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종우 칼럼니스트<br>▸철학박사<br>▸​​상지대학교 조교수<br>
▲ 이종우 칼럼니스트
▸철학박사
▸​​상지대학교 조교수

【투데이신문 이종우 칼럼니스트】 선조(宣祖)가 즉위 후인 선조 4년(1571) 3월 6일, 유생(儒生)들이 상소를 올린다. 그 내용은 불교를 배척하라는 것이었다. 성리학이 사상적 배경이었던 조선조에 불교는 이단이었고, 당대 유생들은 성리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하여 선조는 다음과 같은 답을 내린다.

수선(首善)의 위치에서 항상 스스로 강론해야 할 것은 도리(道理)이고 기약할 것은 정(程)과  주(朱)다. 마땅히 더욱 심성(心性)을 가다듬어 갈고 닦고 경(敬)과 의(義)를 가지고 표리를 고루 수양하여야 된다. 그리하여 훗날 참된 선비가 되어 조정에 서서 과인을 보필하고 이 나라 백성들에게 은혜와 혜택을 베풀어 치도(治道)를 융성하게 하고 풍속을 아름답게 한다면 오도(吾道)가 쇠하고 이단(異端)이 성한 따위야 걱정할 것도 없다. 어찌 꼭 구구하게 강론하여 마치 태무(太武)가 승려를 죽이고 사찰을 헐어버린 것처럼 해야 되겠는가.-『선조실록』 5권, 선조 4년(1571) 3월 6일 정묘 2번째 기사.

위의 인용문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수선(首善)은 그야말로 선(善)의 머리다. 지리적으로는 한양이 도성(都城)이기 때문에 선의 머리 역할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한양을 지칭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것이 유생의 상소에 대한 답이라는 것을 감안한다면, “선의 모범” 정도로 의역해도 무방할 것이다. “정(程)과 주(朱)”는 정이천(程伊川)과 주희(朱熹)를 뜻하는 것으로, 성리학을 개창하고 퍼뜨린 중국의 성현(聖賢)들이다. “기약할 것은 정과 주”라는 말은 유생을 비롯한 지배층이 성리학의 이상향에 집중해야 함을 뜻한다. 유생은 성균관에서 성리학을 공부하고 과거를 준비하는 사람들로 과거에 급제하면 선조의 신하가 될 사람들이며, 당대 최고 권력자의 자제들인 기득권이기도 하다. 이들이 훗날 자신을 보필할 것이기 때문에 선조는 점잖지만 성리학의 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말로 타이른다. 그리고 그 결론은 “참된 선비가 되어서 백성들을 위한 정치를 융성하게 하고 풍속을 성리학적으로 바꾸면 오도(吾道), 즉 성리학이 조금 쇠퇴하고 이단이 성해도 걱정할 것이 없다”는 것이었다. 특히 태무(太武), 즉 북위(北魏)의 태무제(太武帝, 408-452)가 사찰, 불상, 탑을 파괴하고 승려를 환속시킨 사건을 언급하면서 꼭 그럴 필요가 없다는 입장을 밝혔다.

우리는 흔히 선조를 임진왜란 발발 당시 도성을 버리고 의주로 도망간, 그리고 당쟁을 이용해 정적을 제거한 무능하고 이기적인 왕으로 기억한다. 임진왜란이 워낙 큰 사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조는 왕자의 시절 성리학을 성실하게 공부하고 백성들을 생각하는 왕이 될 재목으로 평가받았다. 그리고 적어도 임진왜란 발발 전까지는 즉위 전에 있었던 훈구와 사림의 대립에 따른 각종 사화(士禍)와 외척의 득세 등의 혼란을 정리하고 성리학적 이상향을 제대로 펼친 유능한 왕이었다. 임진왜란 발발이 선조 즉위 이후 약 25년간의 안정기로 인해 지배층이 헤이해진 탓이라는 주장도 있을 정도로 임진왜란 전까지 선조 집권기는 세종이나 성종 치세 못지  않은 안정기였다.

이후에도 선조는 이단을 향한 신하들의 날선 비판과 불교에 대해 오히려 매우 포용적 태도를 취했다. 주강(晝講) 자리에서 유희춘(柳希春)이 불교와 선도(仙道-도교 정도로 이해하면 됨)를 비판하자, 선조는 “주자(朱子)는 선도에 대해서 그런 이치가 전혀 없다고 말한 적은 없고 하기가 어렵다고만 말했었다”라고 반론하기도 했고[『선조실록』 8권, 선조 7년(1574) 2월 4일 기유 2번째 기사], 궁에 살던 여성들이 불교에 귀의한 후 거처하는 비구니 사찰인 정업원(淨業院)을 없애자는 유신들의 요구도 세 차례에 걸쳐서 거부했다.[『선조실록』 8권, 선조 7년(1574) 5월 19일 임진 1번째 기사] 특히 이 때 유신들은 선조가 요망한 불교의 무리를 비호한다고 비판할 정도였다. 이에 대해 선조는 “하찮은 문제에 구구하게 매달려서 번거롭게 상소를 올리느냐”고 답했다. 물론 이 때도 “학문을 하고 도를 강(講)하며, 비루한 문장에 구애되지 말고 깊이 성현들의 뜻을 탐구해 식견이 이미 높아지고, 행신이 이미 진실해진 후에 우리 조정에 서서 마땅히 과인과 함께 천직(天職)을 다스려 모든 업적이 다 밝아지고 예악(禮樂)이 다시 일어나게 해야 할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전과 다름없이 선조는 신하들이 학문에 정진하고 백성을 위한 정치를 펼치면 이단은 자연스럽게 쇠퇴할 것이라는 입장이었다.

육군사관학교 안에 설치된 홍범도 장군의 흉상을 이전(철거?)하는 문제 때문에 온 나라가 시끄럽다. 정부와 여당은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 이력을 그 이유로 들었고, 흉상 철거 문제는 해묵은 이념 논쟁으로 번졌다. 덕분에 시민들은 박정희 전 대통령이 한 때 남로당의 핵심적 위치에 있었다는 것도 배우게 됐다. 또한 우크라이나 지원 문제, 베트남과의 협력 강화 문제도 도마 위에 올랐다. 우크라이나가 과거 소련의 연방 중 하나였고, 베트남은 지금까지 공산당이 집권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문제는 일본의 후쿠시마 핵오염수 방류와 연계되면서 정부와 여당이 친일 반민족적 성향이라는 비난까지 받게 됐다. 즉 일제강점기 선조들의 독립항쟁의 역사를 제거하면서까지 일본과의 관계를 굴욕적으로 개선하려는 것이라는 의심이다.

이념 논쟁은 중국의 개혁개방, 독일의 통일, 동유럽 공산정권과 소련의 붕괴로 자유민주주의의 판정승으로 끝난지 오래됐다. 지금 공산주의를 자칭하고 있는 북한, 중국을 비롯한 나라들 모두 그 속을 들여다보면 마르크스나 레닌이 주장했던 공산주의와는 한참 거리가 멀다. 심지어 제대로 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소수이긴 하지만 공산당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이념을 강조하고, 홍범도 장군의 공산당 가입 이력을 빌미로 국방부와 여당이 육군사관학교의 흉상을 어떻게 하겠다고 그러니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이 반민족 매국 세력이라는 의심까지 일어나는 것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그리고 여당이 정치를 잘 하면 굳이 이념 논쟁까지 하면서 “공산전체주의”를 경계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실을 보자. 경제가 어렵다. 현 정권과 여당, 수구언론이 그렇게 핑계로 갖다 대는 전 정권 때 이전으로 후퇴했다는 평가다. 할로윈 축제를 즐기다가 시민들이 길에서 압사 당했고, 반지하에 사는 서민이, 지하차도를 지나가던 서민이 수해로 희생당했다. 심지어 수해 복구에 투입된 젊은 해병대원이 순직했는데, 그걸 대통령과 국방부가 덮으려고 했다는 의혹까지 나왔다. 대통령은 외교 무대에서 욕설을 하다가, 대통령 부인은 외국 순방 일정 중 명품 편집샵에 들렀다가 언론에 포착됐다. 대통령의 처가 소유의 땅이 있는 양평의 고속도로 경로를 변경하는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야당 대표는 단식 중이고, 그 와중에 검찰에 불려가 피의자 조사를 받았다. 교사들은 학부모의 민원에 고통 받다가 사망했다고 하는데, 아직 서이초등학교 사건은 진상도 밝혀지지 않았다. 가족 관련 의혹이 있고, 언론관도 수상한 자가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이 됐다. 기후 위기 때문인지 9월 중순에 접어들었는데 한여름처럼 더운데, 정부는 기후위기에 관한 대책이 없다. 일본은 핵오염수를 방류하기 시작했고, 독도 관련 예산을 늘렸다. 지금 나열한 사건들 외에도 필자가 놓치는 사건과 위기 징후가 많을 것이다.

대통령과 여당에게 조언한다. 잘 알지도 못하면서 이념 운운하지 마시라. 이것이야말로 대통령이 그렇게 싫어하는 “비과학”이다. 먹고 살기 힘드니 이념 운운할 시간에 민생이나 잘 챙기시라. 민생을 잘 챙기면, 있는지도 모르고 오히려 현 대통령과 여당과 비슷해 보이는 “공산전체주의”는 자연히 사그라지고 자유민주주의는 꽃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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