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연 작가
전후연 작가 

색채는 바로 사랑이며, 우리 인생에 의미를 주는 단 하나의 색은 사랑이라고 마지막까지 믿었던 화가. 영혼의 빛깔을 환상적인 색채로 끝없이 화폭에 펼쳤던 진정한 유희적 화가, 그가 바로 마르크 샤갈이다.

전후연 작가의 모든 작품을 보고서야 비로소 작가가 헤어지면서 던진 마지막 한마디 “나의 종교는 사랑”의 진정한 뜻을 이해했다.

그대에게로 가고싶다, 2003-2019, 37.4 x 52cm, Mixed media on Paper

<사랑>

100여 점에 달하는 그의 전 작품에는 모두 한결같이 소년이 소녀를 포옹하거나, 꽃을 껴안고 향기를 맡는 모습이 어김없이 등장한다. 그 소년은 마냥 사랑에 취해 걱정 없이 행복한 표정을 짓고 있다. 우리는 여기서 “나의 사랑은 봄비를 닮았다”라며 대지를 적시고 생명을 잉태하는 전후연식 사랑의 찬가를 발견한다.

이처럼 전후연 작가의 작품은 소녀에 대한 무한한 사랑의 상상력이 담겨있다. 태양, 새, 달, 별, 큐피드의 화살, 우리의 인생처럼 예술에서도 사랑이 바탕이 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사랑이라는 언어와 색채로 확인시킨다.

“그대의 촉촉한 입술, 새하얀 가슴, 고결한 움직임. 그 모든 것들은 꿈속에서 시작해 꿈이 되고 사랑이 되고, 눈부시도록 찬란한 태양으로 깨어납니다” 이처럼 눈이 부시게 말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뿜어낸다.

샤갈의 예술 세계 중심에는 <벨라>가 있었던 것처럼, 전후연의 작품에는 끊임없이 꽃보다 아름다운 여자가 등장한다. 그러나 그 여자는 마르크 샤갈의 <벨라>나 <바바>같은 이름을 지닌 여자가 아니다.

어린 시절 그가 꿈속에서 그리던 소녀, 철없던 시절 마음 설레며 꿈꿔왔던 청순한 소녀 혹은 여자와의 정열적인 사랑이 마치 “오랫동안 그녀의 사랑은 나의 예술을 채워 왔다”라고 되뇌던 샤갈처럼, 전후연의 작품에는 지지치 않는 사랑의 선율이 흘러 화면을 지배하고 있다.

그리고 그 이웃에는 달도 있고, 별도 있고, 구름도 있다. 늘 거기에는 반달 위에서 꽃송이를 가득 안은 채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소년의 모습이 어린 왕자처럼 그려져 있다. 물론 그 소년은 작가 자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벨라>를 안고 하늘을 나는 샤갈과 달리 여인의 실체가 그려지지 않아 아무래도 싱겁고 실감이 나지 않는 점이 유감이다. 그럼에도 그의 작품은 몽환적이고 환상적이어서 아름답고, 허가 없이 누구나 그의 화폭에 빠져 꿈꿀 수 있어 그림을 보는 내내 즐겁고 행복하다.

꽃과 함께 하늘을 나는 그의 영혼을 빼앗는 뮤즈는 익명의 소녀이며 여인이다. 샤갈이 “내 약혼녀는 라파엘로의 성모보다도 순결하다”라고 말한 것처럼 전후연의 그림 속 여인은 오드리 헵번처럼 예쁘고 청순하지만 동시에 모나리자처럼 미스터리하다.

그래서 그의 연인은 어디에도 없고, 어디에도 있다. 그의 그림이 모든 이들의 가슴 가슴마다 아름다움과 빛을 더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별과 달과 사랑, 2005-2019, 37.4 x 52cm, Mixed media on Paper

<꽃>

전후연 작가의 2019년도의 <별과 달과 사랑>에는 꽃다발과 날개를 단 연인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이미지로 보아 단언컨대 그의 사랑은 단순히 아가페적인 사랑을 넘어 그녀에 대한 열정적인 플라토닉 한 사랑에 빠져 있음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화풍에서 특이한 것은 위대한 예술가들이 그렇듯 전후연 작가는 당대의 유명한 예술가들과 판화 작업을 하면서 많은 교류를 나누어 왔다. 그 과정에서 만난 장욱진, 천경자, 김원숙, 이대원, 변종하 등에게서 영향을 받은 구성이나 필치가 언뜻 보이지만 사랑에 대한 추구만은 가히 독창적이고 고집스럽다.

그는 훗날 그동안 지켜온 화두를 생각하며 “예술과 인생의 완벽함은 사랑에서 이루어진다.”라고 확신에 찬 어조로 말할 것이 틀림없다.

사랑 ∙ 꿈 ∙ 젊음, 1990-2019, 37.4 x 52cm, Mixed media on Paper

전후연의 영원한 뮤즈, 그의 화두가 사랑과 꿈이어서 모든 색채와 형상이 솜처럼 부드럽고 햇빛이 감각적이며 사랑스럽다.

작가는 일상적인 삶에서 꽃다발이 사랑하는 연인에게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라고 생각할 정도로 낭만적인 사람이다. 이는 그가 예술가이기 때문이다. 꽃다발과 함께 신랑 신부는 가장 큰 영감인 ‘사랑’을 표현한다고 샤갈은 말하지 않았던가.

그럼에도 전후연 작품의 몇 가지 도상의 패턴은 흥미롭다. 모두 꽃을 가슴에 품고 등장하는데 그에게 꽃은 곧 여인이고, 여인은 곧 꽃이라는 뜻이다. 그래서 그의 여인은 언제나 꽃과 함께 일체를 이루는 등가물이다. 그가 사랑하는 사람에 대한 감정은 연시(戀詩:남녀 사이의 사랑에 관한 내용을 중심으로 쓴 시)에서 볼 수 있듯이 조용하고 고요하며 온화하다.

꽃의 여인이여!, 1994, 37.4 x 52cm, Mixed media on Paper

<꿈>

“나에게는 사랑이 있다. 내 삶이 끝나는 그날까지 그대에게 바치리.”라는 그의 고백처럼 그의 이미지들이 제멋대로 배치된듯하지만 공간과 여백, 색채의 균형을 부드러운 조화로 이뤄 환상적인 동심을 불러일으킨다.

일견 아이들의 그림처럼 귀여운 느낌을 주는 이 시각적 은유의 한편에는 항상 애잔함과 그리움이 문신처럼 골고루 새겨져 있는 것이다. 끝없는 갈망이 그림 속에 사랑으로 형상화돼 그의 주된 모티브로 자리 잡은 것처럼 말이다.

나는 생각한다. 수차례 전후연 작가의 작품을 보면서 우리가 종교처럼 죽도록 사랑할 수 있는 대상이 마음속에 있다는 건 예술가로서 최고의 축복이 아닐까? 화려한 색채 속에 묻어나는 사랑의 이야기가 그의 전 작품에 고스란히 축복처럼 부활하는 비밀이 여기에서 풀렸다.

그렇다고 그가 꿈과 환상 속에서 사랑을 찾아 나서는 고집스러움만 가진 것은 아닌 듯하다. 제작연도 미상의 나무 밑에서 그린 작품에는 <어느 날 나는, 나무 밑에서 진달래 주를 마시고 내가 영원히 혼자이기를 원했다>라고 작가는 처연하게 고백하고 있다.

이 작가의 쓸쓸하고 처연한 고백은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고 좋아한다는 것 속에는 마냥 행복한 표정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많은 상심과 고통의 상처를 대가로 짊어져야 하는가를 아프게 보여 준다.

그것이 인간 전후연이고, 예술가 전후연이고, 이 숨길 수 없는 고백이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전후연의 영혼이며 뿌리다.

▲ 김종근 미술평론가(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 김종근 미술평론가
(사)한국미협 학술평론분과 위원장

전후연 작가가 연미술의 유명한 대표 디자이너와 성공한 사업가로서, 혁신적이고 고급스러운 VIP 캘린더를 제작함으로써 생활을 작품처럼 만든 것이야말로 그의 폭풍 같은 사랑의 묘약, 오로라를 찾아 도착한 종착역에서 얻은 결실이다.

지금 그는 지금 70세를 바라보는 원로 예술가이다. 이제 그는 그의 믿음과 선택이 적중했음을 알 것이다. 이렇게 사랑이 바탕이 되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그 철학을 이 그림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가 마지막 작품을 하면서 털어놓은 메시지의 결연함이 그의 예술과 철학을 웅변한다. “나의 종교는 사랑이다” 이 한 줄이 그의 작품에 모든 것을 담아내기에, 우리들의 가슴과 마음을 흔든다.

일찍이 피카소는 샤갈을 두고 “마티스가 죽은 후, 진정으로 색채가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화가는 샤갈뿐”이라고 했다. 피카소가 이 작품들을 보았다면 “샤갈이 죽은 후, 진정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이해할 수 있는 화가는 전후연 뿐이다.”라고 사랑이란 꿈에 미친 그를 정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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