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지난 23일은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한지 14년째 되는 날이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난 지 이미 강산이 한 번 변하고 또 반 가까이 더 변한만큼의 시간이 흘렀다. 필자 역시 본 지면을 통해 수 차례 노무현 대통령을 언급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일을 맞아 올해도 변함없이 추도식이 있었다. 이번 행사에는 김진표 국회의장, 한덕수 국무총리 등 입법부와 행정부를 대표하는 인사들을 비롯해 여야의 당대표, 특히 야당 지도부 전원, 경상남도 도지사, 경상남도 지역 지방자치단체장이 참가했다. 그리고 노무현 재단의 역대 이사장이 모두 참여했다. 아울러 노 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자 동지이자 전직 대통령인 문재인 평산책방 책방지기, 최근 석방된 노 전 대통령의 비서 김경수 전 경남남도 도지사도 참석했다. 필자에게 흥미로웠던 점은 이번 추도식의 사회자였던 김여진 아나운서가 가장 먼저 소개한 내빈은 4000여명의 시민 참가자들이었다는 점이다. 일반 시민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던 노무현 재단의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 14기 추도식의 주제는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였다. 이 주제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저서 〈진보의 미래〉에서 따온 말이다. 사람들에게는 역사의 흐름이 매우 느리게 느껴지지만, 조금씩 좋은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이 핵심적인 내용이다.

우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이러한 주장은 맞을까. 필자는 일단 ‘진보’라는 말이 줄 수 있는 오해를 지적하고 싶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말한 “진보한다”라는 말의 뜻은 정치적으로 보수에 반대되는 진영이 차지할 것이라는 뜻이 아니다. 좀 더 정의롭고 옳은 방향으로 한 발씩 나아간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데 하필 ‘진보’라는 말 때문에 오해하는 사람이 생길 수 있다.

실제로 인류의 역사는 시행착오를 겪었지만 조금씩 나은 방향으로 발전했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가 플라톤이 당시의 민주주의가 소위 ‘중우정치(衆愚政治)’, 즉 우매한 대중들이 정치를 하는 상황으로 흘러가는 것을 비판하며 철인(哲人)에 의한 정치를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현대의 민주주의는 결론적으로 조금씩 긍정적인 방향으로 발전하고 있다. 또한 인간에게 고정된 역할이 있을 것이라는 신분제는 수많은 도전 끝에 상당 부분 사라졌다. 그리고 ‘인간의 고정된 역할’이라는 개념은 오히려 나 자신의 적성과 소질을 생각하는 방식으로 재해석됐고, 이로 인한 직업과 인간의 다양성과 다양성에 대한 존중이 이어졌다. 나아가서 인종과 성별을 기준으로 한 고정 관념도 수많은 노력을 거쳐서 조금씩 사라졌다. 경제적으로 자본주의가 생긴 이래 공산주의를 비롯한 다른 경제 체제의 도전이 있었지만, 자본주의는 공산주의의 장점들을 받아들이면서 문제점을 조금씩 극복하고 있다.

한국의 역사 역시 마찬가지다.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발전했고, 농업 중심에서 근대적 자본주의와 공업 생산 체제를 받아들였고, 지금은 선진국 반열에 올랐다. 그렇다고 한국에서 농업이 완전히 사라진 것도 아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을 비롯한 신군부의 독재에 맞서 싸워서 민주주의를 이룩해냈고, 나중에는 탄핵을 통해 사상자 없이 최고 권력자를 끌어내리는 성과도 달성했다. 적어도 한국 사회에서 남존여비를 당연하게 여기는 모습은 거의 찾을 수 없고, 5월 1일에 노동자들이 서울광장에서 집회를 할 수 있게 됐다. 적어도 대놓고 여성을 비루하게 보거나, 노동자들이 결사권을 제대로 발휘할 수 없는 시대보다는 나아졌다는 의미다.

그런데 막상 노무현 전 대통령 14주기 영상의 댓글 가운데는 ‘역사가 정말 진보하는 것이 맞나’라는 질문들이 많았다. 왜 이런 댓글이 달렸을까. 아마도 노무현 전 대통령이 주장했던 “역사는 더디지만 진보한다”라는 말에 ‘더딤’이 더 강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1000년, 10000년이라는 큰 단위의 역사를 고려하면 꽤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100년도 되지 않는 삶을 사는 한 인간은 변한 것이 없거나 오히려 퇴보했다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보면 역사는 우상향하지만, 실제 그 안의 선과 점 단위의 흐름은 끊임없이 부침을 반복하고 있고, 인간은 그 한가운데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 14주기 추도식의 주제가 ‘역사는 더디다, 그러나 진보한다’였던 이유도, 이 추도식에 여전히 4000명에서 시작해서 7000명의 시민 추도객들이 모인 이유도, 동영상의 댓글에 ‘역사가 진보하는 것이 맞나’라는 질문이 나왔던 이유도 세밀하게 보면 부침을 거듭하는 역사의 한가운데에 인간이 존재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현 정부 들어서 역사가 퇴보하고 있다는 시민들의 생각이 담긴 결과이기도 할 것이다.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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