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연 우리는 어디에서 우리의 작품을 알려야 할까요?” 최근 미술계는 유명 외국작가나 원로작가에 초점을 맞춰 전시, 홍보, 판매에 열을 올리고 있다.  이렇다보니 국내 전시에서는 신진작가의 작품을 찾아보기 어렵다는 이야기가 따라 나온다. 소수의 작가들만 주목받는, 지속적으로 되풀이되는, 미술계의 이러한 방식에 신진작가들은 갈증을 느낄 수밖에 없다. 현재 신진 작가의 발굴과 지원은 기업이나 공공기관의 지원에 의존해 이뤄지고 있으며, 그마저도 ‘좁은 문’으로 불릴 만큼 치열하다. 예술적 재능이 있어도 대중들에게 눈도장을 찍고, 예술가로서 인정받기란 젊은 작가들에겐 쉽지 않은 일이다. 이에 〈투데이신문〉은 신진작가들이 직접 자신의 작품과 예술세계를 소개하는 코너를 통해 이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원에 나서고자 한다. 팝아트스트 낸시랭과 김선 비평가가 작품에 대한 폭넓은 시각도 제공한다. 앞으로 온라인 갤러리 [영블러드]를 통해 젊은 작가들의 뜨거운 예술혼을 만나보길 바란다.

# ART STORY 

자신들만의 유토피아에 살며 공격적이면서도 신조차 두려워하지 않는 ‘키클롭스’들은 인간과 닮았다. 혹시 모두 인간이지 않았을까? 신화 속 괴물 ‘키클롭스’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인본주의적인 시선으로 표현한 윤건호 작가의 <외눈박이 시리즈>. 하나의 시야가 갖는 거대한 몸집을 방향성으로 재해석하고 새로운 형태로 구성한다. 불편함을 의도하고 제공하는 작업들은 권위, 계급, 차별, 성별 등 모든 형태의 억압을 벗어나 순수한 인간의 아름다움을 불편함을 통해 살피며 다각적인 접근을 시도한다. 인물은 나체로 표현되지만 억압을 노출하지 않고, 불편한 파동은 색채로 스며들어 잔잔하게 활기를 띤다. 인간은 불편함을 피하려는 경향이 있지만, 불편함을 통해 성장하고 문명의 빛을 누렸다. 완벽을 갈망하지만 완벽할 수 없는 존재인 인간에게 불편함은 그저 사라져야 할 무언가가 아닌 잠재된 고유의 ‘미’일지도 모른다. 불안정한 과정의 선들이 모여 완전한 형태를 그려내기 위해서, 불편함을 조명한다.

안녕하세요, 인간과 불편을 그리는 윤건호입니다. 불편함을 주제로 평면회화, 일러스트, 조형, 설치 등의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는 명쾌한 명답보다 비효율적인 낭만과 어중간한 균형에 관심이 있습니다. 인간과 인간 사이에 필연적으로 존재하는 불편함이 그런 어중간한 균형인 것 같아요. 이들을 외면하고 기피할수록 우리의 균형은 흔들려요, 무너진 그 틈새는 벌어지고 금이 가고 결국 깨지게 됩니다. 더욱 커다랗고 거대하게 부풀어진 불편함은 깨진 틈새의 구멍을 차지하고 위압으로 우리의 존재를 불완전하게 흔들겁니다. 불편함을 마주하고 바라봄으로써 벌어진 틈새를 위압이 아닌 가능성으로 부풀려 채우고자 합니다. 불편함을 의도하고 대면하면서 미운 정을 쌓으려 합니다.

현재는 평면회화 작업을 주로 하고 있지만 다양한 툴을 다루는 영상디자인을 전공해서인지 기본적으로 다양한 포맷에 관심이 많아요. 다양한 매체를 경험할수록 이야기를 전하는 방식이 넓어지기 때문에 최근에는 조형, 설치, 공공미술에 도전하며 작업의 폭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외눈박이 시리즈’를 필두로 하는 작업은 한쪽 눈만 뜨고 있는 인물과 인체에 일렁이는 두들, 불완전한 선으로 그려지는 형태, 그리고 화려한 색감이 돋보이는 시리즈입니다. 이 작업은 ‘불편함’을 순수한 자세와 인간적인 시선으로 대면하기 위한 과정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댄서와 모델들에게서 많은 영감을 받는 저는, 불편함을 기반으로 다져지고 행위되는 멋진 동세의 잔상을 동경합니다. 그들의 멋지고 불편한 동작의 결합과 공상을 레퍼런스로 삼습니다. 작업을 통해 공상에 사는 외눈박이들을 관찰하며 사람 사이에서 일렁이는 불편한 파동에 집중하고, 불편함의 본질을 마주하며 인간에게 잠재된 미의 초석을 발견합니다.

인체를 그대로 노출하면서도 신체의 선을 비틀어 차이점을 감추고 불안정한 선들의 집결로 완전한 형태를 완성합니다. 한계가 명확한 평붓의 선은 방향성으로 그어지며 다각적인 가능성을 보여줍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으로 인간의 불편함을 세공하고 형태를 완성함으로써 인간다운 아름다움에 순수한 자세로 접근하며, 외면과 위압으로 부풀어지는 외눈박이 거인(키클롭스)이 되는 것을 경계합니다.

그림을 이루는 구도와 표현 방식, 사용된 도구들은 모두 완벽하지 못하고 안정적이지도 않지만 그럼에도 그림은 명확한 형태와 구도를 지니고 있으며 외눈박이들은 완전한 인간의 형태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형태를 그려나가는 과정들을 불편함으로 관찰하고, 긋고, 채우며 잠재된 가치의 방향을 확장하고 가능성의 몸집을 키워 명백한 형태를 만들어 냅니다.

# ARCHIVE

푸,후,우_ 2023, Acrylic and ink on canvas, 90.9x72.7

[푸,후,우] 2023

2023년에 들어서면서 작업 스타일의 진부함을 느끼며 형태의 구성 방식과 레이아웃을 전적으로 ‘강조’에 맞추는 새로운 작업방식을 시도했습니다.

나체에 대한 거부감이 심한 한국 정서를 아우르기 위해서 절제하던 그동안의 표현 방식에 회의를 느끼던 시기에 이를 타파하기 위해 그려진 스케치들로 구성된 ‘변곡점 스케치’에 기반한 그림으로, 이후의 작업부터는 인체 비율에 갇히지 않으면서 강조 위주의 적절한 비율로 인체를 구성하기 시작했습니다.

‘푸,후,우’는 숨을 3번 나눠 쉬는 참을 인(忍)의 시간과 결별을 고하면서 솔직하지 못한 표현으로 부풀려진 바람을 빼고 작가의 순수한 ‘강조’를 새로이 불어 넣었습니다. 눈, 입술, 귀 등 강조하고자 하는 부위를 가장 먼저 그리고 나머지 요소를 강조에 맞춰 그려내는 식으로 레이아웃을 구성하며 오묘한 균형감을 보이고 긴장감을 만들어 내고자 했습니다.

자아부림 2023 53.0×45.5 Acrylic and ink on canvas

[자아부림] 2023

‘인천호텔아트페어(IHAF)’에 참여하며 그린 그림입니다. 작업의 상업성과 순수성에 대해 고찰하는 과정을 겪었습니다. 전시를 이어갈수록 궁핍해지는 현실이 반복되면서 자신도 모르게 ‘팔리는 그림’에 집착하게 되는 습성을 느끼고 작업에 대한 스스로의 태도를 성찰하고 지탄하며 그렸습니다.

셀링 포인트에 집착을 버리고자 고민하는 자의식에 격려가 필요했기에 제 옷을 입는 마음가짐을 다지며 스스로 가장 잘 어울리는 푸른색을 사용하고, 골드 포인트에 찬란하길 기원하는 바람을 담았습니다.

자신에 대한 의문이 앞서는 순간에도 자신감을 바라는 열망으로 자세를 고쳐 잡은 이 시기에 총 3점의 그림을 그렸으며 그중 ‘자아부림’은 자아를 휘두르고 부리는 태도로 당돌하게 형태를 마무리했습니다. 비록 이 3점의 그림은 ‘인천호텔아트페어’에서 한점도 팔리지 않았지만, 작가로서 또 다른 고민에 접어드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피어나타 2023 53.0×45.5 Acrylic and ink on canvas

[피어나타] 2023

‘인천호텔아트페어’에 참가하며 그린 3점의 그림 중 하나이며 작업의 순수성을 재확립하는 시기의 작업입니다. ‘피어나타’는 삶을 연명하면서도 피어나는 나태와 대면합니다. 똘똘 뭉쳐 악착같더라도 기어코 피어나는 나태를 들춰내고 새롭게 피어나는 자세를 담았습니다.

그림 속의 골드 포인트는 바람을 담고 있으며 그것이 찬란하게 남길 기원합니다. 이 시기 이후로는 작업에 터치가 강렬해지고 양도 많아졌습니다. 적은 겹침으로 그려지던 기존의 방식과 달리 선 하나에도 겹겹이 터치가 올라가며 밀도가 높아졌습니다. 색의 전개와 디테일의 표현이 많아지고 보다 거칠어졌기 때문에 곡선의 유연함과 부드러움이 더욱 강조된 점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RED_20240102 2024 72.7×60.6 Acrylic and ink on wooden panel

[RED_Series] 2024

‘RED_Series’는 순수에 대한 고찰을 거치며 솔직한 관찰에 대한 열망에서 출발하는 시리즈입니다. 셀링 포인트에 대한 미련을 거두고 순간적이고 자유로운 속도감으로 불편함에 접근하고자 했습니다. 공상에서 관찰되는 형상들을 열망에 중점을 두고 포착하기 시작했으며 공상 속에서 보다 오래, 절박하게 사유하고자 했습니다.

저 자신과 가장 안 어울리기 때문에 몸에 지니고 있지 않는 색인 ‘RED’는 사실 제가 가장 좋아하고 애정하는 애증의 색이자 간직하고만 있던 “열망의 색”입니다. 자제와 절제를 이유로 마음속에 꿔다놓았던 열망의 색 ‘RED’를 이제는 끄집어내고 싶어 적극적으로 관찰하려 하지만 너무 오래 간직한 탓인지 ‘RED’는 시선을 피해 달아났습니다. 저는 공상에서 배회하며 달아나는 ‘열망’을 따라잡기 위해 긴박하게 따라다니고 순간순간 포착하고자 했습니다. 그 때문에 시리즈의 표현이 더 즉흥적이고 속도감이 돋보인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시리즈에서는 저의 내면이 많이 투영되고 있으며, 원초적이고 솔직한 감각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감각을 강조하는 만큼 시리즈의 그림들은 제목으로 구별되지 않고 오직 포착이 끝나는 날짜로 구별됩니다. 그림은 열망의 크기대로 그려지며 측면 골드 시그니처(Gold Signature)를 지니고 있습니다. ‘Gold’ 역시 소유하고 있지 않은 색으로 찬란함을 바라는 의지를 상징합니다.

# ARTIST STORY

윤건호 작가.
윤건호 작가.

원초적이고 자유로운 감각으로 표현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보다 노력을 기하고 싶습니다. 작년에는 전시를 많이 했기 때문에 2024년에는 작업에 몰두하는 것에 초점을 두려고 합니다. 다양한 시도가 많은 ‘RED_Series’에 집중하며 내면의 공상에서 관찰과 표현의 심도를 발전시키고 이를 기반으로 한 공공미술과 조형에서도 작업 반경을 더욱 넓혀갈 계획입니다.

대외적으로는 전시기획에도 힘을 쓰고 있으며 인도네시아 및 캐나다와의 문화예술 교류를 통해 해외 시장에서의 작품 활동도 준비 중입니다. 작품만 만드는 것이 아닌 작업을 위한 기회를 만들고 경험을 확장하는 한해를 만들고 싶습니다.

회화나 서양화를 전공하지는 않았지만,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나만의 이야기를 표현하기 위함입니다. 예술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과 생각을 전달할 수 있고, 문자만으로 다다를 수 없는 감성을 나타낼 수 있는 특별한 힘이 있다고 느껴져요. 예술을 향유하는 것은 삶을 다양하고 풍부하게 만들어 주며, 기계적인 시각으로는 평가하기 힘든 낭만을 불러일으킵니다.

기계적인 시각에서 낭만은 비효율적이고 불필요한 가치로 여겨질 수 있겠지만, 인간적인 시각에서는 삶을 기억하게 하고 순간을 소중하게 만드는 계산할 수 없는 가치가 됩니다. 0과 1의 시대에서 효율과 계산을 떠나 예술을 즐기는 것만으로도 삶의 가치는 측정할 수 없을 거예요. 오늘의 나를 기억하고 소중하게 할 겁니다. 예술을 즐기고 이야기하는 것은 낭만을 불러오고 그것은 인간스러운 것이니까요.

 

ART CRITICISM   

 

윤건호 작가는 인간의 나체를 주제로 작업하는 아티스트다. 파격적인 시선, 신체의 퍼포먼스적인 연출이 돋보이는 윤건호의 스타일은 인간 본연이 가지는 외적 아름다움에 대한 완전한 균형의 미를 파괴했다. 형태가 주는 자유다. 강렬한 색채의 여백이 주는 프레임 속의 파동에 인체의 존재감이 돋보인다. 찰나적이면서도 여유 짙은 미소들이 과감하게 무한반복의 선의 형태가 한데 어우러졌다. 억압에 대한 갈망으로부터 인체를 표현하는 밀도는 더욱 거칠고 불완전한 것들의 만남의 연속이다. 완벽할 수 없는 존재에 대한 탐구로 인간과의 관계 그리고 그 사이를 연결시키는 불편함이라는 정서 사이의 미묘한 긴장감을 주는 윤건호. 인간이 가진 무한한 경계에 감각을 꽃피운다. (김선 비평가)

 

나는 윤건호 작가의 ‘원초적이고 자유로운 감각으로 표현의 기반을 다지기 위해 보다 노력을 하고싶다’라는 말이 마음에 남는다. 현재 한국의 미술계에서 팔리는 작품 쪽이 아닌 자신만의 컬러를 아티스트로서 확실히 가져가려고 하는 의지와 용기에 응원하며 박수를 보낸다. 그런데 이른바 ‘팔리는’ 그림이란 무엇일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현대미술가 아티스트 중에 하나는 (현재 살이있는) 캐서린 번하드(Katherine Bernhardt) 작가다. 그녀의 페인팅을 매우 좋아한다. 마치 단시간 내에 막 그린듯한(?) 캔버스 그림이 과연 한국에서는 잘 팔리는 작품군에 속할까? 그렇지 않을 거란 의견이 많을 것 같다. 그러나 이 작가는 데이비드 즈위너가 선택한 아티스트이다. 즉 세계적인 팝아티스트 쿠사마 야요이가 속해 있는 세계적인 갤러리의 전속작가다. 이미 작품가는 매우 높으며 전 세계 컬렉터들의 소장 그림 중 하나라고 한다. 캐서린 번하드 작가를 이야기한 것은 바로 이러한 아티스트의 독창성과 원초적이고 자유로운 감각과 상상력의 중요성을 말하고 싶다. 신진작가로서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윤건호 작가에게 본인은 현재 잘 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단, 작품의 시각적인 미적 형태, 선, 면, 컬러, 구도, 여백 등의 밸런스와 그에 따르는 세련되고 컨템포러리한 이미지는 앞으로 여러 실험들을 통해서 더 발전해 나가길 소망한다. (팝아티스트 낸시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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