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 출간한 김유미 작가
스페인으로 떠나기 위해 비자까지 신청했지만 용기 낼 수 없어 포기하기도
무기력한 직장인에서 그림 그리는 화가가 되기까지의 이야기 오롯이 담아내 

 

▲김유미 작가
▲김유미 작가 ⓒ해피니스타임

【투데이신문 박수빈 기자】 자정이 되면 마법이 풀려 초라한 차림으로 돌아와 버리게 될 ‘신데렐라’는 열 두 번의 종소리가 채 울리기 전에 연회장에서 떠나야 한다며 조바심을 낸다. 그녀의 아름다움의 본질이 옷차림이 아니었음을 스스로도 미처 몰랐던 것이다. 이내 이어지는 해피엔딩으로 훈훈함을 안겨주는 동화의 시사점은 착하면 복이 온다는 믿음이 전부는 아닐 테다.

어쩌면 우리는 늘 동화의 일면을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신데렐라처럼 쉴 틈 없이 일상에 치여 살다보면 어느새 작은 기대감도 헛된 망상처럼 느껴지고 만다. 하루를 무겁게 보낸 뒤 발길을 옮겨 도착한 곳에는 그나마 아늑한 침대 뿐일테니 말이다. 어떠한 기대감도 없이 하루를 마무리 할 즈음 환상적인 이야기가 시작된다면 어떨까.

홀로 떠안은 집안일에 좌절해 눈물을 적시고서야 신데렐라의 현실은 환상으로 물들었다. 무기력한 현실을 이겨내고 주인공으로 거듭나 저녁을 맞이하는 한명의 작가가 현실에서 이야기를 건넨다. 최근 출간해 인기를 끌었던 도서 <물감을 사야 해서, 퇴사는 잠시 미뤘습니다>의 저자 김유미는 “해가 지면 그림을 그리고 있다”며 인사를 건넸다.

현실의 굴레에서 친구들과 진지한 고민에 빠져 한탄하던 시기도 있었다. 하지만 해가 진 후에야 변신하는 신데렐라 동화처럼 김유미 작가의 매일도 퇴근 후 빛나는 다른 삶이 기다린다고 한다. 이제는 늘 퇴근 후가 기대된다는 그녀의 이야기를 직접 만나 들어봤다. 

▲김유미 작가 ⓒ해피니스타임

마지막 용기를 짜내 붓을 집어 들다

Q. 웬만한 연예인보다 인터뷰 잡기가 더 힘들었다. 간단히 소개를 부탁한다. 
취미로 그림을 배운지 이제 5년이 된 현직 ‘직장인’이다. 2014년 6월에 처음 미술학원을 등록해 꾸준히 그림을 그려오고 있다. 하루를 두 번 사는 일을 매일 겪고 있는 사람이기도 하다. 당연히 연예인보다 바쁠 리는 없지만, 대한민국에서 가장 분주한 ‘직장인’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 탓에 시간 내기가 쉽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아마 많은 독자여러분들도 일과시간에는 연예인보다도 더 치열하고 바쁘게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Q. 이해가는 얘기다. 하루를 두 번 산다는 말이 익숙한 표현은 아닌데.
첫인사처럼 해가 지고 저녁이 되면 그제야 또 다른 삶이 시작된다. 퇴근 후에 하는 또 하나의 일과가 있기 때문이다. 처음에 취미로 시작해 이제는 삶의 한 부분이 되어버린 그림을 그리는 일이 바로 그것이다. 이제는 늘 자연스럽게 화실로 걸음을 옮기며 선을 긋고 물감을 집어 드는 것이 일상이 됐다. 

Q. 취미시간을 내기가 쉽지는 않았을 것 같은데. 
처음에는 귀가 후 시간도 너무 짧게 느껴졌다. 친구라도 만나는 날이면 거의 잠만 자고 또 출근을 준비하는 것이 일과였던 것 같다. 그러다 세 시간정도의 여유도 어쩌면 길고 보람차게 보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됐다. 그래서 나만의 시간을 가지는 계기로 그림을 시작하게 됐다. 

Q. 퇴근 후에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것이 부담스러울 것 같기도 한데. 
처음 활동을 시작했던 시기, 친구들과 일명 ‘무기력’에 빠져 늘 고민얘기를 함께 나누곤 했다. 익숙해진 직장생활도 따분했거니와 늘 일에만 빠져 살다보니 어느새 “그저 그런 사람이 되어버린 것은 아닌가” 하는 걱정도 한 몫 했던 것 같다. 고민을 나누던 친구들은 빨리 해답을 찾아 결단을 내렸다. 함께 탱고를 배우던 친구는 무작정 스페인으로 떠났고, 다른 한 친구는 일본으로 전근 신청을 해서 새로운 삶을 살기를 실행한 것이다. 반면 당시 나는 그런 용기가 없었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갈망보다는 두려움이 더 컸던 탓이다. 사실 스페인으로 떠나보고자 비자를 신청하는 시도까지는 성공했다. 하지만 금새 포기를 결정했던 이유도 막연히 무기력에 대한 탈출구를 찾으려고만 했던 불안감 때문이기도 했다. 

Q. 수많은 취미 중 왜 그림이었는지.
뭐라도 해보고 싶었다. 처음에는 친구를 따라 탱고 클래스에 다니기도 했고, 운동도 적지 않게 해왔다. 자기계발 겸 영어학원도 다녀보며 취미생활을 해보고자 했지만 쉽사리 맘이 가지는 않았다. 기억은 잘 나지 않지만, 어린 시절 사생대회에서 상을 받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또 만화책 읽는 것을 좋아했기 때문에 그림이라면 한번 정도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을 한 것 같다. 또 주변에 디자인을 하거나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많다는 의미부여까지 더해 필연이라 여기고 시작한 부분도 없지 않다.

Q. 전공자가 아니기에 쉽진 않았을 텐데.
취미로 시작했지만 진도가 더디면 흥미가 떨어지기 마련이다. 하지만 진심을 다해 도전한 일 이었기에 의지를 갖고 열심히 할 수 있었다. 처음에 단순한 선 긋기만 할 때에는 사실 지친적도 많다. 하지만 진심으로 취미를 대하다보니 금새 소묘 정도에는 도전할 수 있었고, 좋아하던 배우인 콜린 퍼스,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등을 그리면서 재미를 느끼기 시작했다. 낯가림이 심한편이라 화실이 편했던 이유도 있다. 다정하게 인사를 나눈 후에 시작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나만의 시간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사람들을 만나는 즐거움과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까지 있었기에 굳이 전공자의 실력이 없어도 즐겁게 할 수 있었다.

▲김유미 작가
▲김유미 작가 ⓒ해피니스타임

캔버스엔 물감, 노트엔 나만의 작업일지

Q. 갑자기 책을 준비하게 된 이유가 있다면.
그림을 그리다보면 ‘작가노트’를 작성해야 한다. 작품의 기획 의도나 순간의 생각들까지 적어 내려가는 형태라고 보면 된다. 이 과정에서 다른 작가님들의 노트를 본 일이 있는데, 정말 하나도 모르겠더라. 내용이 어렵다기보다 기법이나 색감표현 등 전문 용어들로 구성되어있기도 하고 자신이 생각하는 포인트를 구분해 적다보니 더 그랬던 것 같다. 그래서 나는 나만의 작가노트를 만들기로 했던 것이 에세이 형태가 된 것 같다. 그렇게 매일 아침 한 편씩 써내려간 작가노트의 기록들을 묶다보니 한권의 책 분량이 됐다. 전시회에 참가하고 공모전에서 수상하는 과정까지 기록하고 나니 어느새 책을 만들게 됐다. 

Q. 직장인이라면 책 제목에 공감할 법한데 어떻게 짓게 됐는지.
책의 첫 가제는 ‘그림 그리는 시간, 저녁7시’였다. 늦어도 7시에는 화실로 새로운 출근을 하는 내 모습을 상상하며 정했던 제목이다. 많은 출판사들과 출간 관련 논의를 하던 과정에서 은연중에 계속 되풀이 되는 말이 바로 “그래도 물감은 사야 하니까요” 였다. 직장인 신분에 다른 작가들과 달리 저녁시간이나 주말밖에 할애할 수 없는 신세를 한탄하며 가볍게 내뱉은 말이었는데, 오히려 나의 처지를 대변해주는 적절한 제목이 되었다. 나름대로 만족하는 좋은 제목이었고, 표지 일러스트 역시 내가 직접 그린 그림이라 더 정감이 가는 것 같다.

Q. 책에는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처음 화실을 등록했을 당시부터 시작해 공모전에 당선되는 순간들까지 모든 이야기를 담았다. 내용은 시간의 순서대로 진행이 되는데, 아무래도 작가노트를 기준으로 전개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시간 순으로 진행이 된다. 취미로 시작했던 작은 도전이 나의 인생을 더욱 빛나게 해주는 소중한 일과가 되기까지를 진솔히 담아냈다. 표지 얘기도 하고 싶다. 처음에는 나의 유화 작품으로 표지 시안이 나왔었는데, 아쉬운 마음이 커서 직접 드로잉을 해보기로 했다. 그림을 배우게 되면 ‘꽃’을 꼭 그려봐야겠다고 다짐했던 기억이 떠올라 그린 작품이 표지가 됐다. 책의 표지부터 내용까지 온전히 나의 작품집 같아 기뻤다. 신인 작가가 전문 출판인에게 의견을 내는 것이 무례할 수도 있는데 이해하고 배려해주셔서 감사했다. 

Q. 책에서 소개해주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평범한 일상의 모습 속에서 반짝이던 순간을 그리기를 즐긴다.  ‘일요일‘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을 담아 그린 작품이다. 작가노트에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시간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지 않고 시간을 보냈다. 혼자서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는 생각이란 것을 하게 된다. 그것은 영감이 되고 그림이 되었다. 삶을 이야기하게 해주었다”고 썼다. 이렇듯 가끔 영감에 빠지곤 한다. 

작품명 ‘일요일’, 김유미
작품명 ‘일요일‘, 김유미

취미? 자기계발 아닌 자아치유

Q. 작가가 생각하는 ‘취미’란 무엇인지.
처음에는 당당히 밝히지 못했지만, 어느새 나를 ‘화가’라고 불릴 수 있게 만들어 준 소중한 계기가 바로 취미로의 도전이다. 일상의 업무와는 다르게 긴장 없이 즐기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사실은 매일 행복감을 선사했다.

Q. 누구나 취미를 가지면 즐거울지.
취미라고 가볍게만 생각해서는 안 된다. 아무리 취미라고 해도 뇌가 반복해서 습득하려고 하면 스트레스를 받기 마련이다. 이런 경우 ‘즐거움’을 느끼는 것이 중요한데, 지속하는 과정에서 성취감을 느끼는 지점을 구축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의 경우, 선 긋기 연습이 끝나고 첫 그림을 완성해 지인들에게 보여줬을 때 큰 성취감을 느꼈다. 지금 생각하면 많이 부족하고 어설픈데도 불구하고 만족감이 컸다. 또 어느 정도 그림을 제법 자유롭게 그리게 되었을 때 드디어 ‘꽃’을 캔버스에 그린 적이 있다. 그 작품을 좋아하는 친구에게 선물했을 때 더 큰 성취감을 얻었던 것 같다.

Q. 작업을 꾸준히 이어가는 비결이 있다면.
취미는 오히려 쉬지 않고 해 나가야 하는 것 같다. 단순히 실력이 급성장하기만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활동 자체에 집중하면 어떨까 한다. 예를 들면 주 3회, 적어도 매주 1회 이상은 고정적으로 시간을 내고 반복적으로 활동하다보면 결과 보다는 취미 자체에 집중하게 되어 즐거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처음 시작하는 사람이라면 일단 멈추지만 말고 꾸준히 취미생활을 이어가는 노력을 강조하고 싶다. 

Q. 책을 읽는 독자에게 남기고 싶은 말이 있다면.
자신을 위해 쓰는 시간을 꼭 만들었으면 한다. 짧은 시간이라도 스스로를 바라보고 이해할 수 있는 시간을 내어주길 당부한다. 하루에 1시간, 적으면 30분이라도 돌이보는 시간을 가지고 좋아하는 일에 대해 생각하면 어떨까. 유명 소설가 ‘알랭드 보통’은 자기 자신과 데이트 하는 시간을 가지라고 말하지 않았던가. 취미 활동도 마찬가지다. 해보고 싶었던 일을 진심을 다해 대한다면 일상이 더욱 풍요로워지지 않을까? 늘 자책하고 지쳐있는 자신에게, “수고했어”, “기운내”라며 독려의 인사를 보내는 계기가 될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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