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 4사 지난해 영업이익 14조 역대 최대
‘소비자 물가상승’ 벼랑 끝 민생경제와 대비
민주당 이재명 대표 횡재세 도입 추진 공식화
정유업계 “실적 하락 예상, 횡재세 대상 의문”

SK이노베이션 울산 콤플렉스 [사진출처=뉴시스]
SK이노베이션 울산 콤플렉스 [사진출처=뉴시스]

【투데이신문 박주환 기자】 정유업계를 겨냥한 횡재세(초과이윤세)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글로벌 경기 침체 장기화가 예상되는 가운데 민생경제 어려움이 가중되면서, 반사이익을 얻은 기업들이 사회적 고통을 함께 나눠야 한다는 취지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는 10일 오전 서울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횡재세 도입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이 대표는 “물가는 최대 폭으로 오르고 실질소득은 최대폭으로 감소했다고 한다. 그야말로 국민들의 삶이 벼랑 끝이다”라며 초과이익에 대한 과세 방안을 마련해 불평등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실제 SK이노베이션, GS칼텍스, 에쓰오일, 현대오일뱅크 등 정유 4사는 지난해 상반기 석유제품 수요 회복과 국제 유가 상승에 따른 재고 이익, 정제 마진 개선 등의 영향으로 연결기준 역대 최고 실적인 14조1000억원 대 영업이익을 달성했다. 이는 2021년 대비 2배 이상 상승한 실적이며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확산 직전인 2019년과 비교하면 5배 가량 증가한 수준이다. 

정유사들이 역대급 실적을 경신하던 때, 민생경제는 악화일로를 걸었다. 미국 물가 상승에 따른 기준금리 인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인한 원자재 가격 폭등으로 서민들이 체감하는 물가는 끝을 모르고 치솟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22년 12월 및 연간 소비자물가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소비자물가는 전년 대비 5.1% 상승했다. 1998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당시 7.5% 이후 24년 만에 가장 높은 수치였다. 올해 역시 10월 기준 3.8%의 상승률을 보이며 어려움은 계속되고 있다. 

이 같은 사회적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 유럽연합(EU)은 2022년 9월 ‘연대기여금’이라는 이름의 횡재세를 도입하기로 했다. EU는 2018~2021년 4개년 평균에 비해 20% 늘어난 부분을 초과이윤이라고 합의했다. 연대기여금은 초과이윤에 대해 33%의 세율로 부과되며 이를 통해 걷어 들인 세입은 에너지 취약 계층 및 중소기업 등에 지원될 예정이다. EU를 탈퇴한 영국에서도 에너지 이익 부담금이라는 이름으로 추가 세율을 부과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사진출처=뉴시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 [사진출처=뉴시스]

국내에서는 이재명 대표의 이날 발언이 공개되면서 사실상 횡재세 추진을 더불어민주당의 당론으로 받아들이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총선을 겨냥한 포퓰리즘이라는 시각도 제기되지만 민생경제의 위기가 실제 눈앞의 현실로 다가온 만큼 횡재세 도입에 대한 여론의 지지는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밖에 정유사들이 전기요금 감면으로 올해 상반기까지 약 30개월간 6000억원 대의 혜택을 누린 반면 소비자를 위한 유류세 인하 효과는 미미했다는 점도 추가 과세에 대한 목소리에 힘을 실고 있다. 

이에 따라 정유사들은 횡재세 도입 여부나 방안, 여파 등에 대해 진지하게 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맞이하게 됐다. 특히 횡재세 도입에 대한 여론의 압박은 업계 1위인 SK이노베이션을 향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 시민사회는 횡재세 도입에서 SK그룹의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와 관련 90여개 시민단체와 개인으로 구성된 ‘기후정의동맹’은 지난해 정유사 상반기 실적이 공개된 이후 SK서린빌딩 앞에서 집회를 열고 횡재세 도입 촉구와 에너지 빈곤층 지원을 촉구했으며 그해 10월에는 국회 기획재정위원회에 관련법 도입 입법 청원을 제출하기도 했다. 

무엇보다 석유화학 업계는 탄소배출의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어 ESG 진정성에 대한 의심을 지속적으로 받고 있다. 실제 SK이노베이션의 자회사 SK에너지는 탄소중립 휘발유와 경유를 표방한 제품을 내놨지만 그 근거를 갖추지 못해 지난해 허위광고 혐의로 환경부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특히 SK 최태원 회장은 그동안 어떤 재계 인사보다도 ESG 경영과 사회적 가치를 강조해왔던 만큼, 횡재세에 대해 부정적인 목소리를 내기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 회장은 ‘ESG 경영 전도사’라고 불릴 만큼 ESG 경영 문화 확산을 이끌어왔다. SK그룹 8개 계열사는 지난 2020년 한국 최초로 RE100에 가입하는 성과를 내기도 했으며 지난해에는 국내 지주사 최초로 ESG플랫폼을 구축해 선보이기도 했다. 

최 회장은 올해 신년사에서도 “기후변화와 질병, 빈곤 등 우리의 해결을 기다리는 문제들은 이 순간에도 계속되고 있다. 그 문제에 해결책을 제시하는 기업은 어떤 변수가 있더라도 결국 인류의 선택을 받게 될 것”이라며 “관계의 범위를 넓히고, 기후변화와 양극화, 디지털 격차와 같은 인류 공동의 문제를 풀어가는 더 큰 도전을 함께 하자”고 말하기도 했다. 

다만 정유업계는 국내 정유산업의 경우 원유 생산이 아닌 정제 중심의 산업으로 이뤄져 있어 횡재세를 도입한 해외 사례와 직접 비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또 올해의 경우 지난해 수준의 실적을 올리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횡재세 도입에 대해선 보다 깊은 고민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와 관련 업계 관계자는 “지난해 원유를 생산하는 기업들은 전장에 따른 가격 인상으로 높은 이익을 남겼다. 하지만 국내는 정제를 중심으로 하는 산업 구조라 상황이 다르다”라며 “실제 올해 상반기에는 적자가 났고 3분기 실적이 개선되긴 했지만 지난해 대비 1/3 수준이다. 이정도 개선으로 횡재세를 논의할 수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이어 “4분기 역시 글로벌 경기 개선 요인이 보이지 않고 석유 수요 감소가 전망됨에 따라 유가 및 정제마진 하락이 예상된다. 연간 실적도 작년의 1/3 수준에 불과할 것”이라며 “기업의 흑자는 마이너스를 대비해 미리 투자를 한다든지 기존의 적자를 메우든지 하는데 사용된다. 실적이 좋았다고 흑자분을 가져간다면 향후에도 기업의 실적 개선이라는 것이 가능할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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