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
세계 여성의 날에 ‘정상연애 장례식’ 열어
‘관리의 용이성’ 때문에 강요되는 정상성
정상가족·정상시민 길러내는 수단으로 작용
‘탈연애선언’, 패러다임 전환…정치적 의제화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이 지난 3월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정상연애 장례식'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이 지난 3월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정상연애 장례식’ 집회를 하고 있다. ⓒ뉴시스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한국의 청소년·청년들에게는 살면서 수행해야 하는 ‘인생 퀘스트’가 있다. 청소년기에 공부해서 대학교 진학으로 시작해 졸업-취업-연애-결혼-출산으로 이어지는 인생 계획이 바로 그것이다.

이 중 ‘정상가족’의 모델인 4인 가족(부, 모, 자녀 둘) 구성의 시작점으로 여겨지는 연애는 정상성을 판별하는 중요한 요소로 작동한다. 여기서 정상성은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2030 남녀가 1대1의 독점적 관계의 이성애’를 기준으로 한다. 여기서 벗어나면 ‘비정상’이라는 틀에 갇히게 된다.

이처럼 ‘정상성’을 부여해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연애’, ‘정상가족’에 반기를 든 이들이 있다.

여성의 날인 지난 3월 8일, 프로젝트팀 ‘탈(脫)연애선언’은 서울 종로구 광화문광장에서 ‘정상연애 장례식’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이들은 “사회의 ‘정상연애’ 중심 문화에 균열을 내고 ‘정상성’을 규정하는 가부장제를 뒤흔들기 위해 모였다”며 “연애하는 이름으로는 규정할 수 없는 다양하고 풍부한 친밀성을 모색해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와 가부장제를 뒤흔들고자 한다”고 밝혔다.

아울러 이들은 ▲연애라는 이름으로 강요되는 관계적 독점 거부 ▲이성애중심주의 반대 ▲정상연애 중심주의 반대 ▲성소수자 및 성판매 여성들에 대한 혐오 반대 ▲데이트폭력 규탄 등을 선언했다.

<투데이신문>은 칼럼니스트 도우리씨,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 대표 홍혜은씨, 디자이너 수리씨 등 ‘탈연애선언’의 공동대표 3인을 만나 ‘정상연애 장례식’을 계획한 이유와 사회가 강요하는 ‘정상성’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봤다.

사진제공 =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
<사진제공 =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

정상연애 장례식

Q.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린다.

도우리 - 원래 탈연애선언은 팀이나 단체라기보다 저와 수리씨가 개인단위로 진행하던 프로젝트였다. 그러던 중 홍혜은씨와 ‘정상연애와 정상가족은 긴밀한 연관이 있다’는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탈연애와 비혼을 적극적인 정치적 의제로 가져가보자는 생각에 팀을 결성하게 됐다.

Q. 탈연애선언을 계획한 이유는.

도우리 - 탈연애는 ‘연애하지 않겠다’는 비연애와 문제의식을 공유하고 있다. 다만 탈연애는 비연애의 문제의식과 함께 이 사회의 정상연애를 문제를 삼겠다는 정치적 기획이 담겨있다. 탈연애선언도 처음에는 비연애선언이라는 이름으로 시작했었다. 그러나 정치적 의도를 좀 더 강하게 담기 위해 탈연애라는 말을 사용했다. 비연애라고 하면 ‘연애하지 않겠다’는 뉘앙스만 담게 되는데, 탈연애라고 하면 어떤 상태에서 적극적으로 벗어나겠다는 느낌도 담게 되고, 연애 ‘바깥’ 지점을 상상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이것이 우리가 추구하는 정치성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했다.

수리 - 탈연애란 탈정상연애를 줄여서 말하는 것이다. 사람들이 의식하지 못했던 ‘정상연애’를 의식하게 만들고 이를 넘어서자는 정치적인 의도가 있다. 사람들에게 ‘일반 연애’, ‘정상연애’라고 받아들여지는 것과 그 바깥에 있는 ‘비정상’으로 규정되는 것들을 담아보자는 것이다. 꼭 ‘탈연애’를 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정상연애’를 하는 이들과 ‘비정상’으로 규정되는 연애를 하는 이들 모두 같은 세상에 살고 있고, 비정상으로 규정되는 것들도 받아들여야 한다는 의도가 있다.

홍혜은 - 비연애라는 말은 비혼에서 파생됐다. 미혼이라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를 설명하기 위해 비혼이라는 말을 정치적으로 만들어낸 것이다. 혼인 이전에는 ‘정상가족’을 만들어내기 위한 ‘정상연애’가 있다. 그래서 연애와 결혼이 접합돼 있다는 문제의식은 사람들이 이미 갖고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비연애라는 말이 나온 것이다. 문제는 해석 싸움이다. 어떤 용어를 만들어내면 그 해석의 틀은 가장 사람들이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쪽에 먹혀버린다. 그래서 비연애, 비혼이 정상가족에 문제를 제기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정상가족은 이성애 중심주의에 결합해 있기 때문에, 결국 비연애 비혼에 대한 논의의 시작점에는 퀴어 이슈가 있다.

'탈연애'라는 말이 만들어지고 나서 이 용어가 사람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를 흥미롭게 봤다. 용어를 새로 만들었다는 건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하고 싶다는 건데 이 방향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애초에 그렇게 운동을 하고 싶었던 사람들이 있는데 사회에서 이를 받아주지 않은 것이다. 그럼 계속해서 해석경쟁을 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용어를 던질 것인가의 문제인데, 그중에서 새로운 용어를 던지는 쪽을 선택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다르게 봐달라는 신호 정도로 해석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모든 관계에서 벗어날 것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를 생각하자는 것이다. 탈이라는 게 경계 바깥을 생각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탈연애라는 용어를 긍정적으로 해석할 여지가 있다고 본다.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 공동대표 도우리씨. ⓒ투데이신문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 공동대표 도우리씨. ⓒ투데이신문

Q. ‘정상연애’란 무엇을 뜻하나.

도우리 - 정상연애란 정상가족을 이루기 위한 생애주기 각본을 따르는 것과 연결돼 있다. 우선 장애가 없는 사람끼리 만나야 하고, 청소년이거나 중·노년이면 곤란하다. 또 그들이 성소수자이거나 세 명 이상의 관계이면 안 된다. 두 사람의 시스젠더(지정성별과 본인이 정체화하고 있는 성별이 같은 사람) 이성애자여야 한다. 이를 모두 충족해서 둘이 아무리 좋아해도 결혼을 전제로 하지 않은 동거를 하면 안 되고, 그런 관계가 적어도 30대 중후반에는 결혼으로 이어져야 한다. 결국은 가부장제 정상가족을 정점에 두고 이에 맞춰나가는 관계를 정상연애라고 생각한다.

홍혜은 - 사실 이건 ‘정상시민’을 길러내는 문제다. 모든 시민이 똑같이 살아가야 관리하기 편하다는 인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정상성이라는 건 사회에서 자신을 드러낼 때 비난받을 것이 없는 사람, 법칙을 잘 따르고 그 법칙에 균열을 내지 않는 사람들에게 부여된다. 가족을 만들거나 아이를 낳는 것도 다 마찬가지인데, 정상연애는 이를 수행하지 못하는 그 밖의 사람들을 포괄하지 못한다.

Q. 3월 8일 진행한 ‘정상연애 장례식’ 퍼포먼스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도우리 - 수리씨와 계획할 때는 ‘정상연애 처형식’이었다.

수리 - 홍혜은씨가 합류하면서 정치적 의제들을 포함해 장례식으로 바꾸게 됐다.

홍혜은 - 장례식으로 이름을 바꾼 것은 개인적인 문제의식과 맞닿아있다. 많은 여성들이 폭력에 노출돼 있고 그 폭력은 힘든 경험으로 남아있다. 당연히 가해자의 얼굴로 대변되는 자신의 과거를 죽이고 싶을 것이다. 그런 식으로 자신의 과거를 대하는 것은 가해자를 죽이고 싶은 마음이기도 하지만 과거를 자신과 분리하고 싶다는 마음이기도 하다. 정상연애는 물론 우리가 깨부숴야할 것이지만, 그 안에 담긴 내 과거와 억압을 깨달은 현재의 나 사이에 연결지점을 찾아서 미래를 만드는 게 더 건강한 방식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처형식이 아니라 장례식으로 바꿔 애도하자는 의미를 담았다. 그래서 사회적인 의례로서 애도를 할 수 있는 퍼포먼스를 계획했다. 지난달 8일 정상연애 장례식에서는 정상연애를 의인화한 더미를 관 안에 넣어 헌화를 하고 그 위에 무지개 깃발을 덮어 우리가 벗어나야 하는 ‘정상성’과 대비해 다양성을 표현했다.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의 공동대표 수리씨. ⓒ투데이신문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의 공동대표 수리씨. ⓒ투데이신문

사회의 ‘정상성’ 강요

Q. 보통의 연애관계는 서로를 독점적으로 소유하는 것을 전제로 생각한다. 이에 대한 거부를 선언했는데 그 이유를 밝힌다면.

수리 - 저도 흔히 생각하는 연애, 1대1의 독점적 이성애 연인관계를 맺은 적이 있다. 그러던 중 가스라이팅(상황을 조작해 스스로를 의심하게 만들고 판단력을 잃게 하는 정서적 학대 행위), 데이트폭력을 당해 이 관계가 나를 갉아먹고 있으며 온전한 나로 존재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온전한 나를 표현하면 정상연애 관계는 무너졌다. 이런 문제점과 폭력성을 느끼고 벗어나게 됐다. 사랑해서 연애라는 역할극을 하기로 했고, 1대1 독점적 연애관계에서의 여성이라는 역할이 주어짐과 동시에 그 역할에서 벗어나면 안 됐다. 그 역할에서 벗어나면 연인이 나를 사랑하고 나를 잘 안다는 이유로 가스라이팅을 했다. 정상연애관계에서는 이 같은 폭력이 흔히 가해진다. 사람은 소유할 수 없다. 그런데 소유하려고 하니 문제가 생긴다. 예를 들면 다른 남성 친구들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압박하거나 폴리아모리스트(비독점적 다자연애자)에게 다른 사람에게 호감을 표현하지 말 것을 강요한다. 나를 감추고 잘라내는 것이다. 이런 것이 연인이라는 이름으로 가해지는 폭력이다.

홍혜은 - 관계의 양상이 1대1 연애처럼 보이는 연애를 하면 안 된다는 것이 아니다. 한 사람을 많이 사랑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그 한 사람을 사랑해 다른 관계에서 단절되는 것이 독점연애와 결혼의 문제다. 독점적 연애구조 안에서는 서로를 구속하는 연애가 사랑의 증명이 된다. 어떤 문제를 마주했을 때 자신을 둘러싼 관계를 자원으로 이용하지 못하고 연인의 의견에 끌려가게 돼 판단력을 잃는 상황에 이르는 것이 독점연애가 폭력을 낳는 구조다. 독점연애를 벗어난다는 것은 1대1 연애를 하되 덜 사랑하라는 것이 아니고 여러 사람을 반드시 동시에 사랑하라는 것도 아니다. 더 많이 사랑하되 더 많은 사람들과 건강하게 연결돼있기를 고민하자는 의미다. 관계 맺기의 양상을 한쪽에만 종속시키는 게 연인관계를 건강하게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여자들의 우정은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지점인데, 이 같은 독점적인 관계가 사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연인 관계의 남성 또는 남편과 아주 강하게 결합이 되면서 상대의 의견 말고 다른 것은 부차적으로 생각하게 되고 관계망에서 단절돼 폭력에 빠져도 도움을 구할 관계가 남아있지 않은 상황이 된다. 이것이 데이트폭력과 가정폭력의 구조다. 그래서 탈연애선언은 건강한 관계 맺기에 대한 제안이라고 보면 좋겠다.

도우리 - 독점적 소유연애 관계에서 사랑의 증명으로 가장 많이 표현되는 것이 질투다. 질투를 안 하면 서로가 사랑하지 않는 거라고 여기고 드라마나 영화에서도 호감을 가진 상대의 연애감정을 확인하기 위해 질투심을 유발하는 장면이 클리셰처럼 나오기도 한다. 친구사이에서도 질투가 있다. 하지만 질투를 우정의 증표로 생각하지는 않는다. 친구사이에서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끊으라고 강요하지 않는 것은 상대방에게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을 권리가 있고, 서로 친하다는 이유로 구속할 권리가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유독 연애관계에서는 질투를 사랑의 증명으로 여기는 것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고 싶다.

홍혜은 - 저는 질투를 자연스러운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하니까 질투도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고 내 삶과 더 긴밀히 결합하고 싶은 건 당연하다. 하지만 그것이 관계를 해치고 있지 않은가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하다.

Q. 연애관계에서 ‘성별역할극’이란 무엇이며, 이것이 강요되는 배경은 무엇인가.

수리 - 성별역할극은 성별에 따라 어떤 캐릭터를 입혀 연인으로 받아들일 조건을 만들고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호흡을 하는 거다. 문제는 역할을 바꾸지 못한다는 점이다. 때로는 내가 나무가 될 수도 있고 꽃도 될 수 있는데 캐릭터를 공고히 획일화해 제약이 많아진다. 이는 남성과 여성 모두에게 해당된다. 이를 강요하는 배경은 당연히 가부장제다. 가부장제가 원하는 것은 이성애 중심의 젊은 여성과 남성이 결혼을 해 정상시민이 되고 가부장제를 이어가는 것이다. 성별에 따라 역할을 나누자면 남성은 리더, 여성을 팔로워로 나눌 수 있겠다. 이로 인한 폭력적인 관계양상이 많기 때문에 타파하고 싶다.

도우리 - 성별역할극은 남녀사이의 권력 문제다. 보통 애교는 약자가 강자의 마음에 들기 위해 아양을 떠는 양상인데, 연애 때 여성에게 강요되는 부분이 있다. 1대1 연애관계에서 보통은 남성의 나이가 더 많고 재력이나 학벌도 남성이 더 높다. 이게 역전되면 어색하다고 느끼게 된다. 연상연하 커플도 많지만 굳이 ‘연상연하’라는 이름을 붙이는 것도 이상하지 않나. 권력이 남성에 조금 더 높게 설정된다. 그 배경은 성별 이분법이고, 권력관계에서 사회적·정치적·경제적 기득권에 속해있는 성별은 남성이며 여성은 소외돼 있는 성별이다. 이것이 성별역할극을 뒷받침한다. 소위 말해 남성스럽다고 여겨지는 것을 살펴보면 강인한, 강자의 특성과 닮아있다. 성적인 것에 있어서도 수동적인 여성, 능동적인 남성 역할이 공고하다. 결국 여성이 ‘싫어요’라고 거절하다가 결국 ‘좋아요’라고 말하는 클리셰가 있듯이 여성은 항상 수동적이기 때문에 성적으로 무조건 받아들여지는 존재로 인식된다.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는 표현을 하는 것처럼 남성이 먼저 대시를 하고 이런 것과 많이 연관돼 있다고 본다. 물론 이를 포괄하는 것은 가부장제인데, 정확히 말하면 이분법이라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홍혜은 - 이분법이 필요한 것은 관리의 용이성이다. 사람들이 이를 답습하면 관리가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녀로만 구분되는 젠더롤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개인은 없다. 이런 다양성이 존중되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그런데 관리하는 입장에서는 그것들을 모두 고려하기가 싫은 거다. 사실 이게 배경이다. 한국의 경우 국가가 관리의 주체가 되는 측면이 있다. 예를 들면 여성의 가임기 지도를 만들거나, 미혼 공무원들의 미팅을 단체장이 주선한다는 등 모든 것들이 관리의 주체가 국가가 돼 일어나는 일이다. 한국은 굉장히 국가주의가 강한 나라다. 관리의 주체가 늘 국가인 것은 아니지만.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의 공동대표 홍혜은씨. ⓒ투데이신문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의 공동대표 홍혜은씨. ⓒ투데이신문

Q. ‘정상연애’를 벗어나 다양한 관계를 긍정하기 위해 시민들의 인식뿐 아니라 동반자 등록법, 포괄적 차별금지법 제정 등 제도의 변화도 필요할 것 같다. 이에 대해 말한다면.

홍혜은 - 탈연애선언이 지향하는 바는 ‘우리 관계 이대로 괜찮아’라는 질문에 대한 다양한 답변을 듣는 것이다. 지금 나는 친구들과 잘 지내고 있고 내 주변에 있는 다양한 사람들과 더 다양한 방식으로 친밀감을 쌓고 싶은데, 30대가 되면 이를 모두 버리고 결혼하라는 게 대체 뭔가. 이에 대한 의문을 던지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 다음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고민해야 한다. 앞으로의 삶을 고민하는데 있어서 조금 더 상상력을 넓혀줄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고, 동반자등록법은 이런 지점에서 탈연애선언과 맞닿아있다.

다만 지금의 동반자법 논의는 다양하게 이뤄지고 있지 않다. 지난 2014년 진선미 의원실에서 동반자등록법 발의를 준비하며 ‘당신의 삶을 함께 살아갈 단 한명의 사람이 필요하지 않느냐’는,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말을 했다. 저는 사실 그 말이 기만적이라고 생각한다. 그 말은 관리가 편하도록 한 사람과 한 사람을 묶어놓는 결혼제도의 의도와 전혀 다르지 않다. 당시 법안을 보면 결혼과 다른 다양한 결합의 형태를 띠고 있지만 그 범위가 굉장히 좁다. 그런 정부의 의도가 잘 드러나는 것은 건강가족기본법이 개정 논의되고 있는데, 그 범위를 살펴보면 사실혼 관계에 있는 커플을 포함하겠다는 것이다. 간담회에서도 전부 다 남녀 동거 커플을 불러 발언권을 주고 있다. 딱 거기까지만 하겠다는 말이다. 인정받기 까다롭긴 하지만, 사실 법률은 지금도 사실혼 관계의 커플을 제도적으로 인정을 해주고 있다. 동반자등록법으로 사실혼 관계를 인정하겠다는 건 아무것도 안 하겠다는 것과 같다.

PACS(성별에 관계없는 성인 두 사람 사이의 결합제도)법과 같은 시민결합의 경우도 사실은 2등 시민을 위한 결합제도로 이용되는 경우가 많다. 한국의 경우 동반자법이 필요하지만, 지금 이대로는 곤란하다. 왜냐하면 사회에서 동반자법이 논의되는 방식 자체가 동거 커플의 결혼 이전의 단계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고 해외의 경우를 봐도 동반자법이 결혼 이전의 단계, 예를 들면 ‘동성혼은 통과시키기 싫지만 불만은 잠재우고 싶어. 그러니 제도를 만들어 줄까’라는 식으로 만들어지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사람들이 결혼은 낡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혼인관계에서 따라오는 부담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동반자법을 차선책으로 여기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동반자법으로 결합한 커플이 이성애 커플 비율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서는 ’동반자등록법은 동성애자를 위한 법이 아니다‘라는 식으로 설명을 한다. 이런 과정이 끊임없이 반복된다. 동반자등록법은 차별금지법과도 연결이 되는데, 차별금지법으로 국가가 차별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사회적 합의를 만들지 않으면 동반자법을 논의할 수 있는 패가 줄어들고 가장 단순하고 안전하고 쉬운 방법으로밖에 동반자법 논의를 이어갈 수밖에 없다.

수리 – 논의가 필요한데 논의 테이블이 이뤄지지 않고 있어 탈연애선언이 어느 정도 사회의 요구에 응하지 않았나 싶다. 정치적인 논의로 끌어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페미니즘 정치’로 새로운 상상력 일으켜야

Q. 연애를 ‘정상가족’을 이루기 위한 디딤돌로 보는 이들도 많다. 결국 ‘정상연애’-‘정상가족’으로 연결되는 사회적 압박이 이어지는데, ‘정상가족’은 우리 사회에서 어떤 위치이며, 여기에서 배제되는 이들이 겪는 어려움은 무엇인가.

홍혜은 – 가까운 예를 들면 제가 속해 있는 비혼지향생활공동체 공덕동하우스는 월세로 살고 있고 이를 전세자금대출로 돌리면 같은 돈에 더 넓은 집을 얻을 수 있다. 임대주택에 들어가더라도 가구원 수에 따라 신청할 수 있는 평수가 달라진다. 저 같은 경우 비혼공동체를 하고 있고 4인 이상이 살 수 있는 집이 필요하다. 서울시의 경우 공동체주택을 여러 개 만들어 놨다. 그런데 이 공동체주택은 공동체가 들어갈 수 없다. 개인이 들어가서 공동체에 강제 결합되는 구조다. 그래서 공덕동하우스는 같이 살 사람들이 있음에도 임대주택을 신청할 때는 각각 따로 신청해야 한다.

그리고 저는 지금 동생과 세대로 묶여 있다. 그러나 아무도 우리를 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세대는 엄마, 아빠가 있어야 한다. 그래서 가족관계증명서를 요구한다. 두 명이 세대분리를 해서 나와도 세대로 인정하지 않는다. 그리고 보험 드는 것과 관련해서도 고민이 있는데, 국민건강보험으로 묶여있는 가족에게는 혜택이 많다. 그러나 우리는 한 세대로 인정되지 않기 때문에 저와 동생이 따로 지역가입자로 돼 있다.

문제는 가족 안에 때려 넣은 제도들이 너무 많다. 관리의 편의성 때문이다. 그래서 결혼은 한 큐에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제도 안에 들어가는 통과의례인 것이다. 이 모든 것을 한 번에 해결하는 국가가 이대로 괜찮은가 하는 질문을 해야 한다.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의 공동대표 (왼쪽부터) 도우리씨, 홍혜은씨, 수리씨가 지난 9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의 공동대표 (왼쪽부터) 도우리씨, 홍혜은씨, 수리씨가 지난 9일 본지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투데이신문

Q. ‘정상성’에 대한 강요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인가.

도우리 – 정상연애는 사회문화적으로 강요되기도 하지만 스스로 강요하는 것이기도 하다. 무조건 외부에서만 강요한다고 생각하면 피상적으로 접근하게 된다. 그래서 우리를 억압하는 대상을 설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내 안에 있는 정상과 비정상을 가르고 차별하는 것을 경계하고 대면하고 이를 변화하는 것이 사회적 강요에 맞설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홍혜은 – 얼마 전 페이스북에서 ‘정상인 빙고’라는 것을 봤다. ‘연애를 해봤다’, ‘만화/애니 음악을 듣지 않는다’ 같은 것들이 있었다. 나중에 강의 자료로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웃음) 사람들끼리 정상/비정상을 판별하는 기준을 보면 사회가 말하는 기준을 개인들이 얼마나 잘 체득하고 있는지, 본인과 타인을 얼마나 잘 검열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

수리 – 외국에서 1년 정도 살다 온 적이 있는데, 한국에서 정상성에 대한 강박이 더 공고하다고 느꼈다. 한국은 정상성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나락으로 떨어질 것 같다는 공포심이 굉장히 크다.

홍혜은 – ‘정상성’을 못 버리는 걸 개인 탓으로만 돌리는 데는 문제가 있다. 한국사회에서는 그 정상성에 브레이크를 거는 순간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고 따돌림당한다. 한 사람이 바뀌면 그 사람을 보고 주변이 바뀔 거라고 하는데 안 바뀐다. 나만 이상한 사람이 된다. 문제인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사는 사람들이 많다. 뭘 바꿔야 하는지 아는 사람들이 연대해야 변화가 일어난다. 개인의 변화를 강조하는 ‘종교적인 수행’에는 한계가 있다. 내가 옳은 말을 한다고 해서 그 말을 듣는 사람이 생기는 게 아니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드러냄으로써 나와 생각이 같은 사람, 내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과 연결되는 것이다. 그 이후에 생각이 같은 사람들이 모여서 무엇을 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도우리 – 정상성에 대한 브레이크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만 홍혜은씨가 말한 것처럼 종교적인 수행으로 이어지는 흐름은 위험할 수 있다.

홍혜은 – 사람들이 뭘 해야 할지 몰라서,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말하는 것이다. ‘혐오발언을 제지하는 것이 남페미의 역할’이라고 하지만 그것이 남성사회 안에서 먹히는 전략은 아니다. 그것이 사람들을 어디로 몰아가는지를 봐야 한다.

수리 – 내가 달라진다고 해서 사회가 달라지지 않는다. 나를 의식하는 사람이 생기긴 하지만 사회의 흐름이 바뀐다고 보긴 어렵고, 개인은 ‘비정상’으로 규정되는 걸 감당하기 매우 힘들다.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의 홍혜은 공동대표(사진 왼쪽)가 지난 3월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정상연애 장례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프로젝트팀 ‘탈연애선언’의 홍혜은 공동대표(사진 왼쪽)가 지난 3월 8일 서울 종로구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정상연애 장례식'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Q. 탈연애선언 이후 온라인상에서 정상연애 장례식을 조롱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들에게 한마디 한다면.

도우리 – 흔히 무플보다 악플이 낫다는 말을 하는데, 악플러들 덕분에 정상연애 장례식을 성황리에 마칠 수 있었다. (웃음) 재미있는 반응도 많았다. 퍼포먼스 참석자들의 정체성에 대해 혼란스러워하는 반응도 있었고, ‘페미니스트가 왜 화장을 했느냐’는 등의 반응도 있었다. 탈연애를 굳이 선언까지 해야 하느냐는 댓글도 있었다. 그러나 탈연애선언은 공적인 공간에서 목소리를 내고 사회적, 정치적인 문제라는 것을 드러내는 방법이었다.

수리 – 모두 예상했던 반응들이다. (웃음)

홍혜은 – 저는 사실 그런 반응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들에게 할 말은 없다. 제가 관심을 갖는 분들은 우리의 메시지가 자신의 이야기라고 생각하는 분들이다. 그런 분들이 악플을 단 사람들보다 훨씬 많을 거라고 본다. 주위의 반응 때문에 목소리 내길 주저하는 사람들을 위해 탈연애선언을 시작했고, 그래서 정치적인 의제로 가져가야한다고 생각한다. 이 의제의 당사자들, 이 운동을 해 오신 분들의 의견에 관심이 많다. 더 많은 분들이 의견을 주신다면 좋겠다.

Q. 탈연애선언을 정치적 의제로 만들려는 이유는.

홍혜은 – 저는 지금이 사회가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시점이고, 모두가 그걸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부장제 5000년이라고 하면 굉장히 길어 보이지만, 한국에서 현재의 4인 가족 구조가 공고히 된 것은 사실 박정희 정부 이후다. 그런데도 더 이상 이 체제로는 관리가 안 되는 지경에 이른 거다. 그래서 결혼율이 날이 갈수록 떨어지고 이혼율은 계속 올라간다. 서울시 미혼여성 중 결혼하고 싶다는 사람은 100명 중 3명이다. 그럼 이 이후에 사회가 어떻게 가장 기본적인 재생산 단위를 만들어낼 것인가 기로에 부딪혀 있다. 이제는 더 이상 이 제도로는 안 된다고 본다. 그 구조의 수혜를 받고 있는 사람들이 모든 권력과 제도의 기득권을 갖고 있다. 아무리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고 말해도 그들에게는 새로운 것이 가능하지 않다. 그렇기 때문에 기득권 바깥에 있는 사람들이 주체가 되어 새로운 상상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저는 그것이 페미니즘 정치라고 생각한다. 원래 페미니즘의 구호는 ‘가장 사적인 것이 가장 정치적인 것이다’라는 말이다. 하지만 우리가 이를 제대로 정치적 장에 끌고 나온 적이 없다. 우리에게 가장 사적인 것은 연애와 가족이다. 그래서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패러다임 전환은 사회 전체를 건드려야 하는 작업이 될 테고 그래서 탈연애선언이 중요하다.

도우리 – ‘연애, 결혼할 시간에 노력해서 사회의 상층부로 올라가겠다’는 야망 서사로 흘러가게 되면 각개전투를 할 수밖에 없고 그러면 사회구조를 바꿀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정치적인 의제로 가져가야 한다. 함께 구조에 문제를 제기하고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는 고민을 하기 위해 정치적 의제로 가져가는 것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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