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사진출처 =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 캡처>

【투데이신문 김태규 기자】 탈북청소년들을 위한 대안학교인 여명학교 이전이 지역 주민들의 반대로 무산될 위기에 처했다. 서울시에서 은평구에 여명학교 이전을 위해 편익용지를 학교용지로 변경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은평구에서 결정을 보류했기 때문이다.

탈북청소년의 사회 적응을 위해 지난 2004년 개교한 여명학교는 지난 2010년 서울시에서 최초로 학력 인정을 받은 대안학교다. 현재는 서울시 중구 소파로(남산동2가)의 한 건물을 임대해 운영되고 있으며 계약만료로 인해 오는 2021년 2월까지 이전해야 하는 상황이다.

때문에 여명학교 측은 서울 은평구로의 이전을 추진했다. 서울시와 협의해 SH공사 소유의 은평 뉴타운 편익용지를 매입하고 학교를 건축하고자 한 것이다.

북한이탈주민의 보호 및 정착지원에 관한 법률(북한이탈주민법) 제24조의3에 따르면 지방자치단체는 북한이탈주민의 정착 지원을 위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경우 공유재산을 탈북청소년 대안학교에 수의계약을 통해 사용하게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또 도시재정비 촉진을 위한 특별법(도시재정비법) 제25조 제5항 역시 ‘지자체의 장은 지자체 소유의 토지를 재정비촉진지구에서 사립학교를 설립·운영하려는 자에게 수의계약으로 사용·수익 또는 임대하거나 매각할 수 있다’고 정하고 있다.

서울시는 10여년 간 수요자가 나타나지 않아 공지로 남아있는 은평 뉴타운 내 편익용지를 여명학교 측에 추천했고, 여명학교의 이전 결정에 따라 은평구에 편익용지를 학교용지로 용도변경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러나 은평구청은 최근 서울시 도시계획 심의를 위한 은평구 재정비촉진계획 변경안에서 여명학교가 이전하기로 한 편익용지의 용도변경 결정을 보류하기로 했다. 지역주민들의 반대 의견이 많아 보류했다는 것이다.

여명학교를 둘러싼 갈등은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서도 나타난다. 지난 3일 게시된 ‘은평뉴타운 내 주민의견을 무시한 여명학교 신설/이전 추진을 막아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에서 청원자는 △충분한 공고나 주민 동의 부족 △은평 뉴타운 내 일반학교 부족 등을 이유로 여명학교 이전을 반대했다.

청원자는 “공청회 공고 시 ‘서울시 대안학교’라고만 표기해 여명학교라는 것을 인지조차 할 수 없었다”며 “기숙사까지 포함된 시설이 주민 동의 없이 임의로 신설되는 것을 강력히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어 “1만4500세대와 신규학교 건설로 설계된 은평 뉴타운은 현재 2만1500세대로 증가했음에도 계획된 학교를 건설하지 않아 교육권을 침해하고 있다”며 “(여명학교 예정 부지는) 뉴타운 주민을 위한 편익시설이 예정돼 있는 부지로, 사단법인인 여명학교 건설을 위해 임의로 용도변경을 시도하는 자체가 어떠한 정치적 커넥션이나 특혜가 있지 않았나 하는 의심까지 든다”고 주장했다.

이후 지난 6일에는 여명학교 조명숙 교감이 ‘무릎 꿇어 줄 어머니마저 없는 우리 탈북청소년들은 어디로 가야 하나요’라는 제목의 청원을 올렸다.

이 청원에서 조 교감은 “여명학교는 중·고등학교 전 학년 180명 규모의 소규모 학교이기에 규모가 큰 일반 학교 부지를 매입할 이유가 없다”면서 “일반학교 부지는 은평구민의 자녀들을 위한 학교로 사용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해 유휴 편익시설용지의 일부를 매입하고 건축도 여명학교 스스로 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학교는 수요가 있고 적절한 부지가 있으면 환경영향평가를 통해 신설할 수 있는데 지역 주민들의 사전 동의를 얻지 않아 반대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조 교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서울시 측에서 마곡과 은평의 SH소유 편익용지를 추천받았는데, 은평의 부지가 더 저렴하고 조건이 좋았다”면서 “은평구는 ‘통일의 상상기지’라는 정책과제를 내세우고 있어 여명학교가 지역사회에 기여할 수 있겠다고 판단했다”고 은평구 이전 추진 이유를 설명했다.

은평 뉴타운 내 학교부족 문제를 우선 해결해야 한다는 주민들의 주장에 대해서는 “과밀학급에서 교육받고 있는 자녀를 둔 학부모님들의 심정도 이해는 된다”며 “정부와 지자체, 교육청이 나서 학교부족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호소했다.

주민들이 여명학교 이전을 반대하는 것은 학교부족, 편익용지 용도변경 때문만은 아니다. 지난 10월 22일 열린 은평구의회 재무건설위원회 제1차 회의록에 따르면 한 구청직원은 ‘탈북민들의 자녀들이 다니는 교육시설이기 때문에 인근 주민들의 기피시설에 해당된다’고 말한 바 있다. 탈북청소년들이 다니는 대안학교라는 것도 반대 사유가 된 것이다.

은평구청 관계자는 “(해당 발언은) 주민들의 민원을 전달하면서 나온 것 같다”며 “가장 큰 반대 이유는 편익용지에 근린생활시설이 아닌 대안학교가 들어오는데 대한 주민들의 거부감이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학교부족 문제가 먼저 해결돼야 한다는 주민들의 의견도 많다”며 “서부교육지원청에서 수요를 판단해 구청에 신도중학교 증축을 요청해 진행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은평구는 충분한 주민의견 청취를 통해 공감대를 형성한 후에 추진하겠다며 여명학교 부지 용도변경 안에 대해 보류를 결정했으며, 서울시도 이를 수용한 상황이다. 다만 서울시가 이를 재추진할 가능성도 남아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 탈북청소년들의 사회적응을 돕는 여명학교의 미래가 불투명해졌다. 여명학교 이전 문제가 어떻게 해결될지 서울시와 은평구청의 향후 행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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