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어김없이 휴가철이 지났다. 이번 휴가는 휴가철의 절정기인 8월 10일을 전후해 태풍 ‘카눈’이 한반도를 통과하는 바람에 맥이 빠진 측면이 조금 있었다. 지면을 빌어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분들이 빨리 일상을 회복하길 기원한다.

그런데 여기에서 ‘왜 한국의 휴가철은 여름일까?’라는 의문이 든다. 유럽과 미국의 경우 여름 휴가도 있지만, 겨울인 연말연시도 일종의 휴가철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휴가=여름’이라는 일종의 고정관념이 있다. 물론 예전보다 회사의 복지가 늘어난 현대 사회에서는 (각각의 재직 연수에 따라 다르지만) 여름 휴가 외에도 다양한 시기에 휴가를 사용할 수 있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여름 휴가가 대세처럼 보인다. 휴가 얘기를 하면 의외로 ‘역법(曆法)’, 즉 하늘의 주기적 현상을 기준으로 해 한 해를 비롯한 시간의 단위를 정하는 방법의 변화상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올해를 ‘2023년’이라고 부른다. 이것은 서기(西紀), 즉 ‘서력기원’ 기준으로 헤아린 것이다. 서력기원은 지극히 특정 종교 중심의 역법이다. 예수가 태어난 해를 기준으로 셈을 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슬람에서는 이슬람 기준의 역법을 사용하고, 왕이 존재하는 일본은 서기와 연호를 함께 사용한다. 한국은 석가탄신일이 되면 ‘불기’를, 개천절이 되면 ‘단기’라는 말을 그야말로 “난데없이” 사용하고, 그 외에는 보통 서기를 사용한다. 물론 서기와 자기 종교 나름의 역법을 함께 사용하는 수많은 신종교 종교인들과 무당들도 존재한다.

한국에서 서기를 처음 사용한 것은 1896년이었다. 1895년 음력 11월 17일을 1896년 양력 1월 1일로 선포한 것이다. 또한 소위 ‘일주일’이라는 개념이 처음 들어와서, 일요일은 전체 휴일, 토요일은 반 휴일로 지정했다. 그 전까지 태양의 실제 움직임과 달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휴일을 정했는데, 이후에는 온전히 태양의 움직임을 기준으로 휴일을 정하게 됐다.(이창익, 「궁금한 민속-조선시대에도 공휴일이 있었을까?」, 민속소식, 290호, 국립민속박물관, 2023.)

역법의 변화는 필연적으로 휴일의 변화도 초래했다. 앞에서 인용한 글을 감안했을 때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요즈음의 ‘쉬는 날’은 1896년 이후에 정해졌음을 알 수 있다. 삼일절, 광복절, 어린이날, 현충일이야 대한민국 정부수립 이후에 정해진 날이고, 성탄절이야 예수의 생일이며, 신정이야 서력기원 기준 1월 1일이니 서력기원을 따르는 것이 무리는 없어 보인다. 추석과 ‘민속의날’, ‘구정’ 등 갖가지 먹칠을 당한 끝에 명절로 인정받은 설날은 우리의 전통 명절이니 음력을 기준으로 쉬는 것을 충분히 납득할 수 있다. 흥미로운 것은 개천절이다. 개천절은 단군이 고조선을 처음 세운 것을 기념하는 날이니만큼 음력을 사용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개천절은 처음 기념일로 지정됐을 때는 음력 10월 3일로 정해졌으나, 나중에 양력 10월 3일로 바뀌었다.

그렇다면 1896년 이전에는 휴일이 없었을까? 그렇지 않았다. 지금의 ‘일주일’과 다른 ‘순(旬)’, 즉 10일 단위의 시간 개념이 있었기 때문에 10일에 한 번은 휴일이 존재했다. 또한 음력 3월 3일 삼짇날, 5월 5일 단오, 9월 9일 중양절도 휴일이었다. 그런데 이것은 지배층, 특히 조정 관리들의 휴일이었다. 농업이 중추 산업이었던 근대 이전 사회에서 휴일은 농한기(農閑期)였다. 즉 파종을 시작한 시기부터 가을걷이가 끝나는 시기까지 몇몇 절기를 제외한 날은 대부분 일을 했다. 또한 양인(良人)에게는 병역의 의무가 있었기 때문에 농한기 뿐만 아니라 농사를 지을 때마저도 국방의 의무를 수행하는 경우도 많았다. 그나마 상인이나 공인의 경우에는 관공서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기 때문에 관공서의 휴일과 맞추었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휴가는 어땠을까? 조선의 관리들은 24절기 중 입춘과 동지에 정기 휴가를 받았다. 또한 조선 초기에는 3년 1회, 조선 중기 이후로는 연 1회 부모를 찾아뵙는 ‘부모방문휴가’가 주어졌다. 부모방문휴가는 부모님댁에 머무는 일주일을 기본으로 오가는 기간을 거리별로 차등해 추가로 지급했다. 예를 들어서 관리의 부모가 호남에 거주한다면 교통기간 15일을 더해서 22일을 부여했다는 것이다. 당상관 이상의 고위직에게는 부모나 조상의 산소 돌봄을 명목으로 하는 ‘소분’이라는 7일간의 휴가를 추가로 지급됐는데, 이것은 5년에 한 번씩 사용 가능했다. 이 외에도 부모의 장례, 자녀의 결혼, 배우자 상(喪), 문병, 본인의 질병 치료 등도 비정기 휴가 사유가 됐다. 비정기 휴가는 정사(呈辭)라는 문서를 제출하고, 이것을 승정원이나 관찰사를 통해 결재를 받아야 했다.(윤진욱, 「[기자시선] 조선시대에도 휴가가 있었을까?」, 『사이드뷰』, 2020년 08월 22일자 기사) 흥미로운 것은 정기 휴가와 병가는 별도의 서류를 제출하지 않았다는 점인데, 황희(黃喜, 1363~1452)의 병에 따른 사직 요청을 세종이 계속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것은 새삼 놀라운 일이다.

과거의 휴가는 오늘날의 휴가와 그 성격이 좀 달랐다. 오늘날이야 교통이 발달해 있고, 해외로의 출국이 비교적 자유로워서 전국의 휴양지, 그리고 해외로 휴가를 떠나는 일이 많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근대 이전은 휴가를 대부분 집에서 보냈다. 왕 역시 휴가를 위해 멀리 떠나는 일이 많지 않았고, 궁에서 휴가의 대부분을 보냈다. 궁 밖에서 휴가를 즐기더라도 기껏해야 근처의 온천이나 사찰에 가는 것이 전부인 수준이었다. 왕 이하의 관리들 역시 집에서 휴가를 보내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실제 기록들을 보면, 신하들이 금강산을 비롯한 절경을 방문하는 행위는 관직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 이뤄진 것이 대부분임을 확인할 수 있다.

그래도 과거와 현재의 휴가에서 공통점이 있다. 그것은 바로 중앙 관청의 휴가와 연계해 휴가를 가는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결국 오늘날 여름철에 휴가가 여름에 집중되는 현상은 더위를 피하는 것, 학교의 여름방학 등 다양한 이유가 있지만, 중앙 관청의 휴가가 집중돼 있다는 점도 큰 원인이다. 올해 대통령, 양당의 대표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휴가를 떠났다. 국회의원도 정기국회 회기 전인 8월에 휴가를 떠난다. 사법부 역시 8월에는 상당수가 휴가를 떠나서 8월은 공판이 많이 열리지 않는 달이다. 입법, 행정, 사법부가 8월에 휴가를 떠나니, 여기에 휴가를 맞추는 민간 기업들도 많아질 수밖에 없다. 휴가를 맞이해 휴가와 관련된 역사를 살펴보는 것으로 잠시 머리를 식히는 계기가 됐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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