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서이초등학교의 한 교사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사건으로 온 나라가 시끄럽다. 우선 사망한 선생님의 명복을 빈다. 사망한 교사를 애도하는 최고의 방법은 사건의 진상을 명명백백하게 밝히고, 비슷한 일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도록 조처하는 것이다.

그런데 사건 이후의 상황은 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방향도, 비슷한 일을 예방하는 방향도 아닌 것 같다. 정황상 학부모의 갑질이 원인이었다는 주장이 압도적인데, 추측만 난무할 뿐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로 인해 애꿎은 거대 양당의 국회의원만 용의선상에 올랐다. 또한 이번 사건과 직접 상관도 없고 그 진상도 알 수 없는 1년 전의 사건이 다시 부각되면서 웹툰 작가이자 방송인인 주호민씨와 ‘금쪽이’라는 말을 유행시키면서 육아 문제를 전문적으로 다루는 방송인이자 의사인 오은영씨가 곤혹을 치르고 있다. 세간의 관심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싶어하는 세력이 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다.

무엇보다 사건의 원인을 ‘학교인권조례’와 ‘전교조’로 몰고가는 행태는 사건의 진상을 밝히고 비슷한 사건의 재발을 방지하는데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서이초 사건과 학생인권조례, 그리고 전교조가 무슨 상관이 있는가. 오히려 이번 사건을 계기로 집권 세력과 이에 동조하는 수구 정치 세력과 언론이 자신들의 뜻과 맞지 않는 조례와 집단을 없애려는 의도로 보인다.

사건의 원인은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소위 ‘교권(敎權)’이 매우 낮아진 것을 방증하는 사건이라는 점에 모두가 공감하고 있다. 특히 학생이나 학부모에 의한 교원을 향한 갑질이나 폭행이 발생한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 교권까지는 아니더라도 교원 인권 보호는 매우 시급한 일이 됐다.

과거의 교훈을 찾아보기 위해 필자는 역사 속에서 스승이 부모나 학생에 의해 폭행이나 갑질을 당한 사건이 없는지 찾아봤다. 그러나 그러한 자료는 쉽게 발견되지 않았다. 대신 율곡 이이(栗谷 李珥, 1536-1584)가 당대 청소년의 교육 풍토를 쇄신하고자 썼다는 《학교모범(學校模範)》이라는 글을 통해 서이초 사건과 교권의 추락에 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고 판단해, 본 지면에서는 《학교모범》을 소개한다.

《학교모범(學校模範)》은 이이가 선조 15년(1582), 선조의 명을 받아서 작성한 학생들의 지침서다. 이 글에서 이이는 지금의 청소년 나이 정도 되는 학생들이 학문을 하는 사람으로서 갖춰야 하는 자세를 기술했다. 작게는 걸음걸이, 가래침을 뱉는 태도 등 몸가짐부터 투호(投壺) 등의 놀이를 즐기는 빈도, 과거 시험 응시의 필요성 등 향후 진로에 이르는 다양한 규범을 제시했다.

예전부터 교권을 이야기 할 때 《학교모범》은 신문기사의 단골 소재였다. 특히 서이초 사건이 발생한 직후 많은 언론에서 이이의 《학교모범》을 소재로 기사를 송고했다. 내용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스승을 쳐다볼 때 목 위에서 봐서 안 되고, 선생 앞에서는 개를 꾸짖어서도 안 되고, 웃는 일이 있더라도 이빨을 드러내서는 안 되며, 스승과 겸상할 때는 7푼만 먹고 배부르게 먹지 말아야 한다.(조은솔, 「[기자수첩] 교권과 학생인권」, 『대전일보』, 2022.05.13.)

율곡 이이도 교육사상을 담은 ‘학교모범(學校模範)’에 “잘못을 저지른 학생은 회초리로 종아리를 때리라”로 적고 있다.(김영욱, 「[스카이 View] 교권 확립 나선 당정 조치를 환영한다」, 『스카이데일리』, 2023.07.28. )

그러나 필자가 《학교모범》을 아무리 뒤져봐도 이런 구절은 나오지 않는다. 도대체 어디서 이런 구절을 찾았는지 모르겠으니, 필자에게 출처를 알려주길 간곡히 부탁드린다.

《학교모범》에서 이이는 유교의 세계관을 좇아 교육을 통해 학생을 성인(聖人)으로 만드는 방법을 추구했다. 공자의 “예가 아니면 보지도 듣지도 말라”는 말도 등장하고, 『대학(大學)』의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수양 방법이 그대로 적용돼 있다. 그래서 교육을 받기 위해서는 학습자가 자신의 몸과 마음을 갈고 닦아야 한다는 것부터 언급돼 있다.

무엇보다도 학습자들이 교수자들을 일방적으로 떠받들라고 적혀있지도 않다. 오히려 ‘스승에게 배우되 배움은 넓어야 하고 질문은 자세하게 해야 하며 생각은 신중하게 해야 하고 분별은 명확해야 한다.(從師受業。學必博。問必審。思必愼。辨必明。)’고 나와서 스승 역시 넓은 학식을 갖춰야 할 것을 은연 중에 강조했다.

또한 ‘만일 스승의 말씀과 행하는 일에 의심나는 점이 있을 때는 조용히 질문해 그 잘잘못을 가려야 하며, 곧 자기의 사견(私見)으로 스승을 비난해서는 안 된다. 또는 의리를 생각하지 않고 스승의 말만을 맹목적으로 믿어서도 안 되며 봉양하는 정도에 있어서는 힘에 따라 성의를 극진히 해 제자의 직분을 다해야 한다.(如値言論行事。有可疑者。則須從容講問。以辨得失。不可直以己見。便非議其師。亦不可不思義理而只信師說。至於奉養之宜。亦當隨力致誠。以盡弟子之職。)’라고 적어서 스승에게 배우더라도 학습자가 분별력은 있어야 하고, 스승의 잘잘못을 가릴 일이 있을 경우 그것을 말해야 하며, 스승의 말도 맹목적으로 믿지 말아야 함을 강조했다.

《학교모범》에서 이이는 학습자의 몸과 마음의 수양, 그리고 가정교육을 사전 조건으로 강조했다. 어버이를 모시는 것, 바른 가정생활 등이 스승을 섬기는 것과 동등한 조항으로 등장하고 있다.

이로 미뤄볼 때 현재 교권의 추락은 ‘학생인권조례’나 ‘전교조’탓이 아닌 가정교육의 붕괴와 서열화된 대학과 부의 축적을 향한 무한경쟁으로 학생을 세우는 것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아이의 학원비를 벌기 위해서는 맞벌이를 해도 모자라고, 맞벌이를 하다 보면 아이를 돌볼 수 없으니 아이를 학원으로 돌리고, 무한경쟁의 결정체인 직장과 학교, 학원에서 지쳐서 집에 돌아온 부모와 아이는 함께 하는 한 끼의 식사는커녕 각자의 휴대전화를 보다 쉬기 바쁘지 않는가. 그리고 어쩌다 얼굴을 마주할 때는 대학 진학을 비롯한 성공에 관한 이야기가 집중하기 일쑤다. 이러니 어떻게 제대로 된 가정교육이 이뤄지겠는가.

학부모들의 맞벌이는 또다른 상황도 연출한다. 교육기관은 또 하나의 사회생활 교육의 장이지만 일부 학부모들은 출근을 위해 자녀를 교육기관에 보내는 것을 보통 양육이나 탁아의 개념으로 생각하곤 한다. 가정 내부에서 이뤄져야 하는 교육 뿐만 아니라 자녀교육과 관련한 모든 것을 교육기관에 맡기고 있는 셈이다. 그러다보니 자신의 자녀가 사회생활을 배우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현상을 교원의 관리 소홀로 몰고 가고 있는 경향을 보인다. 자녀교육의 1차적 책임은 학부모에게 있다. 가정교육의 붕괴는 학부모에게 우선적 책임이 있고, 학부모가 제대로 가정교육을 시킬 수 없게 만든 사회에 더 큰 책임이 있다.

그러므로 교권의 추락은 사회적 문제이며,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고민해야 하는 사항이다. ‘학생인권조례’, ‘전교조’, ‘주호민’, ‘금쪽이’가 문제가 아니라 사바나 초원보다 못한 약육강식의 사회풍토가 문제다. 그리고 그것을 제대로 짚지 못하는 언론과 정쟁에만 몰두하는 정치권이 가장 큰 문제의 원인이다.

이번 회차 지면을 작성하면서 문득 ‘교권의 추락이라고 얘기하는 것이 오히려 일선 교원들의 사기를 떨어뜨리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대부분의 학교에서는 스승이 학생을 사랑하고, 학생이 스승을 따르며, 교원과 학부모가 학생의 생활과 앞날을 함께 걱정하고 있는데, 몇몇 파편적인 사건으로 ‘교권의 추락’을 너무 과도하게 부풀리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우려 또한 들었다.

마지막으로 이번 사태의 본질을 왜곡하고 이용하는 일부 몰지각한 위정자와 언론인, 그리고 이들의 의견과 행태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는 지지자들에게 매우 도움이 되될만한 《학교모범》의 한 구절을 소개하며, 이번 회차를 마무리 짓고자 한다.

 만일 여러 생도들 중에 학교 규칙을 준수하지 않은 채 향학의 의욕이 독실하지 않고 놀기만 하며 날짜만 보내고 몸가짐을 삼가지 않고 놓친 본마음을 되찾지 못하며, 행동거지가 장중하지 않고 언어가 진실하지 않으며 -(중략)- 예법을 경멸하고 본처를 소박하고 음란한 창기를 가까이 사랑하고 부질없이 권세가 있는 사람 찾아가기를 좋아하며 염치를 돌보지 않으며 함부로 사람답지 않은 자와 사귀어 아래 또래에게 굽실대며 술 마시기 좋아하여 방탕한 생활을 하고 주정에 빠지기를 낙으로 삼으며 송사(訟事)하기 좋아하며 하지 말아야 할 것을 그만두지 않고 재물의 이익을 계획하여 사람들의 원망을 무시하고 재주 있는 자를 시기하며 선량한 이를 헐뜯고 일가친척과 화목하지 않고 이웃과 불화하며, 제사에 근엄하지 못하고 천지신명에게 태만하며 -(중략)- 환란에 돕지 않으며 -(중략)- 등등의 잘못은 벗들이 보고 듣는 대로 깨우쳐 주되, 고치지 않을 때에는 장의에게 고해서 유사가 모임에서 드러내어 꾸짖는다.

저작권자 © 투데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