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새로운 학기가 시작되면서 필자가 재직 중인 상지대가 소재하고 있는 원주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졌다. 그런데 곳곳에 “영화 <치악산>의 상영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플래카드가 걸려 있었다. 그 플래카드에는 강원도의 한 도의원 이름이 적혀있었다. 뉴스를 살펴보니 원주시에서 영화 <치악산>의 상영금지 가처분에 나선다는 기사가 쏟아졌다. 그 내용은 영화가 원주에 소재한 국립공원인 치악산에서 토막 난 시체가 발견되었다는 ‘치악산 괴담’(실제로 이런 사건은 없었다)을 소재로 했고, 이로 인해 원주의 지역 고유 관광상품과 원주시 이미지에 타격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이에 원주시 측이 영화 제작사에 제목 변경, 영화에서 <치악산>이라는 대사가 나오는 부분의 삭제, 비공식 포스터 삭제 등을 요구했고, 이것을 제작사에서 받아들이지 않자 원주시 측이 법적 대응을 불사한다고 전해진다.

필자는 원주 시내에 나부끼는 포스터와 각종 뉴스를 접하면서 조금 의아한 느낌을 받았다. ‘원주가 영화 하나 때문에 이미지가 실추되는 도시가 아닌데, 그렇게 자신이 없나? 원주시와 국민의힘 소속 도의원이라는 사람은 도대체 영화를 홍보하는 것인가? 아니면 자신을 홍보하는 것인가?’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원주는 참 다양한 색깔을 가진 도시다. 남북국시대 신라의 5소경 중 하나였고, 조선조에는 지금의 도청소재지에 속하는 강원감영이 있었던 과거 대도시이자 긴 역사를 품은 도시다. 정의구현전국사제단 발족의 계기가 된 지학순 신부가 원주교구의 주교였고, 근래에 많은 수가 만들어진 ‘협동조합운동’이 시작된 근현대사에서도 의미 있는 도시다.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30위권에 속하는 30만명이 넘는 인구를 가진, 강원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도시이면서, 강원도에서 인구가 증가한 몇 되지 않는 기초자치단체다. 혁신도시와 기업도시를 모두 유치한 도시, 삼양라면, 만도 한라 등 큰 기업의 공장이 있는 산업도시, 육군 제1군사령부가 소재한 군사도시, 세 개의 고속도로와 KTX가 통과하는 동시에 공항도 있는 교통의 요지다. 또한 복숭아와 자체 브랜드 쌀이 생산되는 농촌을 포함한 도시다. 그리고 치악산국립공원, 간현관광단지를 비롯한 관광 자원을 가진 관광 도시이기도 하다. 필자는 원주시 측이나 그 도의원이 영화 하나 때문에 도시의 이미지가 실추된다고 판단한다면, 이들이 국민의 의식 수준을 너무 우습게 보는 처사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문득 ‘영화 <곡성> 때문에 곡성군의 이미지가 실추되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영화 <곡성>에 관해서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다. 한국 영화사에서 위대한 영화 중 하나고, 공포영화로 한정한다면 손가락 안에 꼽히는 영화일 것이다. 700만명에 가까운 관객을 불러 모았고, 백상예술대상과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작품상 수상을 비롯한 다양한 수상 이력을 보유한, 그리고 ‘뭣이 중헌디?’라는 대사가 아직도 회자되는 영화다.

영화 <곡성>이 상영되었을 때 곡성군 측에서도 지역의 이미지 실추를 염려했다. 영화의 제목과 지자체의 이름이 같고, 실제 촬영도 곡성군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영화 개봉 직전에 제목을 바꿔야 한다는 항의가 빗발쳤고, 영화의 제목도 곡성(谷城)이 아닌 ‘곡성(哭聲)’으로 결정되었다. 그런데 군민들의 항의에 당시 곡성 군수였던 류근기 군수가 “역발상으로 곡성을 전국에 알리는 계기로 삼자”며 분위기를 반전시켰다. 그리고 영화가 개봉된 해에 인구가 3만명인 곡성에 126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했다.(권경안, 「진짜 곡성은 웃고 있다」, 『조선일보』, 2016.05.30.일자 기사.)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한 곡성 군민이 인터뷰에서 “영화 덕분에 우리 동네가 떴다”라고 밝히거나, 지역 주민이 외지 사람에게 영화 보고 왔냐고 묻는 사례도 있었다. 영화 <곡성>을 본 뒤 곡성군을 검색하다가 축제가 열린다는 것을 알고 곡성에 관광을 왔다는 사람도 있었다. 주말에 곡성 인구보다 많은 4만명의 관광객이 방문했고, 영화 상영 직후 곡성에서 열린 장미 축제가 큰 흥행을 이루었다. 영화 <곡성>의 촬영지도 관광 명소가 되었는데, 이것을 계기로 곡성이 영화 <곡성>처럼 어두운 이미지가 아니라 외할머니 품처럼 따뜻한 곳이라는 마케팅 포인트도 생겼다. 심지어 극장이 없는 곡성군에서 영화사 측과 협의해서 특별히 영화 <곡성> 상영회도 열었다.(천권필, 「“영화 땜시 마이 떴제” 주말 곡성 인구보다 많은 4만 명 찾아」, 『중앙일보』, 2016.05.28.일자 기사.)

영화 이름에 지역명을 사용하는 사례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공포영화에 지역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쉽지 않다. 아무래도 지역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것을 우려하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지명을 사용한 공포영화와 관광 사이의 관계를 소재로 한 연구논문도 등장했다. 주요 내용은 영화 감상 여부가 관광의 동기에 일정 부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었다.(임지은, 강재완, 「공포영화 촬영지의 정서적 이미지가 관광의도에 미치는 영향 - 영화‘곡성’과 전라남도 곡성군 사례를 중심으로 -」, 『관광학연구』, 제42집, 한국관광학회, 2018.)

필자는 원주라는 도시의 이미지가 영화 하나 때문에 실추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 역사, 문화, 교통, 관광 등 다양한 매력과 역량을 가지고 있는 도시가 영화 하나 때문에 무너질까? 차라리 지자체와 정치인들이 지금까지 원주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제대로 알리지 않았는지 여부를 검토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오히려 주차장 20면을 만든다고 근현대유산인 ‘아카데미극장’을 철거하는 몰역사적 행정, 선거를 앞두고 영화를 빌미로 자신의 이름을 알리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 원주를 기반으로 둔 도의원의 욕망이 원주의 이미지를 더 실추시킨다고 생각한다.

필자는 A4 두 면이 되지 않는 칼럼을 쓰기 위해 몇 시간 동안 기사와 논문을 검색하는데, 원주시와 원주의 정치인들은 영화 <치악산>에 대응하는 정책 하나를 결정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했는가? 무엇보다도 영화 <치악산>은 아직 상영도 되지 않았고 수작(秀作)인지 졸작(拙作)인지도 모른다. 영화 <곡성> 이상의 수작이라면 원주시에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졸작이라면 영화가 주는 영향력이 적어서 원주시에 미치는 영향이 미미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합리적이지 않을까? 원주에서 먹고사는 입장에서 기왕이면 영화가 <곡성> 못지않게 수작이고 흥행에 성공해서, 관광객이 좋은 교통을 이용해 원주에 더 많이 찾아왔으면 좋겠다는 작은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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