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또 하나의 정권이 저물었다. 이번 회차 지면을 작성하는 5월 10일부터 윤석열 당선자가 당선자 신분에서 대통령이 되고, 문재인 대통령은 전대통령으로 신분이 바뀌었다.

지난주부터 칼럼을 준비하면서 필자의 마음은 매우 좋지 않았다. 한국종교사를 연구하는 연구자이자 대학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로서 윤석열 정부의 공직 후보자들을 둘러싼 의혹들이 필자를 매우 불쾌하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특히 각종 부모 찬스, 박사 학위 논문 심사의 장소(속칭 “방석집”이었다는 주장이 있다), 총장 시절 학생을 향한 무례한 행동 등 각종 의혹은 필자의 삶 자체를 부정하게 만드는 논란들이었다. 그래도 한 정권을 책임 진 대통령이 물러나고 새로운 대통령이 등장하는 시기에 개인의 씁쓸함을 표현하는 내용보다는 지난 정권을 돌아보는 내용으로 칼럼을 작성하는 것이 “신문 칼럼”이라는 공적인 지면에 더 어울린다고 판단해, 이전에 작성했던 원고를 갈아엎고 새로운 원고를 작성하기로 결심했다.

정권이 교체되면서 문재인 대통령 재임 기간에 대한 다양한 평가가 나오고 있다. 이 평가들 속에서 예상 외로 많이 간과되고 있는 점이 바로 “탄핵 이후 탄생한 정권”이라는 사실이다. 국내외에서는 박근혜씨의 탄핵에 대해 매우 후한 평가를 내렸다. 엄동설한에 연인원 1000만명이 탄핵을 요구하는 촛불집회에 나섰고, 물리적 충돌 없는 평화적인 집회 모습은 민주주의의 모범적인 사례로 기록됐다. 그리고 문재인 정권은 촛불집회에서 표출된 시민들의 염원을 받아 안으면서 탄생한 정권이었고, 이렇게 탄생한 문재인 정권은 “적폐청산”이라는 시대적 요구를 수행할 의무를 가지게 됐다.

5년이 지난 지금 적폐들은 얼마나 청산됐을까? 박근혜 정권을 탄핵이라는 역사적 불행을 야기한 적폐 세력들은 과연 청산됐을까? 필자의 생각에 문재인 정권이 받았던 시대적 요구인 적폐 청산은 이뤄지지 않았다. 탄핵의 직접적 원인이 되었던 일부 인물들과 박근혜 정권 이전의 이명박 정권에 대한 일부 심판을 제외하고, 대한민국 사회의 적폐로 지목되고 있는 세력들의 상당수는 청산되지 못했다. 실질적 적폐 세력은 이명박 정권과 박근혜 정권의 일부 인물들을 재물로 던지고 자신들의 기득권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의 적폐는 특정한 직군이 아니다. 시대별 타도의 대상이었던 이승만 독재정권, 박정희에서 노태우로 이어지는 군부독재 세력은 적폐 자체인 동시에 적폐의 결과물이었다. 이들이 사라진 뒤 이들과 비슷하면서도 이들에게 빌붙어서 기득권을 키웠던 또다른 적폐 세력이 모습을 드러냈다. 자신들의 부를 축적하기 위해서 정경유착, 노동자 탄압, 비자금 축적을 자행하는 재벌, 자신의 특권 의식이나 자기 조직의 안위만을 생각하는 법조인들, 사실을 왜곡하고 특정 집단의 이익만을 대변하는 언론인들, 대의와 명분을 저버리고 자신의 정치생명 연장에 급급한 정치인 등이 그들이다(일부라고 생각하고, 일부였으면 좋겠다). 이들 세력들을 개혁하기 위해 문재인 정권에서는 최저 임금 인상, 언론과 검찰 관련법의 개정 등을 시도했다. 그러나 번번이 적폐 세력의 강력한 저항과 국민 선동으로 인한 여론 악화로 법 개정은 좌절되거나 개혁적 성격이 상당 부분 후퇴했다.

문재인 정권이 내세웠던 구호 중 하나가 ‘사람이 먼저다’였다. 이것은 대한민국 국민이 인간으로서 최소한의 존엄함을 유지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나온 것이었다. 적폐 역시도 사람이 먼저다. 적폐는 특정한 기관이나 집단이 아니라, 그 기관과 집단을 구성하고 있는 사람들이 적폐라는 의미다. 즉, 재벌, 법조계, 정당이 문제가 아니라 재벌의 오너, 법조인, 언론인, 정치인들 중 일부가 청산 대상이 되는 적폐라는 뜻이다. 그리고 적폐 청산에 대한 이들의 반발과 선동의 영향을 받지 않고 객관적인 시각을 유지하는 시민 개개인의 안목이 적폐 청산의 중요한 원동력이다. 그러나 문재인 정권은 사람을 바꾸려는 노력보다는 제도 개선에 집중했고, 이것은 적폐청산 실패로 이어졌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교육 개혁을 통해 사람을 바꾸는 것은 긴 시간이 필요하고, 정부는 사람을 바꾸는 권한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에 제도 개선만이 최선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적폐 청산은 정권이 바뀐다고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작업이 아니라는 의미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누가 정권을 잡건 정권이 할 수 있는 일은 명확한 한계를 가진다. 법적 근거와 민주적 절차를 거쳐야하기 때문이다. 문재인 정권 기간 동안에 이루지 못한 적폐 청산 실패는 오히려 시민의 인내와 적극적 참여라는 숙제를 남겼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