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br>-&lt;착한 자본의 탄생&gt; 저자<br>-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ESG네트워크 김경식 대표
-<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
-前 현대제철 홍보팀장·기획실장(전무)

요즘 각종 논란으로 언론에 자주 등장하는 카카오를 보면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언론 보도에 의하면 회사가 급성장하는데 내부 관리 시스템은 이를 따라가지 못한 결과라고 한다. 이러한 상황이 벌어지면 홍보팀이 엄청나게 힘들어진다. 우선 기자들의 취재 경쟁은 벌어지는데 이때다 하고 내부자들이 언론에 많은 제보를 하게 된다. 그중에는 고위 임원들이 뭔가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은밀히 흘리는 정보도 많다. 필자는 실제로 이런 일을 많이 겪었다. 현대제철은 경험해 보지 못한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느라 2004년부터 2010년 사이 많은 외부 인사를 고위 임원으로 영입했다. 이들 영입 인사들 중 극히 일부가 고급 정보를 흘려서 다른 조직(임원)을 흔들어 버린 일이 자주 있었다. 회사가 급성장할수록, 영입하는 고위 임원이 많을수록, 회사가 흔들릴수록 정보는 더 많이 유출된다. 이런 취재에는 홍보팀이 구체적인 내용을 잘 모르므로 제대로 대응할 수가 없다. 또 내부 확인도 잘 안된다. 그런데 제보를 못 받은 다른 기자들은 그에 걸맞은 정보를 달라고 아우성친다.

내부 제보→특종→취재 경쟁→미확인 추측성 보도 확산→CEO 격노→조직 균열→홍보팀 질타→회사 약점 노출→홍보팀의 내외부 신뢰 저하→제보 증가로 이어진다. 이럴 때 누군가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줘야 한다. 그런데 이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최고 책임자(오너) 밖에 없다. 오너 회장이 보도된 기사로 홍보팀을 질타할 것이 아니라 내부자 색출을 해야 한다. 그리고 필요시 직접 기자단과 스킨십을 해줘야 한다. 홍보팀장의 중요한 역할 중 하나도 오너와 기자단과의 이런 기회를 만들어 주는 것이다. 참고로 주의할 것은 절대로 특정 매체와 단독으로 인터뷰 기회를 주면 안 된다. 이는 다른 매체들을 적으로 만드는 일이 된다.

정몽구 회장은 당진제철소에 오면 늘 현장을 순시하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사진제공=ESG네트워크]<br>
정몽구 회장은 당진제철소에 오면 늘 현장을 순시하고 직원들을 격려했다. [사진제공=ESG네트워크]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최고의 홍보맨은 ‘회장님’이다. 우선 기자들은 회장과 인터뷰하는 기회를 늘 갈망하고 있다. 그리고 온갖 추측성 보도가 난무할 때 회장이 기자들을 상대로 메시지를 주면 혼란은 급격히 안정된다. 일부 임원들의 일탈적인 제보 행위도 사라지게 된다.

필자의 경험과 듣고 본 바에 의하면 최고의 홍보맨은 현대차그룹 정몽구 명예회장이다. 현대제철이 한보철강을 인수하고 일관제철소 건설을 ‘공식 보도자료’로 발표한 것은 2005년 5월 19일이었다. 그 전해인 2004년 5월 29일 한보철강 인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되자 많은 언론이 그 자리에 제철소를 건설할 것으로 예상했다. 자동차와 철강 출입 기자들이 집요하게 취재했다. 그러나 회사는 이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이유는 간단했다.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은 됐지만 공식 인수, 기존 공장 정상화, 일관제철소 원·부재료 조달 가능성, 건설·운영기술 및 인력 확보 등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기 때문이다. 이런 때 섣불리 선언했다가는 국내외 경쟁사의 방해 공작과 경기 상황에 따른 금융권의 동향을 가늠할 수 없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시는 자동차용 강판 소재인 핫코일 수급으로 2000년부터 현대차(현대하이스코)와 포스코 간에 소송이 진행 중이었다.

정몽구 회장은 지난 2004년 10월 21일 한보철강 인수 후 처음으로 현장을 방문하고 일관제철소 추진을 공개했다. 당시 조선일보 보도 [자료제공=<br>
정몽구 회장은 지난 2004년 10월 21일 한보철강 인수 후 처음으로 현장을 방문하고 일관제철소 추진을 공개했다. 당시 조선일보 보도 [자료제공=ESG네트워크]

현대제철은 2004년 9월 24일 채권단의 동의로 한보철강 인수를 마무리했다. 그리고 약 한 달 뒤인 10월 21일 정몽구 회장은 당진공장을 첫 방문했다. 자동차와 철강 출입기자들을 대거 당진공장으로 초대했다. 정몽구 회장은 특유의 스타일로 메시지를 전달했다. 정 회장은 공장에 오면 몇 시간 동안 현장 순시를 하면서 청소 상태, 조명, 설비 등을 점검하고 반드시 근로자들과 악수하고 격려한다. 이날은 공장 순시에 앞서 기자들이 일관제철업을 다시 추진할 것이냐는 질문을 하자 “부담이 많다, 자동차 부품에는 철이 매우 중요하다. 중간소재는 일본에서 대부분 수입한다. 자동차용 강판을 제대로 공급받기 위해서는 연관사업에 진출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연관사업’이라고 했지 ‘고로(高爐)’라고 분명히 못 박지는 않았다. 현장이 시끄러워서 몇몇 기자들만 들었다. 회장이 순시를 마치고 오자 기자들이 다시 확인 질문을 했다. 회장은 “(왜 말귀를 알아듣지 못하는냐는 투로) 고로를 한다”고 힘주어 강조했다.(김성홍·이상민 기자 <정몽구의 도전> 137쪽 참조)

오랫동안 홍보팀을 힘들게 했던 일관제철소 추진 비밀 유지는 이렇게 정몽구 회장 특유의 현장 메시지로 공개되었다. 이날을 계기로 이제 갓 구성된 홍보팀도 기자단과 친밀해지게 되었다. 대(大) 그룹 회장이 직접 일선 출입 기자들과 몇 시간을 같이 스킨십하는 회장은 정몽구 회장이 유일했다. 당연히 기자들의 인식도 우호적이게 된다.

2013년, 현대제철 60년 사사(社史)를 제작하면서 한보철강 인수를 시작한 2004년부터 2013년까지 10년간 주요 홍보 행사를 정리해 보았다. 모든 언론사를 대상으로 배포한 일관제철소 관련 보도자료가 총 33회였다. 이 중 출입 기자단 전체 초청 행사가 15회였다. 정몽구 회장은 이때 항상 기자들과 스킨십을 했다. 기자단 초청은 없었지만 나머지 15회도 전 언론사를 상대로 보도자료를 배포했다.

2008년~2009년 전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해외는 물론 국내도 대부분의 대형 투자가 중단됐다. 금리가 상승하고 자금 롤오버(연장)가 불투명해졌다. 그런데 현대제철은 정몽구 회장 지시로 2008년 6회, 2009년 3회에 걸쳐 일관제철소 건설 현황 보도자료를 배포하고 기자단도 3회 초청했다. 이 시기 총 12조 원에 달하는 국책사업 규모의 현대제철 일관제철소 투자가 중단없이 진행된다는 뉴스는 국민들의 불안감을 해소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다.(참고로 인천공항은 7조5000억원, 서해안고속도로는 4조 8천억 원이 투자됐다.) 그런데 당시 회장님 대면 보고자들에 의하면 정몽구 회장은 실제로 그렇게 말씀하셨다고 한다. ‘현대제철 일관제철소=고급 철강 소재 경쟁체제=자동차·조선·기계산업 등 국가 기간산업 경쟁력 기여=고용창출=부가가치 창출’이라는 확고한 철학이 있었다.

홍보팀 업무는 많은 어려움과 희생을 요구한다. 그렇지만 지향하는 가치를 조직의 리더와 함께 실행할 수 있는 홍보는 최고의 만족감을 준다. 그래서 힘들었지만 행복했고 보람됐고 자랑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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