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이러다 징크스가 생길 것 같다. 필자가 10년 가까이 투데이신문에 투고해 오면서, 역사 속에서 현재에 교훈을 줄 수 있는 소재들을 찾아서 그것을 소개했고, 나름 장기적인 기획을 시도한 적도 있었다. 그런데 장기적인 기획을 시도하면 꼭 현대사에서 큰 발자취를 남긴 인물이 사망하거나 대형 참사가 일어났다. 그리고 이것에 관한 글을 쓰느라 필자가 기획한 장기 기획이 한 번씩 중단됐다. 지난 회차부터 한국 고등교육의 역사를 되짚어 보는 기획을 시작했는데, 이번에도 10·29 참사가 발생했다.

대학 교수인 필자에게 10·29 참사는 매우 충격적이었다. 당장 필자가 재직 중인 학교에서도 3명의 부상자(10월 31일까지의 집계)가 발생했다. 10·29 참사에서 희생된 사람들의 연령대는 대부분 20대였다. 필자 역시 20대를 대상으로 강의하는 것을 주업으로 삼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참사 이후 강의에 무사히 출석한 학생들과 한 명 한 명 눈을 맞추면서 미안함과 고마움을 표현하고 싶었다. 이에 평소에 3시간짜리 강의 중 무단으로 강의실에서 나간 학생이 있을 때만 했던 마지막 시간의 전체 출석 체크를 시행했다.

학생들이 받았던 충격도 상당해 보였다. 필자가 종교에 관한 과목을 강의하다 보니 10.29 참사의 배경이 되었던 핼러윈(Halloween)의 정의와 의의를 설명하고, 10.29 참사의 슬픈 현실을 소개할 수밖에 없었다. 평소와 다르게 모든 학생들이 진지하게 수업에 임했고, 수업이 끝난 후 필자에게 질문을 하면서 손을 떨며 울먹이던 학생도 있었다.

학생들이 충격을 받은 이유는 명확하다. 희생자들이 학생들과 비슷한 또래였고, 애도와 진상규명은커녕 그 희생을 폄하하는 시선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10·29 참사 당시 희생된 20대들의 상당수는 세월호 참사로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고, 팬데믹 상황에서 학교, 학원, PC방을 비롯한 사람들이 모일 수 있는 공간에서 또래와 어울릴 기회를 박탈당한 사람들이다.

놀러 갔다가 당한 일을 왜 국가 탓으로 돌리냐는 말로 희생을 폄하하는 작태는 이 세대에게 더 큰 아픔을 주었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른 점 중 하나는 놀이, 혹은 유희를 즐긴다는 점(호모 루덴스, Homo ludens)이다. 10·29 참사의 원인을 “놀러감”에 둔다면, 이것은 희생자들을 인간으로 보지 않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누가 목숨을 잃고자 놀겠는가? 놀다가도 사건 사고는 발생할 수 있지만, 그 사건 사고를 최대한 예방하고, 사건 사고가 발생했을 때 피해를 최대한 줄이며, 그 원인을 근본적으로 제거하여 이후 발생할 수 있는 사건 사고를 예방하는 것이 인간다운 자세다.

현세대의 문화를 비난하며 희생을 폄하하는 경우도 있다. 핼러윈이 외국 문화라는 이유로, 귀신과 관련된 미신이라는 이유로 비난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그리고 그 비난을 하는 사람의 상당수는 기성세대와 특정 종교 신자들이다. 이들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다. 이들은 1970년대 외국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 청바지를 입고, 통기타와 장발을 즐기고, 미니스커트의 길이를 측정당하지 않았는가? 일본에서 유행했던 “분신사바”라는 귀신 부르는 의식을 즐기지 않았는가? 그리고 문제의 특정 종교는 외국에서 들어온 종교이지 않은가?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당국도 제대로 된 예방책을 세우지 않았고, 참사 이후 사과와 책임있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아서 많은 비난을 받고 있다. 본 지면을 통해 필자는 군왕이 존재했던 시대에도 참사가 일어나면 군왕이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고 백성들의 구호에 총력을 다했음을 소개했다. 천재지변이 일어났을 때 군왕은 반찬의 가짓수를 줄이고 거친 옷을 입고 재해의 중지를 기원하는 의례에 참여했다. 부역을 수행하던 백성이 사고로 죽거나 다치면, 군왕은 그 희생자를 위로하기 위해 물품을 하사하고, 책임자의 문책을 지시했다. 만인지상(萬人之上)의 군왕도 이렇게 “민심(民心)은 천심(天心)”이라는 격언을 마음에 새겼는데, 선거에 의해 뽑힌 대통령 정치인, 그리고 세금으로 먹고사는 고위직 공무원들은 그런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애도를 진상규명과 후속 조치와 분리하려는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 정부의 해괴망측한 노력 속에 일주일간의 애도 기간이 종료됐다. 참사로 희생된 사람들의 명복을 빌고 억울함을 푸는 것은 제대로 된 애도일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철저한 진상규명, 책임질 사람이 책임지는 모습, 그리고 재발 방지 조치가 필요하다.

사족(蛇足)을 붙인다. 10·29 참사의 책임은 윤석열 대통령과 현 정부, 여당에게 있지 않을지도 모른다. 숱한 우려와 의혹을 가진 사람을 대통령으로 뽑은 유권자, 특히 지지자들의 탓일 가능성도 있다. 그들 중 상당수는 “부자 만들어 준다”는 말에 속고, 독재의 추억과 암살로 부모를 잃은 불쌍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대통령을 뽑아서 혹독한 대가를 치렀으나, 같은 실수를 반복한 자들이다. 가장 큰 책임은 이들에게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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