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작품을 알려야 할까요?” 최근 미술계는 유명 외국작가나 원로작가에 초점을 맞춰 전시, 홍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다보니 국내 전시에서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소수의 작가들만 주목받는,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미술계에 이러한 방식에 신진작가들은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지원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 마저도 ‘좁은 문’으로 불릴 만큼 치열하다.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란 젊은 작가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신진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코너를 통해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 나서고자 한다. 앞으로 온라인 갤러리 [영블러드]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뜨거운 예술혼을 만나보길 바란다.

# ART STORY 

△ 나무들 112.1X162.2cm Acrylic on Canvas 2022
△ 나무들 112.1X162.2cm Acrylic on Canvas 2022

저는 그림을 그리고 있는 유리나라고 합니다. 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일본으로 유학을 갔습니다. 정식 과정에 입학하기 전 1년간 연구생으로 생활한 뒤 대학원에 입학했습니다. 역시 유화과(한국에서 회화과, 서양화과와 같은 과)에 입학해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제 첫 전시도 석사 과정 중 일본에서 갖게 됐습니다. 

7년간의 일본 생활에서 언제나 고독을 느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독은 일반적인 의미의 고독이 아닌 혼자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흔히 고독하면 떠올리는 외로움, 쓸쓸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저의 고독은 긍정적 상태를 의미합니다. 혼자서 보내는 긍정적이며 유의미한 시간. 그런 고독도 존재한다는 걸 알았습니다. 물론 유학생인 저는 학교에 속해 있기는 하지만 정신적으로는 어딘가에도 속하지 못했습니다. 가족도 없고 친구도, 누군가를 만나는 일도 한국과는 다른 느낌이었습니다. 어딘가에 속하지 못했기 때문에 오히려 더 자유로움을 느꼈다고 할까요?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는 계기가 됐던 것 같습니다. 저는 항상 제 자신이 놓인 상황을 주제로 작품을 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때 일본의 오히토리사마(おひとり様, 한국에서 말하는 ‘나홀로족’과 의미가 통한다고 생각합니다)문화와 긍정적 의미로서의 혼자만의 시간을 주제로 작품 연구하게 됐습니다. 

카페에 혼자 가서 커피를 마시며 책을 읽거나 드로잉을 하다보면 혼자서 온 많은 사람들을 만나볼 수 있었습니다. 다들 각자의 시간을 보내며 할 일들을 합니다. 모두가 저와 비슷합니다. 그들이 저처럼 보일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저는 자아와 타자와의 관계에 주목을 하고 오히토리사마의 공간과 시간에 대해 연구를 했습니다. 

△ Landscape 33.4X45.5cm Acrylic on Canvas 2023
△ Landscape 33.4X45.5cm Acrylic on Canvas 2023

그렇게 석사 과정과 박사 과정을 수료한 후 귀국했습니다. 고향인 서울에 돌아와 작업을 이어 나갔으나 예전부터 꿈이었던 귀촌을 생각하는 날이 많아지게 됐습니다. 그렇게 현재 제가 있는 이곳, 서천으로 오게 됐습니다. 주변의 모든 것이 바뀌게 되니 전과 같은 주제의 작업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를 둘러싼 환경, 내가 놓인 상황에 대해 생각하며 작업 주제를 찾기 시작했으나 작업을 이어 나갈 수 없었습니다. 그리다가 지우고 다시 그리고 또 지우는 행위를 반복하다가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는 이곳, 자아와 타자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을 만큼의 관계를 발견하기 힘들었기에 내 눈 앞에 보이는 자연에 주목하게 됐습니다. 전에는 그저 여행으로 가 뭔가 보고 즐기는 풍경에 지나지 않았던 그런 장면들 속에 이제는 제가 존재하게 된 것입니다.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보며 즐기고 감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는 그 속에서 저만의 장소를 찾아야만 했습니다. 

# ARCHIVE 

 

△ Landscape 21.2X33.4cm Acrylic on Canvas 2022
△ Landscape 21.2X33.4cm Acrylic on Canvas 2022

LANDSCAPE

기존에 가지고 있던 풍경화의 이미지를 버리기 위해 시도했던 작품 중 하나입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어떤 식으로 살릴 수 있을까, 나만의 표현을 찾기 위해 던졌던 질문 중 하나의 답이 될 수 있었습니다. 

△ 나무들 97.0X130.3cm Acrylic on Canvas 2023
△ 나무들 97.0X130.3cm Acrylic on Canvas 2023

나무들

이 작업은 ‘나무들’ 시리즈 작업 중 하나입니다. 귀촌 후 마을과 좀 떨어진 다세대 주택에 살게 됐는데 집 앞에 초심자도 등산하기 좋은 낮은 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종종 등산을 하게 됐고 다양한 자연의 생김새에 대해 관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습니다. 멀리서 바라보던 풍경 속으로 들어온 듯 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나무들’ 시리즈는 등산 중 수집한 이미지로부터 시작됐습니다. 

천안에 위치한 갤러리현에서의 개인전을 준비하며 작업한 이 작품은 가장 최근에 완성한 작품입니다. 처음에는 하나의 큰 덩어리로만 보였던 것들에서 그 안에 있는 무엇인가가 조금씩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잘은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것이 하나의 덩어리가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정확히 나무를 그리고자 해서 그린 건 아닌 것 같습니다. 그저 그 안에 있는 것들을 보려고 노력하고 보였던 것들을 표현하고자 했습니다.

제가 그리고 있는 자연은 어쩌면 단지 풍경Landscape이 아니라 제가 속한 상황을 의미하는 거 같습니다. 어제까지 그저 풍경이었던 이 공간이 오늘은 제가 살아가야만 하는 삶의 터전이 됐습니다. 그러나 이제까지 풍경을 그려본 적도 없고 작업 주제로 생각해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어떠한 마음으로 내 눈앞에 펼쳐진 자연을 담아내야 할 지 막막했습니다. 먼저 기존에 가지고 있던 이미지로서의 풍경화를 버리는 것부터 시작한 것 같습니다. 스스로 연구하거나 그려본 적이 없었기에 풍경을 그린다는 행위나 풍경화에 대해 가지고 있던 선입견이 많았습니다. 고착화된 이미지를 덜어내는 작업이 이뤄지고 난 후에 저만의 스타일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생활면에서는 집도 구하고 열악하기는 하지만 작업실도 생기고 먹고 살기 위한 일도 찾게 됐습니다. 생활이 조금씩 안정이 되니 작업에도 진전을 보였습니다. 그렇게 현재에 이르게 됐습니다. 

# ARTIST STORY 

△ 유리나 작가<br>
△ 유리나 작가

처음에는 한 덩어리처럼 보였던 것들이 조금씩 익숙해지니 그 안에 있는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제부터는 그 속에서 나만의 아름다움을 찾아 작업을 이어 나가고 싶습니다. 일상의 한 부분이라 매우 익숙해 느낄 수 없었던 것, 더 작고 작은 것, 그런 것들을 발견하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더 잘 알고 연구해야 하겠죠? 그것이 저의 목표입니다. 나를 둘러싼 상황에 대한 더 심도 깊은 이해.

저를 둘러싼 환경, 제가 속해 있는 상황은  언제나 저의 작업 주제가 될 것입니다. 지금은 제가 살고 있는 이곳에 대해 더 연구하며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자 합니다. 귀촌한지 벌써 3년이나 되었지만 아직도 때로는 낯설게만 느껴집니다. 익숙함과 낯섦이 공존하는 이 순간이 길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이 순간을 즐기며 충분히 생각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으로부터 발생할 변화를 찾아가고 싶습니다.  


ART CRITICISM  

유리나 작가는 자연을 추상적인 이미지로 압축해 최소한의 형태의 미학을 추구하는 아티스트다. 주로 회화작업을 매체로 다루며 ‘보여지는 대상’의 실체로부터 사물의 본질을 파악하고 형태를 구조화시키는 작업을 진행한다. 유리나의 회화는 하나의 덩어리이다. 바람과 빛에 따라서 변화하는 자연의 풍경에서 추상적인 단면의 아름다움을 포착한다. 그 사이 색채 간의 움직임의 파동은 반복적이고 획일적인 패턴의 간결함으로 편안하게 시선을 고정시킨다. 작지만 울림이 큰 붓질의 흔적들로부터 유리나는 자연의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게 한다. (김선 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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