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작품을 알려야 할까요?” 최근 미술계는 유명 외국작가나 원로작가에 초점을 맞춰 전시, 홍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다보니 국내 전시에서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소수의 작가들만 주목받는,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미술계에 이러한 방식에 신진작가들은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지원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 마저도 ‘좁은 문’으로 불릴 만큼 치열하다.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란 젊은 작가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신진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코너를 통해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 나서고자 한다. 앞으로 온라인 갤러리 [영블러드]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뜨거운 예술혼을 만나보길 바란다.

# ART STORY 

일상에서 발견한 ‘헛것’으로부터 인간의 본능을 추적하고 시각화하는 황택입니다. 주로 아크릴을 사용한 회화로 표현하며 최근에는 영상 작업도 병행하고 있습니다. 순간의 섬광처럼 번쩍하고 사라져버려서 진위를 밝힐 수는 없지만, 분명히 보였던 헛것에 대한 호기심이 작업의 시작이었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착각의 이미지를 포착하고 수집하는 과정을 통해 헛것의 근원이 우리 안에 있다는 공통점을 발견하게 됐습니다. 자라를 본 적이 없다면 솥뚜껑을 보고 놀랄 일도 없을 것입니다. 이렇듯 내면 깊이 숨어있던 본능의 잔상이 주변의 닮은 형태에 묻어나올 때, 우리는 헛것을 보게 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헛것을 시각화하는 것이 인간의 본능과 스스로의 감정을 드러내는 행위라고 생각하며 4년여간 같은 주제로 작업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 풋, 둘기! , 72.7x72.7cm, acrylic on canvas, 2023.
△ 풋, 둘기! , 72.7x72.7cm, acrylic on canvas, 2023.

순간적으로 포착한 이미지를 먼저 드로잉하고 추후 아크릴 물감으로 다시 표현합니다. 헛것을 발견했을 때는 그 이미지와 당시의 감정에 집중해 메모하듯 드로잉하고 다시 아크릴로 캔버스에 옮기며 나에게 나타난 헛것의 의미를 곱씹어보고 해석해 표현합니다. 몸의 형태를 빌려 표현하는 이유는 헛것을 투영한 몸부림이 내 안에 가둬두었던 본능과 가장 닮아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최근에는 조금 더 많은 분이 저의 그림을 부담 없이 감상할 수 있도록 신체 전부가 아닌 발에만 빗대어 헛것을 표현하기도 합니다. 발은 우리 몸의 극히 일부이며 가려져 잘 보이지 않지만 은밀한 감정이 숨길 수 없이 드러나는 가장 솔직한 부분입니다. 헛것으로 보인 다채로운 발짓들이 우리의 본능을 엿볼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결국 헛것을 해석하고 시각화하는 저의 작업은 찰나의 본능을 드러내는 행위와 같으며, 이를 통해 우리가 감춰야만 했던 이야기들을 해보고자 합니다. 저의 그림을 통해 의식 아래에 숨겨져 있던 본능의 움직임을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그리고 저의 그림이 계기가 되어 가끔은 긴장을 풀고 본능에 솔직한 경험을 해보셨으면 합니다. 아주 잠깐 이성에서 벗어나는 일이 우리 스스로를 훨씬 더 가볍고 자유롭게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 ARCHIVE

△유해동물보호구역 3, 90.9X72.7cm,  acrylic on canvas, 2023.(좌) △ 유해동물 보호구역 7, 91.0X116.8cm, acrylic on canvas, 2023.
△유해동물보호구역 3, 90.9X72.7cm,  acrylic on canvas, 2023.(좌) △ 유해동물 보호구역 7, 91.0X116.8cm, acrylic on canvas, 2023.

유해동물 보호구역 연작

원래는 비둘기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더럽고 병균을 옮긴다고 생각해 비둘기가 가까이 오면 숨도 잘 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여느 날처럼 갑자기 나타난 비둘기에 놀라게 되었을 때 혐오의 마음을 담아 그들에게서 발견한 몸짓을 드로잉했습니다. 뒤뚱거리는 그들의 모습은 많은 헛것들을 보여줬고 어느새 드로잉도 늘어갔습니다. 그렇게 시작한 비둘기 시리즈였는데, 주제가 반전하는 계기가 생깁니다. 비둘기와 헛것을 캔버스에 옮기던 시기 아무렇지 않게 가까이서 그들을 관찰하는 저의 모습을 발견했습니다. 그때 저는 그들을 피하지도, 혐오의 감정을 느끼지도 않았고 문득 깨달았습니다. 그들은 본능에 충실한 순수의 모습이었을 뿐 그들에게 가지고 있던 편견이 혐오의 감정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정작 그들을 직접 경험하거나 느껴본 적 없이 편협한 시선만으로 판단한 것이었습니다. 그날 이후부터는 제가 편견을 가져오던 주변 사람들의 모습이 비둘기들에게서 겹쳐 보였고 편견에 대한 후회와 미안함이 담긴 새로운 드로잉을 이어가게 됐습니다. 그렇게 ‘유해동물 보호구역’ 연작이 시작됐습니다. 우리가 유해동물이라고 칭하는 존재에게도 그들만의 이야기와 사정이 있습니다. 비록 사회의 시선에서는 부족함이 많은 존재일지라도 저의 그림 안에서는 보호받고 이해받을 수 있길 바랍니다. 그리고 저의 그림을 통해 그들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이 조금은 따뜻하게 변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 몬스테라 화분이 있는 거실의 소파, 116.8×80.3, cmacrylic on canvas, 2022.
△ 몬스테라 화분이 있는 거실의 소파, 116.8×80.3, cmacrylic on canvas, 2022.

몬스테라 화분이 있는 거실의 소파

거실의 소파에는 많은 추억이 담겨 있습니다. 특히 친구들과 비좁게 앉아서 무언가에 열중하던 기억이 많아 물끄러미 바라볼 때면 그 시절의 모습이 절로 떠오릅니다. 시간이 지나며 소파에서 함께한 친구들은 변해갔지만, 나누었던 감정의 모습은 서로 닮아서 겹겹이 쌓여갔습니다. 그렇게 오래된 소파는 저에게 우정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그림 속 소파에서는 서로를 지지하고 있는 3명의 인물을 찾을 수 있습니다. 불편할 수 있는 자세지만 그들의 모습은 그저 편안해 보입니다. 굉장히 오랜 시간을 기대어 마치 한 몸이 된 것 같기도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우정의 모습이자 추억이 깃든 소파에 겹쳐 보였던 모습입니다.

△ 폭력과 치욕에 대하여, 60.6x72.7_acrylic on canvas, 2022.
△ 폭력과 치욕에 대하여, 60.6x72.7_acrylic on canvas, 2022.

폭력과 치욕에 대하여

다 써서 잘 나오지 않는 클렌징폼, 치약의 남은 끝부분을 쓰기 위해 있는 힘껏 짜고 흔들어본 경험은 누구나 있을 것입니다. 저 역시 튜브에 담긴 물질이 잘 나오지 않을 때면 온 힘을 다해 누르게 되는데 어느 날은 거울에 비친 그 모습을 우연히 보게 되었습니다. 손바닥 보다 작은 물건을 움켜쥐고 상기된 모습이 부끄러워지는 순간이었습니다. 통제하고 있던 폭력성이 저항할 수 없는 상대에게 무의식적으로 발산되었음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손에 쥐고 있던 것은 물건이었지만 생명이 있는 약한 존재에 대한 나의 행동을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또한 내가 당한 폭력을 떠올리게 됐습니다. 당시의 무력감과 치욕이 쭈그러진 튜브에 비쳤습니다. 작은 존재일수록 폭력과 아픔은 더 크게 느껴질 것입니다. 말하지 못한 그들의 고통을 그림으로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 ARTIST STORY 

△ 황택 작가
△ 황택 작가

헛것이라는 주제로 작업을 이어온 지 4년이 되었지만, 앞으로도 계속 헛것을 발견하고 시각화하고 싶습니다. 일상의 소재에서 새로운 이미지를 발견하고 그 안에 담긴 감정과 본능을 찾는 일이 매우 재미있고 큰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가끔은 더 이상 아무것도 찾지 못하는 순간이 올까 봐 걱정되는 정도입니다. 그리고 찾아낸 헛것을 사람들과 나눌 수 있게 시각화하는 일도 여전히 매력적으로 느껴집니다. 우리가 외면하고 싶어 하는 부분을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일은 상당한 쾌감을 줍니다. 말하고자 하는 바를 깊숙이 숨기지 않고 반 잠수상태로 표현하는 이유도 감상자가 어렵지 않게 저의 의도를 발견하길 바라서입니다. 최근에는 그림으로 표현하지 못했던 영역을 영상으로 제작하기도 합니다.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이 많지만, 만족도가 높은 작업을 모아 공유할 수 있는 기회가 오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ART CRITICISM  

비주얼 아티스트 황택은 ‘헛것’의 대상에 대해 시각적으로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는 작가다. 드로잉을 기반으로 회화에서부터 영상까지 지속적으로 매체탐구를 시도하고 있다. 황택의 발견된 오브제는 사적 일상에서 비롯된 그의 무의식적인 본능에서 발현된다. 상상 속 비현실적인 잔상과 그 흔적들이 그로테스크하게 중첩돼 기괴한 형상으로 구체화했다. 기묘하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낯익음으로 황택의 헛것의 시각화는 현실(실제)과 상상(허구)의 틈의 간격을 연결시켜가고 있다. (김선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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