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으로 보기 드문 추리극, 요즘 트렌드를 반영한 신작
가을의 예술은 ‘연극’, 과정을 생각하게 하는 장르이자 힘
‘나는 어떤 가면을 쓰고 있나’, 늘 고민하면서 무대에 올라
연극 선·후배, 동료들과 좋은 창작극을 만들어 보고 싶어

배우 이원종 ⓒ투데이신문
배우 이원종 ⓒ투데이신문

인간은 누구나 가면을 쓰고 산다고들 한다. 겉으로 드러난 가면과 보이지 않는 가면 뒤에 숨은 사람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자신을 연기하며 살아간다. 때때로 마주하는 극적 상황 속에서도 당황하지 않으려 애쓰는 모습이 일상이라는 무대 위에 오른 현대인의 자화상처럼 느껴진다.

사회가 정해준 테두리 속에는 언제나 행해야 할 역할이 있고, 그에 따른 의무와 책임 또한 뒤따른다. 이성적인 동물이 페르소나를 강화하는 과정은 생존의 가치로서 작용한다. 그만큼 살아남기 위해 애를 쓴다는 증거다. 하지만 모든 연극이 끝난 뒤에 마주하는 것은 결국 본연의 자아다. 연극 <가면산장 살인사건>에도 이러한 과정이 고스란히 펼쳐진다. 그렇다면 실제 ‘연극’을 하는 배우의 입장은 어떨까.

베테랑 국민배우 이원종이 연극 <가면산장 살인사건>으로 돌아왔다. 올해 들어 두 번째 연극 무대로 관객들과 마주하게 된 그는 이번 연극에서 자동차 사고로 인해 사랑하는 딸 도모미를 잃은 아버지이자 제약회사 회장 노부히코 역을 맡아 열연하고 있다.

연극 <가면산장 살인사건>은 일본 추리 소설계 거장 히가시노 게이고의 동명 원작 소설을 바탕으로 제작됐다. 노부히코 소유의 별장에서 벌어진 인질극과 살인사건 이야기가 중심을 이루는데, 오랫동안 베스트셀러 자리를 지킨 작품답게 마지막까지 결말을 쉽게 예측하기 어렵고 흡입력이 대단해서 여전히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연극은 이런 장점을 무대로 고스란히 가져오면서도 독자들이 떠올린 상상에 더 큰 날개를 달 수 있도록 상당한 공을 들였다.

작품이 연극으로 올라오기까지는 예상보다 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준비 단계부터 함께 한 이원종에게도 기다림은 꽤 길었다. 그런데도 참 기다려지는 작품이었다. 처음 제안받았을 때, 무엇보다도 그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던 요인은 바로 흔치 않은 작품이라는 사실이었다. 흥미롭게 읽었던 추리극을 연극으로 제작한다는 이야기에 매력을 느낀 그는 가면산장의 노부히코로서 새롭게 무대에 오르기 위해 천천히 또 다른 가면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연극 <가면산장 살인사건> 속 노부히코 역시 가면을 쓴다. 비록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작품에 등장하는 모든 사람은 가면을 쓰고 있다. 서로 속내를 숨긴 채 가면 뒤에 선 사람들. 물론 그들 중 한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가면을 쓰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한다. 긴장의 끈을 놓칠 수 없는 심리전 속에서 과연 이원종은 어떤 가면을 쓰고 무대에 오를까. 가을로 한껏 물든 11월의 첫날, 노부히코 역으로 변신한 배우 이원종을 서울 서대문구 이화여자대학교 삼성홀에서 만났다.

배우 이원종 ⓒ투데이신문<br>
배우 이원종 ⓒ투데이신문

- 먼저 이번 작품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출연 제안을 받고 준비하던 와중에 코로나 펜데믹도 있었고 여러 상황들이 생겨 잠시 접게 됐습니다. 어느 정도 그림은 확정된 상황이었어요. 그러다 상황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작품에 함께하게 됐습니다.

사실 일본 소설을 특별히 좋아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15년 전쯤 <가면산장 살인사건>을 읽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 소설을 쓴 히가시노 게이고의 다른 작품도 아주 인상적이었어요. 그런데 이 작품을 한국에서 연극으로 올린다고 하더군요. 생활 환경이나 생각의 측면에서 일본은 우리와도 서로 비슷한 점이 많은 편이니 참 괜찮겠다 싶었습니다. 무엇보다도 추리극을 연극으로 올린다는 점이 상당히 매력적이었습니다. 우선 추리극이라는 장르 자체도 쉽지 않은데, 이것을 제한된 공간에서 연극으로 만드는 일도 정말 쉽지 않거든요. 이 작품을 각색하는 친구(박경찬 연출)가 직접 연출을 한다고 해서 믿고 흔쾌히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배우로서 젊은 연출가가 연출하는 요즘 연극의 트렌드를 맛보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습니다.

- 베스트셀러 소설 원작을 무대화 한 것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은 늘 베스트셀러에 올랐습니다. 2010년에서 2020년 사이에, 그것도 한 사람의 작품이 4, 5년에 이를 정도로 계속해서 사랑받는 일은 아마도 처음이었을 겁니다. 저는 그보다 한참 전에 그의 작품을 접했었는데요. 그동안 우리 사회 전반적으로 일본 문화를 접하는 일에 약간의 거부감도 있었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문화적인 부분은 예외라고 봅니다. 문화는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는 역할로서 다른 영역이 하지 못한 많은 일을 해낼 수 있으니까요.

일본 소설 가운데 상당히 뛰어난 작품이 많습니다. 노벨 문학상을 받기도 했고요. 그만큼 여러 가지를 경험해봤던 사람들의 이야기니, 그런 작품들을 한국화해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한국도 사실 섬이나 다름없는 조건을 갖고 있습니다. 추리극은 섬나라 위주로 많이 발달했죠. 도망칠 곳이 없으니까요. 일본의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뿐만 아니라 영국의 아가사 크리스티 추리소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리적으로 갇힌 공간에서 진행되는 이야기다 보니 감정 표현이 아주 미세하게 발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비슷한 조건인 우리 문화에서는 왜 그런 부분이 잘 발달하지 않았을까 싶은 생각도 듭니다. 아무래도 본래 지닌 민족성에 그 이유가 있지 않나 싶기도 해요. 원래 우리는 막혀있는 공간에 살던 사람들이 아니기 때문이죠. 그와 같은 기본적 성향이 갑자기 바뀌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거부감 없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부터 조금씩 교류를 하다 보면, 우리가 더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이 있을 수 있겠단 생각을 하게 됐습니다. 이런 일을 우리가 해야죠.

- 이 작품이 오래도록 사랑받은 이유가 있다면.

독자들이 책을 읽는 과정에서 결말이 먼저 드러나면 재미를 느끼지 못합니다. 그런데 이 작품은 그렇지 않습니다. 수사관이 수사하는 과정을 따라간다던가, 두뇌 플레이를 요구하는 스타일도 아니죠. “우리, 법적으로 최소한은 지키면서 삽시다”라는 정도의 이야기랄까요. 사실 잘못을 저지른 대상을 단죄하기 어려운 부분도 많습니다. 대신 ‘그것을 어찌 행하느냐’, 만약 결론을 알게 되더라도 상황을 풀어가는 과정에 재미를 느끼는 겁니다. 일종의 심리 게임이 더 많은 작품인 거죠. 그래서 더 남다른 재미를 줄 수 있는 작품이라 두고두고 사랑받는 것 같습니다.

연극 <가면산장 살인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연극은 소설처럼 도모미의 약혼자인 다카유키의 일인칭 시점으로 전개됩니다. 처음 보실 때, 그의 시선을 따라가면서 보면 쉽게 접근하기 좋습니다. 또, 지인들이 연극을 보러오면 저는 제가 맡은 노부히코에 주목해 보라고 추천합니다. 두 번째 오시는 분들은 등장인물들이 디테일하게 연기하는 부분을 보면서 더 재미를 느끼실 겁니다. 관극 태도가 완전히 달라져요. 또 같은 캐릭터를 연기하더라도 배우마다 상황을 처리해내는 방식과 감정 표현이 다릅니다.

실제로 연극 <가면산장 살인사건>은 회차를 거듭해 볼 때마다 새로운 장면들이 눈에 띄어서 더 흥미롭다.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장면이 시야에 잡힐 때면, 마치 남몰래 숨겨진 보물을 찾아낸 듯한 기분이 들어 뿌듯하기도 하다. 관극을 계획하고 있다면 도전해볼 만한 감상법이다.

- 연극과 소설이 갖는 가장 큰 차이점을 꼽는다면요.

소설은 상상력에 많이 기댑니다. 그리고 그것을 최대한 구현시켜주는 것이 연극이죠. 연극은 어떻게 살아가느냐에 대한 이야기잖아요. 감정이나 결론을 강요하지 않는 장르입니다. 소설이 광범위하다면 연극은 사람으로 시야를 좁혀서 인물 위주로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집중력을 이끌고 재미를 느끼게 하죠. 연극 <가면산장 살인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배우 이원종 ⓒ투데이신문
배우 이원종 ⓒ투데이신문

도모미의 죽음 이후, 노부히코는 해마다 휴가를 보냈던 자신의 별장으로 사람들을 초대한다. 이 특별한 초대를 받은 사람은 노부히코의 아내 아츠코와 아들 도시아키, 도모미의 약혼자 다카유키, 도모미의 사촌동생 유키에와 친구 게이코, 그리고 가족들의 일을 곁에서 돌보는 비서 레이코와 의사 기도까지 모두 일곱 명이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별장으로 들이닥친 2인조 은행 강도 때문에 계획했던 휴가는 한순간에 긴장감이 감도는 사건 현장으로 바뀌고 만다.

- 연극에서 노부히코 회장 역을 맡으셨는데, 어떤 부분에 가장 주안점을 두고 연기했는지 궁금합니다.

극 중 노부히코 회장은 ‘많이 아픈 사람’입니다. 떠나보낸 사람을 계속 떠올려야 하니, 가족들에게도 굉장히 고통스러운 작업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관객들과는 또 다른 측면에서 만나야 하니 이중적인 상황이죠.

노부히코를 포함해 이 별장 안에 들어온 사람들 모두는 가면을 쓰고 있습니다. 어느 한 사람, 특정인만 가면을 쓰고 있는 게 아닙니다. 스스로 연기를 하면서도 ‘나는 어떤 가면을 쓰고 있나’ 많이 생각해요. 또 이게 과연 적확한 표현인지를 늘 고민하며 연기합니다. 극 중에서 저를 무력으로 제압하는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물리적으로 노부히코가 제압당하는 모습이 더 뚜렷하게 보일 수 있도록 상대 배우들에게 많은 주문을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실낱같은 버팀목이 되고 있지만, 그런 가운데 무력화된 노부히코 회장을 보여줌으로써 인간 군상 본연의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랄까요. 그래서 작품을 보실 때 노부히코 회장의 감정 흐름을 따라가 보는 것도 재미있지 않을까 생각해요. 2박 3일 동안 펼쳐지는 감정 변화를 아주 강력하면서도 다채롭게 보여주고 싶었거든요.

노부히코 회장은 하나의 측면만을 가진 사람이 아닙니다. 한 회사의 회장이자 가장이기도 하고, 위기 상황에서 사람들을 챙겨야 하죠. 사람들의 내면에는 수십 수만 가지의 모습들이 있잖아요. 여러 사회적인 이유로 인해 대표적인 캐릭터로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 본성은 사실 그렇지 않거든요. 그런 모습에 조금 더 가까이 가보려고 노력했습니다.

또 일부러 ‘연기를 연기하는’ 모습을 보이고 싶기도 했어요. 그런 부분을 조금 더 명확하게 보여서, 보시는 분들이 고개를 갸웃할 만한 대표 장면 몇 가지를 살려볼까 합니다. 물론 어느 정도 원작에 가까우리만큼 제 목적을 완성했다고 생각할 때쯤에요. 그때는 더 재미있어질 겁니다.

- (작품 속에서) 만약 본인이라면 사랑하는 딸의 목숨을 앗아간 범인이 특정됐을 때 과연 어떤 행동을 취할 것 같나요.

제게 딸이 둘 있습니다. 예전에 딸이 유학을 갔었는데, 방학이면 한국에 돌아왔어요. 당시 활동하기 충분한 범위 내로 귀가 시간이 정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딱 한 번, 딸과 연락이 되지 않았던 날이 있었어요. 신호는 가는데 전화를 받지 않아 굉장히 걱정됐죠. 제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어떻게든 딸을 찾으려 애를 썼던 기억이 납니다. 다행히 별다른 일 없이 집으로 돌아왔지만, 이성이나 합리와는 거리가 멀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더군요. 만약 제가 노부히코라면 그때 느끼는 감정에 맡길 것 같습니다. 제게 얼마만큼의 자제력이 있을지 단정 지을 수 없겠지만요.

- 흔히 한국은 ‘한(恨)’의 정서를 품고 있다고들 말합니다. 다른 이유로 일본도 비슷한 정서를 가지고 있지만, 한국과 달리 ‘화(和)’ 문화 또는 화(和)’의 정서가 두드러진다고 분석합니다. 이번 작품에 참여하시면서 실제로도 그렇다고 느끼셨는지요.

사람들은 극단적인 일을 마주했을 때, 보통 사회에 속한 율법이나 규정을 따라가게 됩니다. 사회적인 사람들이기 때문에 상식을 따라 일반화된 행동을 보이는 거죠. 그런데 ‘만약 이런 상황에 닥쳤을 때 우리나라 사람들이라면 어떻게 했을까’를 생각해보면 극 중 상황을 풀어가는 과정은 극명하게 다를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화(和)라는 한자를 보면 식구(食口)와 의미가 같습니다. 가족은 포괄적이고, 식구는 같은 밥상에서 밥을 먹는 사이이니 훨씬 더 가깝습니다. 가장 좁혀진 사회구조라고 볼 수 있죠. 일본인들에게는 이미 그것이 목표가 돼있습니다. 그 목표를 향해, 사회를 향해 희생하는 일이 자연스럽고요. 마치 대를 이어 같은 직업을 이어가는 이유와도 비슷할 겁니다.

화(和)는 계급 사회를 구체화 시키고 일반화 시키는 지배구조의 논리라고도 할 수 있는데요. 그것이 깨지게 되면 도망칠 수도 없을뿐더러, 여기에 따르지 않을 때 마주하게 되는 것은 처절한 비극이기 때문에 이것을 향해 달려가는 것이죠. 간단히 말해 체제 순응적입니다. 상황을 풀어가는 것에도 ‘화’를 염두에 둡니다. 그 점은 이 연극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한(恨)의 문화는 결론을 한으로 끝내지 않습니다. 품은 한을 여러 방법으로 풀어내려고 하죠. 우리는 어떤 마음이 그대로 쭉 이어지는 것을 잘 두고 보지 못합니다. 한 사람이 권력을 독점하는 일도 그렇고요. 직업적인 측면에서도 ‘농민으로 태어났으니 대대손손 농민으로 살아야 한다’라는 인식이 없어요. 그래서 훨씬 더 치열하고, 스스로 한을 상승시키기 위한 동력이 훨씬 더 강한 신명이 뒤에 받혀진 민족이죠. 그것을 풀기 위한 과정이나 작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상갓집에 가더라도 슬퍼만 하는 것이 아니라 같이 웃고 떠들어줍니다. 남은 사람들의 슬픔을 승화시켜서 살아있는 사람들의 세상으로 다시 데리고 오려는 거죠. 하지만 이 작품을 하면서 그 감정을 참아야 한다는 점이 어려웠습니다. 다름을 이해하며 간다는 것이 생각보다 쉽지 않더라고요. ‘나 같으면 이렇게 하지 않았을 텐데’ 싶은 마음도 들었지만, 원작에 나타난 모습이 있으니 정당화가 되잖아요.

아마도 이 작품이 한국 창작극이었다면 이중적 구조로 갔거나, 한쪽은 풀어가는 과정으로 갔을 겁니다. 복수를 단절하고 화해시키려 할 거고요. 천도(薦度)를 한다거나 한을 잘 달래서 보내주려고 할 테죠. 강요된 ‘화’보다는 그것이 정말로 우리가 원하는 ‘화’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똑같은 소재를 가지고 한국식으로 풀어봐도 재미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일간의 교류를 한다거나, 연극제를 통해서요. 제가 아태 연극제와 베세토 연극제에 나간 적이 있는데, 거기에서 보니 한·중·일 세 나라가 인간의 희로애락을 풀거나 결론을 내는 습성이 정말 극명하게 다르더군요.

예를 들면 한 작품을 놓고 ‘이것을 어떻게 풀 것인가’를 보는 겁니다. 똑같은 작품과 상황을 두고 각 나라에서는 어떻게 결론짓는가를요. 이 작품은 일본 원작이 있으니까, 우리식으로 한 번 풀어봐도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배우 이원종 ⓒ투데이신문
배우 이원종 ⓒ투데이신문

- 얼마 전 한 예능 프로그램에서 “가을이 오면 연극을 하고 싶어진다”라고 언급한 적이 있는데,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연극과 가을이라는 계절이 잘 어울린다고 봅니다. 결실의 계절이잖아요. 연극은 어떤 과정이나 시작을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과정을 두고 ‘너라면 어떻게 하겠냐’하고 생각하게 하는 장르라서 사계절 중에서도 가을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합니다. 봄이나 여름보다는 가을의 예술이 바로 연극이죠. 그래서 가을이 되면 연극을 하고 싶어집니다.

- 활발한 활동을 거듭하시는 가운데 8년 만에 무대로 복귀했는데, 스스로에게 연극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저는 연극을 기반으로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습니다. 대중예술과 순수예술의 경계를 넘나들며 활동하는 점에 대해 조금 죄송하다는 마음은 이제 많이 사라졌습니다.

처음 연극을 할 때 느꼈던 짜릿함을 늘 기억하고 있어요. 어느 정도 재충전을 하지 않으면 소재를 찾는 일이나 연기를 하는 부분에서도 빈곤을 면치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배우 생활을 하다가 느슨해지거나, 재충전이 필요하다거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될 땐 연극으로 돌아갑니다. 또 마음의 빚을 갚고 싶을 때도요. 연극은 제게 링거를 맞는 것과 같고, 보약을 먹는 것과 같습니다. 피드백의 지점이기도 하죠. 그럴 때면 여지없이 연극을 찾게 됩니다.

요즘 보면 저희 때보다 후배들의 상황이 조금 더 열악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좋은 작품을 만날 수 있는 기회나 환경이 극단이 많이 성행하던 시절과는 다르죠. 지금은 기획 프로젝트팀 위주로 많이 움직이는 것 같아서요. 나라에서 주는 지원금을 받거나 운영 단체가 하는 것 이외에는 연극을 하기가 어렵고, 이 작품처럼 캐릭터가 많이 등장하는 연극을 개인이 극장에 올린다는 것이 정말 쉽지 않죠. 제가 제작자에게 정신 나갔냐고 물을 정도였습니다. 그렇지만 그런 제작자들이 많이 살아남아야 하지 않을까요? 또 그런 분들을 많이 도와줘야 하지 않을까요? 그래야 이렇게 다양한 시도를 할 수 있으니까요. 저도 똑같이 그런 시도를 할 거고요.

그리고 배우들에게 활동할 수 있는 장도 마련해주고 싶습니다. 이제 선배 축에 들어가는 나이가 되어가고 있기도 하니까요. 이 점을 목표로 몇 년간 구체화 시켜볼 생각입니다.

- 앞으로 해보고 싶은 역할이나 참여하고 싶은 작품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좋은 창작극을 같이 만들고, 좋은 캐릭터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 제가 해보지 않은 캐릭터는 없는 것 같아요. 주어진 캐릭터를 수행하는 역할을 하는 사람이 배우이니, 이제 어떤 캐릭터든 주어지면 다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지속해서 작품을 만들어 가고 싶습니다. 80점 이상을 받을 수 있는 좋은 대본과 나머지 20점을 좋은 연기로 채울 수 있는 창작극을요. 연극하는 선후배, 동료들과 같이 그런 창작극을 만들어 보는 것이 목표입니다.

배우 이원종 ⓒ투데이신문
배우 이원종 ⓒ투데이신문

- 요즘 한국 콘텐츠의 인기가 상당합니다. 일본 소설 <가면산장 살인사건>이 연극으로 새롭게 재탄생했듯이 만약 우리나라 작품 중에서 일본에 진출해도 성공할 것 같은 작품이 있다면 어떤 작품이 있을까요.

우선 한국 소설은 특이한 면이 있어서 (감정적인) 접점이 없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아무래도 요즘 극적인 창작의 인재 집단은 드라마로 많이 몰려있는 듯해요.

개인적으로는 드라마 <나의 아저씨>가 경쟁력이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신 각색하지 않고 일본어로만 번역해 만들면 더 좋겠어요. 또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 같은 장르도 좋아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일본분들이 한국 스타일의 사랑 이야기도 좋아하는데, 이런 작품이 크게 흥행하는 이유가 바로 ‘캐릭터의 개방성’ 때문이거든요. 어떤 역할이 성별에 구애받지 않고, 각자 성격에 따라 멋있고 자유롭게 행동하는 점이 매력으로 느껴진 거죠. 또 드라마 <뱀파이어 검사>도 잘 만들어진 장르물이라 좋은 반응을 이끌 것 같습니다.

- 이번 연극에서 눈여겨볼 만한 장면이나 관람 포인트를 소개 부탁드립니다.

처음 관극할 때는 전체를 보시기 바랍니다. 이 연극의 드라마를 보면서 재미없다는 반응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없었어요. 마지막 장면을 상정해가면서 보시다가, 본인의 생각과 드라마가 얼마나 다른지 비교해보는 것도 좋습니다. 사실 제일 보여드리고 싶은 장면은 바로 연극의 마지막 장면입니다. 두 번째에는 제가 연기하는 노부히코 회장에게 집중해주세요(웃음).

- 연극 <가면산장 살인사건>을 궁금해하는 관객분들께도 한 말씀 전하신다면.

(인터뷰 당시) 공연일 중 절반을 지나 새로이 반환점을 돌았습니다. 매일 조금씩 다르고, 부족한 점을 채워가는 연극을 만들고 싶어 부단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연극 <가면산장 살인사건>은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추리극입니다. 아주 맛깔나는 연극이니 올가을은 이 작품과 꼭 만나 보시기 바랍니다.

가면산장에서 나눈 이야기 내내 연기를 향한 사랑만큼은 감추지 못한 이원종의 모습은 그 어느 때보다도 편안해 보였다. ‘연극 사랑에 진심’이라던 말처럼, 연기와 무대를 향한 그의 사랑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고스란히 느껴질 정도였다. 지금껏 그가 보여준, 그리고 앞으로 보여줄 수많은 가면 뒤에는 언제나 ‘배우 이원종’의 진심이 담겨있을 것이다. 연극 <가면산장 살인사건>은 오는 11월 27일까지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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