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데이신문 박세진 기자】 지난 3개월 간 발길이 잘 닿지 않는 미기항 도서의 오래된 삶을 지켜봤다. 구부정한 허리와, 느릿한 걸음걸이의 백발의 노파. 그리고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 같은 집. 자본의 논리로 인위적으로 빚어낸 우리들의 ‘어색한 레트로’와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이곳에는 그간 볼 수도, 접할 수도 없던 녹진한 삶의 흔적이 켜켜이 붙어있었다.
외딴섬에 나고 자란 이들의 오래된 삶의 포장을 조심스레, 그리고 천천히 벗겨봤다. 수줍은 듯 애써 자랑해 보이는 ‘좋은 공기’와 ‘아름다운 풍경’과는 거리가 먼 상처투성이의 속살이 보였다. 그리운 이를 쉽사리 볼 수 없는, 몸 한편이 아파도 꾹 참아내야 하는, 이밖에 모든 서러움을 그저 품고 살아야 하는 고단했던 삶이었다.
어디 이뿐인가. 어떤 이는 빗물 새는 지붕을 멍하니 바라만 보기만 했다. 도움을 요청할 곳조차 알지 못하니, 그저 바라만 볼 수 밖에. 또 평온했던 삶을 흔드는 범죄에 노출돼도 그저 못 본채 눈을 감을 뿐이다. 이어 돌아올 보복이 두려워 입을 꾹 다문다. 이들은 외딴섬에 산다는 이유로 모든 것을 참고 산다. 고달픈 삶이다.
집회를 열거나, 시위를 하거나, 민원을 제기하거나, 제보를 하는 등 약자가 강자를 상대하는 법은 다양하다. 이 많은 방법을 두고 싸우는 방법조차 모르는 이들이다. 자신이 살아온 삶이 얼마나 부당한지조차도 모르는 무력한 사람들을 앞에 두고, 사사로운 감정을 누르기란 여간 쉬운 일이 아니다.
숱하게 외면받아 왔을 외딴섬 속 그들의 말을 그저 귀담아듣고, 온전히 써내려 가는 것. 이 작은 행위가 기자가 마주하는 이들에게 줄 수 있는 자그마한 위로다. 기사가 출고된 이후 조금이라도 이들의 삶이 달라지길, 나아가 세상이 바뀌길 바라는 것이 기자가 할 수 있는 전부다.
불행 중 다행으로 기사가 발행된 이후 이 외딴섬의 생활이 작게나마 나아졌다는 소식을 접했다. 지자체 차원에서 긴급예산을 편성해 봉사단을 투입했다는 후문이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문자 메시지 알람이 정적을 깬다. ‘기자님 기사 작성하느라 참 고생하셨습니다’. 기사를 잘 읽었다는 지자체 관계자의 이야기이다.
이 응원 섞인 문자를 두고 잠시 생각해 본다. 고생의 경중을 따지기란 여간 어려 일이 아니지만, 이번만큼은 그 무게를 애써 저울질하고 싶다. 그간 긴 세월 동안 묵묵히 견뎌온 주민들의 버거웠던 삶을 앞에 두고, 정녕 이 문자를 받아야하는 수신자는 과연 누구일까. 불편한 고민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작은 섬 곳곳 취재가 끝날 때마다 수십 년간 그 곳을 지킨 노파와의 작별은 매번 힘들었다. 불편한 몸으로 멀리 나올 필요 없다고 애써 만류해도 기어코 손주 같다며 기자를 배웅하는 따뜻한 사람들이었다. 김중석의 시 ‘식당에 딸린 방 한 칸’의 ‘나를 닮아 있거나 내가 닮아 있는 힘 약한 사물을 나는 사랑한다’라는 구절을 곱씹는다. 다시 한번 외딴섬의 그들은 떠올린다. 오늘은 외롭지 않고, 소외되지 않고, 안녕하길 바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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