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지난 10월 9일은 제577돌 한글날이었다. 이번 한글날이 월요일인 덕분에 시민들은 추석 연휴와 임시공휴일에 이어서 그다음 주 월요일도 휴일을 즐길 수 있었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사실 한글날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날과 일치하지 않는다. 『세종실록』 기록상 훈민정음(訓民正音)이 창제된 날은 1443년(세종 25년) 12월이었고, 완성된 날은 1446년(세종 28년) 9월이었다. 한글날은 1926년에 음력 9월 29일로 지정된 ‘가갸날’이 그 시초였는데, 이것은 훈민정음이 반포된 날을 헤아린 것이었다. 이후 가갸날은 1928년 한글날이라고 그 명칭을 바꿨다. 그런데 훗날 훈민정음의 해례본 원본이 발견되었고, 정인지(鄭麟趾)가 작성한 해례본의 서문에 “세종 28년 9월 상순”이라고 적혀 있었다. 여기에 양력 기준으로 한글날을 다시 계산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지정된 날짜가 10월 9일이었다. 참고로 ‘한글‘이라는 이름은 일제강점기 주시경 선생이 지었다.

사실 한글과 한글날에는 많은 굴곡이 있었다. 그리고 이 굴곡은 한글이 가지고 있는 위상과도 연계된다. 우선 한글날의 굴곡은 휴일 지정과 관련이 있었다. 1991~2012년까지 22년 동안 한글날은 휴일이 아니었다. 10월에 공휴일이 너무 많다는 이유로 1991년에 공휴일에서 제외됐는데, 한글날을 국경일로 재지정하라는 시위까지 발생하면서 2005년에 한글날은 다시 국경일로 지정됐다. 그러나 휴일은 아니었다. 이후 2009년에 한글날을 다시 공휴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노동시간 감소를 우려한 경제 단체부터 경제 관련 기관인 당시 지식경제부와 기획재정부까지 반대하면서 휴일로 지정되지 못했다. 특히 이 당시에는 주5일 근무제도 도입이 한글날 휴일 지정의 가장 큰 벽이었다. 이후 한글날은 2012년에 다시 휴일로 지정됐다. 결국 한글날 휴일 지정은 한글의 의미보다 경제 논리가 더 강하게 작용했음을 의미한다.

한글은 처음 만들어진 이후 한글은 소리글자라는 뜻의 ‘언문’, 여자나 쓰는 글자라는 ‘암클’이라는 비하의 뜻이 담긴 별칭으로 일컬어졌다. 이후 일제강점기 민족말살정책으로 인해 한글은 최대 위기를 맞이했다. 해방 이후 1990년대에 한글의 위상에 대한 많은 의심이 있었다. 민주화 이후 해외여행이 자유화되고, 이후 출범한 김영삼 정권이 내세운 ‘세계화’로 인해 한글보다는 영어가 더 강조됐다. 이로 인해 한글어로 말을 잘 하고 한글로 글을 잘 쓰는 것보다 영어를 얼마나 유창하게 하는지가 더 중요해졌다.

또한 한글 안에 존재하는 한자어들도 종종 논란의 대상이었다. 한자어를 한글에 포함해야 하는지 여부, 한자어로 쓰는 것보다는 순수 우리말을 쓰는 것이 더 훌륭하다는 주장과 이에 대한 반발 등으로 한글 속의 한자어는 가끔 논란의 대상이 됐다. 또한 한때 한글 이름이 각광받은 적이 있었는데, ‘한글 이름을 쓰면 노인이 되었을 때 그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어울리겠냐?’라는 비아냥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초중등 교육에서 한문 교과목이 없어졌다. 이로 인해 지금 소위 ‘MZ세대’에게 한문은 매우 생소한 문자가 되었다. 이러한 모습은 최근 “심심한 사과”를 비롯한 MZ세대의 문해력에 관한 논란으로 이어졌다.

사실 한글에는 매우 심오한 의미가 있다. 한글의 구조가 하늘, 땅, 사람을 뜻하고, 이것은 한글 안에 당대의 우주관을 담고 있다는 뜻이라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또한 훈민정음 서문에 자기 의사를 전달하고 싶어도 한자를 몰라서 제대로 그 뜻을 전달하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긴 세종의 애민정신이 담긴 문자라는 것도 유명하다. 그런데 글자를 쉽게 알 수 있다는 것이 자신의 뜻을 펼치는 것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

세계 문명에서 큰 의미가 있지만, 지금은 잘 쓰이지 않는 대표적인 문자가 두 개 있다. 바로 한문과 라틴어다. 그리고 이 두 문자는 당대의 핵심적인 사상인 유교와 기독교와 연결돼 있다. 중세 유럽에서 라틴어를 알고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가톨릭 성직자와 일부 왕족, 귀족들뿐이었다. 이들은 기독교의 교리 내용을 독점하고 자기들 마음대로 해석하면서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했다. 이후 구텐베르크(Johannes Gensfleisch zur Laden zum Gutenberg)에 의한 인쇄술 발전,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가 목숨을 걸고 했던 라틴어 바이블의 독일어 번역이 결합해 종교개혁이라는 대사건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즉 인쇄술 발전을 기반으로 대량으로 인쇄된, 피지배층이 아는 언어인 독일어로 쓰인 바이블을 읽은 귀족들과 피지배층이 바이블을 접하고, 당대 기득권 세력인 가톨릭 성직자들이 바이블의 가르침과 다른 행태를 보였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들을 향한 저항이 이어진 것이다.

세종이 새로운 글자를 만들겠다고 할 때 반대에 직면했던 것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성리학의 세계관인 화이(華夷)의 세계관을 명분으로, 아름다운 중국의 글자가 있으니 굳이 동이(東夷)만의 새로운 글자를 만들 필요가 없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글자 하나가 다양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한자의 아름다움도 핑계가 되었다. 그러나 실제로 이들이 염려했던 것은 자신들이 열심히 공부해서 독점하고 있는 성리학 지식이 백성들에게 퍼져서 자신들의 기득권이 흔들리는 것이었을 수도 있다. 전형적인 엘리트 중심의, 신분제에 입각한 사고방식이었다.

한글날을 전후해서 충격적인 사건들이 있었다. 여성가족부장관 후보자인 김행 후보자가 청문회 막바지에 줄행랑을 쳤다. 국회의 국민을 대표하는 기능과 행정부를 견제하는 기능을 무시한 사건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또한 현 정부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가짜뉴스심의전담센터를 만들어서 지상파 방송이 아닌 유튜브를 비롯한 인터넷 방송까지 들여다보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물론 이러한 행태는 향후 정권이 바뀐다면, 그대로 현 여당과 수구세력들에게 부메랑으로 돌아갈 수 있다. 국회를 무시한 김행 후보자의 행태, 그리고 그것을 비호하는 여당과 정부, 수구세력이 집권에 실패해서 청문회에서 똑같은 상황을 맞이한다면, 뭐라고 대응할 것인가? 진보개혁세력이 집권했을 때 유튜브의 가짜뉴스를 들여다보겠다고 한다면, 지금 유튜브에서 수익을 창출하는 수구 유튜브 채널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인가?

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한글을 창제한 것은 백성들이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하고, 조정의 생각을 여과없이 전달 받아서 반응할 수 있게 한다는 애민정신이 담겨있다. 그런데 현 정부와 여당, 수구세력은 국민의 대리인인 국회를 무시하고, 시민들이 자신의 뜻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유튜브를 단속하겠다고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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