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혼돈의 3월이다. 그리고 그 혼돈의 상당수는 윤석열 정부로부터 시작됐다.(물론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를 둘러싼 의혹을 비롯해 야당발 혼돈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그 혼돈의 상당수는 법적인 문제가 있는 것들이다. 예를 들어서 진흙탕 싸움을 보여준 여당 당대표 선거에 대통령실이 개입했다는 의혹은 선거법 위반이라고 볼 여지가 농후하다. 3.1절 기념사에 드러난 대통령의 역사 인식은 헌법에 위배됐다고 할 수 있다. 여기에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 폭력 문제는  쉬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이번 칼럼에서는 이 가운데 정순신 변호사 아들의 학교 폭력 문제를 다루고자 한다.

한국이 개발도상국의 지위에 있었던, 즉 지금보다 가난했던 시기에는 ‘학교 폭력’이라는 단어 자체를 찾기 힘들었다. ‘모범생’과 ‘불량학생’이라는 이분법의 방식으로 학생들을 나누고 불량학생이 일방적으로 모범생을 괴롭히는 모습이 주가 됐다. 여기서 불량학생은 소위 ‘불우한 환경’에 있었던 학생들에게서 많이 나타났다고 봤다. 지금보다 ‘이상적 가족’에 대한 고정 관념이 강했던 시기에 편부모 가정이나 재혼 가정 등에 ‘불우’라는 말을 붙였던 것이다. 또한 상대적으로 부모의 교육 수준이 낮거나 수입이 적은 가정의 학생들이 불량학생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도 봤다.(물론 이러한 인식 자체가 심각한 고정관념이다.) 소위 불량학생이 모범생을 괴롭히는 방식은 구타, 갈취, 괴롭힘 등이었다. 그리고 불량학생이 불량학생끼리 학교 밖에서 모르는 학생에게 폭력을 행사하는 방식이 많았다. 아니면 불량학생끼리 어울려서 본드를 흡입하거나 무면허로 이륜차를 운전을 하는 방식이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학교 폭력’의 개념이 조금 변했다. ‘학교를 비롯한 각종 사회에서 발생하는 집단따돌림’을 뜻하는 일본어 ‘이지메(苛め, イジメ)’가 한국 사회에 처음 소개된 이후 학교에서 집단따돌림이나 집단적인 폭력이 학교 폭력의 개념에 들어왔다. 물론 이전에 한국 사회에서 이러한 현상이 없진 않았겠지만, ‘집단따돌림’이라고 규정지어지면서 사회적 문제로 제기됐다. 이로 인해 학교 폭력이라는 개념에 변화가 생겼다.

우선 폭력의 형태가 확대됐다. 기존의 금전갈취와 구타, 성폭력에 더해져서 소위 ‘빵셔틀’이라고 일컬어지는 심부름, 집단따돌림의 대표적 형태인 ‘투명인간 놀이’, 심지어 고문을 비롯한 각종 가학 행위, 성매매 강요 등 각종 범죄 행위 강요도 발생했다. 무엇보다 무서운 것은 기존에는 소위 불량 학생들이 학교 폭력의 주요 가해자라고 인식됐으나, 최근 학교 폭력은 소위 불량 학생만이 아닌 모든 학생들이 일으킬 수 있다는 인식이 생겼다는 점이다. 우선 ‘집단따돌림’이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학교 폭력은 따돌림을 비롯한 폭력을 주도하는 가해자 소수 외에 함께 즐기거나 침묵으로 동조하는 다수가 가해에 참여하면서 일어난다.

또한 소위 사회 상류층 가정의 학생이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발생했다. 이번 정순신 변호사 자녀의 학교폭력은 이러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정순신 변호사 자녀의 학교 폭력은 소위 ‘부잣집 영재’들만 입학한다는 자립형사립고등학교인 민족사관고등학교에서 발생했다. 그리고 가해자인 정순신 변호사의 자녀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했다. 이것은 ‘공부 잘 하는 모범생’이 학교폭력의 가해자가 된 대표적인 사례다. 대한민국에 있는 특목고, 자율형사립고를 모두 조사한다면, 더욱 많은 사례가 나올지도 모른다. 물론 사람이 사는 곳에서 갈등이 발생하는 것은 당연한데 부잣집 출신의 공부 잘 하는 학생은 절대 학교 폭력을 저지르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고정관념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이것은 사회상도 보여준다. 사회 상류층 가정에서 교육을 잘 받은 우등생과 보통 이하의 가정에서 평범한 교육을 받은 평범한 사람 사이에 넘을 수 없는 벽이 생겼다. 그리고 그 벽은 더욱 두껍고 견고해졌다. 더 큰 문제는 사회 상류층 가정에서 교육을 잘 받은 우등생은 그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것이다. 자신이 사회 상류층에 있는 이유가 수많은 사람들의 노동과 희생이 결과임에도 불구하고 사회 상류층은 그것이 오로지 자신의 노력과 행운, 그리고 배경 때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이것을 당연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가정교육으로 이어져서 학교 폭력으로 불거진다. 가정교육의 붕괴, 능력위주 사회상의 반영은 덤이다. <더 글로리>와 정순신 변호사 자녀 학교폭력 등은 이러한 사회상을 압축적으로 보여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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