결정이다. 

이제 겨우 살 만 해져서 맵고 맛난 음식 실컷 먹을 돈 벌어 놨는데 끊으라니 억울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어찌됐든 받아들일 수 밖에 없는 사실은, 입으로 매운 게 들어가면 나중에 화장실에서 항문도 맵다는 것. 그렇다고 TRPV1을 무력화 시키면 고통을 사전 방어할 경고등을 잃게 된다. 더 가다간 치질수술을 받거나, 아니면 캡사이신의 1000배라는 레시니페라톡신을 먹고 죽어야 직성이 풀리는 지경에 이를지 모른다. 지금이 그나마 건강을 위해 뭔가 할 수 있는 가장 건강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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