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국정감사가 시작되면서 정치인들이 잇따라 망언을 내뱉고 있다. 대표적인 “윤핵관”으로 꼽히는 국민의힘 소속 권성동 의원이 피감기관장을 향해 ‘혀 깨물고 X어야지!’라고 말했고, 우여곡절 끝에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정진석 의원은 페이스북에 “조선이 내부적으로 부패해서 망했지, 일본과 전쟁한 적이 없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려서 물의를 일으켰다. 이 가운데 필자는 역사와 관련이 있는 정진석 의원의 발언에 눈이 갔고, 원래 소재로 생각했던 사안을 잠시 뒤로 미루고 정진석 의원의 망언을 소재로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야당, 역사 전문가, 심지어 수구 언론까지 이 발언의 문제를 지적했기에 필자가 새삼 정진석 의원의 글을 자세히 비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솔직히 지면이 아깝다. 그러나 정진석 의원이 ‘제발 역사 공부 좀 하시라’는 반응을 보였기에 역사를 조금 공부한 필자가 몇 마디 비판을 거들겠다. 문단속을 소홀히 한 집에 강도 들었다고 가정해보자. 이 경우 문단속을 소홀히 한 사람의 잘못이 아예 없을 순 없다. 그러나 문단속을 소홀히 한 집은 강도가 들어가도 되는가? 문단속을 소홀히 했다는 이유로 강도가 재판에서 무죄를 받는가? 이런 차원에서 정진석 의원의 발언에는 일본의 조선 찬탈의 원인을 조선으로 돌리는 전형적인 식민사관이 담겨있다.

사실들을 살펴보자. 조선과 일본 사이에 전쟁이 없었나? 백번 양보해서 수많은 독립투쟁과 해방을 위해 목숨을 바친 열사와 의사, 대한민국 임시정부, 봉오동과 청산리대첩, 수많은 무장독립단체와 대한광복군의 투쟁은 국권을 빼앗긴 이후의 항쟁이었으니 제외한다고 치자. 구한말 세 차례의 의병 항쟁은 일본군과의 전쟁이 아니었나? 교과서에 엄연히 등장하는 몇 가지 사실만 기억해도 정진석 의원은 그런 발언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정진석 의원의 발언에 반발하는 사람의 반대 논리에도 아쉬운 점이 있다. 정진석 의원의 발언이 식민사관에서 비롯되었다는 말과 함께 등장하는 것이 정진석 의원 할아버지의 친일 행각 논란이다. 연좌제 논란을 일으킬 조부 논란까지 굳이 끌어들이지 않아도 정진석 의원의 발언은 문제가 많다.

필자는 정진석 의원이 저런 망언을 내뱉은 이유는 가계도 때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원인은 국정감사다. 국정감사는 국회의원들이 방송에서 관심을 받을 수 있는 얼마 되지 않는 기회 중 하나다. 그래서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들이 매우 자극적인 발언을 일삼는다. 더군다나 조만간 다시 국회의원 총선거가 있으니 자신의 지지층과 지역구 유권자에게 강한 인상을 심어줄 필요가 있고, 국정감사는 국회의원들에게 자신을 홍보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더군다나 국정감사에서 국회의원은 면책 특권 덕분에 자유롭게 발언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낮은 지지율도 정진석 의원 망언의 큰 원인일 수 있다. 정치권의 격언 중 ‘이슈는 다른 이슈로 덮는다’라는 말이 있다. 인사로 대표되는 끊어지지 않는 윤석열 대통령의 실정, 외교 실패와 욕설, (한국이건 미국이건 상관없는) 의회 모독, 각종 실언, 대통령 부인 김건희 여사의 주가조작·학력위조·논문표절 의혹 등으로 윤석열 정부의 지지도는 반등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악재들을 또다른 이슈로 덮으려는 정진석 의원의 윤석열 정부와 국민의힘을 향한 충심에서 나온 발언일 수도 있다.

이유들을 생각하던 중 필자는 문득 이유를 생각하는 것이 아무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진석 의원의 망언의 원인이 무엇이 중요한가? 망언을 내뱉었다는 행위 자체가 중요하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독화살을 맞아 견디기 어려운 고통을 겪을 때, 친족들이 빨리 의사를 부르려 했다. 그러나 화살에 맞은 사람이 “아직 이 화살을 뽑아서는 안 된다. 나는 먼저 화살을 쏜 사람이 크샤트리아인지, 바라문인지, 바이샤인지 수드라인지, 또는 그 이름과 성은 무엇인지, 그의 키가 큰지, 작은지 중간 정도인지, 그의 얼굴색이 하얀지 검은지, 어떤 마을에서 왔는지 먼저 알아야겠다. 또한 내가 맞은 화살이 어떤 종류의 것인지 알아야 화살을 뽑을 것이다. 아울러 어떤 새의 깃으로 장식된 화살인지, 화살 끝에 묻힌 독은 어떤 종류의 독인지 알아야 화살을 뽑을 것”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은 이러한 사실을 알기도 전에 죽고 말 것이다. -『중아함경(中阿含經)』 중에서

필자가 갑자기 불교 경전의 한 대목을 인용한 것은 필자가 겪고 있는 학문적 딜레마 때문이다. 약 10여년 동안 필자는 본 지면을 통해 역사의 다양한 이야기를 소개했다. 칼럼의 내용은 대부분 현대를 사는 사람들의 현실 부조리 타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내용이다. 또한 문화에서 큰 사건이 있을 때 이것의 의미를 소개하는 문화사적 시각의 내용도 있었다. 필자의 전공인 종교사 이야기도 있었다.

이 과정과 최근의 사건들을 생각하면서 필자는 독화살의 구성과 독화살을 맞은 이유보다 내 몸에서 빼는 것이 더 중요하듯이 정치인들이 망언을 서슴지 않는 이유보다 망언을 내뱉었다는 사건 자체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그리고 이러한 이유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자 “충남 공주시부여군청양군”을 지역구로 두고 있는 정진석 의원은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한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현대 민주주의 국가에서 망언을 일삼는 정치인이라는 독화살을 뺄 방법은 선거에서 떨어뜨리는 것 밖에 없다. 언론과 교육, 그리고 유권자의 정확한 판단이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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