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의 울림, 소울(Soul) 음악 이야기⑧] ‘사면초가(四面楚歌)’ 내몰린 알 켈리(R. Kelly)
[영혼의 울림, 소울(Soul) 음악 이야기⑧] ‘사면초가(四面楚歌)’ 내몰린 알 켈리(R. Kelly)
  • 정휴 음악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05 15: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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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켈리 ⓒ뉴시스/AP
알 켈리 ⓒ뉴시스/AP

아동 성범죄자의 항변

‘나는 어린이와 추잡한 관계를 가진 성범죄자가 아니다. 나는 치유자(Therapist)다.’

한 소아성애자의 광기를 그린 블라디미르 나보코프(Vladimir Nabokov)의 《롤리타》 속 한 문장을 떠올린다. 어린 소녀를 대상으로 한 성인 남성의 거리낌 없는 폭력을 지켜본다는 게 내내 께름칙했지만, 본 책을 완독할 수 있었던 까닭은 각종 미사여구와 암시, 언어유희가 재미를 주었기 때문일 거다. 위 문장에서도 ‘치유자(Therapist)’를 ‘강간범(The Rapist)’으로 해석할 수 있도록 중의적으로 사용했다는 걸 알아차릴 수 있다.

《롤리타》는 ‘어린이의 성적 대상화’로부터 시작하는 범죄에 대한 경계와 탐미주의적 문학관의 충돌이 아직도 끊이지 않는 소설이다. 이처럼 허구임에도 논란을 초래하는 아동 성범죄를 향한 사회의 경계가 서슬 퍼런데, ‘알엔비의 왕(The King of R&B)’으로 불리는 알 켈리(R. Kelly)가 그 문제로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지금 미국 전역에서는 알 켈리와 그의 음악을 배제하자는 ‘알 켈리 음악 끄기(#MuteRKelly)’ 운동이 한창이며, 티브이 채널 ‘라이프타임(Lifetime)’은 최근 알 켈리로부터 납치 및 감금, 폭행당한 피해자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알 켈리로부터 생존하기(Surviving R. Kelly)>를 방영했다. 공교롭게도 그는, 좌절의 문턱에 선 이들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는 대표적인 음악 ‘I Believe I Can Fly’로 이름을 알린 주인공이다.

“이런 걸로 날 죽일 셈입니까? 당신들을 위해 30년 동안 쌓은 공이 있는데도 나를 죽이려는 거죠? 내가 왜 그런 일을 했겠습니까? 그런데 모두 사실로 믿더군요. 나는 지금 빌어먹을 인생을 걸고 싸우고 있다고요!”

결백한가 아니면 후안무치인가를 판단하기에 앞서, 나는 툽상스러운 알 켈리의 반응을 보고 어떤 기시감에 기억을 더듬어 《롤리타》를 끄집어냈다. 고운 치장 속에 숨은 주인공 험버트와 사뭇 달라 보이지만, 둘의 표출 방식이 모두 자기애적 분노에 원인을 둔다는 걸 깨달았다.

알 켈리와 알리샤 ⓒ뉴시스/AP
알 켈리와 알리야 ⓒ뉴시스/AP

알 켈리(R. Kelly)의 공과

알 켈리는 ‘90년대 뉴 잭 스윙(New Jack Swing) 시대에 등장했다. 그는 외설적인 가사로 포장한 관능적인 분위기의 슬로우 잼(Slow Jam)부터 영적인 가스펠(Gospel)까지 다양한 음악을 들려준 전천후 음악인이자, 아이슬리 형제(The Isley Brothers), 재닛 잭슨(Janet Jackson), 메리 제이 블라이즈(Mary J. Blige) 등 내로라하는 이들과 작업하는 ‘잘나가는’ 프로듀서이기도 하다. 그가 부른 ‘I Believe I Can Fly’와 그가 제작한 마이클 잭슨(Michael Jackson)의 ‘You Are Not Alone’은 우리나라에서도 꾸준히 사랑받는 ‘스테디셀러’이며, 국내 가수가 알 켈리와 함께 작업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언론에서는 그 영광스러운 상황을 비중 있게 다루기도 했다. 한편으로는 체인징 페이시스(Changing Faces), 알리야(Aaliyah) 등 인재 발굴에도 힘을 썼는데, 그 과정에서 본 논란의 불씨가 되는 사건이 터지고 만다.

만 14세인 알리야가 성공적인 데뷔로 주가를 올리기 시작할 ‘90년대 중반 무렵, 그녀는 앨범 제작에 큰 공헌을 한 알 켈리와의 염문설에 맞닥뜨린다. 그녀가 당시 소속사인 자이브(Jive)를 떠나고 알 켈리와 멀어지면서 소문이 일단락되었지만, 후에 나이를 실제보다 높게 속여가며 혼인 신고한 정황이 드러나면서 사회적 공분을 샀다. 덩달아 대중은 알리야의 데뷔 앨범 제목이 “Age Ain’t Nothing But A Number(나이는 단지 숫자에 불과해)”인 것과 표지 사진의 콘셉트가 알리야를 바라보는 흐릿한 남성(알 켈리)의 실루엣인 것을 가리키며 수군댔다.

이후 알 켈리는 성추행, 포르노 등의 십대 소녀와 관계된 추문이 여러 차례 돌면서 법정에 섰고, 모두 무혐의로 풀려나게 된다. 금전적 포섭 의혹이 따랐지만, 악성 범죄 명목으로 법정을 드나들고 있음에도 팬들이 열을 올리며 무죄를 주장하고자 시위를 벌일 정도로 그의 인기가 대단했기에 이내 묻히고 만다.

알 켈리 ⓒ뉴시스/AP
알 켈리 ⓒ뉴시스/AP

3일에 걸친 충격적인 고발

최근 알 켈리가 저지른 아동 성범죄를 고발하는 다큐멘터리(이하 다큐) <알 켈리로부터 생존하기(Surviving R. Kelly)>가 방영됐다. 본 방송은 앞서 이야기한 알리야와의 혼인 사건부터 십대 소녀들과 함께한 포르노 사건, 그리고 그걸 무마하고자 동생을 범인으로 지목하여 변론한 일화, 포르노에 등장한 십대 소녀 중 한 명이 알 켈리의 후원으로 데뷔한 음악인 스파클(Sparkle)의 조카라는 사실 등을 알리는 것으로 시작, 특히 여러 십대 소녀가 그의 집에 감금되어 학대를 받은 내용을 ‘생존자’로 정의된 피해자들과 친인척, 전 부인 안드레아 리(Andrea Lee)의 증언 등을 바탕으로 구체적으로 소개한다.

내용에 따르면, 알 켈리가 소녀들을 상대로 벌인 행각은 ‘유명인으로서 팬에게 접근 → 연민 유발을 통한 관계 형성 → 감금과 폭행’ 순으로 이루어진다. 피해들은 그 절차가 워낙 자연스러워서 스스로 굴레에 갇힌 상황을 깨닫는 순간에는 이미 너무 깊게 관여되어 벗어날 방도를 찾을 길이 없었다고 한다. 한 생존자(피해자)는 알 켈리와의 관계로 말미암아 임신 후 유산된 본인에게 ‘You Are Not Alone’을 들려주며, ‘널 위해 만든 곡’이라고 설명했다고 한다.

또한, 방송은 소외자를 향한 사회의 태도를 고발하기도 한다. 피해자들이 백인이었다면 사건 처리의 양상이 다르게 전개되었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의 눈길을 보내는가 하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하 흑인)들 일부가 알 켈리를 옹호하는 까닭은 오랜 기간 차별과 폭력에 시달린 탓에 논란을 접하자 조건반사적으로 흑인을 향한 차별의 희생자라고 음모론을 제기하는 현상이 발생했을 수 있다고 말한다.

다큐는 결국, 약 200만 명이 시청하면서 해당 방송사 2년 만의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고 각종 소셜미디어에서 74만여 건의 반응을 일으키며 미국 사회를 뒤흔들게 된다.

알 켈리 음악끄기 운동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위자 ⓒ뉴시스
알 켈리 음악끄기 운동 시위를 벌이고 있는 시위자 ⓒ뉴시스/AP

알 켈리 음악 끄기(#MuteRKelly) 운동

알 켈리 음악 끄기(#MuteRKelly, 이하 뮤트) 운동은, 2017년 알 켈리의 아동 성범죄 문제가 다시 불거지자 애틀랜타의 예술 관계자 오로니케 오델레예(Oronike Odeleye)가 애틀랜타 방송국에 그의 음악을 배제하라는 청원에서 시작됐다.

“내가 십대일 때부터 알 켈리의 성 추문에 관해 들어왔습니다. 몇 년 후 더 많은 여성이 이야기에 등장합니다. 사진, 비디오와 함께 말이죠. 많은 흑인 소녀가 여성스러움, 섹시함을 요구받는 삶으로부터 상처를 입었습니다. 누군가는 그들을 위해 일어서야 합니다. 그의 행보를 끝내야 할 때입니다.”
- 오로니케 오델레예(Oronike Odeleye)

그녀의 청원은 사회운동가 켄예트 반스(Kenyette Barnes)의 마음을 움직였다. 결국 둘은 합심하여 조직적으로 움직이게 됐고, 그로 말미암아 많은 방송국이 운동에 동참하면서 다큐를 제작하는 성과를 이루게 된다.

법정에 선 알 켈리 ⓒ뉴시스
법정에 선 알 켈리 ⓒ뉴시스/AP

우상의 배신, 진실을 왜곡하는 요람 걷어차기

앞서 말했듯이 음악계에서 알 켈리의 영향력은 더할 나위 없이 크다. 그의 음악은 누군가의 삶에 영향을 끼치는 일이 비일비재할 정도로 대단했고, 영감을 받아 음악인의 길을 따라 걷는 추종자도 많았다. 오랫동안 그의 음악에 마음을 빼앗겨 형성되고 옭매인 정서, 철학, 신념을 포기하기란 그만큼 어려운 일이었을 거다.

알엔비 보컬리스트 탱크(Tank)의 성찰 담긴 발언을 봐도 그의 영향력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수 있다.

“많은 가수, 작곡자, 프로듀서 및 음반 관계자는 스스로 보고 들은 거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혼란스러워합니다. 우리 모두 이 남자로부터 영감을 받았고 그 천재적 재능을 추종했습니다. 그리고 그를 보내기 어려워할 정도로 많은 관심을 쏟았죠. 나는 인제 그렇지 않습니다만, 그러기까지 시간이 걸린 걸 깊게 뉘우칩니다. 더는 괴물의 음악을 퍼뜨릴 수 없습니다. 왕은 여왕을 이렇게 대우하지 않죠. 당신은 왕이 아닙니다.”

래퍼 커먼(Common)도 진실을 왜곡했던 흑인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반성의 목소리를 보탰다.

“확실히 알 켈리는 우리가 보고 들은 바와 같이, 정말 해결해야만 하는 깊고 무거운 모든 문제에 직면했습니다. 나는 심판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그를 용서하지 않을 겁니다. 생존자들에게 깊은 연민을 느낍니다. 우린 한 공동체로서 실패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걸 알면서도 그를 막지 않고 음악에 더 집중했으니까요.”

계속해서 챈스 더 래퍼(Chance The Rapper), 조(Joe), 퀘스트러브(Questlove), 니요(ne-Yo), 실리나 존슨(Syleena Johnson) 등 알 켈리와 작업한 음악인들의 사과가 남녀불문하고 이어졌다. 업계의 흐름도 마찬가지다. 그의 소속사 소니(Sony)는 알 켈리와 체결했던 계약을 취소했으며, 음원 스트리밍 업체 애플 뮤직과 판도라는 재빠르게 알 켈리의 홍보를 중단했다. 

“대부분 꺼릴 줄 알았어요.”

다큐의 총감독 드림 햄튼(Dream Hampton)은 제작 전 알 켈리와 함께했던 음악인을 증언자로 섭외하는 데 어려움이 따랐다고 밝혔다. 예상했던 일이라고 덧붙이면서 말이다. 그런데도 제안에 기꺼이 응했던 존 레전드(John Legend)는 어느 매체의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모두가 다큐에 출연하는 게 얼마나 용감한지 말해주면서도 그에 따른 위험을 생각하진 않더라고요. 나는 이 여성들을 믿어요. 아동 성범죄자 보호 따윈 엿이나 먹으라고 해요.”

공연 중인 알 켈리 ⓒ뉴시스/AP
알 켈리 ⓒ뉴시스/AP

 

사건을 향한 다양한 의견과 해석

최근 ‘네오 소울의 퍼스트레이디(First Lady of Neo Soul)’로 불리는 에리카 바두(Erykah Badu)의 발언이 뜨거운 감자로 부상했다.

“모두 어찌 생각하는지 모르겠지만, 나는 지금 그가 빛을 보고 앞으로 나아가길 바라며 기도합니다.”

모두가 한 곳을 집중하며 바라볼 때 비죽 튀어나와 다른 곳을 가리키는 그녀에게, 대중은 싸늘한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아마도 ‘사랑과 인간애’와 같은 보다 광의적인 시각으로 접근하려는 의도가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많은 비난 끝에 에리카 바두는 이렇게 응수한다.

“뭐라는 거야? 그건 무조건적인 사랑이 아니야. 만약 피해자 중 하나가 범법자로 성장하면 그마저도 십자가에 못 박을 셈이야?”

작년에는 언론사 ‘뉴욕 타임즈(The New York Times)’가 대규모 미투(Me Too) 운동에 이어, 성희롱, 성폭행 등 성범죄와 성차별에 대항하고자 생긴 ‘타임즈 업(Time’s Up)’이라 불리는 운동과 이를 위한 기금을 조성하는 단체를 소개했다. 타임즈 업은 그 해에 ‘골든글로브(Golden Globe Awards)’ 시상식 참가자들이 검은 옷을 입고 연대하는 데 영향을 준다. 드라마 <위기의 주부들(Desperate Housewives)>에 출연해 많은 인기를 끌었던 배우 에바 롱고리아(Eva Longoria)는 시상식 현장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건 한순간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운동입니다.”

“차별, 추행, 학대에 대한 침묵, 기다림, 포용도 그만둘 시간이 되었습니다.”

타임즈 업의 모토는 ‘행동’이다. 적극적으로 알리고 행동하는 게 인식을 개선하고 환경을 바꿀 수 있다는 주장에 기반한다. 

알 켈리 논란을 두고 대중은 타임즈 업의 성격이 등등한 형세다. ‘버닝썬’, ‘장자연’ 사건을 두고 분노하는 대한민국 사회와 결을 같이한다. 본 문제의 결론이 어느 방향으로 흘러갈지 모를 일이지만, 알 켈리의 삶은 앞으로 순탄하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든다.

▲ 정휴 음악칼럼니스트
▲ 정휴 음악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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