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필자가 소위 ‘인생영화’로 꼽는 작품 중 <시네마 천국(Cinema Paradiso, 1990)>이라는 영화가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막바지 이탈리아 시칠리아에 있는 가상의 마을에 살던 토토라는 아이가 마을의 극장에서 영화를 상영하는 영사기술자 알프레도라는 아저씨를 만나서 우정을 쌓고, 여러 성장통을 거치면서 유명 영화감독이 돼서 알프레도의 장례식에 참석하고자 자신의 고향 마을로 잠시 돌아오는 과정이 주된 내용이다. 워낙 명작으로 꼽히는 영화라 내용에 대한 소개보다는 이 영화에서 보여주는 ‘극장’이라는 공간의 문화사적 의미를 소개하고자 한다.

영화 제목인 <시네마 천국>은 영화의 주된 공간 배경이 되는 시칠리아 마을에 있는 극장의 이름이기도 하다. 전쟁과 가난으로 인해 집집마다 텔레비전을 갖출 수 없었던 시기, 극장은 마을 사람들의 유일한 대중문화 소비 공간이었다. 영화 초반 극장의 관리를 마을 성당의 신부가 담당했고, 이로 인해 상영되는 영화의 러브신은 신부의 검열로 잘려나가기 일쑤였다. 종교가 세속 위에 군림하는 현상이 상당히 오랫동안 잔존했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을 사람들의 영화를 향한 열망은 매우 컸고, 더운 여름 쾌적한 환경에서 영화를 보기 위해서 야외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장면도 등장한다.

또한 영화 속 극장은 마을 사람들의 사랑방이었다. 연령과 성별을 막론하고 영화를 보기 위해 많은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고, 마을 사람들이 서로의 안부를 묻고 문화를 소비하는 곳이었다. 극장에서 만난 사람이 부부가 되거나, 같은 마을 사람들이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각종 에피소드를 만들어 내는 장면도 나온다. 영화 속의 이런 장면은 텔레비전이 보급되기 전, 마을에 공동체 의식이 남아있었던 시기에 극장이라는 공간이 영화 시청 이외의 다른 문화적 활동이 이뤄진 공간임을 보여준다. 그리고 <시네마 천국> 속에서 극장이 철거되는 장면이 나오는데, 이 장면에서 마을 사람들은 상념에 젖으며 슬퍼한다. 이 모습에서 마을 사람들에게 극장이 보여주는 공동체 관점에서의 가치가 극적으로 드러난다. 극장이 근현대 문화유산으로서 큰 가치가 있음을 보여주는 장면이기도 하다.

한국에서도 이러한 사례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바로 원주에 소재한 ‘아카데미극장’이다. 1963년에 개관한 단관극장인 아카데미극장은 개관 당시 원형을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극장 가운데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극장이다. 더 오래된 극장은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들은 지어졌을 때의 원형을 유지하고 있지 않다. 이로 인해 아카데미극장은 단순히 오래된 극장이 아니라, 근현대건축사 분야에서도 큰 의미를 가진 곳이다.

또한 아카데미극장은 앞에서 소개한 <시네마 천국>에 등장하는 마을 주민들의 공동체 의식을 담아내고 문화를 소비하는 기능도 담당한 곳이다. 영화 상영이라는 극장의 기본적인 기능은 물론이고, 초등학교의 졸업식, 각종 강연, 문화행사, 회의가 열린 곳이었다. 수도권에 비해 문화 행사를 개최할 여력이 부족한 비수도권의 중소도시인 원주에서 문화 소비 가능성의 격차가 지금보다 훨씬 더 컸던 1970-1990년대까지 아카데미극장이 그나마 그 역할을 담당했던 것이다. 그리고 그러한 문화적 수혜를 입었던 원주 시민들이 상당수 존재한다.

이러한 아카데미극장이 현재 철거 위기에 직면해있다. 공교롭게도 올해는 아카데미극장 완공 60주년이다. 이에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놓고 지지와 반대 입장을 가진 시민들이 각자의 주장을 펼치며 대립 중이고, 원주시의회는 아카데미극장 철거 문제로 파행을 거듭하고 있다. 지난 지자체 선거를 통해 시장이 된 원강수 시장(국민의힘)이 이 극장을 허물고 그 자리에 20면짜리 주차장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여기에선 ‘경제성’의 논리가 작동하고 있다. 아카데미극장이 원주의 원도심 전통시장 초입에 있고, 붕괴 위기의 위험한 건축물이며, 제대로 기능하지 않기 때문에 흉물스러우니 전통시장과 원도심 활성화를 위해 철거하고 주차장을 짓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주장이다.

아카데미극장을 둘러싸고 일어나는 갈등과 논쟁에는 ‘문화’라는 말을 이해하는 수준도 드러난다. 아카데미극장 철거를 지지하는 어떤 공직자가 “문화는 집에서 해야죠”라는 발언을 했는데, 여기에서도 문화를 ‘소비 문화’로 바라보는 시각이 드러난다. 또한 철거 후 주차장으로 활용할 것을 제안한 한 사람은 신문사 기고문에 “건물이 오래됐다고 모두 문화유산이 아니다”라고 썼다. 여기에는 유형의 문화유산만 문화의 가치를 가진다는 시각이 드러난다. 결국 아카데미극장 철거 논란에는 문화와 성장 중심 경제성의 대립, 문화의 좁은 의미만 알고 확장된 의미를 알지 못하는 인식 수준이 드러나고 있다.

결국 아카데미극장을 보존하면서 원도심을 살린다면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원주라는 도시의 특성, 즉 군사도시, 꽤 큰 규모의 원도심과 전통시장이 여전히 기능하고 있는 도시, 치악산이라는 자연관광자원과 여러 역사 유물과 농촌, 산촌, 그리고 기업도시와 혁신도시가 공존하는 도시, 강원도에서 유일하게 인구가 증가하는 도시라는 점을 생각하면 방법이 떠오르지 않을까. 어쩌면 원주 관광 활성화를 위해 관광자원 하나 개발하겠다고 전임 시장이 밀어붙여서 거액을 들여서 만들었는데, 점점 애물단지가 되어가고 있는 소금산 출렁다리보다 더 구매력 있는 관광자원이 아카데미극장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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