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월 만의 이전, 다르크는 왜 산자락 아래로 들어갔을까
주민 민원에 지자체 ‘학생들에게 부정적 영향 끼칠까 걱정’
입소자 “주민들 입장 당연히 이해, 그래도 한 번 기회를”
남양주시의원 “위험한 분들은 아니지만…학부모들 우려”

마약청정국이라 자부하던 대한민국의 혈류에 마약류가 퍼지기 시작했다. 마약은 외국인이나 조직폭력배나 하는 것이라며 쉬쉬하던 찰나 연간 마약사범 1만8395명(2022년 마약류 범죄백서) 돌파. ‘범죄와의 전쟁’을 교본 삼은 정부는 지난해 1월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정책의 일환으로 경찰청과 관계부처는 전 국민을 대상으로 마약에 대한 심각성을 일깨우기 위해 ‘NO EXIT’ 캠페인을 벌였다. 마약은 출구가 없으니 절대 시작하지 말라며 말이다. 시작하지 않는 것은 좋다. 그런데 이미 마약을 해버린 사람은, 어떻게 해야 할까?

마약과의 전쟁 1주년을 맞아 <투데이신문>은 마약류 경험자와 치료시설, 관련 전문가 등 미로 한가운데 있는 이들을 만나봤다.

마약류 중독 재활 센터 경기도 다르크 회의실에 걸려있는 다르크(DARC) 포스터. 다르크는 Drug(약물), Addiction(중독), Rehabilitation(재활), Center(시설)의 앞 글자를 따서 지었다. ⓒ투데이신문
마약류 중독 재활 센터 경기도 다르크 회의실에 걸려있는 다르크(DARC) 포스터. 다르크는 Drug(약물), Addiction(중독), Rehabilitation(재활), Center(시설)의 앞 글자를 따서 지었다. ⓒ투데이신문

【투데이신문 강현민 정인지 기자】 김주영(가명·31)씨는 필로폰 투약 후 중독 증상으로 고초를 겪었다. 어떤 날엔 엄마의 환청이 들렸고, 주변인들과의 관계는 말 그대로 엉망진창이 됐다. 김씨는 시나브로 망가져가는 자신을 돌아보다, 재활하기로 마음먹었다. 마약과 멀어지기 위해 주변인과 관계를 단절하는 등 스스로 고립에 들어갔다. 역부족이었다. 마약은 눈앞에 어른거렸고 다른 방도가 필요했다.

그렇게 당도한 곳이 다르크(DARC: Drug Addiction Rehabilitation Center)다. 그가 마약에 시달리고, 혼자서 끙끙 참다가 찾은 다르크는 민간에서 운영하는 마약류 중독 재활 센터다. 다르크는 1985년 일본에서 처음 시작한 회복 공동체로 현지에선 현재 90곳이 운영되고 있으며 연간 2000여명의 입소자가 센터를 오간다. 이를 모태로 2012년 국내 다르크가 처음 문을 열었다. 현재 전국에서 경기도·인천·김해·대구 네 곳의 다르크가 운영 중이다.

다르크가 여타 재활 센터와 다른 점은 입소자들이 24시간 함께 지내며 중독 재활에 참여한다는 것이다. 김씨는 “24시간 내내 입소자들과 함께 있어 혹시 모를 위기 상황이 오더라도 마약으로부터 시선을 돌릴 수 있다”고 했다. 이곳 입소자들은 아침 7시에 일어나 아침 식사와 샤워 등 개인 정비를 마치고 한 공간에 모여 큐티(QT, 묵상)의 시간을 갖는다. 이후 각자 할당된 구역을 청소하고, 마약 중독부터 평소 고민까지 폭 넓은 이야기를 나누는 ‘다르크 미팅’ 시간이 지나면 점심 무렵이다. “센터 식구들과 묵상하고 다르크 미팅을 하면서 본인이 어떤 상태인지 얘기를 나누고 피드백을 주고받는다. 이런 과정이 단약에 큰 힘을 준다”는 게 김씨의 말이다.

오후엔 중독과 관련한 교수 초빙 강의를 비롯해 신체 단련을 위한 운동으로 시간을 보낸다. 저녁 식사를 마치고 임상현(73) 센터장 지도하에 교외로 나가 익명의 약물중독자들 모임인 (NA·Narcotics Anonymous)를 가지면 하루 일과 끝. 센터 생활 자체가 재활의 일종이라 볼 수 있다.

경기도 다르크 임상현(73) 센터장 ⓒ투데이신문
경기도 다르크 임상현(73) 센터장 ⓒ투데이신문

다르크는 왜 산자락 아래로 갔을까

현재 김씨가 재활하고 있는 경기도 다르크의 입소자는 16명으로 전국 네 곳의 다르크 가운데선 그나마 규모가 가장 크다. 원래는 경기도 남양주 호평동에 있었으나 이곳 양주시 외곽을 임시 거처로 삼았다. 임 센터장은 “3월 말까지는 자리를 비워줘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다르크가 구태여 이곳 산골에 터를 잡은 까닭은 지난해 일이었다. 센터는 근래 들어 마약류 중독자가 점점 늘고, 여성 입소자를 받게 되면서 확장이 필요한 상황이었다. 자리를 물색하던 중 남양주 호평동이 낙점됐고 지난 2019년 4월 남양주 퇴계원에서 처음 연 센터는 지난해 3월 남양주 호평동으로 이전했다.

문제는 그 이후였다. 센터 이전 소식에 인근 주민들이 반대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센터 근처에 학교가 있는데, 혹여나 학생들에게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주민들 사이에서 불거진 것이다. 임 센터장은 “센터 인근에 중·고등학교가 있으니까, 호평동 주민센터에 직접 방문해 법적으로 문제가 없는지 확인도 거쳤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지자체에서는 다르크 측에 ‘마약 중독 재활시설은 교육환경보구역 내 금지시설에 해당되지 않는다’고 답했고 임 센터장은 당연히 문제가 없을 것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지난해 6월 29일 센터 이전 3개월 만에 남양주시는 경기도 다르크를 경찰에 고발했다. 관내 신고 없이 마약류 중독재활시설을 운영 중이었다는 게 그 이유였다. 남양주시는 내달인 7월에는 운영을 중단하라는 내용의 행정명령을 내렸다. 1개월 안에 신고하지 않고 운영하면 폐쇄하겠다는 말이었다.

지난해 9월 12일 남양주시가 경기도 다르크에 보낸 정신재활시설 신고 불가 공문. 불가 사유에는 '입지 장소가 학교 인근이라 학생들의 부정적인 호기심 유발과 통학안전 및 정서상 좋지 않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자료제공=경기도 다르크]
지난해 9월 12일 남양주시가 경기도 다르크에 보낸 정신재활시설 신고 불가 공문. 불가 사유에는 '입지 장소가 학교 인근이라 학생들의 부정적인 호기심 유발과 통학안전 및 정서상 좋지 않다'는 내용이 적혀있다. [자료제공=경기도 다르크]

정신건강복지법에 따르면 중독재활센터는 5명의 직원을 채용하는 등 일정 요건을 규정하고 있다. 다르크가 해당 요건을 충족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임 센터장은 “정신재활시설로 신고하려면 인력이나 시설 규모를 충족해야 하는데, 그동안 재정적 문제로 못 했었다”고 해명했다. 입소자로부터 매월 50만원의 숙식비를 받고, 나머지는 후원금으로 충당해 운영하고 있는 센터 재정상 직원 채용이 힘들었다는 게 다르크의 설명이다. 다만 임 센터장은 “센터의 재정이 열악하다는 사실은 남양주시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지난 2022년 12월 21일 보건복지부 주최로 마약류 중독 문제 해결을 위해 다르크 지원을 위한 논의가 열렸는데, 당시 회의에는 보건복지부 관계자를 비롯해 다르크 관계자, 경기도청 및 남양주시 담당 공무원들이 참여했다. 이 자리에서 경기도 다르크가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정신재활시설 등록을 비롯한 관련 지원이 필요하다는 이야기가 나왔다. 임 센터장 또한 정부 지원을 받기 위해 당국 신고를 위한 요건을 갖출 계획이었다.

경기도 다르크가 애초 지난 2019년부터 남양주에 소재했던 점과 남양주 보건소 관계자가 보건복지부 주최 다르크 지원 논의에 참여해 경기도 다르크의 사정을 알 수 있었다는 배경을 고려하면 부지불식의 조치였다. 임 센터장은 부랴부랴 정신재활시설 신고를 위한 인력 채용에 나섰고 관계 당국에 시설 허가 신고서를 제출했다.

그리고 9월 12일 남양주시로부터 다시 공문이 날아왔다. 이번엔 허가가 불가하다는 내용이었다. 입지 장소가 학교 인근이라 학생들의 부정적인 호기심 유발과 통학안전 및 정서상 좋지 않다는 게 첫 번째 이유. 법인 사업 계획과 소요경비 자료가 미비하고, 센터 내부 사무실과 상담실, 식당 등의 공간이 분리돼 있지 않고 한 공간에 겸용으로 사용하고 있어 정신재활시설로 부적절하다는 게 나머지 이유였다. 결국 백기를 든 쪽은 경기도 다르크였다.

지난해 8월 14일 남양주시의회 국민의힘 한근수 시의원이 남양주시 호평동 판곡고등학교 앞에서 다르크 이전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한근수의원실]
지난해 8월 14일 남양주시의회 국민의힘 한근수 시의원이 남양주시 호평동 판곡고등학교 앞에서 다르크 이전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제공=한근수의원실]

회복하러 왔는데, 혐오의 당사자가 됐다

다르크와 지자체의 시설 허가 실랑이가 벌어지는 사이 편견의 그림자는 사방에서 뻗어왔다. 주민들은 지자체에 시설 이전을 요청하는 탄원을 냈고, 남양주시의회 국민의힘 한근수 시의원은 다르크 이전을 촉구하는 1인 시위를 벌였다. 한 의원은 지난해 7월 열린 남양주시의회 본회의에서 “남양주시 학생들의 안전과 학습권 보장을 위해 호평동 소재 판곡 중‧고등학교 인근에 불법 설치된 마약중독자 재활시설의 이전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투데이신문>은 다르크가 학생들의 안전과 학습권 보장에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한 의원 발언의 근거를 묻기 위해 지난 5일 한 의원과 통화했다. 한 의원은 “그분들(다르크 입소자들)이 완전 위험한 분들은 아니지만, 학교 근처라 아이들 등교 시간에 근처 편의점을 다닌다든지 해서 아이들이 불안감을 갖고 있고 결국 학교 근처에 이런 시설이 있다는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에서 학부모들도 안전하다고 생각 안 하실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지역구 의원인 더불어민주당 조응천 의원은 중독재활시설을 학교 인근 200m이내에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한 ‘청소년 교육환경 보호 강화법’을 발의하기도 했다. 법은 지난달 9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상이 센터 이전 6개월 동안 벌어진 일이다.

일련의 과정은 상처를 남겼다. 임 센터장은 “우리 상처 많이 받았다. 애들은 의기소침해 있었고 여러 가지로 복잡했다”라고 당시의 심경을 털어놓았다. 갑자기 입장을 돌변한 지자체도, 나가라는 주민도 원망스럽지만 혹여나 입소자들이 마음의 상처를 크게 받진 않았을지가 가장 걱정이라 했다.

혐오의 낙인을 견디지 못하고 다시 중독의 손아귀로 빨려 들어간 이들도 있다. 임 센터장은 “이 과정에서 입소자 세 명이 이탈했다. 아이들이 괴로워했다. 이 시설만 들어오지 않았다면 아무도 모르니까 길거리 어디든 돌아다닐 수 있는데 여기에 들어왔다는 이유만으로 ‘자신들이 잠재적 범죄자가 된 것같다‘고 느낀다더라”고 얘기했다. 이탈자 가운데 두 명은 다시 마약에 손댔고 스스로 당국에 신고해, 현재 재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남아 있는 이가 있다. 퇴거 당시 입소 1개월도 못 미친 신참이었던 김씨는 당시 심경으로 “주민들 입장은 당연히 이해된다. 그런데 우리에게도 한 번 기회를 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양주시에 임시 거처를 마련한 경기 다르크는 늦어도 오는 3월 말까지는 자리를 비워야 한다. 새로운 보금자리가 필요한 상황이다. 임 센터장은 현재 새로운 거처를 백방으로 알아보는 중이지만 “아이들이 머물 수 있는 정도의 시설인지, 혹시 주변에 학교나 거주지는 없는지 고려해야 하는 요소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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