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인균 번역가

- 출판/기술번역 전문가
- <거짓말의 심리학>, <왜 인간인가>, 
<위대한 수업> 등 다수 번역
- 번역 교육 전문 사이트 LPT 운영

1984년에 처음 개봉한 <터미네이터>는 내게 ‘에드워드 펄롱’이라는 미소년으로 기억된다. 찰랑거리는 금빛 단발머리를 휘날리며 오토바이를 내달리던 모습이 여전히 생생하다. 미소년을 쫓던 기계들은 언제나 그렇듯 영화가 끝날 때쯤이면 사라지고 말 ‘나쁜 놈’일 뿐이었다. 그때만 해도 기계가 인간의 삶을 위협한다는 이야기는 내게 영화 속 상상에 지나지 않았다.

2000년을 코앞에 두고 있던 대학 시절, 번역가가 되기로 마음을 굳히고 번역 알바를 한 적이 있다. 기억나는 작업 중 하나가 영어 문장과 그에 해당하는 우리말 문장을 일일이 수동으로 연결해서 데이터베이스화하는 것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기계번역 시스템을 구축하기 위한 초기 단계가 아니었나 싶다. 지금도 왠만한 규모의 번역회사들은 번역가들의 번역 결과물을 데이터베이스화하는 데 별도의 시간과 비용을 들이고 있다. 향후 이 데이터베이스를 활용하면 들인 시간과 비용의 몇 배에 해당하는 시간과 비용을 절약할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 데이터베이스의 품질은 전적으로 번역 품질에 좌우되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여력이 있는 번역 회사에서는 돈을 더 들여서라도 실력 좋은 번역가에게 번역 작업을 맡기려 한다. 번역이 끝난 후에도 재차 검토를 거쳐 최고 수준의 소스-타겟 언어 쌍을 뽑아낸다. 나 또한 능력 있는 번역가로서 고객의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늘 한 문장 한 문장 최선을 다해 번역하며 이 기계번역의 완성도를 높이는 데 일조하고 있다. 

하지만 알다시피 아직 기계번역의 결과물은 그대로 가져다 쓸 만한 수준이 못 된다. 문제는 정확성이 떨어지는 이런 번역이 일반 사용자에게 여과 없이 노출되고 이를 사용자가 아무 생각없이 받아들인다는 데 있다. 기계가 만들어내는 ‘기계적인’ 표현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기계적인 표현이 자연스럽게 느껴지리라는 것은 자명한 일 아니겠는가.

번역가가 되고 싶어 나를 찾아오는 번역가 지망생들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있는데, 바로 기계적인 번역을 피하라는 것이다. 기계적인 번역이란 영어 단어와 우리말 단어를 사전적 풀이에만 의존해 일대일로 대응하는 식으로 번역하는 것을 말한다. 기계는 아직 문맥을 고려할 만한 실력은 못 되기에 이런 식으로 맥락에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나 어색한 문장을 번역이랍시고 곧잘 내놓는다. 그런데 간혹 기계적인 번역이라는 게 어떤 번역을 말하는지 모르겠다는 수강생을 만날 때면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처럼 먹먹해진다.

마치 최근에 방영된 <당신의 문해력>이라는 EBS 프로그램에서 영어 선생님이 영어 단어의 우리말 풀이를 설명하느라 정작 영어 진도는 나가지도 못하는 것처럼 말이다. 스마트폰 사용이 늘고 텍스트보다 영상의 소비가 훨씬 많아진 오늘날의 환경이 글을 읽고 이해하는 능력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살펴보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요즘 고등학생들이 lawyer가 ‘변호사’를 의미한다는 건 알지만 ‘변호’가 무슨 의미인지는 모르고, ‘baby sitter’가 ‘아이를 돌보는 사람’이라는 건 알지만 ‘보모’가 무슨 뜻인지는 모른다는 충격적인 이야기가 나온다.

내가 고등학교 다니던 시절에는 한문 과목이 있었다. 일주일에 한 번이었던 것 같은데 한자만 익히는 게 아니라 한시도 배웠다. 한자능력시험 급수를 따느라 한자 공부를 하는 친구들도 꽤 있었다.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한자를 배우는 것이 사대주의의 잔재이며 한자보다는 우리말을 아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으면서 어느 순간 교과 과정에서 한문이 사라지고 그렇게 신문을 비롯한 여러 매체에서도 점차 한자가 자취를 감추게 됐다.

우리가 기계의 언어에 익숙해져 진짜 인간의 언어를 잃어버리는 과정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언어는 표현의 수단이기도 하지만 사고를 확장하는 도구이기도 하다. 풍부한 언어는 풍부한 사고를 가능하게 한다. 언어의 폭이 좁으면 사고의 폭이 좁아질 수밖에 없다. 요즘 학생들의 문해력이 떨어지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이다.

역사적으로 통제와 억압에 흔하게 사용된 도구 중 하나가 말을 금지하고 글을 빼앗는 것이었음이 지금 이 순간 떠오르는 건, 순전히 나의 지나친 기우 때문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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