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기본적으로 『사회과부도』는 사회과 과목의 자료 역할을 했다. 필자의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 시절, 수업 중에 교과서에 이론이 등장하면, 선생님은 ‘『사회과부도』 ○○쪽을 펴세요’라고 알려주셨고, 그 부분을 펼치면 교과서에 나오는 이론을 뒷받침하는 자료가 나왔다.

필자는 『사회과부도』 보기를 좋아했다. 세상의 여러 나라, 나의 고향과 내가 사는 동네의 주요한 산업, 그리고 다른 도시에 비해 내 고향이나 내가 사는 동네가 가진 특징을 지도로 보는 것을 좋아했다. 또한 『사회과부도』를 보면서, 세계 여러 나라의 이름과 수도, 그리고 주요한 산업, 종교 등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사회과부도』 속에서 나의 흥미를 끄는 또다른 도표는 인구에 관한 것이었다. 『사회과부도』에서 세계 인구 통계, 한국의 인구 변화 양상, 인구밀도 순위 등을 알 수 있었다. 그런데 수업 시간에 이 부분을 배울 때 선생님께서 꼭 하시는 말씀이 있었다. 바로 “인구폭발”이었다.

1980년대, 90년대까지 “인구폭발”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공포 그 자체였다. 『사회과부도』에는 인구수가 많고 인구밀도가 높은 지역과 국가는 빨간색으로 표기돼 있었다. 그리고 ‘인구가 너무 늘어나면 우리의 삶이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 라는 선생님의 설명이 동반됐다. 라디오와 텔레비전의 공익광고에서는 연일 인구 문제의 심각성을 알리고 애를 덜 낳아야 한다는 말이 흘러나왔다. ‘하나나 둘만 낳아 잘 기르는 것이 어떨까요?’, ‘하나만 낳아서 정성껏 키우겠어요!’라는 광고 문구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2000년대 들어서 갑자기 ‘성비(性比)’라는 낯선 용어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뉴스에서는 초등학교의 한 교실을 보여주면서, 다른 성별로 짝꿍을 맺어주다가 남학생 수가 너무 많아서 남학생 두 명이 짝꿍을 맺는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언론은 ‘자식을 한 명만 두는 상황에서 남아선호사상이 강하다 보니 남자아이가 유달리 많다’라고 그 원인을 파악했다. 이어서 ‘이런 식으로 가다가는 남자들이 결혼하지 못하게 되고, 이로 인한 각종 사회적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라는 섬찟하고 성차별적이며 편견 가득한 내용도 따랐다.

국가 정책도 이러한 인구 상황을 그대로 반영했다. 1970년대부터 정부는 산아제한(産兒制限) 정책을 강력하게 시행했다. 대표적인 예가 남성이 정관수술을 받으면 일정 회차의 예비군 훈련을 면제해주는 것이었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려는 의도였다. 그리고 이 정책은 예비군 훈련을 면제받으려는 남편과 남편의 불륜 가능성을 염려한 부인 사이의 갈등을 불러일으켰고, 이 촌극은 종종 드라마의 소재로 사용됐다. 2000년대 성비 불균형이 사회적 문제가 되었을 때 정부는 태아의 성별 판단을 엄격하게 금지했다. 이것은 기존의 낙태 금지 정책과 연결해, 태아 식별 결과 여자아이일 경우 불법으로 낙태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효과가 있었다.

최근 나오는 단어는 “지역소멸”, “국가소멸”이다. 결혼하지 않으려는 젊은이들이 늘어나면서 출산율이 낮아지고, 인구가 줄어들 가능성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실제로 UN에서는 한국 인구가 2100년 기준 3800만 명으로 25% 가량 감소하긴 하지만 그 이상 대폭 줄어들지는 않고 늘지도 않을 것으로 봤다. 그러나 2019년 추계에서는 2100년 인구를 2950만으로 감소한다고 예측을 수정했고, 2022년 추계에서는 2410만으로 또 수정한 예측을 내놓았다.

정부 역시 이에 따른 대책을 고심 중이다. 지방자치단체는 지역의 소멸을 우려해 자기 지역에서 출산이 발생한 경우 그 가정에게 금전을 지원하는 정책을 펴고 있다. 정부 차원에서도 결혼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책을 고심하고 있고, 종종 이민자를 받아들이거나 외국인 노동자들의 체류 기준을 완화하고 불법 체류자를 사면하자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그런데 인구 문제에 접근하는 정부의 방식은 매우 거칠고 근시안적이다. 산아제한 정책은 부부의 이불 속 사정까지 국가가 개입하겠다는 사생활 침해의 성격이 강했다. 또한 최근 인구 감소를 염려한 정책은 푼돈 몇 푼을 주겠다는 방식의 미봉책 성격이 강하다. 사람들이 결혼하지 않는 것은 가족 권력의 변화, 경쟁 위주의 입시 정책, 학력과 학벌에 따른 차별, 저임금, 높은 집값 등 근본적 문제로 인한 것이다. 그런데 정치권은 교육, 경제, 문화 등 근본적 문제의 해결에는 관심이 없거나 해결할 능력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또한 공무원들과 정치권은 장기적인 인구 변화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40~50년 전에는 인구 폭발을 염려했는데, 10~20년 전은 성비 불균형을 우려했고, 지금은 인구의 감소를 염려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단기적 문제도 해결해야 하지만, 국가의 존립을 좌우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장기적 시각도 가져야 한다. 그런데 인구에 관한 정부의 담론과 접근은 약 50년도 예측하지 못해왔다.

마지막으로 인구 문제의 다양성을 이야기하고 싶다. 인구의 감소는 분명히 심각한 문제가 될 것이다. 그런데 5200만 정도의 사람들이 대한민국에서 살기는 너무 힘들다. 사람들은 도시, 그것도 사교육 환경과 문화 시설이 좋은 곳으로 몰리고, 높은 집값으로 인해 생활비 대부분을 월세나 대출금으로 지출하고 있다. 높은 인구밀도로 교통은 막히고, 창문을 열면 옆집이 너무 잘 보이는 다가구주택이나 아파트가 너무 많다. 반면 농촌은 노동력이 부족하고 노령화가 심하며, 나아가서 농촌의 붕괴로 식량 문제가 닥칠 수도 있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다. 무작정 인구 수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한가? 아니면 인구의 질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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