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어 지켜야 할 국가 의무 있지만…현실 한계
주류 문화 속 파고드는 사투리 활용 사례 주목
네이버 사전, 단어 발음 서비스에 ‘사투리’ 추가
드라마·문학 콘텐츠에도…“혼저 혼저 오라게!”
“사투리는 지역 문화 담을 수 있는 하나의 그릇”

‘역서사소’가 사투리를 살려 제작한 선물 봉투. 초록색 문구는 ‘아이 가득 담았다니까’, 빨간색 문구는 ‘너무 축하해요’, 검은색 문구는 ‘당신과 함께 해서 참 좋다’ 정도의 뜻.  ⓒ역서사소
‘역서사소’가 사투리를 살려 제작한 선물 봉투. 초록색 문구는 ‘아이 가득 담았다니까’, 빨간색 문구는 ‘너무 축하해요’, 검은색 문구는 ‘당신과 함께 해서 참 좋다’ 정도의 뜻. ⓒ역서사소

【투데이신문 정인지 기자】 #사투리: 어느 한 지방에서만 쓰는, 표준어가 아닌 말(표준국어대사전)

#표준어: 교양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재 서울말로 정함(문화체육관광부 고시 표준어규정 제1장 제1항)

교양있는 사람들이 쓰는 말. 그리고 그 반대. 이는 각각 ‘표준어’와 ‘사투리’의 정의다.

국어기본법 제4조에 따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지자체)는 지역어 보전을 위해 노력해야 할 의무가 있지만, 수도권 쏠림 현상과 지방 인구 고령화 현상으로 해결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여기에 사투리 사용을 웃음거리 삼거나 ‘서울 왔으면 사투리는 고쳐야지’ 등 은근한 핀잔을 주는 경우도 많다. 여전히 사투리는 비주류나 하위 문화로 인식하는 것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럼에도 사투리의 가치를 되새기고, 활용한 사례들이 연이어 나오고 있어 주목된다. 이제 사투리는 주류 문화 속을 파고들며 다양한 콘텐츠와 서비스, 상품 등으로 대중들과 만나고 있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사투리의 ‘특별함’에 주목한 사례를 소개하고자 한다. 

[사진제공=네이버사전 갈무리]
[사진제공=네이버사전 갈무리]

‘이 단어, 사투리론 어떻게 읽지?’

우선, 사투리에 학술적 가치를 불어넣은 기업이 있다. 단어를 각기 다르게 읽는 서로의 발음을 듣고, 추가하면서 자유로운 상호작용을 도운 것이다.

네이버는 기존 사전 기능에 지역별 사용자가 자신의 발음을 추가해 올릴 수 있는 기능을 지난 2021년 9월 도입했다. 단어를 검색하면 전문가의 표준 발음과 더불어 지역권 사용자가 자신의 발음을 자유롭게 추가하고, 모두가 공유할 수 있게 하는 것이다.

예컨대 ‘거북이’ 단어 발음을 듣고자 하면 전문가의 낭랑한 표준어 발음과 함께 ‘거북↗이’, ‘그북이’ 등 충청, 경상권 지역 사용자의 발음을 함께 들을 수 있는 식이다.

네이버 사전 및 악센티아(Accentia) 관계자는 “현실에서는 다양한 악센트와 발음이 있는데 표준발음만으로 공부했을 때는 한계가 있어 (이같은 서비스를) 고안했다”고 설명했다.

이 관계자는 또 “사투리를 포함해 다양한 악센트가 사라져가는 시대에 발음을 보존하는 데이터베이스(DB)로 작용할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설명했다.

악센티아의 초기 개발 목적은 해외로 나간 사용자들이 표준 발음과는 다른 현지의 발음을 함께 학습하기 위함이다. 이 취지가 국내까지 반영돼, 현재 서울·경상·강원·충청·전라·부산·제주 등 다양한 지역의 ‘원어민’ 발음을 들을 수 있다. 단어를 넘어 문장 단위까지 확대해나가면서, 보다 폭넓은 이해와 학습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이다.

‘한국형 챗GPT’로 불리는 네이버의 대화형 인공지능(AI) 서비스 ‘클로바X’도 사투리와 방언 등에 대한 설명을 정확히 제공하는 시범서비스를 지난 8월 24일부터 실시하고 있다. 이처럼 국어와 한국 문화·맥락에 특화한 서비스가 연이어 나오고 있다.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메인 포스터 ⓒtvN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 메인 포스터 ⓒtvN

“무사 맨날 늦엄시니?”…‘말맛’ 살린 드라마

사투리를 활용해 ‘말 맛’을 살린 콘텐츠들도 주목된다. 

지난해 6월 인기리에 종영한 노희경 작가의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는 제주도를 배경으로 한 등장인물들의 ‘사람 사는 이야기’를 전했다. 제주를 배경으로 한 만큼 주인공들이 적지 않은 양의 대사를 제주 방언으로 연기해 화제가 됐다.

방영 초반에는 방언에 대한 해석을 자막으로 내보냈다가, 이후 자막 없이 시청자가 자유롭게 이해하도록 유도했다.

다만 제주어가 어색하다는 비판도 있었다. 춘희 역을 연기한 고두심 배우를 제외한 나머지 배우들의 제주어 대사가 어색하다는 평이다. 이때 고두심 배우는 고향이 제주로, 이곳에서 태어나 고등학교까지 다닌 제주어 ‘원어민’이다.

다른 배우들은 제주어 레슨을 받아 연기한 것으로 알려졌다. 우리들의 블루스가 의미 있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완벽한 수준으로 사투리를 구사하지 못하더라도, 사투리의 존재를 인식하게 하고, 배우게 하고, 확산했기 때문이다. 

“혼저혼저 오라게! 무사 맨날 늦엄시니?

(“빨리빨리 와야지! 왜 맨날 늦니?”)

-<우리들의 블루스> 中-

방송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 충남대 국어국문학과 윤석진 교수는 “우리는 사투리라고 표현하지만 실은 ‘지역 언어’라고 보는 게 맞을 것 같다”면서 “그동안은 (지역 언어가) 기능적으로만 활용돼 아쉬웠다”고 했다.

그러면서 윤 교수는 전라도는 깡패와 단순 무식한 특성, 경상도는 과격함, 충청도는 느림 등의 특성으로 묘사돼 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통상적으로 사투리라고 얘기해왔던 것에 씌워져 있는 고정관념이 있다”고 지적했다. 사투리가 특정 지역의 기질·성향을 규정하는 데만 치중됐다는 것이다. 

이어 “이런 것들이 지역에 대한 편견과 감정들을 확대하고 재생산시켰던 문제들이 분명히 있었다”면서 이런 부분에 주의하면서 문화적 다양성을 회복하고 받아들여야 한다고 제언했다.

ⓒ도서출판 이팝<br>
ⓒ도서출판 이팝

어린왕자, 애린왕자된 사연…“기억할라꼬”

문학계도 이러한 노력에 동참하고 있다. 여기 언어 실험의 일환으로 《어린 왕자》를  《애린 왕자》로 만든 이가 있다. 도서출판 이팝 최현애 대표 이야기다.

애린 왕자는 생택쥐페리의 소설 어린 왕자를 경상도 버전으로 번역한 책이다. 번역을 맡은 최 대표는 실제 경상북도 포항 출신으로, 책 소개에 이렇게 적었다. ‘같이 놀던 얼라들 기억할라꼬 다시 써봤다’ 

“니 장미를 그마이 소중하게 만든 기는 니가 니 장미한테 들인 시간 때문아이가

“사람들은 이 진실을 이자뿐제.” 미구가 말해떼이. “그니까 니는 잊으모 안된데이. 니가 질들인 거에 니는 끝까지 책임이 있으이. 니는 니 장미한테 책임이 있는기라…

“나는 내 장미한테 책임이 있다카이…” 애린 왕자는 기억할라꼬 되풀이해따.

-<애린 왕자> 中-

그는 “서울말도 사실 하나의 방언이라고 할 수 있는데, 표준어와 사투리가 너무 극으로 구별되고 있는 것 같다”며 “이런 것들을 고민하다 학자가 아닌 작가로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생각한 결과”라고 밝혔다.

이어 “사투리는 지역 정서나 문화, 생활상을 담을 수 있는 하나의 그릇”이라며 “지역에도 이런 반짝이는 문화 콘텐츠가 있음을 새롭게 발굴하고자 했다”고 웃음지었다.

지역 문화를 중앙에서 물러난 비주류의 문화로 치부하기 보다는, 자체로 소중하게 봐야한다는 것이 최 대표의 설명이다.

초판 300부만 출간했던 《애린 왕자》는 SNS에서 큰 관심을 불러일으키며 증쇄 요청이 이어지면서 예스24 ‘어른을 위한 동화책’ 베스트셀러 TOP10에 오르기도 했다. 최 대표는 지난 2020년 경상도 버전에 이어 2021년 전라북도 버전 《에린 왕자》를 출간하고 올해 강원도 버전을 출간 계획 중에 있다.

역서사소의 사투리 축하·감사 카드 ⓒ역서사소
역서사소의 사투리 축하·감사 카드 ⓒ역서사소

우리 언어 재밌는 부분 많아…‘오지게 축하허요’

학술적이거나 콘텐츠가 아니더라도, 우리 손에 쥘 수 있는 생활 속 문화가 된 사례도 있다. ‘오지게 축하허요’, ‘겁나게 감사한 이맴’ 등의 문구가 새겨진 카드를 판매하는 문구점, 역서사소는 광주에 위치해 지역민들의 표현을 오롯이 담아냈다.

역사소서는 각종 사투리 스티커와 엽서, 유리잔, 포장봉투 등도 제작해 판매하고 있다. 특히 사투리 달력은 한해에만 3000부나 팔리는 베스트셀러 상품이라고 한다. 

역서사소 김효미 대표는 “사투리는 지키고 보존해야 할 우리의 언어문화”라고 입을 뗐다.

김 대표는 “어떤 브랜드를 만들까 고민하던 차에 우리 언어도 재밌는 부분이 많은데, 대외적으로 미디어에서는 ‘깡패같은 말’만 비쳐지곤 해 아쉬웠다”면서 “언어는 그 자체가 역사고 문화”라고 짚었다.

이어 “사투리를 넣은 달력이나 봉투, 카드 등을 제작하며 지역 문화를 이어가는 의미를 느꼈고 또 이 문구들이 전승되면 새로운 삶이 될 것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사투리를 지키는 데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모두가 똑같이 말하는 건 재미없는 일”

이처럼 사투리는 문화적 가치와 전승적 가치, 경제적 가치까지 창출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다양성 존중’이라는 전문가 의견이다.

한국방언학회 회장과 문체부 국어심의회 심의의원을 역임한 경북대 국어국문학과 김덕호 교수는 “방언이 왜 중요할까 생각해보면 물론 표준어를 배워 쓰긴 하지만 지역민들은 그 언어를 통해 소통하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김 교수는 “표준어 사용을 주장하는 학자들은 ‘말이라는 건 소통을 목적으로 하기 때문에 동일해야 한다’고 하실 지 모르지만, 말도 일종의 문화인데 똑같이 배워 쓰는 건 너무 재미없는 일 아니겠나”고 언급했다.

제주에 가면 제주의 말투를 듣고, 강원에 가면 자연히 강원의 말투를 들으며 지역별 정서가 다양하다는 걸 느끼는 것이 의미 있다는 게 김 교수의 설명이다.

김 교수는 “(사투리는) 사용하는 지역민들에게는 방언에 대한 애착심과 애향심을 기르게 하고, 다른 지역 주민에게는 존중과 화합을 배우게 한다”며 “소중함과 중요함을 기억해 다양한 방식으로 보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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