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곳곳에서 “고등교육의 위기”를 부르짖고 있다. 한국의 교육은 크게 초등·중등·고등교육으로 구분된다. 초등교육은 초등학교, 중등교육은 중고등학교, 고등교육은 전문대와 대학교육 이상을 의미한다. 그런데 유독 “고등교육”의 위기를 호소하는 목소리가 크게 일어나고 있다. 주요한 원인은 학령인구의 감소, 반값등록금 정책 시행을 부담스러워했던 정부가 반값등록금 대신 등록금 동결을 지속했기 때문이다. 등록금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사립대학들은 위기에 빠졌다.

이러한 상황에서 현 정부는 손을 놓은 정도가 아니라 오히려 대학교육을 퇴보시키고 있다. 교육부에게 경제 부처라는 생각을 가지라고 얘기하여 교육에 관한 무지함을 드러냈고, 의혹투성이인 사람을 잇따라 교육부 장관으로 임명해서 빈축을 샀다. 결국 낙마와 사임을 거듭한 끝에 역시 의혹투성이에 이명박 정부 시절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으로서 교육정책에 실패한 이주호씨를 교육부장관에 다시 임명했다. 또한 국가교육위원회 위원장에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의 핵심인사인 이배용 전 장관을 임명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각종 부정부패를 일삼다 쫓겨났던 대학 설립자와 주변 세력들은 속속 복귀해서 복수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정부가 이런 모습을 보이다 보니 교수들이 나섰다. 전국교수노동조합은 11월 5일 결의대회를 준비하고 있고, 시민단체들은 교육정책의 전면적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상대적으로 더욱 절박한 상황에 있는 지역대학의 교수와 시민단체 인사들은 위기를 돌파하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있고, 그 결과 강원대학포럼을 비롯한 각종 단체가 출범했다. 그리고 교수를 비롯한 연구자 단체 중 일부가 근본적인 문제 해결을 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필자 역시 한국 고등교육 정책의 역사를 되짚어 보고, 이것을 통해 현재의 고등교육 위기의 해결책을 살펴보고자 한다.

시계를 1996년으로 돌려보자. 1996년 김영삼 정부는 대학설립 운영규정을 제정하고, 대학 설립 준칙을 제시했다. 그런데 이 때 제시된 준칙의 내용은 대학 설립의 기준을 낮추는 내용이었다. 그 결과 ①교사(校舍) ②교지(校地) ③교원 ④수익용기본재산 등 4가지 최소 요건만 갖추면 비수도권 지역에서는 누구나 대학을 설립할 수 있게 됐다. 그 결과 대학의 수는 급격하게 늘어났다. 또한 대학설립 준칙주의와 함께 대학 정원 자율화 정책이 수도권까지 확대됐다. 그 결과 수도권 대학은 더욱 비대해졌다. 1)

김영삼 정부의 정책이 전혀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김영삼 정부 당시 대학 입시는 정말 지옥이었다. 약 90여만명의 수험생이 대학 진학을 목표로 밤늦게까지 학교에서 입시를 준비하고, 과외, 학원 등 각종 사교육을 받고 있는 상황이었다. 또한 대학 진학에 실패한 수험생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사례도 빈번했다. 정부 당국의 입장에선 이러한 상황을 타계할 수 있는 가장 쉬운 방법은 수험생이 진학할 수 있는 대학과 입학 정원을 늘리는 것이었다. 이미 포화상태였던 수도권에 대학을 또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웠고, 비수도권 대학 설립을 쉽게 만들어서 대학의 수를 늘렸고, 대학 정원을 자율화 하여 대학에 자리를 늘려서 양적 확장을 시도한 것이다.

대학설립 준칙주의에 따라 대학이라고 볼 수 없는 비수도권 대학이 생겨났고, 정원 자율화로 수도권 대학은 비대해졌다. 그리고 이것은 대학 서열화의 고착으로 이어졌다. 또한 대학설립 준칙주의에 따라 비수도권에 설립된 대학들은 대학교라는 이름이 무색할 정도로 질적으로 떨어졌다. 그리고 현재 폐교 절차를 밟고 있거나, 폐교된 학교의 상당수가 이때를 기점으로 설립된 대학이다.

지나간 일을 다시 돌이킬 순 없다. 그저 실패한 정책을 계승하겠다거나, 반성하지 않는 정치인들을 정계에서 몰아내도록 노력하는 것이 유권자가 할 수 있는 몇 되지 않는 방법이다. 그리고 현재의 상황을 합리적으로 해결하고, 장기적인 시각에서 고등교육을 고민하고 실천하는 모습을 보이도록 감시하고 요구해야 한다.


1) 김정인, 대학과 권력-한국 대학 100년의 역사, 휴머니스트, 2018, 286-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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