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장보형 선임연구위원
국제 금융시장과 연계 높은 비은행 리스크에 관심
“한국, 디리스킹 수혜 보다 피해 쪽에 더 가깝다”
지정학·지경학적 갈등↑ 공급망 다각화는 필수 전략
대기업·기술혁신 중심이라는 일변도의 방식 피해야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사진출처=게티이미지뱅크]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이 진행됨에 따라 한국경제는 고금리, 고유가, 고환율에 발목이 잡혀있는 상황이다. 또한 미·중 패권전쟁과 글로벌 공급망 재편은 한국경제의 미래를 예측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한국 수출기업들은 비즈니스 전략과 수출입 등 경제 성장 모델의 변화를 겪고 있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내년 경제의 리스크 요소들을 짚어보고 예상 가능한 시나리오를 전문가들을 통해 들어보고자 한다.

【투데이신문 박중선 기자】 현재 국제 사회는 미·중 패권 다툼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그리고 이스라엘-하마스 분쟁과 같은 다방면의 갈등으로 불안정성이 극대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한국은 이러한 글로벌 변화 속에서 지역의 안보와 경제적 이해관계 등 중추 국가로서의 역할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

특히 한국경제는 생산가능인구의 빠른 감소로 인한 성장 동력 부재와 고금리에 따른 가계부채 등 금융 시스템 불안과 생산성 저하 등에 대한 과제를 안고 있어 향후 돌파구를 찾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장보형 선임연구위원을 만나 한국이 안고 있는 리스크를 짚어보고 대안을 살펴봤다.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장보형 선임연구위원  ⓒ투데이신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장보형 선임연구위원 ⓒ투데이신문

고물가를 제어하기 위한 급격한 금리 인상이 진행됐다. 이 과정에서 실리콘밸리(SVB) 사태 등 부작용이 나타났고, 국내에서는 금융권을 중심으로 대출 연체율이 높아지고 있다. 현재 국내 금융 시스템의 리스크를 어떻게 보는가.

보통 SVB 파산 사태가 은행 시스템 위기라고 이해하지만 실은 미국의 막대한 양적완화를 정리를 어떻게 해야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되면서 발생한 발작적인 사건이다. 특히 레포(Repo)시장의 불안과 같이 최근 국제사회에서 더욱 주의를 기울이고 있는 금융 시스템 리스크의 원천은 은행보다는 비은행 즉 헤지펀드나 뮤추얼펀드 등에 무게가 실려 있다고 본다. 

은행의 경우 투명성이 높고 이미 규제나 여러 가지 제도적 장치들을 통해 감시와 통제가 되고 있기 때문에 리스크 수준이나 그에 맞는 대응을 준비하고 조치할 수 있지만 비은행의 경우 리스크를 파악하기에 자료들이 불투명하고 응집되지 않고 흩어져 있다는 특성 때문에 점점 이슈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실리콘밸리은행과 같은 전문특화 은행이 없는데, 실은 일각에서 이런 은행 유형에 대한 관심이 있었으나 이번 일로 완전히 유예된 모습이다. 또 은행권의 국채투자 등에도 정책적 차원에서 많은 관심과 규제가 이뤄지고 있다. 따라서 실리콘밸리은행과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그동안 자영업자들에 대한 원리금 상환 유예 등의 조치들이 점차 종료되면서 누적된 취약성들이 드러날 가능성이 있고, 또 부동산을 중심으로 부동산PF 부실이나 가계부채 등이 꾸준히 국내 은행 시스템을 압박하고 있는데, 아직은 정책적 관심에 노출되어 면밀히 관리되고 있는 상황이라 당장에 리스크가 전면화하는 일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사실 이미 알고 있는 위험은 위험이 아닌 경우가 많고, 제대로 보이거나 관리되지 않는 영역, 가령 비은행 부문, 특히 국제 금융시장과 연계가 높은 영역에 대해 관심을 키워야 할 것으로 생각된다.  

비은행의 경우 실물과 밀접한 연계가 돼 있는데 실물 위기라고 보는 것인가.

사실 은행 시스템은 내부적으로 규제나 은행권 간 상호작용이 원만한데다 정부의 직접적인 관할 하에 움직이는 부분이 많아서 정말 시스템 리스크가 터지지 않는 이상에는 실물 부문에 직접적인 충격을 가하는 경우는 별로 없다. 오히려 가계나 자영업자, 나아가 기업들에 이르기까지 투자나 자금조달 등의 측면에서 증권이나 보험, 펀드, 저축은행 등과 같은 비은행 시스템이 실물 부문에 보다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또 역으로 영향을 받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지금 여러 가지 위험들이 중첩되면서 복합위기 우려가 큰데, 실은 은행을 중심으로 한 금융위기보다는 생산성 저하나 공급망 차질, 인구 노령화, 지정학적 불안 등 실물 위기의 성격이 강해 보인다.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이나 불안, 특히 은행보다는 비은행 부문의 위험도 실은 이런 실물 측면의 불안을 반영한 결과로 생각된다. 

최근 중국경제가 좋지 않은 시그널들을 보내고 있다. 중국과 밀접한 경제공동체인 한국경제도 타격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내년 대내외 경기를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다만 이전의 금융위기의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은 낮다고 본다. 물론 장기침체의 불씨는 계속 살아 있다고 생각한다. 글로벌 금융위기와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이하 코로나19) 등을 진화하기 위해 강력한 수요 부양책을 단행했는데 이에 따른 부작용의 압력들이 커지고 있고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최근 들어 미국을 필두로 한 대중 디커플링 혹은 디리스킹을 중심으로 국제적 차원에서 중국과의 공급망 재편 움직임이 확산되면서, 중국과의 경제적 연계성이 높은 우리 경제에도 더욱 큰 부담이 되고 있다, 디리스킹 혹은 디커플링은 공급망 다변화로 중국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자는 의미지만 사실 한국의 경우 디리스킹으로 수혜를 입기 보다는 피해를 입는 쪽에 더 가깝다. 이를 파악하려면 변화된 공급망 메커니즘을 자세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 

우선 미국이 디리스킹을 위해 공급루트를 중국을 대신해 멕시코나 베트남에 초점을 많이 맞췄다. 그러다 보니 해당 나라에서 미국에 공급할 제품을 생산하는데 필요한 중간재들을 오히려 중국에 의존하는 현상이 발생했다. 그러니까 직접적으로 중국의 의존도를 낮추는 행위가 간접회로를 통해 또 다른 방식으로 중국에 의존된 공급망을 작동시키게 된 것이다. 아울러 중국이 직접적인 미국 수출을 우회하여 멕시코나 베트남 등에 직접투자를 늘리고 생산함으로써 다시 미국에 수출하게 되는 더 복잡한 방식의 공급망이 나타나고 있다. 

글로벌 국가들의 디리스킹 움직임에 한국은 어떤 대처가 필요한가.

한국이 좀 더 능동적으로 역할을 해야 할 부분이 있는데 중국과의 직접적인 관계보다는 동남아나 등 중국이 경유하는 지역에 대한 투자나 생산을 늘리는 방식으로 중국과의 네트워크를 재구성하는 전략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베트남과 멕시코 시장의 불안정성은 또 다른 리스크라고 볼 수도 있는데.

맞다. 사실 베트남은 주기적으로 위기를 겪는 나라고 멕시코는 늘 위기에 노출된 나라라는 점에서 시스템 안정성이 불안하다. 그렇기 때문에 공급망을 훨씬 다차원적으로 가져가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비용이 발생한다. 공급사슬이 더욱 길어지고 복잡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정학, 지경학적 갈등이 커지는 세상에서 공급망 다각화는 꼭 필요한 전략이다.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19년을 정점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출처=통계청 장래인구추계]
한국의 생산가능인구는 2019년을 정점으로 하락하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사진출처=통계청 장래인구추계]

최근 해외 언론들이 한국경제의 가장 큰 리스크로 인구절벽에 따른 생산가능인구 감소를 꼽았다.

보통 인구 감소라고 하면 이른바 인구배당효과가 사라진다는 측면에서 당연히 경제 성장이 둔화될 것으로 예측하는데 실은 몇십 년 전만 해도 인구가 좀 줄어야 한다는 논의가 있었다. 물론 지금 우리나라의 빠른 인구감소율이 문제가 된다는 이슈가 틀리다고 볼 수 없지만 현재 인구구조와 상황을 다르게 볼 필요가 있다. 즉 생산가능인구를 생물학적 나이가 아닌 사회적 나이로 적용해서 생각해 봐야한다. 다시 말해 기대여명 개념으로 접근해야 한다. 평균 수명을 80세라고 가정하면 65세가 노인 인구에 해당되지만 현재 평균 기대 수명이 증가하는 추세다. 따라서 85세나 90세로 평균 수명을 올리고 생각해보면 노인 연령도 70세 이상으로 올라가기 때문에 절대적인 인구가 감소해도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폭은 줄어들 수 있다. 

생산가능인구의 감소 폭이 줄어들더라도 노령화의 문제가 남는다. 생각해 볼 수 있는 대안이 있는가.

글로벌 인구는 아직 늘어나는 추세다. 특히 아프리카와 남아시아 쪽에서 인구 증가세가 두드러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는 재화와 자본의 자유로운 이동이 가능하지만 인구의 이동은 제한돼 있다. 자본과 노동이라는 생산요소에서 노동이 잘 작동이 안 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경제가 요즘 계속 좋다고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이민 유입이 계속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20~30대의 유입이 왕성하다는 점이 큰 강점이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포용성에 대한 사회적 고민을 많이 해야 할 필요가 있다.

코로나19 위기가 채 가시기 전에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과 이스라엘-하마스 분쟁 등 위기가 연속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정함을 대응하기 위해서는 현재 위기를 제대로 바라보고 이해하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우리가 지난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얻은 교훈이 수요 위기에 대한 빠른 대처다. 그러나 이 위기의 본질을 잘 살펴보면 금융경색이나 그로 인한 수요 감소가 아니다. 그리고 국내 경제의 실증분석 결과, 코로나19 위기 이후 물가 및 경기변동에 수요나 통화 정책 충격보다 공급 충격의 영향력이 더욱 확대되는 추세로 나타났다. 

따라서 생산의 중단 다시 말해 공급 차질로 인한 위기의 성격이 강하다는 것을 인지할 필요가 있다. 실제로 코로나19 위기 이후 안정적인 공급망 확보를 둘러싼 각종 지정학적 갈등으로 원유나 원자재, 나아가 반도체와 AI 등 첨단기술에 이르기까지 공급 차질 위험이 심화되고 있다. 공급에 충격이 오면 수요에 영향을 미친다. 따라서 현재 위기의 본질은 건드리지 못하고 수요의 파급효과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실물 부분에서 돌파구를 찾기 어려운 것이다. 

생산성 저하로 인한 실물 경제 위기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뜻인가.

사실 생산성 둔화는 계속 진행돼 왔다. 이는 실물 부분에서 뭔가 할 수 있는 일이 적어지고 수익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감소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게 때문에 주식과 코인 부동산 등으로 유동성이 유입된 것이다. 미국이 이러한 공급 위기 타개를 위한 고민이 많은 것으로 보인다. 바이드노믹스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고 생각된다. 미국의 생산역량 저하 즉 공급 차질은 단순히 기업들의 문제라기 보다 노동자들의 역량이자 국민의 역량이다. 이런 부분들이 무너지고 있기 때문에 보호무역이나 글로벌 공급망 재편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복합적인 위기에 놓인 한국의 돌파구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한국은 중소 개방 경제국이고 동북아의 복잡한 지정학적 여건을 감안할 때 프렌드쇼어링을 넘어 보다 능동적이고 다각적인 공급망 관리가 필요하다. 말하자면 글로벌 중추국가로서의 역할 강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대기업 중심, 그리고 기술혁신 중심이라는 일변도의 방식은 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노동의 역량 강화 그리고 국민의 역량 강화 이런 것들과 어우러질 때 비로소 현대판 공급 중심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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