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근의 나는 이 작가를 주목한다④] 극적인 경관 연출의 나무꾼…최옥영의 땅, 영월
[김종근의 나는 이 작가를 주목한다④] 극적인 경관 연출의 나무꾼…최옥영의 땅, 영월
  • 김종근 미술평론가
  • 승인 2019.06.11 1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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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옥영 교수
▲ 최옥영 작가

한 조각가가 있었다. 강원도 시골, 왕산 산기슭에 힘들게 올라간 폐교에 가꾸어진 작업실은 제멋대로 널려진 작품들로 소똥처럼 지천에 흩어져 있었다. 

많은 사람처럼 나도 그를 그냥 “소똥작가”로 불렀다. 지금으로부터 30여 년 전의 기억이다. 

그러나 그 강렬하고 애틋한 기억 속의 작업실은 1994년 태풍 루사의 피해로 산사태와 장마에 쓸려 모두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20여 년이 지난 나는 ‘하슬라’라는 고구려말로 ‘불을 밝히다’라는 뜻의 하슬라 아트월드 미술관에서 그의 지나간 흔적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

폐교 이후로도 그는 소똥과 나무 작업을 끝까지 이어갔고, 2003년 강릉에 하슬라라는 7만5000평에 그의 작업실이자 놀이터인 조각공원을 개관했다. 

거대한 규모에 작품들이 즐비한 작가의 작업실은 독특하고 강렬했고 거대했다. 그는 천상 타고난 나무꾼이었다. 

그가 세워놓은 7-8미터의 나무로 만든 대형 설치작품들이 보란 듯이 표지석처럼 세워져 있고, 실내에는 프론트 데스크를 비롯해서 여기저기 자궁을 닮은 형태로 만든 침대가 그의 작품에 경계가 어디까지 인가를 증명했다. 

이렇게 동해바다를 한눈에 감싸는 강릉 하슬라의 광활한 공간은 최옥영 작가의 두 번째 “대지의 땅”이 되었다. 

이제 땅은 최옥영의 캔버스이고 그는 땅에 나무를 가지고 무대를 꾸미는 나무꾼으로서 무대감독이 되었다. 왜 그는 대지로 뛰쳐나간 것일까?

그는 언젠가 그의 작품들이 누군가에게 팔려나가 개인에게 소장되는 것이 참 아름다운 일이나 한사람이 독점하는 것에 늘 속상해 했다. 

예술은 많은 사람들과 공유 하여야 한다는 생각에 빠져들었고 그 출발에서 그에게 가장 먼저 예술적 감흥과 욕구를 느낀 것이 대지에, 그 땅에 무엇인가 직립하고 싶어 하는 강렬한 욕망이 불을 질렀다.

내면적으로는 그가 만든 작품들을 한 개인이 어쩌면 살 수 없도록 대형으로, 혹은 설치 예술을 감행한 고객으로 볼때는 매우 불순한(?) 의도가 거기에 있었다. 

그러나 대지 예술은 언제나 자연에 예술가의 정신과 영혼을 오래 두고 싶어 하는 작가들에 의해 이루어 진 것처럼 최옥영도 그랬다. 마치 대지예술의 창시자 로버트 스미스슨처럼. 

그 자리에 두어서 그들이 산을 쳐다보고 바다를 전망할 수 있게 모든 나무작품들의 성지가 <하슬라>이었다. <하슬라>의 설치작품들은 비단 구성이나 길의 형태에서뿐만 아니라 테마에서 다양하고 재료도 매우 흥미로운 구조물로 넘쳐난다. 그것은 영월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쇠나 돌은 물론, 대형 해시계처럼 대지의 지형이나 공간 자체를 재료로 삼은 그의 번득이는 아이디어도 그가 향한 대지예술의 종착역이 어디인가를 가늠케 해 준다.

여기서 최옥영 작가의 작품 스타일이 전면적으로 읽혀진다. 특히 땅 전부를 하나의 울타리를 지닌 작품으로 해석하고 그 공간에 모두 맞춰나가는 현장의 설계사처럼 그는 작업을 손수 진두 지휘했다.

지난 2014년부터 캄보디아 평원에서 재능기부를 하고있는 최옥영 작가의 대지 미술의 작업 경험들은 ‘동네방네 미술관 이야기’ 책에서 모조리 들려주고 있다.

자연에 대한 그의 존경스러운 태도와 감동, 경험담이 등을 자전적 에세이에서 그대로 감동적으로 읽혀진다.

“나무 냄새 풍기는 이 남자 거친 나무, 소똥… 이것으로 도대체 무엇을 만들 수 있을까? ” 사람들은 그에게 끊임없이 이렇게 되묻는다. 

그러나 최옥영은 이 모든 물음을 엄청난 스케일과 자연에 대한 일관된 완벽한 예술작품으로 응답했다.

그런 의도 안에서 그는 자연 훼손을 최소화하며 공간을 활용하는 사람의 근원인 대지예술(Land Art)을 성공적으로 탄생시킨 것이다. 이제 그는 그 무대를 영월에서도 그대로 풀어내고 있다. 

길 위의 예술(Road Art)가에서 최옥영 작가의 최근 작업은 이제 젊은 달의 원천인 영월이 그 화두다.

강릉에서 출발해 세계 방방곡곡 캄보디아와 몽골에 대지 미술 프로젝트로 대지예술의 길을 걸어와 이제 영월에서 그 또 다른 행군 대지예술의 숨겨진 봇짐을 내려놓고 풀어헤친다. 

최옥영 교수
▲ 최옥영 작가

그에게 대지는 “단순하고 원시적인 힘이 강조되는 순수한 조형성을 추구한 이름다움을 가진 땅”이라고 해왔는데 그 아름다움의 성지가 영월 술샘이 된 것이다.

“땅(자연)은 만물의 죽음과 삶의 영원한 모태이며 거대한 자궁이다. 오늘도 땅을 밟는다. 수많은 예술가가 밟고 지나간 길 오래된 고즈넉한 길 때로는 가시밭길 이 모든 길은 정신적 물리적인 인간이 만들어낸 가장 위대한 대지미술” 이라는 대지예술을 하는 이유를 이렇게 명료하게 정의한 에술가도 없다.

그는 이런 치열한 의지로 영월에 공터에서부터 무대감독으로 나선 것이다. 당연히 무대감독이 할 일은 그곳에 나무를 자르고 세우고 때로는 그것을 철로 만들어 세워놓고 색을 칠하고, 길을 만드는 일이었다. 

여전히 작가의 스케일은 수천평을 걸어가면서 볼 것과, 올라가서 볼 것들, 걸으면서 느껴야 할 것들 모두를 성스럽고 거룩하게 자연처럼 완성했다.

이렇게 그의 대지예술은 전통적인 것이 아니라 철근들에 붉은색을 칠해 철저하게 작품들이 위치한 장소와 그 공간을 활용하여 자연과 조화하는 목적이 충실하게 구현돼 있다.

보통 대지 예술가들이 환경의 이용 때문에, 주변과의 경계가 명확하지 않은 반면에 최옥영의 작품은 자연에 위치한 공간의 구성요소와 하나가 돼 보는 이에게 특정 장소에 대한 특별한 경험을 아기자기하게 때로는 위엄있게 부여한다.

그리하여 공간에 대한 고찰을 넓게 표현한 방식으로 그는 우리에게 장소에 대한 새로운 형태로 인상적인 풍경의 장관을 연출하고 있다.

이제 최옥영의 대지를 향한 나무 작업은 거의 40여년을 헤아린다. 

1987년 포스코 갤러리에서 가진 소똥 조각전이 엄청난 반향을 일으켜 그가 일본 도쿄 Pepper’s 갤러리에서 초대전을 가진 것처럼 이제 그의 대지예술은 하나의 변곡점을 돌아와 서 있다.

이러한 전환점을 2015년 캄보디아 대지미술의 프로젝트처럼 그는 전 세계에 자신만의 장소를 찾아 <크리스토와 쟝 클로드>처럼 자신의 성을 위한 나무로 우리에게 인간의 존재, 자신의 존재를 되묻고 확인하는 술샘의 탑, 프로젝트로 영월에서 그 절정을 이룰 극적인 경관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서울아트쇼 공동감독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고양국제 플라워 아트 비엔날레 감독
서울아트쇼 공동감독

영월의 술샘이라는 공간에 그가 펼쳐놓은 <레드 빌리지>의 가장 드라마틱 하고 파라다이스한 규모와 경관. 이제 최옥영의 나무와 철을 향한 행렬에 결정체가 이곳에 집적돼 있다.

모든 예술작품의 성공과 실패가 자본으로만 중시되던 예술에서 탈피해, 작품은 제작한 의도나 그 과정이 예술 그 자체라고 생각했던 최옥영의 대지예술이 이제 영월에서 함께 보는 꽃으로 거대하고 장중하게 그리고 화려하게 피어날 것이다.

그토록 오랫동안 자연을 향해 기다려 온 최옥영의 땅, 영월에서 축제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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