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팔이 사회’ 김선기 “학자·마케팅이 만들어 놓은 청년담론, 기성세대 욕망 담겨”
‘청년팔이 사회’ 김선기 “학자·마케팅이 만들어 놓은 청년담론, 기성세대 욕망 담겨”
  • 남정호 기자
  • 승인 2019.07.06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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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청년팔이 사회’ 저자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김선기 연구원
청년이 기성세대와 다르다는 규정, 그들을 보편과 다른 존재로 만들어
명확한 ‘세대’ 도구의 한계…실제 청년 설명하지 못하는 대부분 청년담론
권력 배분 의지 없는 정치권, “왜 참신한 인물을 청년에서 찾아야 하나”
‘청년문제=일자리 문제’로 정의한 文 정부, 묘책 있는 것 아닌 전략적 실책
정부, 청년정책 통해 어떤 사회 만들 것인지 명확한 비전과 총론 제시해야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김선기 연구원 ⓒ투데이신문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김선기 연구원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남정호 기자】 ‘88만원 세대’가 한국 사회를 강타한지 벌써 10여년이 흘렀다. 그 이후 한국 사회에서는 ‘헬조선’, ‘수저계급론’, ‘N포세대’ 등 해마다 새로운 청년담론들이 넘쳐났다. 최근에는 20대 남성들의 정부 지지율 하락이 한동안 이슈화되며 정치권은 대책 마련에 몰두하기도 했다.

지난 10여년간 청년에 대해 탐구·연구해오고 있는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김선기 연구원은 최근 집필한 책 <청년팔이 사회>에서 이러한 청년담론들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이 같은 청년담론들이 말하는 청년상이 일부를 기준으로 모두를 일반화해 정작 실제 청년들을 설명하지 못할뿐더러, 악영향도 미치고 있다는 지적이다.

그는 청년 스스로가 아닌 타자에 의해 만들어진 깊은 성찰이 없는 청년담론들로 인해 청년 이슈에 대한 청년들의 목소리에서 누군가는 배제되는 선택과 배제의 문제가 발생한다고 말한다. 담론에 부합하는 목소리는 ‘청년들의 목소리’가 되지만, 현재 담론과 부적합한 것으로 여겨지는 목소리는 배제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투데이신문>은 김선기 연구원을 만나 88만원 세대 이후 한국 사회와 정치권에 소비되고 있는 청년담론들의 문제점, 정부의 청년정책이 나아가야할 방향성과 함께 더 나은 청년담론 형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해 들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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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청년담론, 기성과 다른 존재처럼 만드는 것 자체가 청년을 타자화해

Q. 그간 청년세대 연구에 집중해왔다. 왜 청년세대였나

본격적으로 청년을 연구한 건 5~6년 정도 됐지만, 한 10년 정도 관련된 글을 쓰면서 청년에 관한 제 관점도 많이 바뀌었다. 처음 관심을 갖게 된 건 2009년 ‘고함20’이라는 언론을 만들면서다. 당시 젊은 사람들이 하는 많은 매체가 있었지만, 대학언론은 운동권의 정파성 등 제약이 많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제대로 된 20대 언론을 만들어보자’해서 시작했다. 그때는 청년이라는 개념도 없었다. 지금도 강의를 가면 항상 하는 말인데, 사람들이 걸어 다니면서 ‘난 청년이야’라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저도 당시에 스스로 청년이라는 생각을 한 번도 해본 적이 없었다. ‘20대 언론을 만들자’, ‘20대의 목소리가 담기는 공간을 만들자’ 정도의 생각이었다. 그런데 하다 보니 고함20도, 저도 계속해서 청년이란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청년세대 문제, 담론과 얽히게 됐다.

Q. 현재까지 한국 사회의 청년담론의 흐름은 어떻게 흘러왔나

현재의 청년담론만을 이야기한다면 88만원 세대론을 꼽아야 할 것 같다. 더 이전으로 가면 청년이라는 말이 처음 쓰인 건 1890년대다. 당시에는 스스로를 청년이라 부르면서 주체적인 성격을 강조하는 성격이 짙었다. 그러나 갈수록 사회적 담론이 풍성해지면서 오히려 청년담론은 청년 스스로 만드는 것이라기보다는 학자나 마케팅하는 사람 등이 여러 기법을 동원해 객관적인 청년상이라고 주장하는 담론으로 바뀌어온 것 같다. 그러다보니 청년들이 스스로를 청년이라 선언하는 경향은 옅어진 것 같다. 스스로가 아닌 다른 누군가가 만들어내는 청년담론이 되다보니 자신들이 그 담론에서 빠져있다는 느낌도 받는 것 같다. 이와 함께 점차 어른들이 청년을 알고 싶어 하거나 부정하려는 욕망이 투사된 담론으로 바뀌어온 것 같다. 최근 인기를 끈 책 <90년생이 온다>도 그런 흐름에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Q. 이러한 최근 청년담론의 흐름의 문제점은 무엇인가

청년담론이 청년을 타자화, 차별화하고 있다고 할 때, 차별이라는 걸 어떻게 볼 것인가의 문제가 있다. 차별이 적극적으로 괴롭혀야만 차별인가, 아니면 달리 대우한다는 것만으로도 차별인가를 따져봤을 때, 지금 청년들을 기성세대와 다른 존재인 것처럼 만들고, 그게 진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것 자체가 청년들을 타자화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젊은 사람들이 기성세대와 다르다고 선언하고, 그 내용을 규정하는 것 자체가 청년들을 보편과는 다른 존재로 만드는 효과를 갖고 있다. 이런 부분들이 현재 청년담론의 흐름이라 생각한다. 여기에는 88만원세대론이 가져온 여러 가지 효과들도 있다. 88만원세대론은 젊은 사람들이 더 불리하다는 차이를 강조했고, 청년들이 정치문제에 관심을 갖지 않고 있어 문제라면서 정치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 맥락에서 갑자기 청년들은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으로 호명됐다. 이런 식으로 축적돼 오면서 청년들을 기성세대, 혹은 이전세대하곤 매우 다른 존재로 이야기하는 게 일상적이 됐다.

Q. 그간 제시돼 왔던 청년담론은 청년 일부분에 초점을 맞춘 개념들이라 볼 수 있나

다양한 청년담론을 일반화해서 이야기하긴 어렵겠지만, 한국의 20~30대 인구가 1600만명 정도다. 때문에 어떤 사람을 상상해도 실제 그런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고, 그들을 기준으로 모든 청년을 일반화시키는 건데, 당연히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을 수밖에 없다. 이처럼 세대라는 도구의 한계가 명확한데, 그걸 넘어서서 일반화, 보편화하려는 욕망들이 있고, 그 한계나 해악 등이 분명히 있다. 청년담론이 설명력 면에서는 대부분 실패할 수밖에 없는 건 청년 전체를 포괄할 수 있는 방법이 없기 때문인 것 같다. 기껏해야 어릴 때 무슨 만화를 봤다는 것 말고는 청년 전체를 포괄하는 방법은 계급이나 지역 등 다른 개념에 비해 쉽지 않다. 대부분의 청년담론이 청년들을 실제로 설명했다고 보긴 어려운 것 같다.

Q. 일부분에 초점을 맞춰 보편화하는 최근 청년담론의 흐름이 시작된 시점은 언제부터라고 보나

하나하나 특수하지만, 그렇게만 설명하면 뭔가 안 것 같은 기분이 들지 않으니까 보편화, 일반화해서 보다 큰 차원에서 설명하고 싶은 욕망들이 있는 것 같다. 세대라는 것이 이전에는 그런 거대서사에 활용되는 개념이 아니었다. 그렇게 활용되기 시작한 이유에는 이전에는 뭔가를 거시적으로 설명하려할 때 유용했던 계급이나 민족 같은 개념들이 상대적으로 퇴행했거나 유행에서 벗어난 상황에서 세대의 설명력이 높아졌다고 상상하는 부분이 있지 않았나 싶다. 그런 차원에서 한국에서 세대개념이 일상화된 건 1990년대인 것 같다. 당시 X세대, 386세대 등 여러 가지 세대론이 나오면서 사람들이 세대라는 개념을 바탕으로 서사를 만드는데 익숙해진 것으로 보인다.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김선기 연구원 ⓒ투데이신문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김선기 연구원 ⓒ투데이신문

청년담론을 전문적 영역으로 인정 않는 정치권, 선거용으로만 생각하는 관성 있어

Q. 그간의 청년담론들이 청년들의 실제 삶에는 어떤 영향을 미쳤나

청년담론이 워낙 유행하면서 청년들 스스로가 받아들이지 않더라도, 그들이 마주하는 사회 제도나 구조, 인식들을 상당히 바꿔놨다. 때문에 청년들의 삶에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고 본다. 그 영향은 긍정과 부정 두 가지가 다 있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이 경제적으로 어렵다는 말이 진실처럼 됐기 때문에 청년정책이라는 게 생겨났다. 기존에는 복지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던 청년들을 대상으로 한 복지사업도 생겨나고, 청년수당, 구직활동지원금도 주면서 스스로를 청년이라 생각하지 않던 사람들이 청년으로서 제도에 들어가 뭔가 받아낼 것이 생겼다는 점은 일견 긍정적인 면이라 볼 수 있겠다. 그런 면에서 청년이 기성세대에 비해 어렵다는, 객관적으로 진실성을 의심해봐야 하는 주장조차도 어떤 청년들에겐 굉장히 이득이 됐고, 큰 틀에서는 불평등 격차해소에 일정한 도움을 주고 있다고 볼 수 있겠다.

Q. 악영향을 끼친 부분은 무엇인가

일상적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청년을 어린 사람으로 생각하게 됐다는 점이다. 올해 31살인 저 스스로도 너무 어린 것 같다. 과거 31살이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했을지 모르지만, 제가 어릴 때 상상했던 30대는 완연한 어른이었다. 그러나 저는 주거독립을 못해 완전히 독립하지도 못했다. 또 어른들과 같이 일할 때도 동등한 주체가 아니다. 동등한 위원자격으로 앉아있을 때조차 청년으로서 뭔가 경계가 지어져 있는 느낌을 계속 받는다. 이런 식으로 일상적인 상황에서 청년들이 어린 사람이 되고 있는 것 같다. 이게 누적되면서 청년정치인들이나 청년활동가, 여러 조직의 말단에 있는 사람들이 일상생활에서 굉장히 어려워졌을 것이라 본다. 사회에 나올 준비하는 시기만 길어지고, 언제 어른이 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드는 것 같다. 며칠 전에 한 청년 시의원이 저한테 ‘살을 찌워서 나이 들어 보이고 싶다’고 이야기하더라. 그 역시 시민들에 의해 선출된 의원인데, 다른 시의원들이 다르게 대우하고, 그게 나이 때문인 것으로 인지가 되니까 이런 이상한 상황들이 나타나는 것 같다.

Q. 청년담론을 대하는 우리 사회의 문제점은 무엇이라 보나

언론이나 마케팅하는 회사 등 담론생산자는 계속해서 말만 많이 만들지, 책임은 지지 않는 것 같다. 결국 조회수 장사 같은 측면으로 결부될 수 있겠다. 청년세대론은 매년 새로운 언어가 만들어지고, 청년을 부르는 세대명칭도 매년 수십개씩 만들어진다. 관련된 담론이나 기사는 더 많이 만들어진다. 그때마다 흥밋거리로 대한 뒤, 그게 틀렸다는 지적이 나와도 반성 없이 다시 새로운 말을 만들고 있다고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렇다보니 이런 청년담론에 대한 비판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비판을 해야 할 만큼 비슷한 방식으로 반복된다. 요즘 언론의 힘이 떨어졌다는 얘길 많이 하지만, 아직 생각보다 강한 것 같다. 저나 주변 동료 활동가들은 그런 말들이 너무 오래된 말과 관성이라 생각해 아직도 비판을 해야 하나 싶지만, 많은 어른들이 저희가 성찰적이지 않은 청년담론이라고 부르는 것들에 많은 영향을 받는 것 같다. 고위직 어른들이나 청년담론 비판에 익숙하지 않은 청년들도 상당한 영향을 받고 있기 때문에 어렵고 답답한 점을 많이 느낀다. 단적으로 <90년생이 온다>가 그렇게 팔리는 건 청년담론에 대한 비판이 청년들뿐 아니라 전문가들에게서도 많이 제기됐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가 돌아보지 않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Q. 청년담론 소비하는 정치권의 행태 역시 인스턴트 방식으로 했기 때문에 별다른 성찰이 없었다고 볼 수 있나

더 보태고 싶은 건 청년활동, 청년담론이라는 영역도 전문적인 영역이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 태도들이 깔려있는 것 같다는 점이다. 저와 주변 동료활동가들도 10년 정도 청년활동을 해오면서 청년이슈나 정책, 담론을 다루는 저희만의 전문성 등이 분명히 있다. 그런데 정치권은 그걸 인정하지 않아 청년들이 청년에 대해 말할 경우 전문적인 사람이 아니라 한 사람의 청년으로서 이야기하는 상황이 나타나는 것 같다. 전문적인 영역이라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대부분의 정치인들이 자신이 청년이었던 시절로 돌아가 청년에 대해 이야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해 공부하지 않는다고 본다. 그러면 계속 똑같은 이야기밖에 할 수 없다. 또한 정치권은 청년 이슈를 선거용으로 항상 생각하는 관성이 있다. 때문에 ‘선거에서 어떻게 20대를 끌어안을 것인가’ 이런 차원에서만 이야기하는 문제가 있는 것 같다. 최근 20~30대 정치인을 키우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지만, 그런 이야기도 이미 2012년부터 8년째 나왔다. 그렇지만 청년 정치인들이 별로 안 만들어지지 않았나. 결국 선거에서 이기면 그만이라는 태도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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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적 청년담론, 청년을 연령으로부터 떼어내 새로운 내용으로 채워야

Q. 청년이슈에서 정작 청년이 배제돼온 이유도 결국 전문성이 있는 분야가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일까

청년이슈에서 청년이 배제됐다는 말은 저도 가끔 쓰는 말이고,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것이지만 수정돼야 한다. 청년들이 배제됐다고 주장해도 정치권은 다 핑계를 갖고 있다. 그들은 청년의 목소리를 듣지 않은 적은 없다. 청년은 1600만명이나 있고, 정당활동을 하는 20~30대도 많기 때문에 아무나 잡고 들으면 된다. 때문에 청년이 배제돼 왔다는 말에는 항상 핑계가 붙을 수 있다. 그래서 청년이 배제됐다는 말의 힘이 이젠 약해진 것 같다. 저는 다양한 청년들 가운데 청년 이슈에서 목소리를 내는 청년은 누구고, 어떤 청년들이 배제되는지 청년 내부에서 선택과 배제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여기에는 정당, 정치인, 정부에서 마련하는 테이블에 누가 올라오는지, 다른 한편으론 청년활동이라 불리는 청년 당사자운동의 영역에서 누가 조명받지 못하고 있는가에 대한 문제까지도 꺼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문제들이 청년이라는 너무나 큰 틀 안에서 매우 쉽게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어떤 목소리가 정책이나 정부에 부적합한 것으로 여겨져 뒤로 밀려나고 있는가에 더 주목할 필요가 있다.

Q. 보다 현실적으로 청년들을 포괄, 반영할 수 있는 더 나은 대안적 청년담론 형성을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보나

청년을 연령으로부터 떼어내야 한다. 정책적인 측면에서 어쩔 수 없이 그렇게 해야 하는 부분들이 있겠지만, 청년담론을 ‘청년=연령’으로 가져갔을 때의 부작용이 심각하다. 앞서 말한 선택과 배제의 측면에서도 그렇고, 모든 청년을 반영할 수 없다는 걸 직시하지 못하게 만든다는 점도 문제다. 청년은 다양하게 산포돼있는데 그걸 청년이라는 말 하나로 묶어 반영한다는 건 불가능하다. 그게 가능해졌을 경우에는 경향적으로 청년 중에서 다수이거나 기성체제에 잘 부합하는 사람들이 계속 평균값으로 설정되는 문제가 있다. 이런 흐름이 지속되면 기성세대에 부합하는 청년들만 계속 선택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경우, 지금의 청년들이 국회에 진입해 주요보직을 맡더라도 그들이 하는 일이 지금의 86세대가 하는 일과 달라질 게 없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게 없는 새로운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청년을 연령으로부터 떼어내 청년이라는 말에 구체적으로 무엇을 담을지, 그 내용을 채우는데 보다 노력해야 할 것 같다. 청년담론을 주장하는 많은 활동가들이나 청년정치인들이 보다 기성세대와 대립하고 대응하면서 우리들의 새로운 목소리를 발굴해 조직해나가거나 제대로 된 대체 아젠다를 꺼낸다든지, 지금까지 배제돼왔던 사람들을 정치와 정책의 영역으로 포괄시키는 일들을 청년담론이나 청년정치를 통해 할 필요가 있다.

Q. 청년층의 정치불신, 또는 정치혐오에 대한 지적도 꾸준히 나온다. 어느 정도 수준이라 진단하나

우선 정치불신과 정치혐오는 청년만이 갖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걸 지적해야 한다. 정치에 무관심한 건 청년이 아니고 한국 사회다. 때문에 ‘정치에 무관심한 사람’이나 ‘정치불신층’이라 표현하면 된다. 청년의 정치불신이라 표현하면 마치 기성세대는 정치에 호의적이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는데, 청년들만 불신, 혐오하는 것처럼 비치는 부분이 있다. 물론 청년층의 정치에 대한 불신과 혐오가 있지만, 다른 연령대에 비해 특별히 높은지는 모르겠다. 2014년에 이런 내용을 포함해 청년들을 인터뷰했던 적이 있다. 당시 인터뷰했던 분들도 정치에 관심이 있고, 자기 생각을 말하길 좋아했다. 그때 인터뷰를 하면 평소 이런 이야기를 얼굴을 보고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별로 없고, 그런 공간들이 매우 제한돼 있으며, 서로의 정치적 성향 등으로 인해 말하기 쉽지 않은 부분이 있었는데, 이렇게 말할 수 있는 기회를 줘 고맙다는 분들이 있었다. 그런 면에서 정치에 대한 발언을 하는 안전한 공간이 한국 사회에 너무나 없다는 점을 지적하고 싶다. 이와 별개로 저의 정치불신과 혐오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지난 10년 동안 한 말들이 여전히 들어가지 않는, 알아듣지 못하는 부분이 너무 많다.

Q. 어떤 점이 그런가

청년들이 사회적 네트워킹도 별로 안하고, 돈도 안 벌고, 취업도 안하는 등 저활력자라는 이야기를 많이 한다. 그건 사실 사회복지나 청소년학 쪽에선 객관적인 근거가 있는 이야기이긴 하다. 그렇지만 저는 정치권이 훨씬 저활력인 게 아닌가 생각한다. 새로운 걸 하는데 너무 주저한다. ‘이걸 하면 무슨 문제가 있을 거야’라는 일종의 방어를 계속하면서 새로운 주장을 수용하지 못 하는 것이야말로 저활력이 아닌가. 지킬 게 너무 많은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 불신이 점점 짙어진다. 청년들이 정치에 무관심한 것처럼 나타나고 있다면 ‘정치인들 다 밉다’가 아니고, ‘내가 무엇을 주장해도 저기에 닿지 않을 것 같다’는 불신이 있기 때문에 말을 꺼내지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친구에게도 말해서 안 들을 것 같으면 말 안 하게 되지 않나.

Q. 청년세대가 정치세력화를 이뤄야 한다는 목소리도 지속적으로 나온다. 청년세대의 정치세력화가 이뤄지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가 있을지

청년세대의 정치세력화라는 것 또한 우석훈 교수와 박권일 작가의 ‘88만원세대’의 틀, ‘청년은 똑같이 어려우니까 힘을 만들어 짱돌을 들어야 된다’는 틀이라 생각한다. 일단 청년은 정치세력화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스스로를 청년이라 생각하지 않고,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가능성도 높지 않기 때문이다. 청년유니온 같은 사례가 있지만, 거기서의 청년은 젊은 불안정 노동자가 핵심이다. 그 경우, 보다 의미값이 생겨나 정치세력이 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만, 역시 청년이라는 말은 너무 큰 범주다. 또 이런 질문에 청년들이 속해있는 정치적 조직은 또 얼마나 많은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렇지만 그건 정치세력이라고 이야기 안한다. 청년세대의 정치세력화라는 말에서 상상하는 건 나이만으로 뭉친 수백만명의 청년들이 똑같은 사람한테 투표하고, 정당을 만드는 것만으로 보는 것 같다. 그렇다면 40~60대는 그런 식으로 정치세력화하고 있나. 그들도 시민단체나 다양한 풀뿌리 조직들로 흩어져 정치적 역량들을 발휘하고 있다. 정치는 그렇게 이뤄지는 건데, 갑자기 청년한테만 세대 단위로 정치세력화하라는 건 이상한 것 같다. 물론 청년들의 정치, 시민사회 참여율이나 조직이 두드러지지 않는 것 같다는 이야기가 나올 순 있겠지만, 연령효과를 무시해선 안 된다. 청년이 20~39세까지로 정의되고 있어 연령폭이 넓긴 하지만,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갑자기 세력을 만드는 건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 사회조사 등에서 나오는 청년층의 시민사회 참여율도 그리 낮지 않다.

ⓒ오월의봄
ⓒ오월의봄

정부, 갈등 없는 것처럼 보이려말고 토론할 수 있는 장 제공해야

Q. 청년정치인들이 두각을 드러내지 못하는 이유는 무엇이라 보나

2012년 당시 민주통합당과 통합진보당이 청년비례대표 오디션을 진행하자 청년정치인 이야기가 나왔다. 그러나 아직까지 일부의 청년정치인을 제외하고는 중앙무대로 데뷔를 못하고 있다. 여기에는 우선 현재 권력을 가진 사람들에게 권력을 배분할 의지가 없다는 것과 권력을 배분받을 적당한 사람이 없다는 문제가 있다고 본다. 저는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보는 편이다. 때문에 그 자리에 설 기회를 주지 않는 것이 더 큰 문제라고 생각한다. 민주당 김광진 전 의원 같은 경우가 좋은 사례다. 개인적으로 김 전 의원이 민주통합당 청년비례대표로 국회에 들어갔을 당시에는 별로 기대가 없었지만, 생각보다 잘했다고 본다. 최근 기사를 보면 오히려 청년정치인이라는 굴레에 갇혀 기회를 못 받고 있다고 한다. 국회의원 공천을 받는 사람들이 대단히 능력이 높아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무슨 국회의원 스쿨을 나온 것도 아니지 않나. 자기 일하다가 갑자기 들어가는 건데, 역량적인 측면에서 젊은 사람들을 갑자기 넣는다고 해서 큰 문제가 있을 것 같지 않다. 기회를 주면 잘 할 가능성이 많다고 보는데, 청년들에게는 계속 역량을 의심하거나 다음 기회에 하라는 식으로 이야기하면서 권력배분이 안 되는 문제가 크다고 생각한다. 권력을 배분받을 사람이 없다는 이야기와 관련해 최근 기사를 보니 민주당 내 한 인사가 ‘참신한 인물이 없다’는 식으로 이야기했더라. 정치하는 인물이 왜 참신해야 하는지 모르겠고, 참신한 인물을 왜 청년에서 찾아야 하는지도 모르겠다. 권력분배에 대한 의지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Q. 경기도의 청년기본소득 등 국내에서 진행되거나 구상 중인 기본소득정책, 또는 실험에서 청년층이 주된 대상이다. 이 같은 정책이나 실험들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나

기본소득에 대해 전문가는 아니기 때문에 조심스럽긴 하지만, 청년기본소득은 기본소득의 원리에서 이미 벗어나 있는 것이라 판단하고 있다. 기본소득주의자들이 이야기하는 원칙 중 하나가 보편성이다. 그러나 대상을 청년으로 설정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배제성이 있다. 기본소득이라는 말이 유명하니까 쓰는 건지 모르겠지만, 용어를 다른 식으로 바꿔야 하는 게 아닌가 한다. 물론 기본소득주의자들은 이런 사례들을 축적해 나중에 전체를 대상으로 하겠다는 계획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기본소득이 아닌 걸 기본소득이라고 하는 건 이상하다. 배당효과 등에 대한 부분은 인정하고 동의하는 부분이 많았지만, 100만원을 딱 1년만 주는 건 기본소득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청년이라는 말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유명해서, 혹은 화제 되기 좋아서 쓰는 것 같다. 특히 청년을 대상으로 기본소득을 먼저 줘야한다는 것에 어느 정도 설득이 되거나 토론이 될 만큼 답하는 걸 들어본 적이 없다. 최근 농어촌 기본소득 정책과 예술인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들이 있더라. 그런 논의들 볼 때, 일단 ‘기본소득이 아닌데’라는 생각이 먼저 들고, 또 예술인 집단에 대해선 ‘그걸 왜 예술인만 먼저 줘야하느냐’는 생각이 든다. 이런 비판이 청년들에게도 똑같이 돌아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청년들을 먼저 줘야하는 이유에 대해 명확하게 객관적인 값을 주지 못한다면, 그 부담은 청년들이 질 수밖에 없다.

Q. 문재인 정부의 청년정책에 대해선 어떻게 평가하나

문재인 정부는 청년문제를 일자리 문제로 정의 내렸다. 일단 청년문제는 일자리 문제만으로 해소되지 않는다. 그 일자리라는 것도 가장 기본적인 일자리의 수이지 않나. 청년문제는 취업 여부로 해결되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그런데 그 프레임을 일자리 문제로 잡았다는 점이 실망스러운 부분이라 할 수 있다. 청년들이 겪고 있는 많은 문제들은 일자리의 유무보다 질 때문에 생겨나는 경우가 많다. 또 주거나 부채문제 등도 일자리 문제와 선후 관계를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 외에도 청년들이 바라는 한국 사회의 문제들이 많은데, 정부가 청년문제를 일자리 문제로 세팅했을 때의 그 자신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왔는지 모르겠다. 청년들의 지지율을 정말 올리고 싶은 건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청년들의 불만은 일자리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다. 오히려 청년문제를 일자리로 몰아가는 건 보수의 프레임이다. 그걸 받아서 청년들의 일자리 문제만 해결하면 마치 청년들의 불만이 다 해소될 것처럼 세팅했다는 게 매우 의아했다. 또 그게 전략적으로도 옳은 것이었느냐의 문제도 있다. 지금의 일자리 문제는 일국 단위에서 쉽게 풀 수 있는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일자리가 쉽게 늘어나거나 실업률을 해소할 수 있는 묘책이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데, 그걸 목표로 설정했다는 건 실책이라는 생각이다.

Q. 앞으로 청년정책이 나가야할 방향성을 제시한다면

정부와 여당 등은 20대 남성층의 지지율이 떨어졌던 것과 내년 총선 때문에 청년정책을 열심히 해보려는 것 같다. 그 방향성은 이미 청년정책을 많이 하고 있는데 청년들이 잘 모르고, 체감도가 낮으니 올릴 방법을 강구하자 해서 정부와 지자체에서 하고 있는 청년정책을 모아보자는 식으로 진행되는 거로 판단된다. 그러나 체감도는 그렇게 잘 모아서 보여준다고 생기는 게 아니라고 본다. 정부가 청년정책을 통해 어떤 사회를 만들 것인지에 대한 비전을 명확하게 제시하고, 총론을 보여주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연구자들은 불평등 격차해소 같은 프레임을 내세우고 있는 것이다. 저는 청년들이 공정성에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면 회피하지 말고 공정성을 회복하겠다고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미 대선과정에서 했던 말이지 않나. 공정성에 대해서도 제대로 다뤄볼 필요가 있지 않나 싶다. 또한 갈등이 일어나게 될 것을 두려워해 갈등을 없애거나, 없는 것처럼 보이려는 부분들이 계속해서 있는데, 오히려 갈등이 생길 수 있는 부분들을 열어 놓고 토론할 수 있는 안전한 장을 청년들에게 제공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서울청년정치네트워크와 같이 다양한 의견이 있는 청년들이 와서 갈등하고 안전하게 토론하고, 그 과정을 통해 정치에 대한 신뢰감과 효능감도 회복하고 역량도 기를 수 있는 판이 생기는 것이 필요하다.

Q. 책 <청년팔이 사회>가 우리 사회에 어떤 시사점을 던지길 바라나

한국 사회는 속도가 굉장히 빠르고, 관성이 심한 것 같다. 청년활동가들도 이런 점에서 많이 지쳐있는 부분이다. 계속해서 해야 할 일이 있고, 그걸 하다보면 뒤를 돌아보기 어렵다. 자신이 어디에 와있는지 알기 어렵다보니까 계속해오던 일을 10년 동안 똑같이 하고 있는 상황들이 발생하고 있다고 본다. 제가 쓴 책은 분명한 방향성을 제시하는 책은 아니다. 때문에 어떠한 시사점, 거대 담론을 이끌겠다는 건 가능하지도 않을뿐더러 바라지도 않는다. 다만 청년을 이야기하는 분들이 이 책을 읽으면서 잠깐 멈춰서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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