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장면 하나. 이번 회차가 발행되는 시점에서 대학 캠퍼스는 기말고사를 끝내고 방학과 계절학기가 시작되는 시점일 것이다. 학생들은 기말고사를 치른 후 방학이라는 해방감과 성적이라는 부담감을 동시에 안고 있겠지만, 교수의 방학은 학생들의 성적을 매기고 시스템에 성적을 입력한 뒤 학생들의 엄청난 이의신청을 받고 성적을 수정한 후에야 시작된다. 학생들의 성적을 산출하는 과정에서 늘 부딪히는 것은 ‘상대평가’라는 거대한 장벽이다. 수업을 잘 듣고 레포트도 잘 쓰고 시험도 잘 본 학생들이 많다면, 어쩔 수 없이 눈물을 삼키며 일부 학생들에게 채점 결과 나온 성적보다 낮은 성적을 줄 수밖에 없다. 학교마다 비율은 조금 다르지만 A학점과 B학점을 받을 수 있는 학생의 비율이 정해져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로 인해 성적이 공개된 후 학생들의 이의 신청이 쇄도하는 경우도 많다. 이 지점에서 필자는 교수로서 의문이 생긴다. ‘왜 상대평가를 시행하는가? 굳이 상대평가를 해야하는 것일까?’라는 것이다. 이것에 대해 등장하는 말이 바로 ‘학점 인플레’라는 신조어다. 입사 지원하는 학생들의 학점이 대부분 높으니 학점으로는 변별력이 생기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러나 학점으로 변별할 수 있는 것은 학생들이 성실하게 학교생활을 했는지 여부 정도가 아닐까? 회사에서 필요한 인재를 선발하는 것은 회사의 몫인데, 엉뚱하게도 학생과 교수에게 불똥이 튀는 꼴이다.

장면 둘. 윤석열 대통령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하 수능 시험이라고 약칭함)과 관련한 발언으로 온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지난 23일 국무회의에서 윤 대통령은 “공교육에서 다루지 않는 문제를 내면 사교육에 의존한다”라는 발언을 했다. 이는 대통령이 수능 시험 난이도를 쉽게 내라고 요구한 것이라고 해석되기도 했고 킬러 문항, 즉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일부러 내는 어려운 문제를 출제하지 말라는 것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대통령의 말 한마디가 수험생과 수험생 학부모, 교사, 학원가에 대혼란을 초래했다. 대통령 발언을 감싸기 위한 교육부 장관과 여당 국회의원의 발언은 가관이다. 이주호 교육부장관은 “나도 전문가지만 대통령에게 입시를 배운다”라고 발언했다. 『삼국지연의』에서 조조는 허저보다 무공이 높지 않고, 순욱보다 지력이 높지 않았지만, 그들의 주군(主君)이자 위왕(魏王)으로 활약했다. 교육부장관은 대통령이 교육 전반을 판단할 수 있도록 교육에 관한 한은 더 높은 식견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데, 이 발언으로 이주호 장관은 스스로가 교육부장관의 자격이 없음을 드러냈다. 여당은 국민의힘 박대출 정책위의장은 “대통령이 검찰 초년생인 시보 때부터 수십 년 동안 검사 생활을 하면서 입시 비리 사건을 수도 없이 다뤄봤고, 특히 조국(전 법무부 장관) 일가의 대입 부정 사건을 수사 지휘하는 등 대입 제도의 누구보다 해박한 전문가”라고 발언했다. 그러나 수사 과정에서 공부한 교육 관련 지식이 교육계에 몸담고 있거나 교육을 연구한 사람보다 높다고 할 순 없을 것이다.

장면 셋. 더 심각한 것은 대통령과 여당을 견제해야 하는 야당의 입장이다. 대통령의 발언을 비판하는 것은 야당의 책무이자, 대통령의 발언 자체가 문제가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마땅하고 옳은 일이다. 그런데 정치적 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관점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 대표적인 예로 더불어민주당 정청래 의원은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대통령의 발언과 여당의 엄호를 비판하면서, “남북이 분단돼 있고 영호남 지역 갈등이 있는데 전 국민이, 7000만 배달겨레가 합의한 게 있습니다. 대학은 성적으로 가자”라고 발언했다. 이것은 대학 서열화와 수도권 중심주의로 인해 입시 지옥 현상이 유지되고 있고, 비수도권 대학들이 위기에 처한 상황을 당연시하는 발언이다. 무엇보다도 국회의원이라면 마땅히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자 노력해야 하는데, 대통령 발언을 향한 비판에 초점을 맞춘 나머지 현실적 대안을 전혀 제시하지 않은 무책임한 발언이다. 특히 심각한 것은 이 발언이 어쩌면 조선시대부터 이어졌을지도 모르는 학력·학벌 중심주의를 전혀 개선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거나, 그것을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고방식의 표현일지도 모른다는 점이다.

세 장면을 관통하는 단어는 아마 ‘줄세우기’, ‘상대평가’, ‘학벌주의’, ‘학력주의’일 것이다. 고려시대부터 시작된 과거제는 기존의 핏줄을 중요하게 여기는 귀족들의 기득권을 없애고, 유교 경전의 습득 정도와 글쓰기 능력을 중요하게 여긴 실력 위주의 사회로의 변환을 유도했다. 그러나 이렇게 기득권이 된 양반들은 다시 기득권 세력이 됐고 신분제는 더욱 공고해졌다. 일제강점기 당시 식민지 조선에는 대학을 세우지 않겠다는 식민지 차별 정책에도 불구하고, 사립 전문학교와 고등보통학교들이 민족의 인재들을 양성했다. 일제의 문화통치로 인해 세워진 경성제국대학과 앞에서 언급한 사립학교들은 훗날 한국 학벌주의의 불씨가 됐다. 해방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피폐한 대한민국에 자원이라고는 사람밖에 없었고, 과거부터 이어진 교육열이 더해지면서 대학 입학을 향한 입시 경쟁은 더욱 치열해졌다. 이로 인해 대학은 성적순으로 가야 한다는 인식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졌다.

인구 절벽이 시작되고 고령화 사회로 진입한 현재의 대한민국에서 이제 대학에 가고자 하는 사람은 누구나 대학에 갈 수 있게 됐다. 그러나 수도권 중심주의로 인해 소위 ‘인서울’ 대학에 가겠다는 욕망으로 인해 입시 지옥은 이어지고 있다. 서열화, 상대평가, 학벌주의, 학력주의라는 대한민국의 고질병은 교육을 병들게 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 누구도 이것을 해결할 능력도, 생각도 없는 것으로 보인다. 대통령이 수능시험 문항을 언급한 것도, 이 한심한 발언을 엄호하는 여당과 교육부장관도, 이것을 공격하느라 정작 중요한 문제를 간과하고 있는 야당도, 대통령의 한마디로 술렁거리는 수험생과 학부모, 교육계도 모두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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