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후 시행, 의원·약국 등은 2년 유예
중계기관 선정 등 세부사항 놓고 이견차 여전
의협 “최악의 경우 자료 제공 안 하는 보이콧”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10회국회(정기회) 제9차 본회의에서 실본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의원 225명 중 205명의 찬성을 얻어 통과됐다.  [사진제공=뉴시스]
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410회국회(정기회) 제9차 본회의에서 실본보험 청구 간소화 법안(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재석 의원 225명 중 205명의 찬성을 얻어 통과됐다.  [사진제공=뉴시스]

【투데이신문 강현민 기자】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한 가운데 의료·시민단체의 반발이 나오고 있다. 1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대행기관 선정에 대한 이견차를 비롯해 위헌소송 예고까지 나오면서 개정안 시행까지 험로가 예상된다.

국회 금융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6일 국회 본회의에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를 핵심으로 한 보험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이 통과했다. 지난 2009년 국민권익위원회가 제도개선을 권고한 이후 14년 만에 관련 법안이 통과한 것이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은 환자 요청이 있는 경우 병원이 보험사 전산에 환자의 자료를 보내도록 하는 법이다.

개정안 시행에 따라 병원이나 약국 등 요양기관은 환자 요청이 있을 경우 보험금 청구에 필요한 서류를 보험회사로 전송해야 한다. 

개정안은 정부의 법률 공포 절차를 거쳐, 1년 뒤인 내년 10월부터 본격 시행될 예정이다. 다만,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의원급 의료기관과 약국 등의 경우 2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그동안 실손보험금을 청구하려면 보험 가입자가 필요서류를 일일이 확인한 뒤 병원에 직접 방문해 서류를 발급받고, 이를 다시 보험사에 제출하는 식으로 이뤄졌다.

이런 방식이 번거롭고 복잡하다는 지적이 나왔지만, 개인 정보 유출을 비롯해 관계 단체간 이견차로 마찰음을 빚으면서 14년 동안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개정안이 국회 본회를 통과하면서 9부 능선은 넘었지만, 의료단체와 환자단체의 거센 반발로 개정안 시행 전까지 추가 진통이 예고된다.

의료계에선 법적 다툼을 비롯해 최악의 경우 보험사에 정보를 제공하지 않는 보이콧까지 시사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대한병원협회·대한치과의사협회·대한약사회는 지난 6일 성명을 내어 “보험업법 개정안의 의료법 상충 문제 등 별도의 법률 검토로 위헌소송을 진행할 것”이라고 예고했다.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안이 의사가 아닌 다른 이들에게 환자의 진료 정보를 열람 및 제공을 제한하는 의료법과 충돌할 여지가 있다는 주장이다.

전송대행기관(중계기관) 선정을 둘러싼 의료업계와 보험업계간 이견차도 향후 쟁점이다.

개정안에는 청구 전산화를 위한 시스템 구축과 운영 의무는 기본적으로 보험회사가 지지만, 보험회사는 중계기관에 구축과 운영을 위탁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중계기관이 보험사를 대신해 시스템 구축이나 운영을 맡는 만큼 이해관계 충돌 여부가 기관 선정의 핵심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앞서 중계기관으로 거론된 곳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보험개발원이었다. 그러나 각각 비급여 진료 내역 제공에 따른 비급여 진료비 통제와 민간 보험사에 영향받을 수 있는 단체라는 우려가 나오면서 기관 선정은 향후 정부 시행령으로 정하는 것으로 미뤄졌다.

개정안에 따르면 전송대행기관은 공공성·보안성·전문성 등을 고려해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이들 기관이 업무 수행 과정에서 얻은 정보와 자료를 업무 외의 용도로 사용하거나 보관할 수 없도록 하고, 이를 위반한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는 등 처벌 조항도 마련됐다. 

의료계는 관의 성격을 가진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보험료율을 정하는 보험개발원이 대행기관으로 선정되는 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다. 향후 의료·보험 업계로 구성된 공동위원회는 관련 내용을 의논할 계획이다. 의료계 반대 입장이 분명한 만큼 어떤 기관이 중계기관으로 선정될지 미지수다.

이와 관련해 대한의사협회 김이연 홍보이사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이미 개별 의료기관에서는 핀테크나 보안업체 등 전송업체들과 계약을 맺어 서류 제출을 간소화하고 있는 곳이 존재한다”면서 “굳이 이해관계가 있을 수 있는 기관을 중계기관으로 선정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 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중앙집권적 구조체로 정보가 들어갈 수록 조작적으로 정보가 이용될 확률이 높아질 수 있다. 이런 리스크를 분산시켜, 필요한 시점에만 정보를 사용하고 폐기하는 등의 블록체인적 모델도 있다”는 대안도 제시했다.

향후 위원회가 열리면 중계기관 선정 건을 시작으로 예상되는 부작용 등을 논하고 세부 사항을 협의하겠다는 입장이다.

환자단체에선 환자 개인정보 유출 우려와 함께 환자 정보 데이터화로 인해 질병 위험이 높을 것으로 추정되는 환자들의 보험 가입 거절, 부담보 설정 등 악용 소지가 있다는 입장이다.

환자단체인 한국암환자권익협의회·한국루게릭연맹회·한국폐섬유화환우회·한국다발골수종환우회 의료민영화 저지와 무상의료 실현을 위한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환자 개인 정보가)유출, 악용, 오용되더라도 처벌은 솜방망이이고 처벌 하한도 없다”면서 “민영보험사들은 기대 수익에 비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할 벌금, 과태료 쯤은 겁내지 않을 것”이라 지적했다.

또한 “‘실손보험 청구 간소화법’이라는 악법의 국회 통과는 민영보험사들의 국민건강보험 대체라는 궁극적 목표, 즉 의료 민영화로 커다란 한 걸음을 내딛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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