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일 자택서 숨진채 발견…저작권 소송문제로 괴로워해
업계서 저작권이 출판사로 일괄 넘어가는 ‘불공정 계약’ 관행적
유족·대책위 “형설앤, 저작권 반환·2건의 민사소송 취하해야”
만화·출판업계, 재발방지 대책 마련·창작자 보호 강화 한 목소리
문체부 “표준계약서 제정 등 정책적·제도적 대책 강화할 것”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장)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신일숙 한국만화가협회장(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장)이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고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박효령 기자】 인기 만화 ‘검정고무신’ 이우영 작가가 캐릭터 업체와의 저작권 분쟁을 겪던 중 숨을 거두면서 창작자권리 보호 장치 강화의 필요성이 대두됐다.

29일 인천 강화경찰서에 따르면 故(고) 이우영 작가는 지난 12일 오후 7시경 인천시 강화군 선원면에 위치한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경찰은 이씨가 방문을 잠근 채 기척이 없다는 가족 신고를 받고 출동했으며, 현장에서 강제로 방문을 개방한 뒤, 내부에서 숨을 거둔 이 작가를 찾아냈다.

경찰은 이 작가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파악했으며, 유족들의 뜻에 따라 부검을 하지 않기로 했다.

경찰 조사에서 유족은 “이 작가가 최근 저작권 소송 문제로 힘들어했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앞서 이 작가는 지난 2019년 ‘검정고무신’ 공동 저작권자들과 수익 배분 관련해 법적 다툼을 벌인 바 있다.

또 지난해 이 작가는 애니메이션 ‘극장판 검정고무신:즐거운 나의 집’ 개봉을 앞두고 캐릭터 대행사가 자신의 허락 없이 극장판 등 2차 저작물을 제작했다며 문제를 제기한 바 있다. 

만화 ‘검정고무신’은 1960년대 서울을 배경으로 초등학생 기영이와 중학생 기철이를 중심으로 가족들의 이야기를 유쾌하게 그린 만화다. 그림은 이우영·이우진 작가가, 글은 이영일 작가가 집필했다.

해당 만화는 지난 1992~2006년간 ‘소년챔프’에 연재되며 당시 최장수 연재 기록을 세웠다. 이외에도 45권짜리 단행본이 출간됐으며, 애니메이션 제작, 캐릭터 사업으로도 이어지는 등 국민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故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동생 이우진 작가가 발언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검정고무신 故 이우영 작가 사건 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고인의 동생 이우진 작가가 발언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생활고 시달렸다”…유족의 호소

이 작가의 사망 이후, 그가 15년 동안 받은 저작권료가 1200만원에 불과하는 등 생활고에 시달렸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동생이자 공동 작가인 이우진 작가는 지난 27일 서울 영등포구 국회소통관에서 열린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 기자회견’에서 “캐릭터 업체 형설앤과 계약을 맺은 지난 2007년부터의 인연은 악연이 돼 형의 영혼까지 갉아먹었다”며 “어린 시절 만화를 사랑했고, 만화 이야기로 밤새던 형의 목소리는 이제 들을 수 없게 됐다”고 호소했다.

이날 기자회견을 주최한 이우영작가사건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는 ‘검정고무신’ 캐릭터 사업을 담당했던 형설앤 측이 이 작가를 죽음에 몰아넣은 장본인이라며 관련 사업과 소송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대책위는 “세대를 막론한 사랑을 받은 만화를 그린 작가가 작품 저작권을 강탈당하고, 그 괴로움에 못 이겨 스스로 생을 마감한 사건을 기억하지 않는다면 우리 만화·웹툰계의 미래는 없을 것이다”라며 “형설앤 측이 캐릭터로 인질극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책위는 △형설앤의 저작권 반환 △만화인과 유가족들에 대한 사과 △원작자인 이우영·이우진 작가에 대해 진행 중인 2건의 민사소송에 대한 취하를 요구했다. 더불어 문화체육관광부(이하 문체부)에 이번 사안에 대한 엄중한 조사, 재발 방지를 위한 근본적인 대책 마련 등을 요청했다.

이우진 작가 딸 이모씨도 같은 날 자신의 SNS를 통해 아버지인 이우진 작가가 생활고에 시달리며 ‘막노동’을 했다고 주장했다.

이씨는 “그들은(형설앤) 창작 당시 점 하나 찍지 않았던 검정고무신을 본인들 것이라 우기며 평생을 바쳐 형제가 일궈온 작품이자 인생을 빼앗아 갔다”고 호소했다.

이어 “처음 만나는 사람들은 검정고무신 창작자의 딸이라고 하면 으리으리한 건물을 가지고 있지는 않냐고 묻는다”며 “그러나 아빠는 빼앗긴 저작권으로 아무런 그림을 그려낼 수 없어 막노동일을 했고,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기우뚱거리는 집안의 무게는 저 또한 알고 있었다”고 밝혔다.

또한 그는 이 작가 형제가 관련 소송을 겪으며 건강 문제에도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큰아빠는 소송이 시작되던 지난 2019년 명절에 스트레스로 인한 어지럼증에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고, 아빠는 지난해가 마무리되던 때, 스트레스로 인한 불명통으로 고열 및 통증에 시달리며 새해를 병원에서 보내야만 했다”고 설명했다.

이 작가가 15년 동안 총 1200만원만 수령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대책위 대변인을 맡고 있는 법무법인 덕수 김성주 변호사는 최근 연합뉴스와 인터뷰를 통해 “약 15년 동안 ‘검정고무신’으로 사업화한 개수가 77개를 넘어감에도, 정작 이 작가가 수령한 금액은 총 1200만원에 불과하다. 심지어 어떤 명목으로 지급한 돈인지도 알 수가 없는 상태”라고 말했다.

지난해 8월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캐릭터가 그려진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지난해 8월 서울 시내의 한 대형마트에서 캐릭터가 그려진 제품이 판매되고 있다. [사진제공=뉴시스]

들고일어난 만화·출판업계

이 작가의 사례처럼, 만화·출판업계에서는 원저작자에게 계약 시 일정액을 지불하면, 모든 저작권을 소유하는 것으로 해석 가능한 일명 ‘매절 계약’이 관행처럼 이어지고 있는 실정이다.

실제로 지난해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이 발표한 ‘2022 웹툰 사업체·작가·불공정 계약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조사에 참여한 웹툰 작가의 58.9%가 “불공정 계약이나 행위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변했다.

웹툰 작가들은 계약 관련 불공정 행위(복수 응답)로 제작사 및 플랫폼에 유리한 일방적 계약이 40.8%로 가장 많았으며, 그다음으로 계약 체결 전 계약사항 수정 요청 거부 32.1%, 특정 작가의 작품 등을 우대한 차별 경험 30.9% 순이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관련 업계에서는 저작권법 등 개정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국만화가협회, 한국웹툰작가협회 등 만화계 단체들은 지난 20일 성명에서 ‘이우영작가사건 대책위원회’를 결성하고 “우리가 동원할 수 있는 모든 역량을 동원해 다시는 이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끝까지 싸우겠다”고 선언했다.

이들 단체는 “이 작가를 죽음으로 내몰 만큼 괴롭힌 회사가 제기한 소송에서 반드시 승리하고, 그를 떠나보내며 상처받은 유가족과 동료 작가들, ‘검정고무신’ 팬들의 슬픔을 어루만질 수 있는 추모 공간과 시간을 만들 것”이라며 “이 작가가 생전 염려했던 정책과 제도를 개선해 이 같은 비극적인 사건이 반복되지 않게 할 것이다”고 강조했다.

저작권법 개정에 나선 단체도 있었다. 웹툰협회는 지난 21일 성명서를 통해 “그동안 불공정계약 관행과 불법복제사이트 근절 등 저작권 약탈 문제에 대해 개선의 목소리를 내고 행동해왔디”며 “하지만 그 과정과 결실이 얼마나 지지부진하고 허술했는지에 대해 자책하지 않을 수 없다”고 털어놨다.

이에 웹툰협회는 앞으로 이 작가의 사례 초함 불공정 사례를 분석하고 문제점을 명확히 하며, 문체부와 저작권위원회 등 정부부처 및 유관기관과 협력해 대안을 마련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국회와 협력해 저작권자 보호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저작권법 개정(이우영법)에 나서며, 협회 법률고문단을 확대 개편해 산하에 ‘웹툰계약동행센터’를 개설해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웹툰작가 권익 보호를 실천할 계획이다.

한국음악저작권협회(이하 한음저협)도 매절 계약의 제도 개선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다.

한음저협은 “분야를 막론한 국내의 많은 창작자들이 대형 미디어 사업자에게 헐값에 저작권을 넘기거나 이용 허락을 하게 해주는 등의 매절 계약을 사실상 강요당하고 있다”며 “이 같은 문제를 근복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저작권 등록제도 개선이 시급하다”고 주장했다.

이어 “현행 저작권법 제54조에 따르면 저작권 신탁관리단체에 등록돼 공시된 저작물이라도 한국저작권위원회에 그 변동 사항을 또다시 등록하지 않으면 제3자에게 그 권리를 주장할 수 없다”며 “그러나 과다한 비용 등으로 저작권 등록률이 낮아 제도가 사실상 유명무실한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이에 이들은 창작업계 전반에 걸친 피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현행 저작권 등록제도 자체가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고 짚었다.

문화체육관광부 박보균 장관. [사진제공=뉴시스]
문화체육관광부 박보균 장관. [사진제공=뉴시스]

“재발 방지 나설 것”…팔 걷어붙인 정부

문체부는 이 작가의 사망과 같은 사태가 재발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창작자 권리 보호 강화에 나섰다.

문체부는 지난 15일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가 발생하지 않도록 창작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불공정한 계약을 방지하기 위한 정책적·제도적 대책을 강화할 예정”이라고 공언했다.

이번 사태에 대해 문체부는 상대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있는 작가가 계약하는 과정에서 법률 지식이 부족한 상태로 계약이 진행돼, 원저작자임에도 자신의 저작물을 충분히 활용할 수 없게 된 것이 문제라고 분석했다.

이에 따라 먼저 2차적 저작물 작성권 이용 허락 표준계약서를 제정하기로 했다. 현재 제정 및 개정 검토가 진행 중인 만화 분야 표준계약서에 2차적 저작물 작성권에 관한 내용을 구체화하고, 제3자 계약 시 사전동의 의무 규정을 포함해 창작자의 저작권을 보호할 방침이다. 문체부는 이 같은 내용을 담은 대책을 오는 6월에 발표할 예정이다.

또한 창작자에게 불공정한 계약 관련 분쟁이 발생할 시, 신속한 분쟁 해결을 위해 정책적인 지원을 확대한다. 한국콘텐츠진흥원 공정상생센터의 신고접수를 위해 협력하는 협·단체를 13개에서 16개로 늘리고, 상시 법률·노무 컨설팅을 제공하는 체계를 구축해 신고 접수와 컨설팅 지원한다.

만화 분야를 포함한 소관 15개 분야 82종 표준계약서의 전반적인 내용도 재점검하며, 가칭 ‘알기 쉬운 저작권 계약사례 핵심 가이드’를 제작하고 만화 분야 불공정 상담창구인 ‘만화인 헬프데스크’도 운영할 방침이다.

지난 2020년 12월 더불어민주당 유정주 의원, 지난 2022년 11월 국민의힘 김승수 의원이 창작자의 권리 보호를 강화하고자 발의했지만 현재 계류 중인 ‘문화산업 공정유통 및 상생협력에 관한 법률’에 대해서도 “제정안이 올해 상반기 중에 법안이 통과될 수 있도록 협력하겠다”고 말했다.

문체부 박보균 장관은 24일 서울 서계동 문체부 서울사무소에서 진행된 제2의 검정고무신 사태 방지를 위한 좌담회에서 “작가들이 책을 내고 싶어 하는 열망, 저작권에 낯설어하는 풍토에서 갑질 독소조항의 그물에 빠져 창작 열정이 꺾이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거듭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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