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지난 7일, 충청남도 논산에 위치한 한국유교문화진흥원에서 ‘K-유교 미래를 말하다’라는 제목의 개원기념 학술포럼이 열렸다. 이 자리에는 논란의 인물 중 하나인 이배용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해 한국 유교 분야에서 뛰어난 연구성과를 남긴 연구자의 학술 발표와 토론이 있었다. 그리고 지역의 많은 유림(儒林)과 그 후손들이 이 행사에 참여했다. 필자 역시 토론자 자격으로 이 행사에 참가했다.

제목에 등장하는 ‘K-유교’라는 말이 눈길을 끈다. K-팝(pop), K-영화, K-드라마 등이 소위 ‘한류 열풍’”을 주도하는 상황에서, 이제 한국의 역사와 전통문화, 사상 등이 ‘K-○○’의 뒷단어로 들어갈 때가 됐다는 주장이 등장하고 있다. 실제 K-영화와 K-드라마에서 한국의 전통시대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세계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상황에서 전통문화가 주목 받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분단, 민주화 등 현대사, 빠른 산업화를 비롯한 경제 발전 등 주로 현대 이후의 상황이 상징으로 작용했다. 현대 한국의 정치, 경제 등을 뒤이어서 한국의 전통문화가 주목받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현상이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을 배경으로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K-유교라는 단어를 선점한 것은 매우 긍정적이다. 아울러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자리 잡고 있는 충청남도 논산 지역이 조선 후기 대유학자인 명재(明齋) 윤증(尹拯, 1629-1714)을 비롯한 파평 윤씨 유림의 유적이 있는 곳이라는 지역적 특징은 지역을 알릴 수 있는 좋은 문화콘텐츠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실제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은 좋은 입지와 능력 있는 실무진을 바탕으로 많은 일을 해낼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한국유교문화진흥원 개원기념 학술포럼을 들으니 답답함이 몰려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우선 구태의연함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전통문화가 한국의 핵심이라거나 한국만의 독특한 사상이라는 식의 비논리적인 선언만이 난무했다. 예를 들어서 어떤 발표자는 유교가 삼국시대 이후 정치 원리로 작용하다가 조선시대에 정치 이외의 사상 전반의 배경이 됐다는 것을 들어서 K-유교의 가능성을 주장했다. 그런데 이것은 교과서에 나오는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고, 한국의 독특함은 나오지 않았다. 심지어 삼교융합의 내용을 담고 있다고 평가받는 최치원(崔致遠, 857~?)의 풍류(風流)나 성리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삼은 조선 말의 지배층에 저항한 새로운 사상이자 민족종교인 동학(東學)에서도 유교의 사상이 들어있다는 주장도 등장했다. 최치원의 풍류와 동학에 유교의 사상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이러한 모습은 자칫 한국의 독특한 사상을 유교가 독점하려는 모습으로 보일 수 있고, 아울러 한국유교가 독특함이 없음을 노출하는 것이라는 생각마저 들었다. 차라리 세상의 모든 종교나 사상이 대부분 좋은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한국의 독특한 사상에 비슷한 내용이 많고, 한국유교 역시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이 더 진솔하고 설득력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답답함이 몰려온 또 다른 이유는 현실 인식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필자는 논평문을 통해 “유교의 힙(hip)함”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현재 K-컬처로 각광받고 있는 한국의 전통문화는 갓, 한복 등 한국의 전통 복장이나 김치와 같은 전통 음식이다. 한국 사람이 이제 명절에도 잘 입지 않는 한복이 한류 열풍 속에서 인기 있는 아이템이 된 것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교과서에서 배울 수 있는 한국유교의 좋은 사상이 아닌, 한복이나 갓 등 전통적인 물질에 담겨있는 유교의 정신을 소개한다면, K-유교가 가능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또 한 가지 현실인식 부족으로 다가온 점은 현대 사회를 사는 한국 사람들이 유교에 관해 가진 인식이었다. 필자는 과거 칼럼에서 ‘X선비질’, ‘유교 탈레반 국가’라는 용어에 대해 비판한 적이 있었다. 이 발언이 나오는 맥락인 나이를 앞세우는 모습, 성차별, 명절증후군 등은 모두 유교가 주장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실제 한국에서는 앞에서 언급한 사회적 갈등이 일어나면 유교가 그 원인으로 지목받았다. 유교를 향한 현대 한국 사회를 사는 사람들의 인식이 그만큼 좋지 않다는 의미다. 한국에서도 인기가 없는 유교를 어떻게 K-유교로 만들 수 있을까? 결국 유교의 ‘힙함’을 찾아야 하는데, 이것은 유교라고 단정 지어 말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어쩌면 K-유교와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이 가장 시급하게 할 일은 가정교육의 부활일 것이다. 주제 강연에서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은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고, 그 인성교육에서 유교의 여러 사상이 도움이 됨을 역설했다. 그런데 인성교육은 가정에서 이뤄져야 한다. 가정에서 어느 정도 완성된 인성을 가진 사람이 학교와 사회에 진출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부모가 모두 생활비와 학원비를 버느라 밖으로 나가고, 자식을 학교와 학원으로 돌린다. 신자유주의와 무한경쟁의 희생양이자 스스로가 돈과 성공의 자발적 노예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 과정에서 가정에서 이뤄져야 하는 인성교육은 초중등학교, 심지어 대학으로 떠밀고 있다. 심지어 인성을 학원과 과외와 같은 사교육 현장에서 가르치고 있다. 이러한 차원에서 이배용 국가교육위원장의 발언은 자신의 직무가 가진 임무의 망각에서 나온 결과다. 동시에 한국유교문화진흥원의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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